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07)
“내 말이 맞죠?”
나하려가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요.”
금장생은 입을 열었다. 그는 대라합환음양대법으로 나하려를 치료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가 음양대법으로 치료를 하려고 하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더 이상 시간을 늦추면 나하려가 무공을 잃게 된다는 거고, 두 번째는 나하려와는 이미 잠자리를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게다가 나하려는 낙양 선착장에서 목숨 걸고 만심혈타라는 추궁과혈을 펼쳐 목숨을 구해 주었다.
“나는 지금부터 나 소저에게 대라합환음양대법을 펼칠 겁니다.”
“음양대법 같은데 맞나요?”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양대법을 펼치면 나을까요?”
“아마도.”
“그럼 해 주세요.”
“먼저 구결을 불러 줄게요.”
금장생은 대라합환음양대법의 구결을 불러 주었다. 나하려는 누운 상태로 구결을 암송했다. 금장생은 계속해서 구결을 읊었다. 그리고 나하려가 어느 정도 암기를 하는 듯하자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런 다음 다시 구결을 암송했다. 나하려는 한 식경 만에 구결을 모두 암송했다.
“첫 번째 단계부터 시작할게요.”
금장생은 나하려의 상의를 벗겼다. 그리고 대라합환음양대법을 펼쳤다. 그의 손에서 희뿌연 운무기 피어올랐다. 그 상태에서 나하려의 몸을 천천히 쓸었다. 금장생의 손길이 스칠 때마다 나하려는 움찔움찔 떨었다. 어느 순간 그녀의 피부가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대라합환음양대법의 첫 번째 단계인 온혈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이제 두 번째 단계를 시작할 때였다.
금장생은 나하려 머리 쪽으로 갔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머리가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금장생은 머리카락이 원형으로 빠진 부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모두 세 군데였다.
백회혈에 손바닥을 대고 누르면서 천천히 원을 그렸다.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혈도를 타고 나하려 머릿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아!”
나하려는 탄성을 흘렸다.
시원한 느낌과 함께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에 머물러 있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얼굴을 지나고 목을 지나 가슴으로 향했다. 금장생의 손이 머무를 때마다 시원한 느낌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활짝 편 손바닥이 가슴을 누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찌르르한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금장생의 손이 아래로 이동하자 나하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다시 긴장했다. 배를 지난 손바닥이 단전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작은 불꽃같은 열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금장생의 손은 단전 주변에서 오래 머물렀다. 가장 많이 상한 곳이 단전이라 시간이 더 걸렸던 것이다.
금장생의 손길이 오래 머물자 난감한 사람은 나하려였다. 금장생의 손이 압박을 할 때마다 열기가 점점 커졌다. 치료 중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구결을 암기했으니까 대라합환음양대법이 어떤 건지 알 거예요. 절정만 안 맞으면 되니까 굳이 참으려고 애쓰지 말아요.”
“그, 그게…….”
물론 그녀도 대라합환음양대법이 성욕을 깨워 본능을 극대화한 치료법이라는 걸 안다. 문제는 최고조로 일깨운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는 데 있다. 과거 같았으면 참아 보겠는데 지금은 타락관에서 교육을 받은 상태. 피부는 더욱 민감해지고 피는 더 뜨거워져 있다. 이제 두 번째 단계를 하고 있을 뿐인데 몸은 벌써 불덩어리처럼 달궈져 있다.
그녀는 자신이 참지 못할 거라는 걸 직감했다.
나하려의 예상은 맞았다.
단전 주변에 머물러 있던 금장생의 손길이 회음혈을 압박하자 참고 참았던 봇물이 터지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파도를 타 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미안해요.”
나하려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좀 나을 거예요.”
금장생은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하려는 견디지 못했다. 두 번째 치료까지는 견뎠지만 세 번째 과정에서 폭발하고 만 것이다.
그녀가 완벽하게 참아 낸 건 세 번째 시도에서였다. 준비가 끝나자 포션을 한 병 더 먹이고 나하려를 안았다.
“이젠 참지 못하면 내상이 더 악화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알았어요.”
나하려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할게요.”
금장생은 대라합환음양대법을 펼친 상태에서 내기를 끌어 올렸다.
나하려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느닷없이 단전에 쌓여 있던 내기가 결합된 부위로 빠져나가면서 엄청난 쾌감이 밀려온 것이다. 조금 전 느꼈던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금장생의 허리를 강하게 조였다. 그러는 사이 단전은 텅 비었다.
―참기 힘들면 단전을 보세요.
금장생의 말에 나하려는 얼른 자신의 내부를 살폈다.
‘어?’
나하려는 깜짝 놀랐다.
텅 빈 단전으로 황금색을 띤 새로운 기운이 밀려가고 있었다.
‘아!’
나하려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금장생이 준 액체가 만들어 낸 기운이었다. 그 기운이 들어가자 단전은 황금색으로 변했다.
나하려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어렸다.
마치 종이처럼 얇았던 단전이 튼튼한 갑옷을 입은 것 같았다.
―갑니다.
금장생의 말이 들려오자 심호흡을 하며 대비했다. 곧 엄청난 기운이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다리에 힘을 주지 않으려고 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금장생의 진기가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생겨난 쾌감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모든 의식을 단전에 집중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쾌락의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을 터였다.
―단전이 보여요?
‘네.’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자신의 내기를 이용해서 몸 내부를 살핀다고 해도 지금처럼 선명하게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몸을 해부하는 것처럼 내부가 다 보였다.
―심안心眼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눈이라고요?
나하려는 물었다.
―네.
―이것도 무공?
―우린 수십 장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보진 못하잖아요.
