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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28화 (328/524)

황금가 (328)

“수고했다.”

심무극은 웃으며 엘을 치하했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엘은 고개를 숙였다.

엘 옆에는 아르카가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포로는 어떤 상태냐?”

“감옥에 있습니다.”

“비었던 흑루가 다시 채워진 모양이구나.”

“그렇습니다.”

“그들을 암흑오부족이라고 하였더냐?”

“그렇습니다.”

“그들의 힘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어느 정도나 될 거라고 보느냐?”

“춘추오패 정도 전력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당한 전력이구나.”

“가급적이면 거두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 친구들을 만나 보도록 하자.”

“어디서 보시겠습니까?”

“백루에서 보는 게 낫겠지?”

“그쪽으로 데려다 놓겠습니다.”

“가는 길에 마왕과 심왕에게도 연락해라.”

“알겠습니다.”

엘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엘이 자리를 뜨자 실내에는 심무극과 아르카만 남았다.

“먼저 우리 둘 사이의 서열을 정하는 게 낫겠지?”

심무극은 아르카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부하로 삼을 생각 아니었소?”

아르카는 물었다.

사실 그의 놀라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과거 그가 알던 강호무림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때는 무림은 물론이고 나라마저도 접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실제로 일을 추진하기도 했다. 만일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황제 자리에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엘은 조금 전 암흑오부족의 전력을 춘추오패의의 한 곳 정도라고 하였다. 춘추오패라고 했다는 건 비슷한 전력을 가진 세력이 다섯 곳이나 된다는 뜻이다. 삼백 년 만에 너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 생각이고 자네 생각은 나와 다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자네나 나나 시작은 천족과 마족이었지만 지금은 무인이잖은가.”

“무공으로 결정을 보자는 겁니까?”

“그렇네.”

“그럼 연무장으로 나가야겠군요.”

“굳이 그럴 필요 없네. 여기서도 충분하다네.”

“이 건물이 무너질 겁니다.”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게.”

심무극은 빙그레 웃었다.

“어떤 식으로 할 건지 궁금하군요.”

“간단하네. 자네가 이 검을 방어하면 내가 자네를 주공으로 모시고, 막아 내지 못하면 내가 주공이 되는 거네.”

심무극은 단검을 탁자 위에 놓았다.

“내게 유리한 조건 같군요.”

아르카는 단검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검집이 피처럼 붉은색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물론입니다.”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지. 시작하겠네.”

심무극은 단검으로 시선을 주었다.

창!

검이 뽑혀 심무극의 얼굴 앞에 멈춰 섰다. 그 상태에서 천천히 아르카 앞으로 나아갔다.

“…….”

검을 쳐다보던 아르카의 눈이 점점 커졌다.

처음엔 단순한 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랬던 검이 갑자기 거대해졌다. 아니 거대해진 게 아니라 산으로 변했다. 아르카는 이내 힘을 풀어냈다.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힘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아르카 얼굴 바로 앞에 검은 점 하나가 생겨나더니 점점 커졌다.

아르카는 주먹 크기로 커진 구체에 힘을 가했다. 앞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구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르카는 힘을 팔 성으로 끌어 올렸다. 하지만 검은 구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십 성으로 올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르카는 전 내공을 모두 끌어 올렸다.

그제야 검은 구체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검과 구체는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한 자를 남겨 두고 멈췄다.

검과 내기가 뿜어내는 힘은 점점 강해졌다.

푸스스!

두 사람 앞에 있던 탁자의 절반이 가루로 부서졌다. 아르카가 손으로 잡고 있던 쪽이었다.

“가급적이면 기물은 부수지 않았으면 좋겠네.”

탁자를 바라보던 심무극이 나직하게 말했다.

아르카의 눈이 커졌다.

그는 지금 전력을 다한 상태라 말을 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심무극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연 것이다. 갑자기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단전을 바닥까지 긁고 거기에 어둠의 힘마저 더했다. 어둠의 힘은 단전을 채운 내기와는 다른 힘이었다. 그 힘을 더하자 검은색 구체의 색이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검을 밀어붙였다.

약간 밀리는 듯하던 심무극의 검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헉!’

심무극의 검을 바라보던 아르카의 눈이 커졌다. 산이었던 검이 파랗게 변하더니 하늘이 됐다.

자신의 구체는 하늘 앞에 선 작은 공에 불과했다.

주르르!

손바닥은 축축하게 젖고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난…….’

아르카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만들어 낸 구체도 크기를 부풀렸다. 하지만 하늘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하늘은 천천히 내려오면서 검은 구체를 내리눌렀다.

주르르!

아르카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카는 승복하지 않았다. 그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이를 악물었다.

더 많은 피가 입가로 흘러내렸다.

“커억!”

결국 아르카는 피를 토하며 고개를 숙였다.

픽!

그가 생성했던 검은색 구체도 소멸됐다.

심무극의 검 또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나가서 씻고 오게.”

“손 속에 사정을 두어서 감사합니다.”

아르카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만든 검은색 구체가 사라진 순간 심무극이 힘을 거두지 않았다면 검은 그대로 돌진했을 테고 자신의 얼굴은 가루가 됐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럼.”

아르카는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대기하고 있던 시비가 욕실로 데리고 갔다.

“우엑!”

심무극은 고개를 숙이고 피를 토했다.

그가 천하의 강자라고 하지만 아르카 역시 약자가 아니었다. 그 역시 이번 대결에서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이다.

스윽!

허공에서 여자가 불쑥 튀어나와 천으로 심무극의 입을 닦아 주었다.

