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25)
그때 금장생은 마법진 입구 바로 안쪽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마법진으로 들어가는 입구라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는 밖을 살필 수 있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금장생은 코를 긁적였다.
적어도 절반 이상은 따라 들어올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들어온 자들은 삼 할에 불과하다. 게다가 가장 위협적인 철장거인은 한 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유인에 걸려들지 않는 모양이구나?”
바로 뒤에 있던 시하라가 물었다.
“눈치 빠른 녀석이 있나 봅니다.”
“어떻게 하지?”
“한번 휘저어 놔야지요.”
“기습을 하자는 거야?”
“네.”
“들어올 때는 여기로만 와야 하는 거지?”
“다른 길이 있다면 모를까,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입구에 이 돌을 놓아두겠습니다.”
금장생은 조금 전 주워 든 머리 크기의 돌을 보여 주었다.
“알았어.”
시하라와 헤리아, 나하려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은 자세를 낮추고 돌을 밖으로 밀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돌 하나가 나왔지만 세 종족 중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시각 엘삭은 드리하스 일행과 마검애에 대해 토론 중이었다.
“놈들이 저기로 간 거요?”
드리하스는 어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소.”
“그들은 저 어둠을 통과할 수 있다는 거요?”
“길을 아니까 안으로 들어간 것 아니겠소.”
“암흑마족만 들어갔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암흑신족까지 저 안으로 들어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소.”
드리하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마검애는 마왕인 하발이 전쟁을 택하면서까지 비밀이 밝혀지는 걸 꺼려했던 장소다.
그 일로 인해 신족, 마족과 엘프, 드워프, 인간이 서로 배척하게 됐고, 결국엔 갈라섰다.
그랬던 장소를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고 하지만 암흑신족에게 개방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마검애로 가는 길을 부군단장인 시하라가 알고 있을는지도 의문이다.
“저기가 마검애가 아니라고 보시오?”
엘삭은 절벽을 가리켰다.
“그렇소. 하발은…….”
드리하스는 자신이 조금 전 생각한 걸 자세하게 말했다.
“수좌 생각은 어떻소?”
엘삭은 인간 전사들의 수장 비토를 보며 물었다.
“저기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둠의 계곡 끝에 마신애가 있는 건 분명하오.”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확인하는 겁니다, 수좌.”
에르바난이 말했다.
“저기가 마법진 안이 아니고 일반 숲이라면 우리 힘이 전달될 거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좋다. 대원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해라.”
“네.”
에르바난은 뒤로 갔다. 잠시 후 엘프 스무 명이 엘삭 뒤편에 일렬로 늘어섰다.
“먼저 뒤편 나무를 보시오.”
엘삭은 전방 어둠이 아닌 뒤편을 가리켰다.
드라하스와 비토는 몸을 돌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면 어둠을 바라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몸을 돌렸다.
스윽! 스윽! 스윽! 스윽!
그때 뒤편 어둠 속에서 검은 인형 넷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좌우로 흩어졌다.
“차앗!”
엘프들은 기합을 내지르며 바닥에 나 있는 풀을 움켜쥐었다. 순간 푸른색 광채가 풀잎을 타고 땅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파앗!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들이 바라보는 뒤편 나무들에서 푸른 광채가 흘러나왔다.
“대단하네.”
드리하스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엘프의 능력을 모르지 않는다. 나무를 이용해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으악!”
“아악!”
“크아악!”
좌측과 우측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헉!”
“억!”
드리하스와 비토 일행은 경악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각각 세 명을 없앤 헤리아와 나하려는 재빨리 표시를 해 둔 곳으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아악!”
“으아악!”
그 순간 다시 좌측과 우측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엘프와 드워프, 인간을 공격하는 있는 이들은 금장생과 시하라였다. 몇 번의 공격을 마친 시하라가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금장생 일행의 도발에 가장 먼저 넘어간 자는 드리하스였다.
“쫓아라!”
