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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300화 (300/524)

황금가 (300)

“놈이 삼호의 거처를 알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건…….”

장무옥은 말끝을 흐렸다.

“탕화를 죽인 건 삼호의 거처를 알아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탕화는 타락제일관으로 갔다고만 했을 뿐 정확하게 어디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그렇게 해야 복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타락제일관에서는 일부러 들킨 거라고 보십니까?”

“그건 아닐 게다. 삼호를 찾아다니다가 누군가에게 들켰겠지. 조용히 처리를 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놈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건이 커졌단 말이군요.”

“맞다. 그렇게 되자 놈은 사고를 크게 쳐서 이목을 끈 다음 흑루로 가서 나극을 구출한다. 그럼 누가 봐도 나극을 구출하러 온 것처럼 보이지 않겠느냐.”

“실제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장무옥은 고개를 갸웃했다.

삼호를 위한 성동격서가 아니라 나극을 탈옥시키기 위한 성동격서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를 살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거라면…… 아!”

장무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느냐?”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삼호, 아니 나하렵니다.”

“맞다. 나극은 설사 탈옥에 성공한다고 해도 나하려를 구하지 않고는 절대 떠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를 구하는 건 의미가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장무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호를 이용해서 함정을 파라고 한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함정을 파되, 나하려도 몰라야 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백루에 있겠다.”

“알겠습니다.”

장무옥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네놈이 누구이건 간에 반드시 잡는다.”

엘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 * *

“끙!”

천수마존 사역남은 얼굴을 찌푸렸다. 여러 가지로 안 풀리는 날이었다. 모처럼 화끈한 밤을 보내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먼저 목욕을 하고 아주 약한―발기가 일정 시간 유지될 정도의―춘약도 준비했다.

반 시진은 흘러야 약효가 나오는 춘약이라 타락관에 도착해서 미리 복용했다. 주려아를 만나러 가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상한 놈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산통이 깨지고 말았다. 처음엔 금세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건은 점점 커지더니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마차를 몰았던 도천군을 찾았다. 처소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도천군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타락관으로 사람을 보냈다. 그곳에도 역시 도천군은 없었다.

별수 없이 직접 마차를 몰고 와야 했다.

그곳에 있는 자에게 마차를 몰아 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공연히 입방아에 오르내릴까 봐 그냥 두었다. 겨울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차가웠다. 내기로 온몸을 감싸고 처소로 들어왔다.

방 안으로 들어오자 추위는 금세 가셨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주려아와 관계를 갖기 위해 복용했던 춘약을 아직 해소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약하다고 해도 춘약은 춘약.

한 식경 전부터 성기가 발기하더니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걸을 때도 힘들고,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자꾸만 머릿속을 잠식해 드는 난잡한 환상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네. 유리 있느냐?”

사역남은 밖을 향해 소리쳤다.

“불러올까요?”

안으로 들어온 시비가 물었다.

“내가 보잔다고 해라.”

“알았습니다.”

시비는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사역남은 곧바로 침실로 가 옷을 벗고 침대로 들어갔다.

잠시 후 침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사역남은 문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문이 열리고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많은 부분에서 주려아를 닮은 이 여자는 사역남의 밤 시중을 드는 시비 유리였다. 자주 있는 일인 듯 유리는 인사를 하고 곧바로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옷을 벗지 않고 침대로 들어가는 건 사역남이 원해서였다.

사역남은 급했다. 그는 찢듯이 유리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유리에게 바로 몸을 실었다. 유리는 고통으로 인해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비명은 내뱉지 않았다. 아니 비명이 아니라 신음이 흘러나왔다. 자기가 찍어 누르고 있는 여자가 고통에 겨운 얼굴로 신음을 내지르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듯 사역남은 거칠게 움직였다.

첫 번째 절정은 한 식경 만에 찾아왔다.

그런데 사역남의 발기는 풀리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몸을 움직였다.

욕구불만이 쌓여 그런 건지 몰라도 좀처럼 만족이 되지 않았다. 발기가 끝나면 더 이상 관계를 갖지 않을 테지만,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연속해서 다섯 번이나 했다.

관계를 가진 사역남도 놀랄 일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회춘을 하나 보구나.”

사역남은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했다. 약한 춘약을 복용하고 두 번이 한계였다. 그런데 주려아도 아니고 시비 유리를 상대로 두 배 이상 힘을 낸 것이다.

회춘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전 그만 나가 보겠습니다.”

유리가 말했다.

“그렇게 해라.”

사역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옷을 걸친 유리는 방에서 나갔다.

유리가 나가자 사역남은 곧바로 잠에 빠졌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이었다.

스윽!

천장에서 검은 인형이 뚝 떨어졌다.

사역남 곁으로 다가가는 그는 금장생이었다. 그런데 그의 걸음걸이가 지극히 느렸다. 그가 내려선 곳에서 사역남까지 거리는 반 장이었다. 세 걸음이면 다가갈 거리를 그는 무려 반 각이나 걸려 이동했다. 그가 이렇게 천천히 움직이는 건 사역남이 절대 고수이기 때문이다. 절대 고수는 잠을 자면서도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파동을 감지하고 자신이 위험에 처했음을 알아차린다. 극한으로 개발된 육감 덕분이다.

따라서 절대 고수를 암살할 때는 살기는 물론이고 대기 중에 파동이 생겨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금장생이 지루하도록 천천히 이동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사역남 바로 앞에 도착한 금장생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허벅지를 더듬어 단검 한 자루를 뽑았다. 단검을 뽑는 속도 또한 조금 전 보여 주었던 걸음걸이만큼이나 느렸다. 애초에 검집이 없는 단검인 듯, 검을 뽑을 때 나오는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허벅지에서 뽑힌 단검은 사역남의 목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얼마나 천천히 나아가는지 공기의 파동조차 일지 않았다.

