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08)
암흑오부족
“드래곤 하트다.”
가쁜 숨을 고르고 있는 두 사람의 귓전으로 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금장생과 나하려의 눈이 커졌다.
“드래곤 하트가 뭐죠?”
나하려가 물었다.
“드래곤을 아느냐?”
라는 되물었다.
“아뇨?”
“그럼 설명해 줘도 모른다.”
“정말 드래곤 하트가 맞아요?”
이번에는 금장생이 물었다.
“중원의 영약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 갑자 이상으 공력을 얻지 못한다. 그런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내가 아는 한 드래곤 하트뿐이다.”
“복용할 때는 아무 일도 없다가 왜 이제야 녹은 거죠?”
“그건 네가 복용시킨 포션 때문이다.”
“포션 때문이라는 건 무슨 소립니까?”
“황금색 광채가 흘러나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도 피부 표면에서 황금색 광채가 약간씩 흐르고 있습니다.”
“그건 곧 그 아이가 복용한 것이 골드 드래곤 하트란 뜻이다.”
“골드 드래곤 하트라는 것과 포션은…….”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둘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바타르는 어떤 드래곤이냐?”
“골드 드래곤이라 들었습니다.”
“드래곤 하트는 일반 영약과 달리 복용한다고 해서 바로 녹지 않는다. 반드시 어떤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데 포션이 하트를 녹이는 매개체로 작용했다. 거기에다 너희 둘이 펼친 대라합환음양대법도 한몫 거들었고.”
“그러니까 영감님 말은 포션과 대라합환음양대법이 함께 드래곤 하트를 완전하게 녹여 버렸다는 거군요.”
“그렇다. 그나저나 나는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죽은 그자가 누구인지 더 궁금하구나. 내가 알기론 드래곤 하트를 가질 만한 자는 한 명뿐인데.”
“누가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있었다는 거죠?”
“왕이다.”
“그러니까 신족의 왕이란 말입니까?”
“그렇다.”
“왕이 타락관 지하에서 죽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 아니냐. 아무튼 저놈이나 한번 착용해 봐라.”
“저놈이라면…….”
“저기 헬라간 말이다.”
라는 한편에 뒹굴고 있는 헬라간을 바로 알아보았다.
“나는 적운신갑이 있는데요.”
“네 녀석이 가지고 있는 걸 착용하고는 가드헬을 꺼낼 수 있는 곳은 손바닥과 얼굴뿐이다.”
“저걸 착용하면 몸통에서도 가드헬을 뽑아낼 수 있다는 건가요?”
“가드헬의 원래 주인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가능하단 말이네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헬라간을 집어 들었다. 헬라간의 좌측과 우측 가장자리에는 손으로 쥐었을 때 생길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곳을 쥐고 내기를 주입했다.
웅!
내기가 주입되자 헬라간에서 검은색 광채가 흘러나왔다가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어 헬라간을 가슴에 댔다.
스르르!
좌우측 어깨 쪽에서 촉수가 튀어나오더니, 오른편 촉수는 왼편 옆구리 쪽 측면으로 들어가고, 왼편 촉수는 오른편 옆구리 쪽 측면으로 들어갔다.
“전에 쓰던 것과는 다르네요.”
금장생의 입가에 빙긋 미소가 어렸다. 전에 쓰던 건 갑옷을 가죽끈으로 고정했다. 그런데 이 갑옷은 고정 끈마저도 갑옷 내부에 들어 있었다. 상위 기종이란 뜻이었다.
“오픈!”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슉! 슉슉!
헬라간 가장자리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금장생 전신을 덮었다. 잠시 후 금장생은 갑옷을 걸친 상태가 됐다. 갑옷은 마치 금장생의 몸에 맞춘 것처럼 딱 맞았다. 그건 금장생의 키가 커서가 아니라 헬라간의 특징 때문이었다.
헬라간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정된 갑옷이 아니라는 점이다. 체형에 상관없이 모두 착용이 가능하다.
착용하는 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건 어깨와 팔꿈치, 가슴, 그리고 무릎에 새겨진 조각이었다.
