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17화 (317/524)

황금가 (317)

고대의 후예들

척!

빠르게 날아가던 금장생이 허공에서 멈췄다.

스악!

그러자 금장생 앞 공간이 일자로 갈라졌다. 엘프 검이 만들어 낸 상황이었다. 그 갈라진 공간 사이로 들어간 금장생이 오른손을 움직였다.

투명한 광채는 곧 엘프의 목을 뚫었다.

“컥!”

엘프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금장생은 엘프의 목을 쥐고 왼편으로 돌렸다.

푸욱!

검 한 자루가 엘프의 몸을 뚫고 들어와 금장생 배 바로 앞에서 멈췄다.

금장생의 동체가 검에 찔린 엘프의 몸을 타고 돌면서 앞으로 이동했다. 순식간에 반 장을 나아간 그는 앞에 있는 또 다른 엘프의 목을 향해 흑사아를 찔러 넣었다.

“커억!”

엘프의 입이 쩍 벌어지고 역류한 피가 벌컥벌컥 흘러내렸다.

금장생은 엘프의 등을 오른손으로 밀어 쳤다.

퍼억!

둔탁한 소성에 이어 엘프의 동체가 허공을 날았다. 한 명 남은 엘프는 조금 전 동료처럼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시체로 변한 동료의 몸통을 일자로 갈랐다. 시체 뒤에 숨어 있을 금장생을 노린 일격이었다.

엘프의 시체가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절반으로 잘렸지만 금장생은 없었다. 엘프는 잔뜩 경계한 채 좌우를 살펴다. 하지만 금장생은 공격해 오지 않았다.

“죽일 놈!”

그는 이를 부드득 갈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내려선 곳은 엎드려 죽은 동료 옆이었다.

“으!”

죽은 줄 알았던 동료로부터 신음이 흘러나왔다.

엘프는 반색한 얼굴로 동료를 뒤집었다.

푹!

그 순간 섬뜩한 소리가 엘프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엘프의 목에는 검은색 소검 한 자루가 손잡이 부분까지 박혀 있었다.

엘프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동료 시체 옆에서 금장생이 감정 없는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네, 네놈은 도대체…….”

엘프는 앞으로 처박혔다.

금장생은 허공섭물로 엘프가 자신 위로 처박히지 않게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빠져나왔다. 바닥을 차고 이 장여를 이동한 후 허공섭물을 해제했다.

털썩!

허공에 잡혀 있던 시체가 비로소 처박혔다. 소리를 들은 엘프 몇 명이 달려왔지만 그들이 발견한 건 시체 네 구뿐이었다.

―놈의 위치는?

엘프 수장은 부하들에게 물었다.

―사라졌습니다.

―어디로?

―찾지 못했습니다.

―계집은 어떻게 됐느냐?

―계집 역시 어디론가 숨었습니다. 인간 놈에게 당한 대원들 모두는 계집을 수색하고 있었습니다.

―수색 와중에 기척이 드러나 당했다는 거냐?

―놈은 극한의 은신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숲에서만큼은 최강이고요.

―기척을 먼저 흘리는 자가 죽는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누가 됐든 기척을 먼저 감지한 쪽이 승리합니다.

―좋다. 그럼 먼저 어둠의 계곡을 녹색지대로 만드는 작업을 하라.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시간은 얼마가 걸려도 상관없다. 당장 시행하라.

―알겠습니다.

사내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수장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대원들에게 하달했다. 명령을 받은 엘프들은 각자 나무를 한 그루씩 골라 양손 손바닥을 댔다. 그들의 손바닥에서 연녹색 기운이 흘러나와 나무로 스며들어 갔다.

스스스스! 스스스스! 스스스스! 스스스스!

수십 그루 나무에서 동시에 바람에 이파리가 흔들리는 것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흔들리는 이파리들은 아주 잠깐 동안 푸른색 광채에 휩싸였다. 엘프들은 다른 나무로 이동했다.

‘어디 있느냐, 놈!’

