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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06화 (306/524)

황금가 (306)

내가 버려진 자가 된 건 배신과 보물 때문이었다. 아니 보물 때문에 배신을 당한 거니까 엄밀하게 따지면 보물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 보물의 이름은 가드헬이다.

가드헬은 마족의 최강 무기로 신족 최강 무기인 데블헬의 천적이기도 하다.

가장 껄끄러웠던 황가를 멸문시키고 나자 우리는 승리를 직감했다. 아직 승리하지도 않았음에도 전쟁 후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행동에 옮긴 자들은 신족이었다. 신족의 사신장 중 한 명이었던 라헬은 자신의 왕 루하를 내쫓았다. 원래는 버려진 자들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삼신장 때문에 쫓아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나는 부하들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자라며 루하를 비웃었다. 그런데 내게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내 몸속에 있던 가드헬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배신자들에게 가드헬을 넘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사장 하울라에게 가드헬을 넘기고 탈출시켜 가드헬과 가드헬 사용 방법을 분리했다.

하울라가 탈출하고 얼마 후 사장로는 반역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는 모든 능력을 잃고 버려진 자가 됐다.

“세상에!”

금장생은 어이없는 얼굴로 시체가 기대앉아 있던 벽면을 응시했다.

하울라.

그자는 바로 망산 무덤 지하에 죽어 있던 거대한 덩치 사내의 이름이었다.

“영감님.”

금장생은 라를 불렀다.

“왜?”

“하울라가 누군지 알았습니다.”

“네가 익혔다는 마법을 남긴 자 말이냐?”

“네.”

“누구냐?”

“마족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네. 그리고 여기서 발탄 아무르 헬데아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정말이냐?”

라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유언을 거짓으로 남기지 않았다면요.”

“세상에. 그마저도 배신을 당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그런데 누가 배신한 거냐?”

“사장로였답니다.”

“아무튼 배신은 늘 가장 가까이 있는 놈이 한다니까.”

라는 혀를 찼다.

“원래 배신은 그런 거 아닌가요?”

“그게 무슨 소리냐?”

“가장 믿었던 사람이 아니면 배신이란 말을 쓸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계속 읽어 봐라.”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다시 글로 시선을 주었다.

이곳에는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있었다. 나는 잃었던 힘을 되찾기 위해 그들과 머리를 맞댔다.

마침내 우린 방법을 찾았다.

그들은 이곳 버려진 땅을 만들 때 어둠의 힘을 이용했다. 우린 그 어둠의 힘을 이용해서 우리의 몸을 재구성했다. 그 바람에 피부가 검어지고, 붉은색, 흰색 혹은 금색이었던 날개도 검게 변했지만 감수해야 할 것들이었다.

힘을 되찾았지만 우린 나가지 않았다.

아니 그 당시 이곳의 통치자였던 내가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나가면 다섯 종족의 사냥감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일부는 지금이 아니면 나갈 기회를 잃게 될 거라며 결사적으로 탈출을 주장했지만 나는 묵살했다.

나는 이 안에서 힘을 기르며 기다리기로 했다.

문제가 생긴 건 힘을 되찾고 나서 오십 년 후였다. 죄수로 있던 자가 탈출을 해 버린 것이었다. 처음엔 이곳에 있던 누구도 그자의 탈출을 몰랐다.

그자의 탈출을 알아차리고 대비를 했을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다섯 종족이 이곳에 마법진을 설치하여 영원한 감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그동안 밖으로 나가는 걸 주장했던 자들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들을 이끄는 자는 나를 통치자로 추대했던 내 친구 아르카였다.

“또 절친이 배신을 했네요.”

듣고 있던 나하려가 말했다.

나는 그들과 싸웠다.

온 힘을 다 끌어 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채 도망을 쳤다.

하지만 이 산에서 내가 숨을 곳은 없었다. 그들은 나를 찾아 없애기 위해 온 산을 수색했다.

그런 그들을 피해 들어온 곳이 바로 오래전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만들어 둔 피신처였다.

내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이제 나는 내 친구 아르카가 그렇게 원했던 가드헬 운용법을 남길 참이다.

어쩌면 이 운용법이 아르카에게 들어갈지도 모른다. 아니 그 친구가 반드시 이걸 보기를 바란다.

또 한편으로 먼 훗날 가드헬을 지닌 후예가 찾아와 이 기록을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드헬을 지닌 후예를 위해 밖으로 나가는 길이 나와 있는 지도도 남긴다.

금장생은 발카가 남긴 지도를 머릿속에 새겼다.

“복수를 재미있게 하는 분이네요?”

그리고 고개를 들며 말했다.

“왜요?”

나하려가 물었다.

“조금 전에 저분은 가드헬은 최강의 무기라고 했잖아요.”

“최강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는데 무기가 없다는 말인가요?”

“그자를 최강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무기잖아요.”

“하지만 여기서 나가지 못하면 소용없는 거 아닌가요?”

“고위 마족은 오천 년까지 사니까…….”

“언젠가는 이곳에 펼쳐진 마법진이 해진될 거라는 말이군요.”

“아마 이방인들이 중원 사람들에게 패하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풀어 줬을 거예요.”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나하려는 싱긋 웃었다.

금장생은 다시 바닥으로 시선을 주었다.

가드헬을 운용하는 구결은 그 아래쪽에 새겨져 있었다. 그는 구결을 천천히 읽었다. 암기가 끝나자 그 자리에 가부좌를 했다.

“지금 뭐 하는 거죠?”

나하려는 금장생의 왼팔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내게 물은 거냐?

라는 텔레파시로 물었다. 말로 하고 싶지만 뭔가를 깊게 생각하고 있는 금장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네.”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은 지금 저 구결을 익히는 중이다.

