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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04화 (304/524)

황금가 (304)

“‘버려진 자들의 땅’은 어떤 곳입니까?”

금장생은 벌판 안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사람이라고는 업고 있는 나하려뿐인데 굳이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네 옆에 난 풀을 봐라.”

라도 더 이상 텔레파시를 사용하지 않았다.

“어?”

자신의 엉덩이 쪽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나하려는 깜짝 놀랐다.

“놀랄 것 없다. 나는 라다. 그런데 엉덩이가 참 튼실하구나.”

“옴마야!”

나하려는 질겁했다.

“이분이니까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됩니다.”

금장생은 왼팔을 들어 악마수를 나하려에게 보여 주었다.

“다시 인사하자꾸나. 나는 라다.”

악마수에 붉은 광채가 어리면서 노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 있는 거죠?”

나하려는 물었다.

“이 녀석이 차고 있는 건틀릿 안이다.”

“어떻게…….”

나하려는 멍한 얼굴로 건틀릿을 보았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건 의문을 갖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아, 알았어요.”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인사는 끝났으니까…….”

금장생은 조금 전 라가 말한 풀로 시선을 주었다. 벌판은 허리까지 차오르는 억새풀로 가득 차 있었다.

“검군요.”

억새는 완전히 검은색이 아니라 물을 많이 섞은 검은색 물감을 칠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 있는 모든 식물은 다 약간 검은빛을 띤다.”

“왜 그런 거죠?”

“여기가 버려진 자들의 땅이기 때문이다.”

“감옥이 아니고요?”

“감옥과는 다르다.”

“어떤 면이 다르다는 겁니까?”

“감옥은 보통 갱생의 여지가 있는 자들을 가두는 곳이지 않느냐?”

“죄를 뉘우치면 다시 써먹을 수 있는 자들만 수감한단 말입니까?”

“그렇다.”

“그럼 이곳으로 버리는 자들은 갱생의 여지가 조금도 없는 자들이란 말이군요.”

“그러면서도 어떤 이유로 인해 죽일 수 없는 자들이기도 하다.”

“어떤 종족의 유배집니까?”

“신족, 마족, 엘프, 드워프, 인간을 다 포함한다.”

“모두 함께 사용했다는 말인가요?”

“그랬다.”

“감시하는 자들도 없는 것 같은데 왜 나가지 않은 거죠?”

“그들은 나가지 않은 게 아니라 나갈 수가 없었다.”

“왜죠?”

“힘을 제거당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힘입니까?”

“인간은 잡식성이라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신족은 신언이라 부르는 절대 마법과 광명의 힘, 대기 중에 숨는 능력을 지녔고, 마족은 마언과 어둠의 힘과 뛰어난 육체를 지녔고, 엘프는 숲의 마법과 쉬지 않고 달리는 능력을 지녔으며, 드워프는 한 번 보면 그대로 재현해 내는 눈썰미와 손기술을 지녔다. 그것들은 후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거다. 버려진 자들은 선천적으로 나타난 능력은 물론이고 후천적으로 습득한 능력마저도 제거당한 자들을 말한다.”

“그 상태에서 추방당했다는 건가요?”

“그렇다.”

“그 상태에서 버려지면 어떻게 되죠?”

“그들은 오천 년, 삼천 년 혹은 이천 년을 짐승처럼 살아가야 한다.”

“여기가 그 버려진 자들의 땅이라는 거군요.”

“맞다.”

“제가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금장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죽음의 기운도, 그렇다고 살아 있는 자들의 기운도 아닌 특이한 기운이 넓게 퍼져 있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게 없어 보였다.

“처음엔 신족이나 마족도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도 어둠의 대지가 죽음의 장소로 변할 거라고 생각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요?”

“어느 날 검은 피부를 가진 신족이 나타났다. 처음엔 사람들은 그를 암흑천사로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자와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났고, 싸움은 목숨을 건 결투로 변했다. 그때 검은 피부 사내가 날개를 펼쳐 싸우던 자의 날개와 목을 쳐 버렸는데, 놀랍게도 그 사내의 날개는 피부처럼 검었다.”

“신족들에게 검은색 날개는 없나 보죠?”

