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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16화 (316/524)

황금가 (316)

‘후우!’

금장생은 천천히 공기를 흡입했다. 폐부 가득 공기가 들어차자 천천히 뱉어 냈다.

그는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처음에 서른 명 정도가 따라오고 나중에 백오십여 명이 더 들어왔다. 대단한 은신술을 익힌 듯 기척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마치 자객들과 싸우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금장생은 흑사아와 백사아를 뽑아 들었다.

흑사아나 백사아는 신족이나 마족의 심장을 찌르면 재로 만들어 버리지만 나머지 종족은 상관없다.

지금까지 없앤 자들 중 마족이나 신족은 없었다.

저벅! 저벅저벅! 저벅저벅!

갑자기 계곡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금장생은 시선을 돌렸다.

검은 갑옷을 걸친 자들 오십여 명이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나는 흑사군단 부군단장 시하라다!”

나직한 목소리가 일행 중간에서 흘러나왔다.

‘여자?’

금장생은 내기를 끌어 올려 천안통을 펼쳤다. 그러자 여자의 모습이 더 확연하게 보였다.

‘완전 전사네.’

여자의 첫 느낌은 우람함이었다.

육중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큰 가슴이 있으면 검사라는 느낌보다 여자라는 느낌이 더 강한 법인데, 시하라는 달랐다. 전사적인 느낌을 주는 데 커다란 가슴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풍만한 가슴을 가진 강한 전사였다.

‘머리도 좋고.’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라가 자신을 밝힌 건 적이 아니니까 공격할 때 주의하라는 뜻이었다.

―납니다.

금장생은 나하려에게 전음을 보냈다.

스윽!

검은 어둠이 금장생 옆으로 이동했다. 금장생은 눈을 가늘게 모았다. 어둠 덩어리처럼 보이는 물체는 갑옷을 걸친 나하려였다. 나하려는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말하세요.

―신족과 마족만 우리에게 적의가 없습니다.

―알고 있어요.

―이제 십 갑자 공력이 얼마나 강한지 구경 좀 할까요?

―십 갑자 공력도 대단하지만 이 갑옷도 엄청나요.

―특이한 기능이라도 있어요?

―모든 감각이 극대화되는 느낌이에요.

―숨어 있는 자들을 파악하는 게 더 쉽다는 건가요?

―네.

―갑자기 늘어난 공력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고요?

나하려는 십 갑자 공력을 얻고 난 후 첫 전투다. 충분히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까 방에서는 갑옷을 걸치지 않은 상태로 싸웠잖아요. 그런데 지금과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그렇군요.

―아무튼 기대하세요.

슥!

나하려는 몸을 날려 사라졌다.

‘나도 움직여 볼까? 응?’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오른편 관자놀이에서 따끔따끔한 느낌이 왔다. 그건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금장생은 백사아를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주먹을 쥐는 것처럼 오므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헐!’

그는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오 장 떨어진 곳에서 이편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조금 전 들어오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시하라였다.

―내가 보여요?

금장생은 물었다.

스윽!

시하라는 부유하는 유령처럼 다가왔다. 금장생은 놀란 눈으로 시하라를 보았다. 여성스러움과 전사적인 느낌이 완벽하게 공존하는 여자였다.

―나는 시하라다.

―장생입니다.

―외부로 나가는 지도를 가지고 있느냐?

시하라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는 당신이 어떻게 은신술을 펼치고 있는 나를 알아볼 수 있는지 그게 더 궁금합니다.

스윽!

금장생은 왼편으로 몸을 날렸다.

십여 장을 이동하자 그 앞쪽에 대기가 왜곡되는 것처럼 일렁이는 물체가 보였다.

금장생은 그곳을 향해 소리 없이 다가갔다.

‘응?’

시하라의 눈이 커졌다.

금장생의 움직임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앞에 있는 자들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공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

시하라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설마 금장생이 저렇듯 대단한 기술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푹! 푹!

엎드려 있던 두 명의 뒷목으로 작은 검 두 자루가 파고들었다. 두 명은 비명도 없이 숨이 끊어졌다.

‘무서운 자네.’

시하라는 혀를 내둘렀다. 마족에게 은신술은 본능과도 같다. 굳이 익히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대기 중으로 숨을 수 있다. 하지만 옅은 숨소리나 심장 뛰는 소리 혹은 머리카락이나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로 인해 기척이 감지되곤 한다.

그런데 앞에 있는 인간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척을 감지할 수가 없다.

엄청난 자가 아닐 수 없었다.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을 겁니까?

―아, 알았다.

금장생의 전음이 들려오자 시하라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곧바로 장소를 이동했다.

휙! 휙휙!

그녀가 이동하자마자 검은 그림자 몇몇이 따라나섰다. 그들의 움직임은 금장생 못지않게 은밀했다. 시하라를 목표로 움직이는 자들은 숲의 종족이라고 불리는 엘프였다.

엘프들은 지나가면서 나무에 손바닥을 댔다. 그들의 손이 잠깐 빛이 났다가 본래대로 돌아갔다.

엘프들이 동료에게 의사를 전달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나무로부터 신호를 받은 엘프들은 계곡 깊숙이 이동했다.

‘응?’

금장생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의 발치에 엘프 두 명이 작은 나무를 쥔 채 죽어 있었다. 금장생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엘프의 손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무를 쥔 손에서 연녹색 광채가 흘러나와 나무 내부로 스며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나무로 스며든 연녹색 광채는 땅을 통해 어디론가 이동했다. 주시하고 있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광채는 희미했다. 금장생 또한 계속 쳐다보고 있었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느닷없이 주위에서 진득한 살기가 감지됐다.

‘대단한 자들이네.’

금장생은 감탄사를 흘렸다.

