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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29화 (329/524)

황금가 (329)

천우황과 좌무백은 심무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황제가 돼 중원을 다스리는 거에 대해서는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심무극에게 황제가 되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심무극은 고개를 저었다.

번거롭다는 게 이유였다.

그랬던 그가 황제가 되겠다고 한 것이다.

“아락 때문인가?”

천우황이 물었다.

“그렇다고 볼 수 있네.”

심무극은 부정하지 않았다.

신왕을 몰아내고 전천사를 쳐 낸 건 천하의 주인이 되려고 그랬던 것 아니냐고 하였던 아락의 말은 비수가 돼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아락이 나타나기 전부터 고민을 하고 있던 사안이기도 하네.”

“아락이 결심을 굳히게 만들어 주었구먼.”

“그렇네.”

심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방법으로 왕이 될 건가?”

좌무백이 물었다.

“현 황제를 그대로 두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를 제거하고 자네가 얼굴만 바꾸겠다는 건가?”

“그렇네.”

“현 황제는 힘이 없네.”

“황권을 강화시켜야겠지.”

“어떻게 강화시킨다는 건가?”

“황권 강화를 위한 첫 번째 일은 다정성모를 황실로 불러들이는 거네.”

“다정성모면 제일타락관의 관주로 있는 주려아를 말하는 건가?”

“그렇네.”

“그 일을 빌미로 주려아를 삼사천가로 보내자고 한 자들을 숙청할 생각이구먼.”

“잘 아는구먼.”

심무극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삼사천가도 정리를 해야 하네.”

“정리해야지.”

“어떻게 정리를 할 생각인가?”

“숙청을 하고 나면 황실에 빈집이 아주 많을 거네.”

“다시 황실로 들어가잔 말이군.”

“싫은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나는 찬성이네.”

좌무백은 활짝 웃었다.

“자넨 어떤가?”

심무극의 시선이 천우황에게로 향했다.

“나도 찬성이네.”

천우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럼 추진하도록 하겠네.”

심무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우황과 좌무백도 뒤이어 일어났다.

“먼저 가겠네.”

심무극은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은 천우황과 좌무백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에는 우려의 빛이 어려 있었다.

“잘될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좌무백이었다.

“글쎄…….”

천우황은 말끝을 흐렸다.

사실 그동안 힘이 없어서 황제가 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기회도 있었고 준비도 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 근처에서만 머물렀던 건 일이 잘못됐을 경우를 걱정해서다. 반란이 일어나거나 타국과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황제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그럴 경우 이천 년 이상 쌓았던 모든 기반을 잃을 수도 있다. 몇 년 안 되는 황제 자리에 앉은 대가치고는 너무 크다. 게다가 황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권력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심무극이 황제 주변인으로 머무는 상황에 대해 한계를 절감한 모양이었다.

“사실 아락이 무엇을 위해 루하와 전천사를 쳐 냈냐고 따졌을 때 내 자신이 초라해졌네.”

“나도 마찬가지네.”

천우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진작부터 생각했네.”

좌무백이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사는 걸 말하는 건가?”

“황실에서 우리 운명과 한바탕 전쟁을 벌이는 거 말이네.”

“운명과 전쟁이라……그렇군.”

천우황은 빙그레 웃었다.

* * *

휙! 휙휙! 휙휙!

용문산 천음사로 수십 명이 날아내렸다.

서른 명 정도 되는 이들은 대부분 키가 컸다.

어둠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검은 피부를 가진 이들은 영산을 떠나온 금장생 일행이었다.

천음사는 여섯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은밀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철마 나극 일행이 무사히 도망쳤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만일 잡혔다면 이곳이 함정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후 사방으로 흩어졌다.

금장생과 나하려가 간 곳은 손님들이 머무는 객당이었다. 둘은 천장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객당은 텅 비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바닥을 살피던 나하려가 말했다.

금장생은 바닥으로 내려가 손을 이불에 대 보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나가요.

둘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스악!

아래로 내려서려는데 섬뜩한 기운이 전면에서 날아들었다. 암습을 가한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금장생과 나하려는 좌측과 우측으로 이동했다.

휙!

그러자 예기가 좌우측으로 갈라져 쏘아져 왔다.

금장생은 왼손을 쭉 내밀었다.

카앙!

날카로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억!”

어둠 속에서 나직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금장생의 손이 어둠을 뚫었다.

“컥!”

어둠 속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금장생을 공격했던 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죄수들의 수장이었던 혁무심이었다.

혁무심의 얼굴을 알아본 금장생은 얼른 손을 놓았다. 그리고 은신술을 풀었다.

“공격을 멈춰요!”

혁무심은 크게 소리쳤다.

곧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자들이 혁무심 주위로 날아내렸다. 그들 중에는 철마 나극도 있었다.

“할아버지.”

나극을 발견한 나하려가 달려가 품에 안겼다.

“왔구나.”

나극은 나하려를 안았다.

그때 주변으로 흩어졌던 신족과 마족들이 다가왔다.

“응?”

그들을 발견한 혁무심이 깜짝 놀랐다.

그녀가 알기론 머리에 뿔이 있는 자들은 마족뿐이다. 그리고 중원에서 마족이 사라진 건 수천 년 전이다. 그런데 바로 앞에 마족으로 보이는 자들이 있었다.

“저들은…….”

혁무심의 시선이 금장생에게로 향했다.

“당신이 생각한 그들이 맞습니다.”