드리하스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곳이 마검애란 사실을 의심하고 있던 그는 금장생 일행이 뛰어나와 기습을 하자, 마검애가 아니라고 확신한 것이다.
“차하!”
“타하!”
드워프들은 기합과 함께 마법진 안으로 뛰어들었다. 남은 드워프들이 대부분 뛰어 들어갔지만 싸우는 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철장거인은 공격하라!”
이번에는 철장거인에 탄 전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드워프 철장거인 세 기가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응?”
드리하스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키가 작은 드워프가 들어간 것과 철장거인이 들어간 건 다르다. 드워프는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키가 오 장에 달하는 철장거인은 어떻게든 표시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고 걷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는 드리하스를 바라보았다.
“두 분은 왕으로부터 받은 거 없소?”
엘삭이 물었다.
“오기 전에 받았소.”
비토가 손바닥 반 크기의 얇은 물체를 꺼내며 말했다. 그가 꺼낸 건 모든 마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반마법이 심어져 있는 마법 스크롤이었다.
“빌어먹을!”
드리하스는 욕설을 뱉어 내며 마법 스크롤을 꺼냈다. 그도 출병하기 전 드워프 왕 타고로부터 마법 스크롤을 받았다. 그러면서 두 부족과 힘을 합쳐 마검애 앞에 있는 마법진을 없애라는 명령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의심을 했던 건 마법진을 없앨 정도로 강한 마법 스크롤은 한 장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드리하스는 왼쪽, 비토는 오른쪽, 나는 여기를 맡겠소. 정확하게 반각 후에 안으로 뛰어들면서 마법 스크롤을 찢도록 합시다.”
“좋소.”
“알았소.”
드리하스와 비토는 좌우측으로 몸을 날려갔다.
“저거 세 개면 이 마법진이 무력화될까요?”
금장생은 시하라를 보며 물었다.
“각 종족의 왕이 준비한 거라면 되겠지.”
“그럼 우린 포위되겠군요.”
“그럴 거야.”
“먼저 안으로 들어왔던 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겠지.”
“경험이 없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시험을 해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렇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요.”
금장생은 안쪽을 가리켰다.
일행은 절벽을 향해 달렸다. 잠시 후 절벽 바로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암흑신족과 마족 대원 칠십여 명이 서 있었다.
“절벽에 은신하는 건 어때요?”
금장생은 절벽을 가리켰다.
“저기서 위로 올라오는 자들을 공격하자고?”
시하라는 절벽 위를 가리켰다.
“평지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요.”
“좋아. 해 보자.”
시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원들에게 작전을 말했다. 암흑마족과 신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들이 은신한 곳은 지상에서 십오 장 높이였다.
금장생을 비롯한 네 명도 절벽을 올랐다. 그들이 멈춰 선 곳은 십 장 높이였다.
파앗! 파앗! 파앗!
선반처럼 튀어나온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마법진 세 곳에서 푸른 광채가 솟구쳤다.
어둠을 뚫은 광채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둠이 천천히 걷혔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마법진 안으로 들어왔던 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다만 서 있는 방향은 모두 달랐다. 갑자기 어둠이 걷히자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저기 놈들이 있다. 저기다!”
금장생 일행을 발견한 누군가가 소리쳤다.
“죽여라!”
엘삭은 금장생 일행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엘프와 드워프, 인간들은 절벽을 향해 내달렸다. 수십 년 동안 무공을 익힌 그들에게 이십 장 높이의 절벽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절벽 앞에 도착해서는 곧바로 바닥을 찼다.
수십 명이 십 장 높이까지 솟구쳤다. 그들이 다가온 순간 금장생은 왼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 광채 수십 개가 전방을 휩쓸었다. 악마수로 펼치는 적안이었다.
“컥!”
“윽!”
“억!”
떠올랐던 자들은 짤막한 비명을 남기고 아래로 추락했다. 솟구치던 자들이 바닥으로 추락한 건 금장생 앞쪽뿐만이 아니었다. 시하라, 헤리아, 나하려 앞으로 솟구쳤던 자들도 공격을 받고 추락했다.