“신족의 날개는 붉은색, 흰색, 황금색 세 가지뿐이다. 암흑천사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날개 표면에 흐르는 광채가 검은색일 뿐이지 속까지 완벽하게 검은 날개는 없다.”

금장생은 억새풀로 시선을 주었다. 보통 마른 억새풀은 황토색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억새풀은 표면에 검은빛이 흐르고 있다.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날개를 가진 신족을 본 적이 있다.

“헤라넬이 암흑천사였군.”

부활의 대지에서 본 헤라넬의 날개가 떠올랐다. 헤라넬의 날개는 분명 황금색이었다. 그런데 날개 표면을 덮고 있는 광채는 검었다.

과거에 보았던 풍마존이나 빙마존의 날개 표면에 황금색 광채가 흘렀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맞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깜짝 놀란 신족은 검은 날개를 가진 자를 잡기 위해 전사를 파견했다. 그런데 그 사내는 엄청난 강자였다. 신족의 능력은 물론이고 중원인들이 창안한 무공에도 통달해서 신족 전사 수백 명을 죽였다. 하지만 결국 생포되고 말았다.”

“그자가 어둠의 대지에 대해 말했나 보군요.”

“맞다. 그자는 자신을 어둠의 대지에서 탈출한 죄수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신족을 비롯한 이방인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만일 그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강력한 적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하게 된다. 하지만 들어간 자들 중 밖으로 나온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차에 걸쳐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자 이번에는 전사를 파견했다.”

“없애 버리기 위해서였군요.”

“그랬다.”

“실패했군요.”

“맞다. 그들 역시 조사단처럼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들어간 자들이 천 명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결국 신족, 마족, 엘프, 드워프, 인간은 어둠의 대지를 없애기로 합의를 봤다.”

“이렇게 넓은 곳을 어떻게 없앴다는 거죠?”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은 아무도 나오지 못하게 하는 거였다”

“마법진을 구축했군요.”

“맞다. 그 후로 여섯 종족은 발을 뻗고 잘 수는 있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안으로 들어간 자는 있었지만 밖으로 나오는 자들은 없었으니까.”

“그럼…….”

금장생은 몸을 돌려 방금 자신이 왔던 곳을 보았다. 산은 보였다. 그런데 산 너머가 보이지 않았다. 저 아래쪽에는 삼사천가 건물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날아서 빠져나가는 것도 불가능하겠죠?”

금장생은 물었다.

“날개 달린 자들이 있는데 당연히 차단했겠지.”

“어떻게…….”

스아악! 스아악!

느닷없이 스산한 소성과 함께 억새풀 사이로 기다란 고랑이 생겨났다.

금장생은 재빨리 그 자리에 앉았다.

허리까지 자란 억새풀 덕분에 그와 나하려는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왜요?”

나하려는 금장생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들킨 모양입니다.

금장생은 전음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이제 어떡하죠?”

―기다렸다가 이 벌판을 빠져나가야죠.

금장생은 은신술을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났다. 억새풀에 갈라지는 긴 고랑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쫓아온 자들의 수가 한두 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끌수록 적의 수는 많아지고 나는 불리해진다는 거네.’

금장생은 자신이 들어왔던 벌판 입구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억새풀이 갈라지는 고랑으로 보건대 이백 명 이상이었다.

“꼭 잡아요.”

파앗!

금장생은 전방으로 몸을 날렸다.

차르르!

그가 달려 나가자 억새풀이 좌우로 갈라졌다.

“저기다! 저기 놈이 간다!”

금장생을 발견한 집행사자단 대원이 손으로 가리키며 고함을 내질렀다.

“차앗!”

“타하!”

“하아!”

집행사자단 대원들은 은신술을 풀고 날개를 생성했다. 그들은 억새풀 바로 위로 낮게 날아 금장생을 쫓았다. 양측 간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흠!”

금장생은 훌쩍 몸을 띄워 억새풀 끝을 밟았다. 그 상태에서 마신행을 펼쳤다. 그의 신형 역시 빠르게 나아갔다. 달리는 것보다 날아가는 게 더 빠르다는 건 만고의 진리였다. 집행사자단 대원들은 얼마 가지 않아 금장생을 따라잡았다.

슈아악!

궁을 사용하는 자가 있는 듯 화살 한 대가 금장생의 등, 즉 나하려를 향해 쏘아져 갔다.

