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23)
푹! 푹!
엘프 철장거인의 두 다리가 땅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그리고 어깨가 부서지면서 두 팔이 불능 상태가 됐다.
금장생은 역수로 쥔 마신검을 철장거인의 왼편 어깨를 향해 힘껏 찔러 넣었다.
차르릉!
마신검은 어깨를 뚫고 들어가 하트로 파고들었다. 금장생은 내기를 쏟아부으면서 손목을 틀었다. 그리고 힘껏 마신검을 뽑았다.
“차앗!”
그리고 두 다리를 튕기며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마신이 내려선 곳은 시하라와 검을 맞대고 있는 철장거인 어깨 위였다. 철장거인은 마신을 떨쳐 내기 위해 상체를 흔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금장생은 곧바로 마신검을 찔러 넣어 하트를 파괴했다.
파앗!
손목을 돌리면서 마신검을 뽑아내며 몸을 날렸다. 몸을 날리면서 마신검을 왼편 허리에 걸었다.
마신의 등과 양쪽 허리에는 철장거인의 검을 걸 수 있는 장치가 돼 있었다.
턱!
바닥으로 내려서자마자 다른 철장거인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렸다. 그 철장거인도 마신을 향해 달려오는 중이었다.
상체를 약간 구부린 채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는 마신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흘러나왔다.
두 철장거인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오 장 거리를 남겨 둔 지점에서 엘프 철장거인이 먼저 검을 휘둘렀다. 삼 장이 넘는 검의 길이와 팔 길이 그리고 달려가는 탄력을 합치면 그 정도에서 휘둘러야 타격 시점을 맞출 수 있었다.
엘프 철장거인의 검은 강력한 바람 소리를 남기며 허공을 갈랐다. 그의 검이 마신의 머리 위쪽 일 장 높이에 도달했을 때였다.
퍼억
마신의 왼발이 발목까지 바닥으로 파고들었다. 흙이 아니고 돌이었는지 부서진 돌덩어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비산하는 돌덩어리 사이로 마신의 오른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그때 엘프 철장거인의 검은 마신의 머리와 일 장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엘프족 철장거인의 검이 아래로 더 내려왔지만 마신이 상체를 숙이는 바람에 거리가 그대로 유지된 것이었다. 엘프가 힘을 더 끌어 올렸는지 마신의 머리를 찍어 가는 검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쐐애액!
금세라도 마신의 머리가 쪼개질 것만 같았다.
마신의 허리춤에서 검은 광채가 폭발한 건 그때였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강렬한 광채였다.
번쩍!
허리춤에서 시작한 광채는 허공에 짙은 궤적을 남기고 하늘로 향했다. 그사이 마신의 무게중심은 앞으로 나아가는 오른발로 이동했다.
척!
오른발이 바닥을 딛는 순간 마신검을 쥔 오른손은 하늘로 향해 있었다. 숙였던 마신의 허리가 펴지고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던 왼팔이 마신검을 쫓아 오른편 위로 올라가더니 마신검 손잡이 아래쪽을 쥐었다.
“타하!”
금장생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그리고 마신검은 엘프 철장거인의 목을 훑었다.
카카캉!
날카로운 소성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세상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시하라의 눈이 커졌다.
세 기의 철장거인을 저렇듯 쉽게 처리해 버리는 철장거인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시하라는 철장거인으로 시선을 주었다. 생김새는 암흑마족의 철장거인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들이 보유한 철장거인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도 철장거인의 모습은 눈에 익었다.
“어디서 봤더…… 맙소사.”
시하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눈앞에 있는 철장거인은 그림으로만 접했던 마신이었다.
“어떻게…….”
시하라는 믿을 수가 없었다.
기록에 의하면 마신은 수천 년 전에 파괴됐다고 하였다. 그랬던 마신이 눈앞에 서 있다.
그것도 엘프족 철장거인 세 기를 장난감 다루듯 없애 버리는 괴력을 보여 주면서.
“당신은 누구죠?”
시하라는 물었다.
파앗!
금장생은 바로 마신행을 펼쳐 자리를 떴다.
“여보세요. 이봐요!”
시하라는 소리쳐 불렀다. 하지만 철장거인은 금세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쿵! 쿵쿵쿵!
철장거인이 사라지고 잠시 후, 헤리아가 탑승한 철장거인이 다가왔다.
“너도 봤어?”
시하라는 물었다.
“뭘?”
“마신 말이야.”
“그 철장거인 이름이 마신이야?”
“응.”
“어떤 철장거인인데?”
“왕 중의 왕 알지?”
“칼베이더?”
“그분이 타던 철장거인이야.”
“그러니까 네 말은 그 마신은 너희 암흑마족이 보유하고 있던 철장거인이 아니라는 거지?”
“응.”
시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굴까?”
헤리아가 물었다.
“글쎄…….”
시하라는 말끝을 흐렸다.
“너희들이 보유한 철장거인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그런 녀석은 없고, 엘프나 드워프, 인간이 보유했을 리는 더더욱 없으니까 결론은 나왔네.”
“무슨 결론?”
시하라는 물었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 생긴 변화라고는 최근에 들어온 인간밖에 없잖아.”
“그 인간들 중 한 명이 마신의 주인이라는 거야?”
“다른 곳이라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거나, 땅에서 솟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세상과 격리된 곳이잖아.”
“그렇지. 그러고 보니 장생 그자네.”
시하라의 얼굴이 밝아졌다.
“생각나는 거라도 있어?”