엘프 수장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시각, 금장생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가 들어간 동굴은 집채만 한 바위 아래 움푹 들어간 곳에 입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가 여길 찾을 수 있었던 건 냄새 때문이었다.

시하라를 만났을 때 그녀의 냄새를 기억해 두었다. 그 냄새가 향한 곳이 바로 이 동굴이었다. 입구는 아주 좁았지만 안쪽은 넓었다. 좌우 폭은 반 장에 달했고 높이도 일 장가량 됐다.

‘짐승이 이런 동굴을 팔 수는 없을 테니까.’

금장생은 내심 중얼거리며 모퉁이를 돌았다.

슉!

순간 섬뜩한 기운이 심장을 향해 쏘아져 왔다. 기습이 빠르고 완벽해 피할 수도 없었다.

금장생은 심장으로 내기를 이동시켰다.

카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

턱!

금장생은 오른손을 뻗어 자신을 공격한 자의 목을 틀어쥐었다.

“컥!”

나직한 비명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암습자의 목으로 내기를 흘려보내면서 자신의 얼굴 앞으로 잡아당겼다.

“이런!”

암습자는 시하라였다.

금장생은 얼른 손을 놓았다. 시하라 역시 금장생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기침을 하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나를 어떻게 찾았지?”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물었다.

“인간이건 마족이건 할 것 없이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특이한 냄새를 지니고 있습니다.”

“냄새로 날 찾았단 말이냐?”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하라의 몸을 살폈다. 가슴과 배에 신비궁의 화살처럼 보이는 것이 박혀 있었다.

“네 코는 개코인가 보구나.”

“개코보다 더 낫습니다. 그런데 그거,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 겁니까?”

금장생은 화살을 가리켰다.

“괜찮은 거라면 여기로 피하지 않았겠지.”

“잠깐만요.”

왼팔로 의지를 보냈다.

―왜 그러느냐?

라가 물었다.

―카가 필요합니다.

―야!

금장생이 말하자 라는 카를 불렀다.

―네.

한편에 찌그러져 있던 카가 벌떡 일어났다.

―주공이 부른다.

―나가는 겁니까?

―그래, 인마.

―아이고, 이게 얼마 만이야.

카는 헤벌쭉 웃었다.

―어두운 동굴을 밝힐 불이 필요합니다.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 마십시오. 붉을 밝히는 건 제가 두 번째로 잘하는 겁니다.

―좋습니다. 나오세요.

카는 악마수 밖으로 나왔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외출의 기쁨을 만끽하던 그는 횃불 형태로 변해 동굴 중앙에 자리했다.

“저건 뭐지?”

시하라는 카를 보며 물었다.

“우연히 얻은 불입니다. 그보다 지금 부군단장의 몸은 어떤 상탭니까?”

금장생은 화살이 박혀 든 부분에 시선을 주며 물었다. 갑옷을 입고 있어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화살촉에 독이 발라져 있다.”

시하라는 가슴에 박힌 화살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허공에 떠 있는 불길에 대한 궁금증은 치료를 마친 후 해결하기로 했다. 아니 굳이 몰라도 상관없었다.

“화살을 제거하고 독을 치료하려면 먼저 갑옷을 벗어야 합니다.”

“독을 치료할 방법은 있느냐?”

“해약이 있다면 복용하는 게 가장 좋고, 없다면 먼저 독혈을 빨아낸 후 운기행공을 통해 태우는 게 좋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나는 갑옷을 벗어야겠구나.”

“해약이 없습니까?”

“독을 치료하는 약을 복용했는데 효과가 없다.”

그녀가 복용한 건 여러 가지 독을 치료하는 효과를 가진 해약 중 하나였다. 그걸 복용하고 일주천을 해 보았지만 해독되지 않았다.

“그럼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지.”

시하라는 그 자리에 눕더니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나직하게 해제라는 말을 외쳤다.

스스스!

갑옷을 벗는 방법은 다른 갑옷과 다르지 않았다. 갑옷이 먼저 촉수 형태로 변하더니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곧 그녀의 가슴에 방패 형태의 헬라간만 남았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시하라는 갑옷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였다.

