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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02화 (302/524)

황금가 (302)

어둠의 대지

“본의 아니게 그분을 탈출시켜 드리게 됐습니다.”

금장생은 철마 나극을 탈출시킨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할아버지를 밖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거예요?”

나하려는 여전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원래 구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살아 나갔을까요?”

“그것까진 장담 못 합니다. 하지만 지하 삼 층에 있던 죄수들과 함께 나갔으니까 탈옥에 성공할 확률은 더 높아질 겁니다.”

“고마워요.”

나하려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고맙다는 말은 이곳에서 탈출하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금장생은 다시 팔을 뒤로 뻗었다.

나하려는 금장생에게 업혔다.

“내가 못 잡아 줄 수도 있으니까 꽉 잡아야 합니다.”

“알았어요.”

“먼저 은신술을 펼쳐 볼게요.”

금장생은 나하려를 업은 채 은신술을 펼쳤다.

그와 나하려는 서서히 대기 중으로 녹아들어 갔다.

“여기서 나가면 먼저 옷부터 구해야 할 것 같아요.”

“제 방에 가면 옷이 있기는 한데.”

“삼 층까지 올라가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문 앞으로 간 금장생은 외부 동정을 살폈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빗장을 풀고 소리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허공섭물 수법을 이용하여 다시 빗장을 잠갔다. 완전히 숨기긴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도망가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춥지 않아요?

금장생은 전음으로 물었다.

“괜찮아요.”

나하려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겉옷 하나로 버티기엔 날씨가 너무 추웠다.

―아무도 없을 때는 따뜻하게 해 줄게요. 대신 실례를 좀 범해야 해요.

금장생은 나하려의 엉덩이를 덥석 쥐었다. 그리고 약하게 이화태양강을 끌어 올렸다.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따스한 기운이 나하려 몸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고마워요.”

“고마운 건 나죠.”

“왜요?”

“처녀 엉덩이를 마구 주무르고 있잖아요.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엉덩이를 말이에요.”

금장생은 빠르게 몸을 날리며 말했다.

“풋!”

나하려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나가는 길 알아요?”

“나는 나 소저가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요?”

“마차를 탄 채로 끌려왔는데 무슨 수로 알겠어요?”

“나도 마차를 타고 왔는데요?”

“어떤 마차요?”

“나중에 내리고 보니까 천수마존의 마차더라고요.”

“그 사람 마차를 타고 왔어요?”

“마차 바닥에 매달려 왔으니까 엄밀하게 따지면 타고 왔다고 할 수는 없죠.”

“그렇게 숨어 들어왔다는 거군요.”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어느새 타락관을 벗어나 길 앞에 섰다. 마차 두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널따란 길이 있었다.

금장생은 그 길을 따라 달렸다.

북쪽이라 그런지 건물이 거의 없었다. 얼마 후 금장생은 짙은 운무로 가득 찬 장소에 도착했다.

“저긴 어디죠?”

“하가와 상가를 구분하는 경곕니다.”

“진식이란 말인가요?”

“처음엔 나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닌 것 같습니다.”

“진식이 아니면 뭐죠?”

―저것도 마법 아닌가요?

금장생은 라에게 물었다.

―환영 마법이 펼쳐진 건 맞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더 있다는 건가요?

―진식도 함께 펼쳐져 있는 것 같다.

―환영 마법과 진식을 섞었다는 말이군요.

―그런 것 같다.

‘어디 보자.’

금장생은 주변을 살폈다. 이럴 때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귀신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주변엔 귀신이 하나도 없었다.

‘귀신이 있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겠네.’

금장생은 주변을 살폈다. 귀신이 있으려면 귀기가 있어야 하고 그런 곳은 공동묘지뿐이다.

‘저기다.’

금장생의 얼굴이 밝아졌다. 저 멀리 산처럼 보이는 곳에서 귀기가 감지됐다.

―갑자기 밝아진 것 같은데 방법을 찾은 거냐?

라가 물었다.

―귀기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신족들은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귀신이 되지 않을 텐데?

―내가 발견한 건 귀신이 아니라 귀깁니다.

―귀기?

―귀기가 모여 있는 곳은 다른 곳보다 어둡거든요.

금장생은 귀기가 감지된 곳으로 몸을 날렸다.

“어디로 가는 거죠?”

나하려가 물었다.

“진식을 뚫고 나갈 방법을 찾아보려고요.”

금장생이 나아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귀기가 모여 있는 산은 상당히 멀었다. 한 식경 이상을 달렸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 다시 한 식경 정도를 더 달렸을 때 목표 지점 근처에 도착했다.

“계속 은신술을 펼치고 있으면 피곤하지 않아요?”

나하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요. 하지만 여긴 근처에 아무도 없으니까 괜찮을 것 같네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은신술을 풀었다.

“여긴 어디죠?”

“삼사천가 동쪽 어디쯤 되는 것 같아요.”

“저 산은…….”

“귀기가 감지된 곳이 저기뿐이라서 온 건데…….”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문득 삼사천가에 있을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당시 삼사천가에는 이상한 산에 대한 소문이 돌았는데 그림자 산이라 불리는 영산影山이었다.

영산을 그림자 산이라 부르는 건 낮에는 사라지고 밤에만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문득 저 산이 그 영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산 같은데, 아닌가요?”