“그자가 주공을 다치게 할 정도로 강자인 줄 몰랐어요.”

여자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들은 추방되기 전부터 강자였다. 그런 상태에서 다시 이천 년 동안 무공을 익혔지 않느냐. 그런 자가 약하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완전히 굴복할 거라고 보세요?”

“나는 신족이고 녀석은 마족인데 완전히 굴복시킨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

“그럼?”

“배신을 하더라도 한 번은 더 생각하게 될 게다. 그거면 충분하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주공께서 하시는 일이니까…….”

여자는 피를 전부 닦아 내고 자리를 떴다.

심무극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백루로 가기 위해서였다.

밖에는 마차가 대기 중이었다.

잠시 후 피를 닦은 아르카가 나왔다.

“타지.”

심무극은 마차를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아르카는 마차에 올랐다. 그에 이어 심무극이 오르자 마차가 출발했다.

한 식경 후 마차는 백루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심무극이 들어가자 엘이 맞았다. 안에는 지천마황 천우황과 좌천심황 좌무백도 와 있었다. 두 사람 앞에는 신왕 아락과 마왕 하발이 앉아 있었다.

얼굴은 초췌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심무극과 아락의 시선이 마주쳤다.

“쿡!”

심무극은 피식 웃었다.

“크로헬이군.”

아락은 나직하게 말했다.

“맞네. 아주 옛날에는 그렇게 불렸네.”

심무극은 아락 건너편으로 앉았다.

“세상이 만만치 않았나 보군.”

아락은 심무극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신들의 능력을 제거하여 버려진 땅으로 추방시킨 자가 바로 앞에 앉은 세 사람이다.

“이천 년이 더 넘게 흘렀는데도 자네들은 여전히 그 자리구먼.”

심무극이 말했다.

실력에 대한 언급이었다. 심무극이 아르카와 대결을 해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저들은 더 이상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거였다.

“글쎄. 우리야 뭐, 세상으로 나오지 않았으니까 모든 면에서 정체됐다고 해도 할 말이 없지만 자넨 뭐 했는가?”

아락이 물었다.

“아락 자넨 내 백초지적도 안 되네.”

“내가 말한 건 실력이 아니네, 크로헬.”

“그럼 뭔가?”

“신분을 말하는 거네. 자네들이 신왕 루하를 내쫓을 때는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아니었는가. 그런데 이천 년 동안 중원의 주인이 된 수많은 황제들 속에 자네들 이름은 없더구먼. 이천 년이면 한 사람이 오백 년씩 해 먹을 있는 세월인데도 말이네. 아니 굳이 황제가 아니더라도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직책은 얼마든지 있네. 황제보다 더 뛰어난 사람도 많으니까. 아, 크로헬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을 테니까. 역사에 기록된 자네들 이름을 알 수 있는가?”

“…….”

심무극은 할 말이 없었다.

역사 속에 족적을 남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명 제국 건국 때 올라간 삼사가 최고 자리다.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신왕을 내쫓고 우리를 버려진 자로 만든 건가?”

이번에도 역시 심무극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세상의 주인이 되는 데 방해가 된다며 신왕 루하를 내쫓고 거치적거린다며 전천사를 버려진 자들로 만들어 추방했다. 자신이 한 건 그게 전부였다. 왕 중의 왕도 되지 못했고 중원의 주인인 적도 없었다.

그냥 세월을 안고 살아오기만 했다.

“이 세상은 자네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좁은 마을과는 다르네. 시시각각 상황이 달라지네. 여기를 보고 있으면 저기서 일이 터지고, 저기를 보고 있으면 또 다른 쪽에서 일이 일어나네. 나는 그 모든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고 준비를 해 왔네. 그리고 이제 준비가 끝났고.”

“준비를 한 게 아니고 망설였겠지. 이천 년 동안 말이네.”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여긴 우리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네들 이야기를 하는 자리네.”

심무극은 화제를 돌렸다.

“우리에게 원하는 게 뭔가?”

아락이 물었다. 그 역시도 심무극 일행이 살아온 세월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다.

“과거로 돌아갔으면 하네.”

“어떤 과거를 말하는 건가?”

“자네들이 추방자가 되기 전 상황을 말하는 거네.”

“우리를 부하로 부리겠다는 건가?”

“영산에 살고 있는 이들의 목숨으로 협박할 수도 있지만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협조해 줄 거라고 믿네.”

“결국 그들을 살려 줄 테니까 협조하라는 뜻이군.”

“그렇게 받아들여도 할 말 없네.”

“협조하지.”

아락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친구 하발은 어떤가?”

“나도 협조하겠소.”

“하하하! 이렇게 쉽게 해결될 일을 너무 생각을 많이 했구먼. 오늘 당장 연회를 열도록 하겠네.”

심무극은 앓던 이를 뺀 사람처럼 활짝 웃었다.

“단주.”

심무극은 엘을 보았다.

“네.”

“어둠의 군단 대원들을 모두 풀어 주고 거처를 마련해 주도록 하게.”

“저자와는 함께 일할 수 없네.”

아락이 아르카를 가리켰다.

“그렇지 않아도 자네들을 분리할 생각이었네. 단주는 건물을 따로 배정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엘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아락 일행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실내엔 세 사람만 남았다.

“엘에게 공대를 하던데…….”

천우황이 심무극을 보았다.

“과거의 신분으로 따지면 그들이 엘보다 신분이 더 높지만, 지금은 엘이 더 높네. 그들보다는 엘을 더 대우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거라 생각했네.”

천우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결심을 했네.”

심무극은 천우황과 좌무백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결심을 했다는 건가?”

“황제가 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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