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24)
힘은 절대 그냥 주지 않는다
금장생은 황당한 얼굴로 시하라를 보았다.
“못 알아들었어?”
시하라가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전쟁 경험이 전혀 없어.”
시하라가 말했다.
“전쟁 경험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집니다.”
“그래도 우리보다 낫잖아.”
“부군단장 혼자 생각입니까, 아니면……?”
금장생은 헤리아를 보았다.
“나도 시하라와 같은 생각이야. 지휘를 네가 맡아 줬으면 해.”
“싫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왜?”
“지휘를 한다는 건 목숨을 책임져야 한다는 걸 뜻합니다. 그건 내 역량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원해.”
“두 분이 원하는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책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목숨을 걸고 일할 동기가 없다는 겁니다.”
“동기?”
“네.”
“우린 장난하는 거 아니다, 장생.”
“나도 마찬가집니다. 나는 목숨이 걸린 일로 장난치지 않습니다.”
시하라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는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시하라는 금장생이 이곳으로 왔을 때 한 이야기를 꺼냈다. 비밀을 지켜 주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말 그대로 도움입니다. 여러분들이 죽으면 나는 이곳에 머물 필요가 없죠. 아무나 잡아서 지도가 가리키는 장소를 찾은 후 여기를 빠져나가면 그걸로 끝입니다.”
“적당히 하다가 떠나겠다는 거구나.”
헤리아가 말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는 도움이란 딱 그 정도가 적당합니다.”
“어떻게 해 주면 동기가 생기겠느냐?”
시하라가 물었다.
사실 그녀에게는 적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백 명도 안 되는 대원과 철장거인 세 기가 전부다. 마왕이 원했던 두 시진이 아니라 일각도 버티기 힘든 전력이다. 지금 상황에서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혼자서 철장거인 여섯 기를 없앤 금장생뿐이었다.
“그냥 돕는 걸로 할게요.”
“네가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원하는 걸 다 들어주겠다.”
헤리아가 말했다.
“지금 원하는 거라고 했나요?”
금장생은 헤리아를 보았다.
“네 노예가 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시하라가 말했다.
반드시 노예가 되겠다는 뜻이 아니고 그만큼 절실하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입히고 재우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데 노예를 둡니까. 지금 있는 여덟 명도 힘들어 죽겠구먼. 필요 없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네가…….”
―이 사람은 돈을 가장 좋아해요.
시하라 귓전으로 나하려의 전음이 흘러들었다.
“돈을 주겠다.”
시하라가 말했다.
“돈이라고요?”
돈이란 말에 금장생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이제 관심이 좀 생기느냐?”
시하라가 물었다.
“제 관심은 돈에 비례해서 커집니다.”
“원하는 금액을 말해.”
“오백만 냥을 주십시오.”
“야! 오, 오백만 냥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
헤리아가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시하라는 헤리아와 달랐다.
“줄게.”
시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입니까?”
금장생은 시하라를 보았다.
“내 목을 걸고 약속할게.”
―야,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그런 약속을 해.
헤리아가 텔레파시를 보냈다.
―일단은 이 위기를 넘겨야 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거짓말을 하는 건 그렇잖아.
―난 거짓말 안 해.
―네가 오백만 냥이 어디 있다고?
―내 몸을 팔아서라도 줄 거니까 넌 걱정하지 마.
시하라는 금장생을 보았다.
“좋아요. 지금부터 내가 지휘할게요.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적의 전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겁니다.”
“알았다. 내가 다녀올게.”
시하라는 곧바로 철장거인의 등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적진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가 돌아온 건 일각 후였다.
“인원은 예상대로 일천 명 정도고 철장거인은 열 기다.”
“반면에 우린 철장거인이 세 기고 인원은 팔십 명이군요.”
“맞다.”
“우선은 놈들의 숫자를 줄여야겠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줄인다는 거지?”
“일단 철장거인은 돌려보내도록 하세요.”
“알았다.”
시하라와 헤리아는 철장거인을 돌려보냈다. 금장생 또한 마신을 돌려보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시하라가 물었다.
“녀석들을 절벽 앞에 있는 마법진 안으로 밀어 넣어야겠습니다.”
“마법진 안이라고?”
시하라의 눈이 커졌다.
“네.”
“길을 알아? 참, 마신검을 가지고 나왔지.”
시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신검을 가지고 나온 사람이 길을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먼저 놈들을 유인해야 합니다.”
“좋아, 그렇게 하자.”
고개를 끄덕인 시하라는 부하들에게 작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사이 헤리아도 부하들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나는 올라가서 길을 찾아 놓고 오겠습니다.”
금장생은 시하라와 헤리아를 보며 말했다.
“그동안 우린 싸우면서 물러나야겠네?”
시하라가 물었다.
“네.”
“알았어. 우리가 다 죽기 전에 빨리 와.”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곧바로 몸을 날려 자리를 떴다.
“헤리아, 넌 우측을 맡아. 난 좌측을 맡을게.”
“알았어.”
헤리아와 시하라는 대원들을 데리고 이동했다.
스윽! 스윽! 스윽!
엘프 삼백여 명이 빠르게 내달렸다.
달려가던 그들은 나무 앞에 멈춰 서서는 손바닥을 댔다. 그리고 다시 내달렸다. 그들 뒤에는 드워프와 인간이 따랐다. 드워프와 인간의 수도 엘프와 마찬가지로 삼백 명 이상이었다.
백여 장을 내달리던 엘프들이 좌우로 나뉘었다. 중앙을 맡은 자들은 철장거인 열 기였다.
먼저 전투를 시작한 곳은 시하라가 이끄는 암흑마족이었다.
스악!