금장생의 신형이 뚝 떨어졌다.

푸욱!

화살은 금장생 삼 장 앞 땅속으로 박혔다.

파앗!

금장생은 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오 장 높이까지 솟구친 그는 빙글 몸을 돌리며 악마수를 찬 왼팔을 쭉 내밀었다.

“파이어!”

발사 명령이 떨어지자 적안 다섯 개가 뒤쫓아 오는 신족을 향해 쏘아져 갔다.

“암기다!”

붉은 원반을 발견한 신족 한 명이 소리쳤다.

그들은 일제히 자신들을 향해 날아온 적안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적안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순식간에 공간을 건너뛴 적안은 신족의 몸통을 향해 날아갔다. 자신들의 무기로 암기를 쳐 내지 못했지만 걱정하는 신족은 없었다. 착용하고 있는 헬라간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착용한 헬라간은 강기가 서린 무기는 막아 내지 못하지만 화살 같은 원거리 무기에는 아주 강했다.

그들은 금장생이 발사한 암기도 자신들의 헬라간을 뚫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들의 생각이 오판이라는 건 바로 밝혀졌다.

적안은 아무 소리도 없이 헬라간을 뚫고 들어가 신족의 몸통으로 파고 들어갔다.

“컥!”

“윽!”

“억!”

날아가던 신족들이 우뚝우뚝 멈췄다. 가장 먼저 적신천사마공으로 생성해 냈던 날개가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힘을 잃은 신족들이 뚝뚝 떨어져 억새풀 속으로 묻혔다.

“크아악!”

“아아악!”

“으아악!”

억새풀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곧 재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선발대가 당했다! 주의하라!”

동료 다섯 명이 죽었지만 신족들의 움직임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일 장, 혹은 이 장, 삼 장 높이에서 금장생을 향해 날아갔다.

“삼三 방향, 칠七, 오五!”

나하려가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금장생의 왼팔이 오른편을 겨냥했다. 발사 명령과 함께 적안 열두 개가 쏘아졌다.

나하려가 말한 삼, 칠, 오는 천객들이 사용하는 신호였다. 맨 앞의 삼은 방향을 나타내는데, 똑바로 서서 양팔을 폈을 때 오른팔이 가리키는 방향을 말한다. 다리 방향은 육六, 왼팔 방향은 구九, 머리 방향은 십이十二다. 각 숫자는 삼일, 삼이처럼 다시 두 개로 나뉜다. 그렇게 하면 총 열두 곳의 방향을 가리킬 수 있어 모든 방향을 다 숫자로 표시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언급한 칠七은 거리를 뜻하고 세 번째 오五는 적의 수를 말한다.

“크아악!”

“아아악!”

“으아악!”

억새풀 안으로 떨어진 자들이 재로 변해 가면서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옷을 벗어서 제 몸을 묶어야 할 것 같아요.”

나하려는 두 다리를 금장생의 허리에 감고 목에 걸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 상태에서 재빨리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그런 다음 옷의 일부로 엉덩이를 받치고 소매를 금장생에게 주었다. 금장생은 재빨리 소매를 풀어지지 않게 묶었다.

“구이九二, 사四, 오五.”

다시 금장생의 목에 팔을 두르며 나하려가 말했다.

금장생의 왼팔이 왼편 뒤로 향했다.

“십十二, 오五, 십十.”

나하려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그리고 두 번째 외침이 이어졌다.

“저低.”

금장생은 두 다리를 좌우로 벌리면서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전방을 향해 적안을 쏟아부었다.

적안은 붉은 폭풍으로 변해 전방을 휩쓸었다.

“크아악!”

“아아악!”

“으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조금 전 왼편 뒤에서 당한 다섯 명과 앞쪽에서 당한 열 명이 동시에 죽음을 영접하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직진!”

파앗!

금장생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됐다.

퉁! 퉁퉁퉁! 퉁퉁!

활시위 놓는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윽!”

나하려의 입에서 나직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맞았군요.”

“괜찮아요.”

“쉴 곳을 찾아볼게요.”

금장생은 뒤편으로 적안을 쏘아 보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저깁니다.”

백여 장 떨어진 곳에 거무튀튀한 건축물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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