양쪽 어깨에는 이마에 뿔이 달린 늑대 머리 세 개가 목이 붙은 채로 조각돼 있고, 팔꿈치에는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생긴 게 달려 있었으며 양쪽 무릎에는 해골이 조각돼 있었다.
떡 벌어진 가슴을 장식하는 건 기다란 뿔이 난 마신상이었다.
‘이 녀석은……?’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마신상을 보았다. 자신의 철장거인인 마신과 얼굴이 비슷했다.
“와!”
금장생을 지켜보던 나하려가 탄성을 내뱉었다.
“투구는 어떤 모양입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투구를 쓴 것 같기는 한데 더듬어 보아도 어떤 모양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슴에 새겨진 그림과 같은데 이마에 뿔이 하나 더 있어요.”
나하려는 금장생의 가슴을 가리켰다.
“멋지네요.”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그는 오른손 손바닥을 폈다. 그러자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가드헬이 솟아 나왔다.
“검!”
금장생은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가드헬이 검 모양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가 만들어 낸 검은 중원의 검이 아니라 왜도였다.
“그거 왜도 아닌가요?”
도를 알아본 나하려가 물었다.
“처음 든 무기가 왜도였고, 중원의 검보다는 왜도가 더 편하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투구는 벗고 갑옷만 입는 방법은 없나요?”
금장생은 라에게 물었다.
“투구만 벗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요?”
금장생은 투구를 벗는 모습을 떠올렸다.
스륵! 척! 스르르! 척!
그러자 먼저 양옆과 이마에서 튀어나와 있던 뿔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정수리를 기준으로 투구가 절반으로 나뉘었다.
스륵! 스륵! 스륵! 스륵!
마치 부채를 접는 것처럼 투구가 안쪽으로 밀려들어 가더니 잠시 후 얼굴이 나타났다.
“대단하네요.”
금장생은 활짝 웃었다.
투구가 벗겨진다는 건 갑옷을 입은 채 볼일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다. 갑옷을 입고 태극선의를 걸치면 완벽해질 것 같았다. 아주 괜찮은 녀석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장생은 갑옷을 해제했다. 해제는 역순이었다.
방패 형태로 변한 갑옷을 가방 안에 집어넣고 야행복을 입었다.
“이제 가 볼까요?”
나하려를 보며 말했다.
“어디로 갈 건데요?”
“저 안으로 들어가 보죠.”
금장생은 동굴 안쪽을 가리켰다.
“막다른 곳 아닐까요?”
“공기가 흐르는 걸 보면 어딘가로 뚫려 있는 게 분명합니다.”
“가 봐요.”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볍게 바닥을 찼다. 그녀의 신형이 순식간에 천장에 도착했다. 나하려는 빛을 내고 있던 야명주를 뜯어냈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아래로 약간 경사가 져 있었다. 한 식경 정도를 내려가자 어디에선가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병기 부딪치는 소리였다.
“아악!”
“으악!”
이어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두 사람의 걸음이 빨라졌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동굴 길 끝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널따란 광장 앞이었다. 광장 바닥으로부터 이 장 높은 곳에 틈이 나 있었다. 한 사람이 납작 엎드려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곳이고 아래쪽이 선반처럼 약간 튀어나와 있어 광장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위치였다. 두 사람은 엎드린 채 앞으로 나아갔다.
가장자리 바로 앞에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창! 창창! 창!
광장은 지름이 이십 장 정도로 상당히 컸다.
그 안에서 수백 명이 뒤엉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양측을 구분하는 건 입고 있는 헬라간의 색이었다. 한쪽은 황금색 헬라간을, 다른 쪽은 검은색 헬라간을 걸치고 있었다.
“크아악!”
“아악!”
처절한 비명이 광장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황금색 갑옷을 입은 자들이 우리를 쫓아온 자들이죠?”
나하려가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려가서 옷 하나 챙겨 올게요.”
“옷?”
“이러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나하려는 자신의 몸을 가리켰다. 그녀는 여전히 엉덩이가 드러난 상의만 입고 있었다.
“나는 좋은데.”
“정말?”
나하려는 금장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수컷이잖아요.”