―심안은 천안통으로 볼 수 있는 곳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신기하네요.
나하려는 단전을 채웠던 내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내기를 좇았다.
내기가 빠져나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전율적인 쾌감이 밀려왔다.
“흐흡!”
또다시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쾌감의 파도는 점점 더 높아졌다.
‘이러다가.’
또다시 치료를 끝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얼른 단전으로 시선을 주었다. 단전은 진한 황금색을 띠고 있었다.
‘몇 번만 더 견디면 된다. 몇 번만 더…….’
나하려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시 심호흡을 하며 다가올 쾌락의 폭풍에 대비했다. 온몸이 땀에 젖었지만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몇 번이면 된다고 하였던 파도는 몇 번 동안 이어졌고 나하려는 녹초가 돼 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나하려의 몸에서 황금색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휴우!”
금장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치료가 마무리돼 가면서 나하려가 능동적으로 내기를 보내기 시작한 거였다. 금장생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온 내기를 일주천 시킨 후 다시 나하려에게 건넸다. 본격적인 운기행공의 시작이었다.
나하려의 몸에서 흘러나온 황금색 광채가 점점 강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두 사람이 둥실 떠올랐다.
그동안 금장생은 나하려에게서 떨어지려고 시도를 했지만 나하려가 두 다리로 워낙 강하게 붙잡고 있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 나하려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금장생은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잠력을 가장 많이 지닌 사람이 주려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하려는 주려아보다 더 많은 잠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두둑!
갑자기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얼레?’
금장생은 황당한 얼굴로 나하려를 보았다. 나하려는 환골탈태를 하고 있었다. 몸 내부에 있던 탁기가 세맥을 통해 외부로 발출되고 살 비늘이 떨어져 나갔다. 머리카락이 가루가 돼 민머리가 되고 다시 자랐다.
우두둑!
‘헉!’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이번에는 자신의 몸에서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나, 나도.’
새하얀 광채로 휩싸인 어떤 곳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금장생은 정신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건 한 시진 후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나하려였다. 아직 환골탈태가 마무리되지 않은 듯 그녀의 몸에서는 황금색 광채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외부로 쏟아져 나가던 황금색 광채가 나하려 몸속으로 흡수되는 것처럼 사라졌다.
반짝!
나하려는 눈을 떴다.
그러자 황금색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주르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몸 상태를 확인했다. 아니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몸 내부를 살피기도 전에 바로 파악이 됐다. 전보다 다섯 배 이상 강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십 갑자. 단전을 채우고 있는 공력이었다.
“몸은 어때요?”
금장생은 물었다.
“제가 어떻게 된 거죠?”
나하려는 물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그런 엄청난 영약을 언제 복용했습니까?”
“영약이라고요?”
“난생처음 보는 엄청난 영약입니다.”
“그럼 제 단전을 채우고 있는 이 바다 같은 내기가 영약에서 비롯됐다는 건가요?”
“내가 건네준 내공은 절대 아닙니다.”
“나도 특별히 영약을 복용한 적은 없는데.”
나하려는 고개를 갸웃했다.
“전에 이상한 거 복용한 적 없어요?”
금장생은 물었다.
“할아버지가 주신 영약을 복용한 적이 있지만 그걸로 이 갑자 공력을 얻었으니까 잠력으로 남아 있을 리가 없잖아요.”
“다시 생각해 보세요. 나 소저는 분명 뭔가를 복용했을 겁니다.”
“내가 복용한 거라고는…… 설마 그게.”
나하려가 부르르 떨었다.
“왜요?”
금장생은 나하려를 보았다.
“손님에게 대들었다가 지하 창고에 열흘간 갇히는 벌을 받았을 때였어요.”
나하려는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그 일을 겪은 건 타락관으로 추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손님에게 투입되기 전에 몇 달 동안 사전 교육을 받고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지만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손님의 요구를 묵살했다.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고 지하 창고로 던져졌다. 자살을 하면 할아버지를 죽인다는 협박 때문에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었다.
쓰러져 울다가 놀라운 광경을 발견했다.
바닥을 떨어진 눈물이 돌 틈새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의아한 생각에 돌을 덮고 있던 흙을 걷어 냈다. 그리고 정사각형 형태의 돌 몇 개를 들어내자 반 장 깊이의 공간이 나타났다. 호기심에 그곳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시체 한 구를 발견했다.
사내는 알처럼 생긴 걸 가지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걸 가지고 위로 올라와서 돌을 원래대로 맞췄다.
그 알을 먹은 건 이레째 되던 날이었다. 자신을 창고에 가둔 자들은 음식은 물론이고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다. 너무 배가 고파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검은 알이 눈에 띄었다. 음식인지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돌이나 금속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가져갔고 꿀꺽 삼켰다.
설사 독이 들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한편으로는 자살은 못 하지만 이런 식으로 죽으면 할아버지께 해가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튼 그걸 먹고 드러누웠다.
깜빡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사흘이 지나 있었다.
그때 데리러 왔던 사내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열흘을 물 한 모금 안 마신 년이 왜 이렇게 팔팔해.
사내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그 거무튀튀한 알 덕분에 엄청난 내공을 얻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 거무튀튀한 알 말고는 없다는 거죠?”
이야기를 듣고 난 금장생이 물었다.
“네.”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모욕을 참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해진 것 같아요. 이제…….”
금장생은 나하려를 들어 올리기 위해 허리를 잡았다.
턱!
하지만 그는 나하려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나하려가 두 다리로 금장생의 허리를 강하게 그러쥔 탓이었다.
금장생은 나하려를 보았다.
“여기서 멈추면 일호를 원망할 거예요.”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들어 올리려던 나하려의 허리를 강하게 내리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