“으악!”
“아악!”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엘프 진영에서 터져 나왔다.
“주의하라!”
“광탄을 던져라!”
엘프 진영에서 고함이 터졌다. 곧 검은 덩어리 수십 개가 밤하늘을 갈랐다. 잠시 후 굉음과 함께 터졌다.
“물러나!”
시하라는 전력을 다해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다른 이들 또한 그녀를 따라 몸을 날렸고 간신히 광탄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기척을 남겨 위치를 들키고 말았다.
암흑마족의 위치를 확인한 엘프와 드워프, 인간은 무서운 속도로 치고 들어갔다.
창! 창창!
스악! 슥! 스악!
“악!”
“으악!”
비명이 좌우측에서 계속 터져 나왔다. 암흑마족과 암흑신족은 싸우면서 물러났다.
“아악!”
“으아악!”
“크악!”
“빌어먹을!”
시하라는 욕설을 내뱉었다. 개개인의 실력은 아군이 더 뛰어나다. 하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다. 적의 비명을 두 번 듣고 나면 부하의 비명을 들어야 한다.
‘언제 올 거냐, 장생. 제발 좀 빨리 와라!’
시하라는 뒤편을 흘끔거렸다.
―철수하세요.
그때 금장생의 전음이 들려왔다.
―고맙다.
시하라는 급하게 부하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곧 암흑마족 대원들이 물러났다. 조금씩 대항을 하고는 있지만 조금 전처럼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다 보니 희생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커억!”
“크윽!”
“으윽!”
느닷없이 비명이 잦아졌다. 그리고 암흑마족을 쫓던 자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시하라를 도와 적을 공격한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휙!
엘삭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암흑마족을 쫓아가던 자들이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반대편도 마찬가지였다. 엘프와 드워프, 인간은 더 이상 암흑신족을 공격하지 못했다.
그들을 막아선 사람은 나하려와 헤리아였다.
엘프와 드워프, 인간이 멈춘 건 잠시였다.
그들은 곧바로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차앗!”
“크윽!”
“타하!”
“으악!”
“아악!”
금장생은 모습을 드러낸 채 적을 공격했다.
“하아!”
금장생에 이어 시하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둘은 좌우로 오가며 적을 없앴다.
“저기 시하라가 있다! 죽여라!”
“저기 계집이 있다. 죽여라!”
좌측과 우측에서 동시에 없애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네 사람은 달려드는 자들을 없애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일각 정도를 물러나자 절벽 근처까지 왔다.
―이쪽으로 오세요.
금장생은 헤리아와 나하려에게 전음을 보냈다.
―알았어요.
나하려가 전음을 보냈다.
“도망친다, 잡아라.”
이어 살기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헤리아와 나하려는 잠시 후 금장생이 있는 곳으로 왔다.
“저기 줄 보이죠?”
금장생은 짙은 어둠 바로 앞에 있는 붉은색 줄을 가리켰다.
“네.”
“보여요.”
나하려와 헤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날렸다.
먼저 나하려가 들어가고 이어 헤리아와 시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금장생이 들어갔다. 금장생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줄을 거둬들였다.
“서둘러라! 놓치면 안 된다.”
뒤늦게 쫓아온 세 종족은 바로 앞에 있는 짙은 어둠이 마법진이란 생각도 하지 못하고 뛰어들었다.
선두가 들어가고 뒤따르던 자들도 안으로 들어갔다. 앞쪽의 어둠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자는 엘프족의 지휘관 엘삭이었다. 짙은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숲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서간 자들의 기척이 나야 한다. 그런데 수백 명이 들어갔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진식 속으로 뛰어든 것 같았다.
“가만, 진식?”
엘삭은 전방을 바라보았다.
“맙소사, 여긴!”
엘삭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이제야 이곳이 어디인지 떠올랐다.
아울러 이곳으로 오기 전 왕이 내렸던 명령도 생각났다.
―이걸 가지고 가서 마검애 앞에 있는 마법진을 없애라.
왕이 자신에게 준 건 디스펠 매직 마법이 걸려 있는 마법 스크롤이었다. 디스펠 매직은 다른 마법을 해제하는 마법을 총칭하여 부르는 마법이다.
더하여 왕은 한 장뿐이니까 신중하게 사용하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여기가 바로 암흑마족의 금지인 마검애였다. 마검애란 명칭은 암흑마족과 암흑신족을 제외한 나머지 세 종족이 부르는 지명이었다.
세 종족은 여전히 마검애에 마신검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그 마검애 앞까지 가기 위해서는, 마법진 속에 숨겨진 길을 찾아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게 서치 마법 스크롤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서치 마법 스크롤이 없다. 아울러 길을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가면, 어둠 속을 헤매다가 죽는다고 하였다.
“멈춰라! 들어가지 마라.”
엘삭은 고함을 내질렀다.
“왜 그러시오?”
드워프족 수장 드리하스가 물었다.
“여긴 마검애요.”
“마검애?”
드리하스는 전방으로 시선을 주었다. 짙은 어둠 너머로 절벽이 보였다. 길게 잡는다고 해도 절벽까지는 십오 장 정도다.
“정말 저 절벽이 마검애라고 생각하시오?”
드리하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렇소.”
엘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편을 향해 소리쳤다.
“에르바난!”
그러자 키가 칠 척에 가까운 엘프가 엘삭 앞으로 왔다. 엘삭의 심복이자 부지휘관이었다.
“네, 수좌.”
“인원 파악하라!”
“알겠습니다.”
에르바난은 고개를 숙이고 뒤편으로 갔다.
“무슨 일이오?”
인간의 수장 비토가 다가오며 물었다.
“저기가…….”
엘삭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