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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01화 (301/524)

황금가 (301)

연이어 일어난 사건 때문인 듯 홍각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간혹 소곤대는 소리가 흘러나오긴 했지만 금세 침묵 속에 묻혔다. 술을 마시거나 여자가 필요해서 왔던 자들이 연이어지는 사건으로 인해 모두 돌아간 탓이다.

처음에 기녀들도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상황을 지켜보았지만 이내 흥미를 잃었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흥미를 갖고 지켜보기에는 너무 닳고 닳아 버린 탓이다. 게다가 수십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이 죽는다고 해도 그들의 삶은 달라질 게 없었다. 내일부터 또다시 술과 몸을 팔아야 했다. 죽은 자들에 대한 관심보다 모처럼 찾아온 한밤의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는 게 더 나았다.

하지만 한 사람은 달랐다.

그는 바로 타락제이관 부관주 무무설이었다.

대부분의 기녀들에게 오늘 밤 싸움은 달콤한 휴식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관주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녀에는 특별한 시간, 즉 기회의 시간이었다.

“그 계집만 잘 이용하면 대박을 잡을 수도 있어.”

무무설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잠시 후 지하에 도착했다.

그곳은 손님과 문제가 있었던 기녀를 교육시키는 교육관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그녀가 들어가자 앉아 있던 사내 다섯 명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화화火花는?”

“데리고 올까요?”

가운데 사내가 물었다.

“그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내는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하려를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그녀는 알몸이었다.

교육관의 규칙이었다. 교육을 담당하는 사내는 옷을 입지만 교육을 받은 기녀들은 옷을 입을 수가 없다. 사내들 앞에서 알몸으로 서 있어도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여전히 아름답구나.”

무무설의 얼굴에 질시의 감정이 떠올랐다. 사람은 마음이 망가지면 몸도 망가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하려는 달랐다. 수많은 사내를 거쳤고, 이곳에서도 교육이란 명목하에 하루에 수십 명씩 사내를 받았다. 바닥으로 처박힌 정신은 자결할 생각도 못 하게 한다. 그런데도 몸에서는 광채가 난다. 가슴과 엉덩이는 더욱 커지고 피부도 더욱 좋아진 것 같다.

젊음이 주는 축복이다.

나이를 먹은 자신은 아무리 가꿔도 하루하루 나빠지는데 젊음을 가진 계집은 핍박을 받아도 점점 더 좋아진다. 문득 나하려에게서 젊음을 파괴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럴 수는 없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출셋길을 열어 줄지도 모르는 물건을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훼손할 수는 없었다.

“이런 의미 없는 짓을 언제까지 할 거죠?”

나하려는 무무설을 보며 물었다.

“의미 없는 짓?”

무무설은 나하려의 눈을 보았다.

“술을 마시러 온 사내에게 가랑이를 벌리는 거나, 이자들에게 벌리는 거나 다름없다는 거예요.”

“다름없다는 건 무슨 뜻이냐?”

“나는 화화가 아니고 나하려란 뜻이고, 내가 당신들의 말을 따르는 건 할아버지 안위 때문이라는 거예요.”

“철마 나극이 아니었다면 자살이라도 했을 거란 말이냐?”

“맞아요. 그분이 죽었다거나 탈출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 나는 자살할 거예요.”

“그러니까 네가 우리 말을 고분고분 듣는 건 철마 나극 때문이라는 말이구나.”

“그래요.”

“아무리 할아버지라고 해도, 너무 과한 거 아니냐?”

“그건 내 사정이에요.”

“풋! 그렇지, 그건 네 사정이지. 나는 너를 이용해서…….”

휙!

느닷없이 불이 꺼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앗!”

“억!”

“어?”

사내들은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슉!

푹! 푹푹! 푹푹!

“커억!”

“크윽!”

“윽!”

“악!”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에 이어 비명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파앗!

곧 꺼졌던 불이 다시 켜졌다.