“보법이 같았어.”
“어떤 보법?”
“저기 있는 철장거인을 일 검에 잘랐거든. 그때 철장거인이 펼친 보법이 장생의 보법이야.”
금장생이 한 번밖에 펼치지 않았던 그 보법을 시하라가 기억하고 있는 건 워낙 특이해서였다. 그런데 그 특이한 보법을 철장거인도 펼쳤던 것이다.
“비밀로 해 주면 계속 도와 드리겠습니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철장거인 다가왔다. 허공을 밟으며 다가오는 철장거인은 마신이었다.
“정말 장생, 너 맞아?”
시하라가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철장거인의 이름이 마신이고?”
시하라가 마신이 맞냐고 물은 건 진짜라고 하기엔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가 부군단장이 말한 그 마신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약할 때 자기 입으로 마신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는 건 그것뿐입니다.”
“마신이 맞다는 거네.”
“비밀로 해 주시겠습니까?”
“마신의 존재를 마왕에게 숨길 수는 없다.”
“비밀로 해 주지 않으면 나는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떠난다는 거지?”
“두 분이 날 보호하려는 이유를 잊은 겁니까?”
“널 보호하려는 이유라면…….”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알고 있다는 거냐?”
시하라가 망설이자 헤리아가 물었다.
“그 양반이 남긴 글이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박혀 있으니까요.”
“그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던 건 거짓말이었구나?”
“나는 장사꾼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공짜가 없다는 뜻이에요.”
대답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세 명은 고개를 숙였다. 검은 갑옷을 입은 여자가 위를 올려다보며 서 있었다. 나하려였다.
나하려는 몸을 날려 마신의 어깨 위로 앉았다.
“대가가 있어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거냐?”
시하라가 물었다.
“장사꾼들의 특징이에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금장생은 다시 물었다.
“어디까지 도와줄 거지?”
시하라가 물었다.
“어디까지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금장생은 되물었다.
“현재 우리 적은 이곳과 ‘고대의 문’ 두 곳에 있다.”
“만일 내가 마신을 이끌고 고대의 문 쪽으로 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다른 이들은 몰라도 암흑마족 중 일부는 알아차릴 거다.”
“처음엔 그렇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알게 될 테고, 외부에서 들어온 자들, 즉 우리를 쫓아온 신족도 알게 될 겁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서 상관에게 보고를 하게 될 테고, 나는 평생을 쫓기며 살게 될 겁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좋아. 비밀로 할게.”
시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를 해야 합니다.”
“맹세?”
“내가 알기론 마족은 맹세를 하면 심장에 새겨진다고 하던데…….”
“마언으로 맹세를 하라는 거냐?”
“두 분 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런 귀찮은 일을 해야 하지?”
헤리아가 물었다.
“그래야 저기서 달려오는 자들과 싸울 때 내가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장생은 오른편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서 수백 명이 이편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제길!”
시하라와 헤리아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상황으로 보건대 전면전으로 가는 게 분명했다.
“너희들은 몇 기지?”
시하라가 헤리아를 보며 물었다.
“나 혼자야.”
“그럼 저 녀석을 빼면 우리는 두 기네?”
시하라는 금장생을 가리켰다.
“너도?”
“응.”
“알았다. 맹세하마.”
시하라는 금장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맹세할게.”
이어 헤리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곧 두 여자는 마언과 신언으로 맹세를 했다.
“마언과 신언, 믿을 만한가요?”
금장생은 미심쩍은 얼굴로 두 여자를 보며 물었다.
“이젠 그것도 의심스럽냐?”
“경험을 해 보지 못했으니까 의심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우리 마족은 물론이고 신족은 마언과 신언을 어기는 순간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거 아주 좋은 거네요.”
금장생은 히죽 웃었다.
“우리가 죽는다는데 그렇게 좋냐?”
“두 분이 죽어서 좋은 게 아니라 내가 편안하게 살 수 있어서 좋은 겁니다. 이제 가 볼까요?”
금장생은 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된 거죠?
마신 어깨에 앉아 있던 나하려가 전음으로 물었다.
―철장거인을 말하는 건가요?
―네.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장거인을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신화 속 거인이 살아 나온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철장거인을 금장생도 가지고 있었다.
―우연히 얻었습니다.
―우연히?
―네.
―어떤 거죠?
―강력한 무기라고 보면 됩니다.
―자아도 지니고 있나요?
―라 영감님 같은 그런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고 제한된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한된 자아는 뭐죠?
―이 철장거인들은 계약을 해야만 탑승이 가능한데, 그 계약을 완료할 수 있을 정도의 자아를 가졌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위력은 어느 정도죠?
―나를 금강불괴지신으로 만들어 주는 갑옷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심검에도 견딜까요?
―아직 겪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심검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어느새 세 기의 철장거인은 암흑의 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시하라를 따라왔던 암흑마족 전사와 헤리아를 따르는 호위대 대원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의 수는 팔십 명 남짓이었다.
“전력 차이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금장생은 전면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적의 수는 천여 명 정도고 철장거인의 수는 얼마나 될지 모른다.
“이곳을 사수하고 있으면 마왕이 흑사군단을 이끌고 오기로 했다.”
시하라가 말했다.
“사수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보세요.”
“전쟁의 승패는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전은 있어요?”
금장생은 시하라를 보며 물었다.
“작전을 세울 사람은 우리가 아니고 너다.”
“네?”
금장생은 뜨악했다.
“여기 대장은 너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