파앗!
금장생은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튀어나온 곳이 있으면 그곳을 밟고 공격했고, 없으면 손을 절벽에 박아 넣고 공격을 했다.
나하려, 헤리아, 시하라도 빠른 속도로 움직여 다니며 적을 공격했다. 세 여자 중 특히 나하려의 움직임은 굉장했다. 갑옷을 입은 그녀는 절벽을 평지처럼 뛰어다녔다. 그녀를 절벽에 특화시켜 준 건 손에서 튀어나온 손톱이었다. 손톱은 아무렇지 않게 절벽으로 파고들어 갔고 그녀의 몸을 지탱해 주었다. 왼편과 오른편, 위쪽과 아래쪽이 전부 그녀의 무대였다. 수많은 비명과 함께 세 종족의 전사들이 추락했다.
“저들을 피해서 올라가라.”
엘프족의 부지휘관 에르바난이 소리쳤다.
절벽에서 좌우로 움직여 다니며 아군을 없애는 네 명은 개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강자였다.
위에서 공격을 퍼부어 지상으로 내려가게 한 후 합공을 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십 명이 금장생 일행과 동떨어진 곳으로 솟구쳤다. 그들은 절벽 중 튀어나온 곳을 밟거나 혹은 손으로 잡아채며 두 번째 도약을 했다.
그들이 바닥에서 십오 장 높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절벽에서 새파란 검광이 튀어나와 그들을 덮쳤다.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커억!”
“크악!”
“크윽!”
처절한 비명과 함께 수십 명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매, 매복.”
에르바난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 순간에도 솟구쳤던 자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받고 아래로 추락했다.
“멀리 우회하라!”
에르바난은 다시 소리쳤다.
그러자 엘프족 전사들은 좌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휙! 휙!
그들이 이동하는 속도에 맞춰 금장생 일행도 이동했다. 금장생은 시하라와 함께 가고 나하려는 헤리아와 함께였다.
엘프족과 드워프, 인간들은 계속해서 올라갔고 금장생 일행의 공격을 받고 추락했다.
하지만 적의 수는 많았다.
절벽의 모든 부분을 점유한 채로 솟구치자 다 막아 낼 수가 없었다. 결국 위쪽에 은신해 있던 암흑신족과 암흑마족 대원들이 먼저 절벽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아래쪽에서 올라온 자들을 없앴다.
절벽에서는 금장생, 나하려, 시하라, 헤리아가 적을 없앴고 위에서는 대원들이 적을 없앴다.
처절한 비명이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암흑마족과 신족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많은 인원수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철수해야겠어.
시하라는 금장생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갈 곳이 있어요?
―방어에 실패할 경우 접선 장소가 있어.
―앞장서세요.
―알았어.
파앗!
시하라와 헤리아의 신형이 동시에 솟구쳤다. 그들에 이어 금장생과 나하려가 마지막 공격을 퍼부어 다섯 명을 처리하고는 몸을 날렸다.
“대원들은 나를 따라라!”
“나를 따라라!”
시하라와 헤리아는 곧바로 북동쪽으로 달렸다. 살아남은 대원들도 일제히 둘을 따라 달렸다.
“도망친다, 잡아라.”
세 종족은 고함을 내지르며 금장생 일행을 쫓았다.
“크악!”
“아아악!”
“으아악!”
후미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암흑마족과 암흑신족 대원들은 비명을 들으면서 달렸다.
“와아아아!”
“우와아아아!”
“이겼다!”
금장생 일행이 승리의 함성을 들은 건 적을 따돌리고 한 식경이 지나고 난 후였다.
“누가…….”
일행은 긴장한 얼굴로 함성이 들려온 곳 하늘을 보았다.
“아르카 님 만세!”
“아르카 님 만세!”
털썩!
털썩!
시하라와 헤리아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