“가드헬이 없으면 필요 없는 구결 아닌가요?”

―가드헬을 가졌으니까 익힌다는 거지, 없다면 익힐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어?”

나하려의 눈이 커졌다.

“정말 일호에게 가드헬이 있어요?”

―그렇다.

“어떤 무기죠?”

―글에 나온 것처럼 마족 최강 무기다.

“그런 추상적인 내용 말고 구체적으로 말씀해 줄 수는 없나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두 무기 중 하나고, 주인이 원하는 무기로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여의如意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렇군요.”

나하려는 금장생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그때 금장생은 손을 들어 올리더니 하늘로 향하게 한 채로 폈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유리처럼 투명한 물체가 솟아 나왔다. 손가락 세 개를 합친 두께에 길이는 한 자 반 정도였다.

“저것이…….”

나하려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이내 실망스럽게 변했다. 라의 설명과는 달리 가드헬은 그다지 대단하게 보이지 않았다.

―실망한 것 같구나.

“아무 기운도 느껴지지가 않아요.”

―그게 바로 가드헬의 무서운 점이다.

“무서운 점이라고요?”

―네가 숨 쉬는 공기가 검으로 변해 공격을 해 온다면 피하거나 막을 수 있겠느냐?

“아무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그런 뜻인가요?”

―그렇다. 가드헬은 무無 그 자체다. 그러면서도 절대적인 파괴력을 지녔다. 내가 단언컨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는 가드헬이다.

그사이 금장생의 장심에서 솟아 나왔던 가드헬이 다시 모습을 감췄다.

“후!”

금장생은 숨을 뿜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힌 거예요?”

나하려가 물었다.

“구결을 이제 처음 봤는데 얼마나 익혔을라고요. 이제 간신히 몸에서 뽑아내는 방법만 익혔을 뿐입니다.”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했다.

“볼 수 있어요?”

“어떤 거요?”

“위력 말이에요.”

“글쎄요.”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오른손을 뿌렸다.

슉!

그러자 투명한 물체가 벽을 뚫고 사라졌다.

“발출한 거예요?”

나하려는 투명한 물체가 파고든 벽으로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벽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슉!

벽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같은 곳으로 투명한 물체가 튀어나와 금장생 손바닥 안으로 사라졌다.

“들어갔다 나온 거 맞아요?”

나하려는 벽 앞으로 갔다. 그리고 조금 전 가드헬이 들어갔다 나온 곳을 손가락으로 만져 보았다.

푸스스!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세상에.”

나하려의 눈이 커졌다. 팔뚝 두께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그녀는 구멍 안쪽을 살폈다. 얼마나 깊게 파고들어 갔는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에요.”

금장생이 말했다.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 간 거죠?”

나하려가 물었다.

“그것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어림잡아 십 장은 파고들어 간 것 같아요.”

“엄청나네요.”

“나도 이런 위력이 있는 녀석인 줄 몰랐습니다.”

금장생은 손바닥으로 시선을 주었다. 나하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가드헬은 손바닥으로만 뽑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팔, 머리, 가슴, 배, 허벅지, 장딴지, 발끝 등 신체 어느 부분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뽑아낼 수 있다. 심지어 눈으로도 발출이 가능하다.

모양 또한 자신이 원하는 모든 형태로 변형이 가능하다.

악마수에 이어 엄청난 무기를 얻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나하려는 물었다.

“다음 일은 먼저 나 소저의 몸을 치료하고 나서 생각해 보기로 하죠. 몸은 어때요?”

금장생은 넓은 공간으로 나가며 물었다.

“조금 나아진 것 같기는 한데…….”

나하려는 말끝을 흐렸다.

“여기 누워 보세요.”

나하려의 몸을 치료했던 단을 가리켰다.

“네.”

나하려는 단 위로 누우며 두 손으로 하체를 가렸다. 상의가 너무 짧아 허리 아래쪽이 고스란히 드러난 거였다.

“안 차요?”

금장생은 나하려가 누운 단 바닥을 손으로 만지며 물었다.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돌에서 따스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아는 한 이런 돌이 있는 곳은 용암지대뿐이었다.

“활석인가 봐요.”

나하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활석은 따뜻한 기운을 흘리는 돌을 말하는데 주로 나이 먹은 노인이나 환자들이 기력 회복을 위해 침대로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흔하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아주 귀한 돌이기도 하다.

“그마다 다행이네요.”

금장생은 오른손을 나하려의 단전으로 가져갔다. 양손으로 하체를 가리고 있던 나하려는 움찔했다.

“아까 포션을 먹인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그래요.”

“못 보게 하려는 게 아니고 창피해서…….”

나하려는 손을 뗐다. 그러자 그녀의 하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원래 그녀는 음모가 빈약했었는데 타락관으로 가면서 정리를 했는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타락관 규율이에요.”

나하려는 나직하게 말했다.

“규율?”

“바닥에 떨어지면 머리카락보다 더 지저분하게 보이잖아요. 타락관으로 가면 가장 먼저 제모부터 해요.”

“한 번 제모를 하면 안 나나 보죠?”

“네.”

“그랬군요.”

문득 주려아도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녀 또한 타락관에서 제모를 당한 모양이었다.

금장생은 나하려의 단전에 손바닥을 대고 내기를 주입했다.

“흠!”

그의 얼굴이 슬쩍 찌푸려졌다. 포션 한 병을 다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약해진 단전은 크게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내기 쪽에는 효과를 본 듯 내기는 상당히 안정돼 있었다.

‘그 방법밖에 없네.’

금장생은 나하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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