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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18화 (318/524)

황금가 (318)

화살이 뽑히면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금장생은 재빨리 입을 가져갔다.

상처 바로 앞에서 잠시 멈췄던 그는 이내 결심을 한 듯 입을 벌렸다.

그리고 강하게 빨았다.

“헉!”

가슴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에 시하라의 눈이 커졌다. 독을 빨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느낌이 강했다.

퉤!

금장생은 피를 뱉었다. 그리고 다시 상처에 입을 대고 강하게 빨았다. 시하라는 자신도 모르게 금장생의 머리를 잡았다.

사실 그녀는 남자를 사귄 경험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많은 사내를 만났다. 마족만 사귄 것도 아니었다. 다른 종족 사내들도 많이 만났고, 그때마다 깊은 관계까지 갔다.

그렇게 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변화 없는 삶이 주는 무료함은 컸다. 한때는 남자 친구와 함께 성적인 감각을 개발하면서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 가장 집중적으로 개발한 곳 중의 하나가 가슴이었다. 그러다 보니 치료 행위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얼레?’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그는 슬쩍 시선을 들었다. 시하라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헐!’

금장생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 치료를 하는 도중에 특이한 느낌을 받은 여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마족은 다 이런가?’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시하라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치료에 전념했다. 치료가 이어질수록 자신의 머리를 그러쥔 시하라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가고 신음까지 흘러나왔지만 금장생은 개의치 않았다. 마침내 피가 붉은색으로 변했다.

금장생은 머금은 피를 뱉어 냈다.

“혹시 금창약 있어요?”

금장생은 물었다. 하지만 시하라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꿈틀거렸다. 그러다가 그것도 성에 안 차는지 손이 슬금슬금 아래로 내려갔다.

“저기요.”

더 두었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금장생은 시하라의 옆구리를 툭 쳤다. 그가 손으로 건든 곳은 화살이 파고든 자리 바로 옆이었다.

“억!”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시하라는 질겁했다.

그녀는 얼른 시선을 내렸다.

“맙소사.”

그녀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손이 은밀한 곳으로 가 있었다. 이번에는 금장생을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한때 색공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색공을 왜요?”

“무료함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몸이 이상해졌다는 건가요?”

“그렇다.”

“그럴 수도 있죠, 뭐. 그보다 금창약 있어요?”

“금창약?”

“상처 부위에 발라야 덧나지 않거든요.”

“없어도 된다.”

시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운기행공을 하기 위해 가부좌를 했다.

“갑옷을 입고 하는 게 낫지 않나요?”

“내 몸이 쳐다보기 역겨울 정도냐?”

“그런 게 아니라…….”

“그럼 구경이나 해라.”

시하라는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허!”

금장생은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뭐, 구경하라면 해야지.’

주인이 허락까지 했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금장생은 본격적으로 시하라의 알몸을 탐구했다.

키에 비해 얼굴은 아주 작았다. 눈은 고양이 눈을 닮았는데 상당히 크다.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새빨갛다고 해야 할 정도로 붉다. 심하게 곱슬머리인 머리카락은 길수록 돌돌 말린다. 문득 좌우측에 난 달팽이 모양의 뿔을 가리기엔 곱슬머리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장생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숨이 막힐 정도로 풍만하고 멋진 가슴이 자리해 있다. 크기 때문에 약간 처졌지만 그게 오히려 더 도발적으로 보인다.

아랫배는 어지간한 사내들에게서도 발견하기 힘든 왕王 자 복근이 선명하다. 그리고 그 아래는 좌우로 확 퍼진 둔부로 이어진다.

마족들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음모다. 특별한 몇몇을 빼고 인간이면 모두 가지고 있는 음모가 마족에게는 없다. 아니 음모뿐만이 아니라 마족에게서 털은 머리카락이 전부다. 몸과 겨드랑이뿐만 아니라 꼬리에도 털이 없다.

마족들은 털이 전혀 나 있지 않는 꼬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금장생 입장에서는 삶아서 털을 벗겨 낸 소꼬리가 생각나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어?’

시하라를 보고 있던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화살이 파고든 자리가 저절로 아물고 있었다. 곧 상처는 작은 흉터만 남기고 아물었다. 가슴의 상처도 마찬가지였다.

둥실!

운기행공이 절정에 달한 듯 시하라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저 정도면…….’

금장생은 조금 전 뽑아낸 화살을 집어 들었다. 부공삼매 경지에 오른 무인이 갑옷까지 걸쳤는데 화살이 관통했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법이다.

금장생의 의문을 해결해 준 이는 라였다. 왼손으로 집어 들자 악마수 안에 있던 라는 바로 화살에 마법이 걸려 있다는 걸 알아보았다.

―어떤 마법인데요?

―그 화살에는 관통 마법과 강화 마법이 걸려 있다.

―그 두 마법을 화살에 걸면 모든 갑옷을 다 뚫을 수 있는 건가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뚫린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는 마법사가 있다는 말이 되는 건가요?

―마법사가 있었다면 진작 나타났겠지.

―그럼 이 화살촉은 어떻게 된 거죠?

―과거의 유물일 게다.

―전란의 시대 때 만들어진 무기란 말이군요.

―그렇다.

“휴우!”

그때 깊은 숨과 함께 시하라가 운기행공을 마쳤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살폈다.

“마족은 원래 다 그래요?”

“뭘 말하는 거냐?”

“상처 말입니다.”

“쉽게 아무느냐는 거냐?”

“네.”

“아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 중 이런 재생력을 가진 자는 나와 함께 들어온 오십 명뿐이다.”

“왜죠?”

“우리가 혼혈이기 때문이다.”

