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13화 (313/524)

황금가 (313)

다섯 사람은 동시에 금장생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네가 아르카를 어떻게 아느냐 하는 거다.”

암흑마족의 왕 하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오다가 몸을 숨겼는데 거기서 시체를 한 구 발견했습니다. 그 시체가 아르카에 대한 말을 남겼더군요.”

“어떻게 생긴 시체더냐?”

하발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뼈만 남아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면 뼈에 대해서 말해 봐라.”

“마족이었습니다.”

금장생은 바로 대답했다.

“마족의 뼈라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

“큰 키와 뿔 때문입니다.”

“뭐라고 남겼더냐?”

“가장 친한 친구였던 아르카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말뿐이더냐?”

하발은 다시 물었다.

“더 남기긴 했는데 내가 알아먹을 수 없는 글자로 돼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말한 부분은 중원어로 씌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중원어로 된 부분은 아는데 마족어로 된 부분은 모른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마족어는 기억하느냐?”

“글쎄요…….”

금장생은 말끝을 흐리면서 다섯 명을 살폈다.

“모른단 말이냐?”

엘프족의 수장 엘그로이가 얼른 물었다. 워낙 다급하게 말해서 그런 듯 그의 말투는 질문이라고 하기보다는 다그치는 쪽에 더 가까웠다.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그걸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오늘 저녁에 잘 생각해 보게.”

아락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만 일어납시다.”

아락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일행에게 말했다.

“그럽시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일어났다. 그리고 금장생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우리도 방으로 올라갈까요?”

금장생은 나하려를 보며 말했다.

“그러죠, 뭐.”

두 사람은 그곳을 나와 오 층으로 올라갔다. 내려가기 전에 피워 놓은 암탄 덕분에 실내는 후끈했다.

“따뜻하니 좋네요.”

나하려는 방긋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앉은 곳에서는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술 한잔 할래요?”

금장생이 물었다.

“술이 있어요?”

“달라고 하죠, 뭐.”

“취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왜요?”

“다섯 수장에게 미끼를 던져 두었잖아요.”

“미끼?”

“지도에 대해 얼버무린 건 미끼 아니었어요?”

“풋!”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내가 모를 줄 알았던 거예요?”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흥!”

나하려는 금장생을 흘겨보았다.

“그럼 정말로 술 한잔 해야 합니다.”

“왜요?”

“우리가 술을 안 마시면 그자들도 미끼라는 걸 알아차릴 테니까요.”

“지금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거예요?”

나하려는 얼른 천리지청술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자신들 말고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금장생을 보았다.

“우리 둘이 술을 마시는지 마시지 않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굳이 여길 감시할 필요 없잖아요.”

“그럼?”

“헤리아가 술을 가져다주는지 하는 것만 알면 되잖아요.”

“아!”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달라고 하겠습니다.”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나하려는 밖으로 나가려는 금장생을 불렀다.

“술 말고 더 필요한 거 있어요.”

“아뇨?”

“그럼?”

“생각해 보니까 고맙다는 말을 아직 안 했더라고요. 고마워요. 제 목숨을 달라고 해도 드릴게요. 이건 진심이에요.”

“내게는 아주 작은 수고일 뿐입니다. 그리고 전에 나 소저도 목숨 걸고 날 구해 주었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여기서 일어났던 일은 싹 잊어버리세요.”

금장생은 밖으로 나갔다.

“네.”

나하려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 * *

스윽!

어둠 속에서 소리 없는 움직임이 일었다.

너무 어둡기도 하고 이동하는 자가 극한의 은신술을 펼치고 있어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바람처럼 움직이던 자가 한곳에서 멈췄다. 그가 멈춘 곳은 아르카가 수감돼 있는 쇠창살 앞이었다.

“접니다.”

사내는 나직하게 말했다.

“말해라.”

“외부인이 들어왔는데 알고 있습니까?”

“신족이 들어왔다고 들었다.”

“으음!”

사내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아르카는 외부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수감된 지 삼백 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충성을 바치는 자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자였다.

‘하긴 나도 그자들 중 한 명이니까.’

사내는 내심 중얼거렸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신족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인간?”

아르카의 눈동자에서 붉은색 광채가 흘러나왔다.

“신족이 이곳으로 들어오게 한 원인을 제공한 자들입니다.”

“자들이면 한 명이 아니란 말이냐?”

“사내와 계집입니다.”

“신족이 그 인간들을 쫓아 들어왔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계속해라.”

“그 인간들은 신족의 눈을 피하기 위해 동굴 같은 곳으로 들어간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동굴에는 마족의 시체가 있었고, 시체 옆에는 중원어와 마족어가 뒤섞인 글이 남겨져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글에 아르카 님이 언급돼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시체의 이름은 뭐라고 하더냐?”

“자기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시체가 발카라고 생각하느냐?”

“살은 모두 썩고 뿔과 뼈만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아울러 시체가 남긴 글에는 아르카 님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고요.”

“지도에 대해서는 언급했다고 하더냐?”

“자기가 거기서 죽은 이유는 중원어로 남겼을 뿐 나머지는 마족어였다고 합니다. 그 인간들은 마족어를 모르는 상태였고요.”

“그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니냐?”

“마족어를 기호처럼 기억한 모양입니다. 오늘 밤에 기억을 떠올려서 써 놓겠다고 하였습니다.”