그리고 방 안 상황이 드러났다. 암기가 심장으로 파고든 사내 다섯 명은 즉사했고, 가장 강자였던 무무설은 암기가 날아오는 순간에 위쪽으로 몸을 날려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하필이면 암기가 파고든 곳이 단전이라 무공을 잃고 말았다.

나하려는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타락제일관이다. 삼사천가 인물들 말고는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오악살마 다섯 명과 부관주인 무무설이 공격을 받은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의문의 살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응?’

나하려의 시선이 무무설에게로 향했다.

입을 쩍쩍 벌리는 걸 보면 고함을 지르는 것 같은데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건 누군가가 강기로 무무설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걸 뜻한다.

‘도대체 누가.’

나하려는 무무설을 보았다. 암중의 살인자는 단순히 비명만 막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무무설은 자신의 목을 그러쥐며 캑캑거린다. 숨을 쉬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잠시 후 무무설의 움직임이 멈췄다.

스윽!

그리고 야행복을 걸친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금장생이었다.

“…….”

나하려는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랜만입니다.”

금장생은 나하려를 보며 빙긋 웃었다.

“어, 어떻게…….”

비로소 나하려는 입을 열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금장생이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물론 자신이 갇힌 이유가 금장생을 구해 주었다는 것 때문이긴 했지만, 금장생이 그 사실을 알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바로 앞에 서 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이자들부터 처리하자고요.”

금장생은 이화태양강을 끌어 올려 사내들과 무무설을 가루로 만들었다. 그때까지도 나하려는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로 올 때 가져온 소지품 있어요?”

옷을 찾아 입힐 생각으로 물었다.

“이 안에서는 아무것도 걸칠 수도, 가질 수도 없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옷을 벗기고 가루로 만들 걸 그랬네요. 그래도 한번 찾아보기로 하죠.”

금장생은 아쉬운 얼굴로 조금 전 무무설이 누워 있던 곳을 보았다.

“익숙해서 괜찮아요.”

“나 소저는 괜찮을지 몰라도 나는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내 옷은 민망함을 숨기기엔 너무 얇단 말…… 이, 이것 보세요. 이건 아니잖아요. 나, 나는 지금 여섯 명을 죽이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가루로 만들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금장생은 아래를 보며 소리쳤다. 그는 안절부절못했다. 어이없게도 그의 성기가 경도를 높이기 시작한 거였다.

“풋!”

나하려는 피식 웃고 말았다.

“웃지만 말고 얼른 옷이나 찾아보세요.”

금장생은 버럭 소리쳤다.

“알았어요.”

나하려는 벽면에 붙어 있는 장을 열었다. 그녀가 연 다섯 개의 장은 모두 텅텅 빈 상태였다. 마지막 장에서 옷 같은 게 하나 나왔다. 엉덩이만 간신히 가릴 정도로 짧았지만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나하려는 그거라도 걸쳤다.

“어떻게 온 거죠?”

나하려는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그보다 무공은 어때요?”

“파훼되진 않았지만…….”

“굳었단 말인가요?”

“네.”

나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금장생은 가방에서 마법 지팡이를 꺼내 나하려의 몸에 걸린 마나 석화 마법을 풀어 주었다.

“헉!”

너무 오랜만에 내공이 운용돼서인지 나하려는 당황했다.

“먼저 운기행공부터 하세요.”

금장생은 한편으로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말했다.

“문은…….”

나하려는 출입문으로 시선을 주었다.

“잠가 놨습니다.”

“알았어요.”

나하려는 곧바로 가부좌를 했다.

“거참, 나를 보고 하면 어쩌라고.”

금장생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짧은 상의 하나만 걸친 나하려가 가부좌를 하자 본의 아니게 모든 것을 봐 버린 것이다. 금장생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나하려는 몸 내부를 살폈다.

‘헉!’

그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동안 그녀는 무공을 잃지 않은 걸로 생각했다. 아니 내공이 단전에 남아 있으니까 잃지 않은 게 분명하다. 하지만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기해혈 곳곳에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만일 지금 상태로 운기행공을 하게 되면 기해혈이 터져서 단전을 잃고 말 것이다.