나하려가 물었다.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영산에 대해 아는 거 있어요?”

“할아버지도 아는 게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다른 곳은 몰라도 영산으로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어요.”

“왜요?”

“영산에 들어가면 살지도 죽지도 못한다고 했어요.”

“그럼 우린 저기로 가야겠군요.”

“제 할아버지 말을 믿지 않는 거예요?”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진식이 구축돼 있지 않는 곳이 저기뿐이거든요”

“그래요?”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요.”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곧바로 영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척! 척척척!

금장생이 떠나고 반 각 후 날개를 가진 자 열두 명이 조금 전 금장생이 서 있던 곳으로 내려섰다. 그들은 하늘에서 지상을 감시하던 엘의 부하였다.

“단주께 놈이 어둠의 대지로 들어갔다고 알려라!”

카단은 옆에 서 있는 자를 보며 말했다.

“알았다.”

사내는 곧바로 바닥을 차고 날아올랐다. 그의 신형이 십 장 높이까지 올라갔을 때 날개가 펼쳐졌다. 그가 엘 앞에 도착한 것은 일각 후였다.

“찾았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어디냐?”

“계집을 데리고 어둠의 대지로 들어갔습니다.”

“확인했느냐?”

“들어간 걸 모두가 봤습니다.”

“대원들에게 어둠의 대지 앞으로 집결하라고 하라.”

“알겠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그나저나…….”

엘은 곤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일호가 잠입하여 철마 나극을 탈옥시키고 삼호를 데리고 간 건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둘 다 하가인일 뿐이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혁무심, 즉 헤라넬을 비롯한 암흑천사의 탈출과 천수마존의 죽음이다. 그 두 가지는 낮이었다면 즉시 보고를 올려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문제는 지금이 밤이라는 사실이다.

“일단 가 보기나 하지 뭐.”

엘은 곧바로 초인삼황 처소로 갔다.

그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좌천심황 좌무백의 거처였다. 좌무백은 아직 취침 중이었다. 그곳을 나와 지천마황 천우황의 거처로 갔다. 천우황 역시 깊이 잠든 상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천검황 심무극의 거처로 갔다. 다행히 심무극은 일어나 있었다.

“새벽부터 네가 웬일이냐?”

심무극은 엘을 보며 물었다.

“간밤에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숨도 자지 못할 걸 보니 큰 사고였나 보구나.”

심무극은 엘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잠을 못 잔 정도가 아니라 신경도 아주 날카로워 보였다.

“혁무심이 탈옥했고, 천수마존이 살해당했습니다.”

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정말이냐?”

심무극의 눈이 커졌다.

“네.”

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수마존을 살해한 자는 잡았느냐?”

“아직 잡지 못했습니다.”

“강한 놈인가 보구나. 외부인이더냐?”

“천객 일호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천객 일호?”

“네.”

“그놈이 정말로 이곳으로 들어왔단 말이냐?”

“그 역시 정확하지 않습니다.”

“자세하게 말해 보아라.”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엘은 지난 이틀간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놈은 천객 삼호였다가 타락관으로 떨어진 계집을 구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고, 철마 나극을 탈옥시키고 천수마존을 죽이는 성동격서를 펼치고 삼호를 구해서 도망쳤다는 거냐?”

“현재까지 상황은 그렇습니다.”

“어디로 도망쳤느냐?”

“어둠의 대지로 들어간 걸 확인했습니다.”

“어둠의 대지?”

심무극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네.”

“그곳을 지키는 자가 아무도 없었느냐?”

“금역으로 선포한 곳이고 살아 나온 자가 없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에…….”

“그렇지.”

심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할까요?”

“놈이 살아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놈이 정말 일호라면 살아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둠의 대지 북편에 천라지망을 펼쳐야겠구나.”

“어둠의 대지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한 곳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면?”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느냐?”

“벌써 이천 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자들이 아직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살아 있다고 해도 철장거인을 사용하면 충분히 제압이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철장거인까지 사용하겠다는 거냐?”

“허락하시면 사용하겠습니다.”

“그 일을 꼭 지금 해야겠느냐?”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은 지천좌와 좌천좌도 알아야 한다.”

“두 분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둠의 대지에 있는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면 명령권자는 치천좌께서 되실 겁니다.”

“흠! 유혹적인 말이구나.”

심무극은 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엘의 눈동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한참 동안 엘을 바라보던 심무극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엘. 집행사자단이 지니고 있는 모든 전력에 대한 권한을 네게 이양하겠다. 철장거인을 운용하는 권한까지 모두 다 사용해도 좋다.”

“감사합니다.”

엘은 고개를 숙였다.

“수고해라.”

심무극은 빙긋 웃었다.

“그럼.”

엘은 고개를 숙인 심무극의 방에서 나갔다.

“바훔!”

엘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심무극은 나직하게 소리쳤다.

“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심무극 앞으로 검은 연기가 모여들었다. 그 연기는 곧 사람의 형태로 변했다.

키가 육 척 후반대에 달하는 건장한 체격을 가진 여자였다. 여자는 새카만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모든 게 다 컸다. 두껍지 않은 갑옷인 듯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검은 눈에 검은 피부를 가진 이 강철의 여전사는 초인삼황의 호위인 암흑천사단 단주 바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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