“헬라간의 두께를 균등하게 하기 위해서는 맨살 위가 가장 좋다.”

“그건 나도 압니다.”

금장생은 화살이 박힌 부분으로 시선을 주었다.

옆구리에 박힌 화살 한 대는 박힌 부분이 드러나 있지만 가슴에 박힌 한 대는 여전히 헬라간을 뚫고 들어가 살 속에 박힌 상태였다.

“이걸 잘라 내고 헬라간을 들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헬라간 위로 나와 있는 화살을 가리켰다.

“알아서 해라.”

시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은 백사아를 꺼내 수평으로 휘둘렀다.

화살이 헬라간 면을 따라 잘렸다. 시하라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헬라간에 손바닥을 댔다.

그녀의 손에서 희끄무레한 광채가 흘러나와 헬라간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러자 헬라간을 고정시키는 촉수가 한쪽 구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 상태에서 다시 드러누웠다.

금장생은 헬라간 양편을 잡았다. 그리고 허공섭물을 이용해서 화살이 움직이지 못하게 해 놓고 헬라간을 들어 올렸다.

“윽!”

헬라간을 들어 올릴 때 화살을 건든 듯 시하라는 나직한 비명을 질렀다. 곧 갑옷이 치워졌다.

‘헐!’

금장생은 내심 탄성을 내뱉었다. 시하라는 키가 육 척 정도 된다. 보통 키가 크면 다른 부분은 왜소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시하라는 달랐다. 가슴과 엉덩이는 육중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풍만했다. 비율 또한 완벽했다.

“마족의 알몸을 처음 보는 모양이지?”

자신의 몸을 보고 금장생이 놀랐다고 생각한 듯 시하라가 물었다.

“네.”

전에 백사의 알몸을 본 적이 있지만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에 비해서 어때?”

“꼬리가 있는 것 말고는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먼저 아래쪽 화살로 시선을 주었다. 정확한 위치는 왼편 옆구리, 즉 가슴에서 두 치 아래쪽에 박혀 있었다.

그는 먼저 화살촉 모양을 확인했다. 독화살이라 그런 듯 화살촉은 평범했다. 바로 뽑아낸다고 해도 피부가 더 찢기거나 하진 않을 것 같았다.

“뽑겠습니다.”

금장생은 화살을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으로는 화살이 박힌 부분의 피부를 눌렀다.

“남자 친구 있어요?”

그는 시하라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뭐라고?”

휙!

“억!”

시하라는 나직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남자 친구란 말에 깜짝 놀란 순간 금장생이 화살을 뽑아낸 거였다.

화살을 뽑아낸 금장생은 화살을 뽑아낸 자리에 입을 대고 강하게 빨았다. 비린내가 섞인 피 냄새가 입안 가득 들어찼다.

퉤!

피를 뱉어 내고 다시 빨았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자 더 이상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피도 검붉은 색이 아니라 붉은색으로 변했다.

“독이 퍼지지 못하게 해 두었군요?”

금장생은 왼 가슴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화살촉에 묻은 독은 만독불침에 이른 금장생의 혀가 아릴 정도로 독했다. 만일 이런 독을 퍼지지 못하게 조치하지 않았다면, 시하라는 지금쯤 사경을 해매고 있을 것이다.

“그 독을 막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떠올랐다. 화살이 박힌 부분이 유두 바로 위였다.

‘이왕 치료한 거.’

그는 왼손 손가락을 벌려 화살 사이로 끼운 후 가슴을 눌렀다. 낯선 손길 때문인 듯 시하라는 움찔했다.

“남자 친구 말입니다.”

“나는 남자를 사귄 적이 없다.”

“네?”

“부군단장에게 술 한잔 하자고 할 배짱을 가진 자가 있을 거라고 보느냐?”

“혹시 완벽주의자인가요?”

“완벽주의자?”

“아니면 결벽증이거나요.”

“나는 평범한…… 악!”

시하라는 비명을 내질렀다. 금장생이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아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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