“안 돼요.”

나하려는 고개를 저었다.

“뭐가 안 된다는 거죠?”

금장생이 물었다.

“직접 보세요.”

금장생 앞으로 간 나하려는 옷을 좌우로 벌렸다.

금장생은 시선을 내렸다.

“단전을 보세요.”

금장생은 손바닥을 나하려의 단전에 댔다.

“학!”

느닷없이 나하려가 신음을 내뱉었다.

금장생은 놀란 눈으로 나하려를 보았다. 조금 전 신음은 아파서 내지른 게 절대 아니었다.

“체질이 바뀌어서 그래요.”

나하려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바뀌었다는 거죠?”

“피가 뜨거워져요.”

“피를 뜨겁게 하는 방법도 있나요?”

“독물을 꾸준히 복용해서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르는 것과 비슷한 방법을 사용해요. 이곳에서는 매끼마다 춘약을 복용해요. 물론 많은 양은 아니에요. 보통은 꾸준히 복용하면 내성이 생기는데 이곳에서 복용하는 춘약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민감한 체질로 바꾸어 줘요. 철저하게 사내를 만족시켜 주는 몸이 되는 거죠.”

“뭐라고 할 말이 없네요.”

금장생은 고개를 젓고는 나하려의 단전을 살폈다.

“으음!”

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하려의 단전은 엉망으로 망가진 상태였다. 완전히 파훼된 건 아닌데, 조그마한 충격만 주어도 부서질 정도로 약했다. 마치 달걀 안쪽에 있는 얇은 막으로 만들어 놓은 단전 같았다.

“그때는 유리단전이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어요.”

“유리단전?”

“처음 잡혀서 고문을 당했거든요. 그때 날 고문하던 자가 이제 유리단전이 돼서 내공이 있어도 무공을 펼치지 못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내공을 없애지 않고 단전만 망가뜨렸다는 거군요.”

“그런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네요.”

금장생은 나하려 앞에 등을 보이고 앉았다.

“무슨 뜻이죠?”

“업히세요.”

“절 업고 여길 탈출하겠다는 건가요?”

“그동안 살이 빠진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살이 쪘더라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전…… 안 가요.”

나하려는 고개를 저었다.

“나 소저!”

금장생은 나하려를 보았다.

“못 가요.”

“내가 힘들까 봐 그러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는데 중원무림에서 날 어떻게 할 자는 없습니다.”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그럼?”

“제 할아버지 때문이에요.”

“그 양반은…….”

“제 친할아버지가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분이 저를 구해 준 건 제가 네 살 겨울이었어요. 제 바로 옆에는 굶주림에 얼어 죽은 엄마와 오빠가 있었어요. 저도 거의 죽어 가는 상황이었고.”

“구해 주었단 말이군요.”

“그때 엄마와 오빠는 천형이라 문둥병에 걸려 있었어요. 엄마와 오빠가 죽은 것도 마을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서였고요. 그리고 저도 온몸에 부스럼이 나 있는 상태였어요. 그런데도 그분은 제가 숨을 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해 주었을 뿐 아니라 성을 물려주고 손녀로 삼았어요. 저는 그 은혜를 갚아야 해요.”

나하려는 울면서 말했다.

“은혜를 갚으려면 더더욱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들은 내가 이곳을 벗어나면 할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했어요. 자살을 해도 마찬가지고요.”

“…….”

금장생은 나하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천객으로 활동할 때도 나하려는 비교적 밝았다. 그래서 삼사천가 수뇌의 핏줄로 보이는 다른 자들처럼 힘든 일 없이 자란 줄 알았다. 그녀에게 그런 어두운 사연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아무튼 업혀요.”

금장생은 다시 업는 자세를 취했다.

“난…….”

“영감님도 이미 감옥에서 탈출했어요.”

“네?”

나하려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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