“풋!”
나하려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은신술을 펼치더니 아래로 내려갔다.
‘엄청나졌네.’
금장생은 내심 중얼거렸다.
강호무림에서 더 이상 나하려를 핍박할 무인은 없을 것 같았다.
나하려가 올라온 건 한 식경 후였다.
그녀의 손에는 검은색 광채를 뿌리는 갑옷이 들려 있었다. 여자 갑옷인 듯 가슴 부분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여자 거네요?”
금장생이 물었다.
“예쁜 여자였는데…….”
나하려는 갑옷으로 시선을 주었다. 검은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여자였다. 그녀를 구해 주려 했지만 이미 심장에 구멍이 뚫려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녀는 유언을 남기지도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걸로 하기로 한 거예요?”
금장생은 물었다.
“여자용 갑옷이 이것뿐이라서요.”
방금 죽은 여자라 찜찜하긴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하려는 뒤편의 천장이 높은 곳으로 갔다.
금장생도 뒤로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나하려는 금장생이 그랬던 것처럼 갑옷을 가슴에 댔다. 갑옷은 조금 컸다.
“어떻게 입는 거죠?”
갑옷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나하려는 물었다.
“먼저 내기를 주입하세요.”
“아무렇게나 주입하면 되나요?”
“손으로 잡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아!”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을 양손으로 쥐고 내기를 주입했다.
웅웅웅!
헬라간 표면에서 검은 광채가 흘러나왔다. 가장자리에서 솟구치기 시작한 검은색 광채는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는 헬라간을 가슴에 댔다.
스르르! 스르르!
그러자 금장생의 헬라간이 그랬던 것처럼 나하려의 헬라간도 양어깨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옆구리 쪽으로 들어가 헬라간을 고정했다.
“그것도 고위층 헬라간인가 보네요.”
“왜요?”
“내가 전에 착용하던 헬라간에서는 고정 장치가 가죽끈이었거든요.”
“이 갑옷의 주인이 좀 있어 보이는 여자이긴 했어요.”
나하려는 걸치고 있던 상의를 갑옷 사이로 빼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오픈이라고 소리쳐야 해요. 오픈은 갑옷을 활성화시킨다는 뜻이에요.”
“알았어요.”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직하게 ‘오픈!’이라고 소리쳤다.
슉! 슉슉!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갑옷의 각 부분에서 촉수가 튀어나왔다. 촉수는 스멀스멀 기어 다니며 나하려의 전신을 덮었다. 나하려 전신을 덮은 갑옷은 곧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갑옷은 수공을 익힌 자들이 물속에서 입는 수어피처럼 표면이 번들번들했다.
조각 같은 건 전혀 들어 있지 않는 민무늬 갑옷이었다. 투구는 표범의 얼굴을 닮은 형태였다.
“흑표黑彪네요.”
금장생은 자기가 말해 놓고도 너무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저 상태에서 꼬리가 나고 네 발로 기면 영락없이 표범이다.
“흑표범?”
나하려는 금장생을 보았다.
“손톱만 나오면 완벽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요?”
나하려는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리며 내기를 주입했다. 내기는 일부러 주입한 게 아니고 자기도 모르게 주입한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도 손톱 모양의 은색 칼날이 튀어나왔다. 칼날의 길이는 한 자 정도였다. 초승달처럼 굽어진 칼날에서는 섬뜩한 예기가 흘러나왔다.
“어?”
나하려는 깜짝 놀랐다.
설마 칼날이 튀어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정말 흑표범이네요.”
금장생은 웃으며 말했다.
“꼬리도 하나 달까요?”
나하려는 팔을 내밀어 꼬리 모양을 만들며 말했다.
“꼬리가 있는 것보다는 지금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꼬리를 만들어 다는 걸 한번 생각해 볼게요.”
척! 스르르!
나하려 투구의 중간이 갈라지더니 안쪽으로 접어지면서 머리가 드러났다.
“가 볼까요?”
나하려는 납작 엎드리며 말했다.
“네.”
금장생 역시 납작 엎드린 채 은신술을 펼쳤다. 두 사람의 모습이 곧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