놀랍게도 엘프는 의사 전달을 나무를 이용해 하고 있었다.

스아악!

왼편과 오른편 대기가 동시에 갈라졌다.

슥!

금장생은 두 다리를 좌우로 벌려 자세를 한껏 낮췄다. 그리고 상체를 뒤로 눕혔다.

슉! 슉!

검 두 자루가 서로 엇갈리며 공간을 찔렀다.

그 순간 금장생의 양팔이 허공을 갈랐다. 흑사아와 백사아가 훑은 곳은 바닥에서 세 치 높이였다.

서걱! 서걱!

두 엘프의 발뒤꿈치가 쩍 벌어지고 피가 쏟아졌다.

“커억!”

“크윽!”

발뒤꿈치 힘줄이 끊긴 두 엘프의 신형이 통나무처럼 넘어갔다. 그 순간 흑사아와 백사아가 두 번째 광채를 허공에 뿌려 놓았다.

이번에 자른 곳은 무릎이었다.

무릎이 쩍 갈라지고 무너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세 번째 칼부림은 두 엘프의 상체가 바닥으로 처박히기 직전이었다. 흑사아와 백사아가 두 엘프의 목젖을 훑었다.

“끄어어억!”

“커어어억!”

두 엘프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발뒤꿈치와 무릎과 목젖이 잘렸지만 엘프는 아직 살아 있었다. 잘린 부분에서는 숨을 몰아쉴 때마다 피가 벌컥벌컥 흘러나왔다.

엘프는 계속해서 비명을 내질렀다. 머릿속 피를 모두 쏟아 낸 엘프는 곧 잠잠해졌다.

스윽!

금장생은 자리를 이동했다. 엘프는 둘이 전부가 아니었다. 네 명이 더 숨어 있다. 동료 두 명이 고통스럽게 죽어 가고 있는데도 나서지 않고 있다.

살인 경험이 없을지 몰라도 훈련은 많이 한 자들이 분명하다.

‘하지만…….’

금장생은 엘프 네 명이 숨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정면으로 들이닥치자 당황한 듯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둘은 여전히 은신술로 몸을 숨긴 채였다.

슉!

그런 그들을 향해 흑사아와 백사아가 공간을 단축했다.

“컥!”

“윽!”

금장생으로부터 먼 곳에 있던 두 명이 목을 감싸 쥐며 비명을 내질렀다. 흑사아와 백사아 숫자가 늘어나지 않은 건 금장생이 흑우와 무망을 펼치지 않아서였다.

푸욱! 푸욱!

그사이 금장생의 양손은 나머지 두 명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갔다.

“커억!”

“크윽!”

두 명은 비명을 내지르며 금장생을 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

오른편 사내가 경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냄새를 아주 잘 맡거든요.”

금장생은 양손을 빠르게 뽑아냈다. 심장을 터트리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아아악!”

“으아악!”

“크아악!”

계곡 안쪽 깊은 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악!”

그리고 짤막한 비명이 이어졌다.

“응?”

금장생의 시선이 계곡 안쪽으로 향했다.

“계집이 다쳤다. 쳐라!”

이번에는 살기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얼레?”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그는 쫓아온 자들의 목표가 자신과 나하려 둘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더 많은 인원이 시하라를 쫓아 들어간 게 명백한 증거다.

‘님도 보고 뽕도 따겠다는 것 같은데.’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자들은 자신과 나하려도 잡고 장차 적이 될 자들의 수뇌도 없애는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럼 난 더 좋지.’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크윽!”

안쪽에서 또다시 비명이 들려왔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번에도 시하라의 비명이었다.

‘어쩔 수 없네.’

금장생은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아직은 나하려와 헤리아에게 맡겨도 충분했다.

잠시 후 그는 계곡 안쪽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피비린내가 자욱했다. 시하라는 은신한 듯 보이지 않았다. 금장생은 주변을 살폈다.

‘놀랍군.’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느낌으로는 사십여 명 정도가 숨어 있다. 그런데 실제 걸려든 자는 다섯 명에 불과했다.

‘엘프가 숲의 종족이라고 하더니.’

신족도, 마족도, 엘프도, 드워프도 참으로 축복받은 종족들이다. 반면에 인간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건 아무것도 없다. 가장 잘하는 건 남의 공적을 가로채거나 깎아내리는 거고, 배신도 밥 먹듯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륙의 주인이 됐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생존력과 적응력은 최강이니까. 번식력도 그렇고.’

스윽!

금장생은 몸을 날렸다.

탁!

나뭇가지 하나가 발에 걸려 부러졌다.

스아악!

푸아악!

소리가 나자마자 좌측과 우측에서 가공할 기운이 밀려왔다.

금장생은 몸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신법을 전혀 펼치지 않은 상태에서 아래로 떨어진 그는 왼발이 바닥에 닿자 무릎을 구부렸다. 무릎이 거의 구십 도가량 구부러진 순간 강하게 튕겼다.

그의 신형이 오른편으로 폭사됐다.

“헉!”

순간 허공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은신한 상태에서 금장생을 공격했던 엘프였다. 공격을 하거나 맞받아칠 시간이 없었다. 별수 없는 그는 검을 세워 자신의 목을 방어했다.

검에 내기를 주입한 순간 투명한 광채가 다가왔다. 금장생의 백사아였다.

슈캉!

백사아 끝에서 솟구친 검강은 엘프의 검을 자르고 목으로 파고들었다.

스악!

“…….”

씀벅한 느낌에 엘프는 자신의 목을 만졌다.

툭!

그 순간 머리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척!

금장생은 머리가 사라진 엘프의 다리를 잡아챘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힘껏 던지면서 그 반동을 이용해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죽인다아!”

엘프 한 명이 날아오는 금장생을 보며 들어 올린 검을 강하게 내리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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