“마족어로 기록된 그것이 밖으로 나가는 지도일 수도 있다는 거구나.”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만일 그게 지도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르카 님을 살려 둘 이유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겠지.”

아르카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어떻게 할까요.”

“인간 놈은 지금 어디 있느냐?”

“화합의 성에 있습니다.”

“거길 지키는 자는?”

“신왕 호위대가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미끼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느냐?”

“어떤 미끼 말입니까?”

“너희들을 잡기 위한 미끼 말이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인간 여자를 보고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여자가 어쨌단 말이냐?”

“바살라에게 죽은 아우라 공주의 갑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락이 그 여자를 아우라 살해범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거구나.”

“자기네들 말로는 알몸을 가리기 위해 갑옷을 입었다고 하는데, 알몸으로 쫓겼다는 것도 그렇고…….”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거냐?”

“지도를 보기 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군. 그리고 인간들을 전적으로 믿었다면 화합의 성이 아니라 자기 집으로 데려갔겠지.”

아르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하면 인간 놈이 다른 누군가와 짜고 미끼를 던졌을 가능성은 없느냐?”

“술을 청하는 걸 보고 왔습니다.”

“술?”

“힘든 일을 겪었다며 술이 필요하다고 했답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 없애라.”

“알았습니다.”

어둠 속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르카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말끝을 흐렸다.

어둠 속 사내는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거사를 시작할 거니까 준비해라.”

“거사 말입니까?”

어둠 속 사내가 깜짝 놀란 듯 어둠이 급격하게 요동쳤다.

“삼백 년이나 웅크렸으면 됐다.”

“호, 혹시 힘을 완벽하게 되찾으신 겁니까?”

“십 년 전에 모든 힘을 되찾았다. 내가 지금까지 기다린 건 혹시 다른 금제가 가해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르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두둑!

그의 전신에서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전 병력을 무장시켜서 대기하라!”

“거사는 언제 시작합니까?”

어둠 속 사내는 물었다.

“기다리다 보면 거병하는 걸 절로 알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어둠 속 사내는 고개를 숙인 후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왔으면 그만 모습을 드러내는 게 어떤가?”

아르카는 왼편 어둠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쿡!”

나직한 웃음소리와 함께 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어둠을 뚫고 나온 것 같은 은밀한 움직이었다.

“우리 마족보다 더 어둠과 친한 자들인데, 누가 너희들을 하늘의 사자라고 했는지 모르겠구나.”

아르카는 조소하듯 말했다.

“그래서 아부를 잘해야 한다는 거다.”

“아부로 빛을 얻었다는 거냐?”

“신 입장에서 보면 신족이나 마족이나 꼭 같은 자식 아니냐. 말도 없이 무뚝뚝한 녀석보다 평소에 알랑방귀를 잘 뀌는 녀석의 말을 잘 들어주는 건 신 아니라 모든 부모의 공통점이다.”

“그러니까 우리 마족이 어둠의 종족이 된 건 순전히 과묵한 성격 탓이라는 거군.”

“마족이 발전하려면 그걸 먼저 인정해야 한다.”

“충고 고맙군. 그건 그렇고 넌 죽은 걸로 아는데 어떻게 된 거지?”

아르카는 엘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인간이 날 깨웠다.”

“어떻게?”

“인간이 창안한 무공 중에 강신술이라는 게 있다. 그걸로 깨어났다.”

“내가 궁금한 건 인간의 강신술이 아니라 왜 죽은 너를 깨웠느냐 하는 거다.”

“크크크!”

엘은 키들키들 웃었다.

“왜 웃는 거냐?”

“그들이 깨운 건 나뿐만이 아니다. 크시아나와 바쿠스도 깨웠다.”

“너희 셋은…….”

아르카의 눈이 커졌다.

“맞다, 아르카. 우리 셋이 깨어나면 그들도 깨어난다.”

엘은 히죽 웃었다.

“정확하게 어떻게 된 거냐?”

아르카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가 아는 건 엘, 크시아나, 바쿠스는 여덟 가문이 힘을 합쳐 만든 조직인 ‘죽은 자들의 군단’의 수장이었다. 모두 일만 명으로 구성된 죽은 자들의 군단은 여덟 가문을 모두 없앨 정도로 강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

투입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 버린 탓이다.

결국 왕 중의 왕과 여덟 가문의 수장은 ‘죽은 자들의 군단’을 영원히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들의 수장이었던 세 사람도 함께 묻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엘, 크시아나, 바쿠스는 죽임을 당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살아날 수가 없는 자가 바로 엘이다.

그런데 버젓이 살아나서 눈앞에 있다.

솔직히 앞에 있는 자가 진짜 엘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우리 셋은 각 가문의 가주들이 우리를 없애려 한다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우린 도박을 하기로 했다.”

“어떤 도박?”

“우리 몸에 차원의 길로 가는 지도를 새기는 거였다. 그리고 죽임을 당하기 전에 소문을 퍼뜨렸다.”

“샤이칸드리아 대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들이 너희들을 깨울 거라 생각한 거구나.”

“맞다. 우리 의도는 적중했고, 비록 오랜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이렇게 깨어나게 됐다.”

“멋지군.”

‘나는 엘 헤임 헬이다, 아르카.’

엘은 내심 중얼거리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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