시하라는 뒤편에 떨어진 갑옷을 줍기 위해 상체를 숙였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등을 보인 채로 상체를 숙이는 바람에 모든 게 다 보였다.

금장생이 신음을 내뱉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하라는 헬라간을 주워 상체에 대면서 몸을 돌렸다.

“누구 피가 섞인 거죠?”

금장생은 물었다.

“라이칸스로프라고 부르는 늑대인간이다.”

“라이칸스로프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라이칸스로프는 전투에 최적화된 종족이다. 오픈!”

시하라는 가슴에 손을 대고 나직하게 외쳤다. 그러자 가슴에 댔던 물체로부터 촉수가 튀어나와 그녀의 전신을 덮었다. 곧 시하라는 전사로 변했다.

“가자.”

시하라는 한편에 내팽개쳐 두었던 검을 들었다. 그녀의 검은 중원 검보다 한 배 반이 더 길었다.

가볍게 던져 올리자 등에 철썩 달라붙었다.

두 사람은 동굴 입구에서 주위를 살폈다.

엘프족 전사들은 아직 은신하고 있는 듯 기척은 감지되지 않았다.

“내가 먼저 하마.”

시하라는 은신술을 펼쳤다. 그녀의 신형은 천천히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곧 그녀의 모습이 완전하게 사라졌다.

―고맙다.

시하라는 몸을 날리기 전 감사의 말을 했다.

―천만에요.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나처럼 했을 겁니다.

―물론 그랬을 게다. 하지만 그들은 구해 주는 대가로 나에게 복종을 강요했을 거다.

―구해 주는 자가 복종을 강요하면 들어야 하나요?

―목숨의 빚은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게 우리 마족의 율법이다.

―그럼 만일 내가 당신에게 내 노예가 되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죠?

―만일 그랬다면 너는 강하고 아름다운 전사를 노예로 부리고 있을 거다.

―혹시 그 요구, 지금도 가능하나요?

―……가능하다.

―당신을 내 노예로 삼을 수도 있단 말이군요.

―그렇다.

―그 노예가 나보다 강한 것 같은데 말을 잘 들을까요?

―잘 들을 거라고 본다.

―어떤 요구를 해도. 이를테면 잠자리 시중 같은 거요.

―……물론이다. 하겠느냐?

―아니에요. 난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시하라 당신은 내게 빚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시하라는 얼굴만 드러내서는 금장생을 가만히 보았다.

―왜요?

―노예로 삼지 않겠다고 하면 안도해야 하는데…….

―그런데요?

―안도하는 마음보다 왜 자존심이 더 상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못났느냐?

―당신이 못나서 그런 건 아니에요. 돈이 들어서 그런 건 더더욱 아니고요.

―돈?

시하라는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물론 한 사람을 더 건사하게 되면 돈이 많이 들기는 해요.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데 모두 돈이니까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당신을 노예로 삼지 않으려는 건 절대 아니에요. 나는 다만 혼자가 좋을 뿐이에요.

―돈 때문이구나.

―아니라고 했잖아요.

―아무튼 고맙다. 이번에 날 구해 준 은혜는 내가 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잊지 않으마.

스윽!

시하라는 동굴을 빠져나갔다.

‘노예로 삼을 걸 그랬나?’

금장생은 입맛을 다셨다.

마치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고, 그런 여자를 노예로 거뒀다가 어떻게 감당하려고. 나는 지금 상태가 더 좋아.’

금장생은 어깨를 슥슥 비비며 주위를 살폈다.

―이봐요!

그러곤 왼편을 보며 누군가를 불렀다. 그가 부른 건 이곳에 살고 있는 지박령, 즉 귀신이었다. 귀신은 생전에 전사였던 듯 갑옷을 입고 있었다.

금장생이 부르자 귀신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맞아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여?

귀신은 물었다.

―보이니까 불렀죠.

―나를 보는 인간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당신은 사람이 아닌가요?

―보시다시피 난 이걸 가지고 있다.

귀신은 헝클어진 머리를 들췄다. 그러자 달팽이 형태의 뿔이 나타났다.

―마족이네요?

―그렇다.

―어쩌다가 여길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거죠?

―바살라 그놈 때문이다.

―바살라면 신족 아닌가요?

―그놈과 나는 종족을 초월하여 친구가 됐다. 그러다가 산 뒤편에서 오래전에 죽은 시체를 발견했다. 그 시체로부터 무공 구결이 적혀 있는 죽편과 영약 한 병을 얻었다. 그 영약은 바로 공청석유였다. 우리 둘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공청석유를 복용하고 죽편의 비급을 익히면 몇 배는 더 강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출셋길이 활짝 열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놈이 나를 배신한 곳은 여기였다. 놈은 도시를 내려다보며 한껏 들떠 있는 나를 뒤에서 암습했다. 심장이 찔린 나는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이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놈은 죽은 나를 저기에 묻고 유유히 마을로 돌아갔다.

―댁 이름이 뭐죠?

귀신의 사연을 듣고 난 금장생이 물었다.

―파셀이다.

―내게 원하는 거 있어요?

―놈은 확실하게 하기 위해 이미 시체가 된 내 머리를 잘라 저 바위 아래쪽에 묻었다.

―머리를 찾아 달라는 건가요?

―바살라도 내 곁으로 보내 다오.

―알았어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줄게요. 대신 내 부탁도 하나 들어주세요.

―말해라.

―이곳에 숨어 있는 귀 큰 자들의 위치를 알고 싶어요.

―숨어 있는 엘프 놈들을 찾겠다는 거냐?

―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나만 쫓아다니면 된다.

―고마워요.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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