“마족이란 말인가요?”

“머리에 뿔이 있는 자들은 마족이고, 없는 자들은 전천삽니다.”

“맙소사.”

혁무심의 눈이 커졌다.

전천사.

그들 역시 마족과 마찬가지로 수천 년 전에 사라진 종족이다. 그런데 사라진 그들이란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정말인가요?”

이번에는 헤리아와 시하라를 보며 물었다.

“맞아요. 우리는 추방되기 전에 전천사라고 불렸어요.”

헤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추방이라고 했나요?”

혁무심은 다시 물었다.

“맞아요. 우리는 모두 버려진 자들이에요.”

“당신들이 어떻게…….”

“영산이 버려진 땅이라는 걸 몰랐나 보죠?”

금장생은 물었다.

“그런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곳에 버려진 자들의 땅이 있었고, 삼천 명 정도가 살고 있었어요.”

“그랬군요.”

혁무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천 년 이상 숨어 살던 자들이 세상으로 나왔다는 건 큰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것도 좋지 않은 일이.

“아미타불!”

그때 불호 소리와 함께 스님이 다가왔다.

금장생은 얼른 합장을 했다.

“소승은 천음사 주지 불광이라 합니다.”

“장생입니다.”

금장생은 인사를 했다.

“그런데 저분들은?”

“오래전부터 어둠 속에서 살아왔던 분들입니다.”

“그랬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불광대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일행은 불광대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계획은 있습니까?”

불광대사가 내준 차를 마시며 금장생은 물었다.

“없어요.”

혁무심은 고개를 저었다.

“영감님은?”

이번에는 나극을 보았다.

“우리에겐 계획도 없고 돈도 없네.”

나극이 자신들의 처지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금장생은 혁무심 일행을 보았다 혁무심은 검은 피부를 지녔고 눈동자는 파랗다. 저 상태로 세상으로 나가면 구경꾼들을 구름처럼 끌고 다니게 될 것이다. 아무렇게나 나돌아 다닐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함께 생활하실 겁니까?”

금장생은 나극과 혁무심을 보며 물었다.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네.”

나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지금 고민 중이다. 이런저런 사업을 벌여 사람이 많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저들은 외모가 특이해서 써먹을 곳이 없다.

“자넨 사업을 한다고 하던데…….”

나극이 먼저 말을 꺼냈다.

“사업이야 뭐, 워낙 규모가 작아서요.”

“우리가 도와주면 안 되겠는가?”

“취직을 시켜 달라는 겁니까?”

“평범한 외모를 지녔다면 어떻게든 살아 보겠지만 암흑천사들은 피부는 검고 눈동자는 각양각색이네. 생김새도 이국적이고. 그동안 계속 생각해 봤는데 직장을 구하는 것도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네. 그렇다면 사업을 해야 하는데, 가진 것도 없고 장사나 사업 경험도 없으니까 그 또한 불가능하네.”

“결국은 나밖에 없다는 거네요?”

“그렇네.”

“전부 몇 명입니까?”

금장생은 혁무심을 보며 물었다.

“나를 포함해서 오십 명이에요.”

“그럼 영감님과 나 소저를 합치면 쉰두 명, 암흑마족과 신족이 서른두 명이니까 총 여든네 명이네요. 여든네 명이면…… 키가 크니까 먹는 것도 많을 테고 옷도 커야 하고, 그럼 보통 사람보다 두 배를 생각해야 하니까 인당 열 냥 잡으면, 월 팔백사십 냥……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생산성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 매월 팔백사십 냥을 써야 한다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든 시키는 일은 다 하겠네.”

나극이 말했다.

“아무튼 여러분에 대한 건 차차 연구해 보는 게 낫겠습니다.”

할 일을 찾을 때까지 데리고 다니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일단 정주까지 가야 합니다.”

금장생은 일행을 보며 말했다. 아직 표국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라 가서 점검을 해야 했다.

‘그 사람들 난리겠네.’

자운영과 권말남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은 며칠 동안 붙어 다녔다. 그러다가 권말남이 바타르와 좋은 시간을 보내는 사이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금의위와 동창 무인들이 따라붙었지만 금세 따돌렸다.

“따르겠네.”

나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천음사 주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밤을 이용해서 쉬지 않고 달렸다.

정주에 도착한 건 천음사를 떠난 지 닷새 만이었다.

정주에 도착했지만 황금전가 옛터로 바로 가지 않았다. 그가 먼저 들른 곳은 환희루였다.

환희루 루주 미우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금장생은 사정 설명을 했다.

“전부 여든네 명이라고 했나요?”

미우는 물었다.

“네. 그리고 낮에 활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미우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군요. 들어오세요.”

금장생은 허공을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곧 천장에서 나극, 나하려, 혁무심, 헤리아, 시하라가 내려왔다.

“…….”

눈이 약간 커진 것 말고는 미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놀라지 않는군요.”

시하라는 미우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매우 놀랐어요.”

미우는 시하라를 보았다.

머리에 난 뿔과 참 어울리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표정은 변화가 거의 없군요.”

“이 바닥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어지간한 일로는 호들갑을 떨지 않게 되거든요.”

“이 바닥이라는 건 어떤 곳을 말하죠?”

시하라가 물었다.

“사내들에게 술과 웃음을 팔아요. 간혹 몸도 팔기도 하고요.”

“여기가 기루라고 하는 곳인가 보죠?”

“그건…….”

미우는 금장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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