지루할 정도로 느리게 나아가던 검이 사역남의 목 앞에 멈췄다. 그때까지도 사역남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무런 감정도 나타나 있지 않던 금장생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렇다고 살기를 흘리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을 뿐이다.

푸욱!

섬뜩한 소성이 사역남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커억!”

사역남의 두 손이 목으로 향했다.

그 순간 금장생은 왼팔로 사역남의 단전을 후려쳤다.

퍼억!

“크아악!”

사역남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슥!

금장생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단검 한 자루를 더 뽑아 사역남의 심장으로 쑤셔 박았다.

더 이상 부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휙!

금장생은 선 자세 그대로 위로 몸을 날려 천장으로 올라갔다. 곧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비명이다. 비명이 들려왔다!”

사역남 부하들이 우르르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침실로 들어간 그들은 얼음이 됐다. 그들의 주군인 천수마존 사역남은 목에는 단검이 꽂혀 있고 단전은 박살 나 있었다.

“주, 주공이 죽었다.”

“주공께서 살해되셨다.”

사역남 부하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 * *

“그게 무슨 소리냐?”

엘은 깜짝 놀랐다.

“천수마존께서 자객에게 당했답니다.”

장무옥은 굳은 얼굴로 보고했다.

“정말이냐?”

“네.”

“빌어먹을!”

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었다. 문득 이곳과 감옥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천수마존 사역남을 없애기 위해 벌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 대원을 천수마존 근처로 이동시켜라. 일차 수색 범위는 살해 현장에서 십 리다.”

“천수마존 또한 성동격서의 일환일 수도 있습니다.”

장무옥이 말했다.

그의 생각에 타락관과 감옥에서 사건을 저지르던 자가 느닷없이 천수마존 사역남을 없앴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아니 원래 목표가 천수마존 사역남이었다고 해도 나하려와 나극을 이용했다는 건 너무 생뚱맞다.

“성동격서의 대상으로 이용하기엔 천수마존의 신분이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엘은 장무옥을 보았다.

그 역시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천수마존 사역남과 나극, 나하려 조손은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다. 게다가 나하려를 구하기 위해 천수마존을 살해한다는 건, 빈대를 잡기 위해 집을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짓이다. 천수마존 사역남은 그만큼 강자다.

“그렇긴 합니다만…….”

“서둘러라.”

“나하려 주위에 파 놓은 함정은 어떻게 할까요?”

“그들도 철수해라.”

“알겠습니다.”

장무옥은 빠르게 타락관으로 내달렸다.

“나도 네 말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장무옥. 하지만 대원들을 물리지 않을 수 없다. 대원들을 그대로 두면, 내막을 모르는 자들은 쓸데없이 창기에 신경 쓰느라 정작 천수마존 암살 같은 중요한 일은 하지 않았다고 욕할 테니까. 설사 또 다른 성동격서라고 해도 천수마존 쪽으로 대원을 돌릴 수밖에 없다.”

엘은 중얼거렸다.

그 역시 타락관의 나하려가 걸렸다. 하지만 만일 그쪽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을 때 자신이 떠안아야 할 책임이 너무 크다.

창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카단!”

엘은 나직하게 소리쳤다.

“네.”

대답과 함께 허공에서 불쑥 사내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한 명이 아니었다. 그 사내에 이어 열한 명이 더 나왔다.

사내들에게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거대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큰 키였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팔 척은 될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특이한 문양이 가득 새겨진 붉은 갑옷을 입었는데, 전에 금장생이 차원이동 통로 입구에서 얻은 적운신갑과 비슷한 종류였다. 그런데 금장생이 얻은 것보다 훨씬 강력하게 보였다.

“타락관 하늘을 감시해라.”

“존!”

사내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 상태에서 가볍게 바닥을 쳤다.

스윽!

열두 명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

십 장 높이까지 솟구친 그들의 등에서 날개가 펼쳐졌다. 날개는 모두 여덟 개였다.

열두 명이 모두 상급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

휙!

카단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엘도 몸을 날렸다. 잠시 후 타락관 하늘로 붉은색 효시가 솟아올랐다.

“대원들은 천수각 방면으로 이동하라.”

“천수각이다.”

마치 썰물이 빠지듯 집행사자단 대원들이 타락관에서 빠져나갔다.

* * *

주려아는 밤이 무척 길다는 생각을 했다.

초저녁에 금장생과 사랑을 나누고 얼마 후, 살이 찌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을 하면서 야식을 먹었다.

과자가 줄어드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어느새 다 떨어지자 한숨을 내쉬며 차를 마셨다.

그리고 잠을 자기 위해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들지 못했다. 이틀 동안 겪은 일이 너무 엄청나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뒤척이다가 결국 침심을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뭔가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채 얼른 소화를 내보냈다.

나갔던 소화가 돌아온 건 한 식경 후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주려아는 물었다.

“천수마존 사역남이 죽었대요.”

소화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정말?”

“그 바람에 집행사자단 대원들이 모두 철수했어요.”

“그랬구나.”

주려아는 창밖으로 갔다. 금장생은 언제일지 모르지만 천수마존이 찾아오지 않을 때가 있을 거라고 하였고, 그때가 되면 천수마존이 죽었다고 생각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날이 생각보다 빨리 온 것 같았다.

―일정이 바뀌었습니다.

그때 금장생의 전음이 들려왔다.

“고마워요.”

주려아는 속삭이듯 나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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