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98)
그 시각 금장생과 나극은 절벽 아래쪽에 있는 커다란 동굴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동굴 안쪽은 거대한 크기의 호수였다.
“저게 다 뭐냐?”
나극은 호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관이 물속에 잠겨 있었다. 유리로 만든 관 안에는 알몸의 남녀가 각각 들어 있었다. 유리관 안쪽도 액체로 가득 차 있었는데 호수 물과는 약간 달랐다.
“죽은 자들입니다.”
금장생은 물 위로 걸어가며 말했다.
쩌엉! 쩌엉! 쩌엉!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호수가 얼어붙었다.
그리고 얼어붙은 호수를 향해 다시 한번 발을 내딛자 유리관과 안에 들어 있는 자들까지 산산이 부서졌다.
“멈춰라!”
다섯 걸음을 채 걷기도 전에 수십 명이 금장생과 나극을 향해 날아왔다. 날아오는 자들의 등에는 두 장의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당신들은 이미 한번 겪어 봐서 새롭지도 않습니다.”
금장생은 흑사아를 뽑아 들었다.
나극 또한 내공을 끌어 올려 준비를 했다.
슥! 슥슥! 슥!
날아오던 자들이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신족이 지닌 능력 중의 하나인 은신술이었다.
“그래 봐야 소용없습니다.”
금장생은 흑사아를 내던졌다.
스아악!
허공을 가르던 흑사아가 순식간에 일흔두 자루로 늘어났다. 금장생 앞은 새카맣게 변했다.
푹! 푹푹푹! 푹푹푹! 푹푹푹!
섬뜩한 소성과 함께 흑사아가 모습을 감춰다. 흑사아가 보이지 않는 건 허공에 숨은 신족의 몸속으로 들어간 탓이었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사라졌던 흑사아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꺼어억!”
“크어억!”
“캬아악!”
모습을 드러낸 신족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흑사아에 당한 그들은 몸은 불에 타는 것처럼 재 형태의 흔적을 남기며 스러졌다. 허공으로 날리던 재도 곧 잘게 부서져 흩어졌다.
파앗!
흑사아가 금장생에게 돌아오는 그 순간 철마 나극이 몸을 날렸다. 날아가는 그의 몸이 새카맣게 변했다.
‘역시!’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이 아는 한 온몸이 먹물처럼 새카맣게 변하는 건 묵철마신墨鐵魔身뿐이다. 묵철마신의 완성은 곧 금강불괴지신이 된다고 하였다.
“차아아아!”
나극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퍼억!
나극의 주먹이 신족의 머리에 작렬했다.
“크아악!”
머리가 산산이 부서진 신족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그의 왼손이 전방 허공으로 파고들었다.
푸욱!
“커억!”
비명을 들으며 손목을 틀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뽑아냈다. 심장으로 보이는 것이 나극의 손에 들려 나왔다. 나극은 그것을 힘껏 쥐었다.
심장이 터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자 신족의 동체가 가루로 흩어졌다.
퍼억! 퍼억! 콰앙! 콰앙! 푸욱!
분노한 나극의 신위는 엄청났다. 그는 방어를 전혀 하지 않았다. 적의 무기가 날아오면 몸으로 막고 반격을 했다. 언뜻 보면 쌍방이 함께 공격을 하는 것 같지만 죽은 자는 신족뿐이었다. 죽은 자들은 하나같이 심장이 부서져 있었다. 나극은 설사 심장이 아닌 다른 부위가 박살 나 죽은 자라고 해도 반드시 심장을 꺼내 터뜨렸다. 그는 신족을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금장생은 문득 나극이 갇힌 게 손녀 나하려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저자들은 영감님에게 맡겨 두면 될 것 같고 나는…….”
금장생은 양극신공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그 상태에서 빙극천월강의 세 초식 중 마지막 초식인 극極을 펼치며 호수 위를 내달렸다.
쩌엉! 쩌엉! 쩌엉!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물속에 잠겨 있던 유리관과 관 안에 있던 신족들도 사산이 부서졌다.
호수 물이 신족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점점 붉은색으로 변해 갔다.
“저, 저놈을 잡아라! 저놈을 죽여라!”
책임자로 보이는 자가 금장생을 가리키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신족들이 금장생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금장생에게 날아간 신족은 없었다. 그들의 앞을 막아선 자는 나극이었다.
그사이 금장생은 신족을 계속해서 없앴다.
“죽일 놈!”
수장은 북을 치며 금장생에게로 몸을 날렸다.
그가 치는 북에는 괴이한 얼굴 형상이 새겨져 있었는데, 북채로 내리칠 때마다 입을 쩍쩍 벌렸다.
수장이 칠 때 나오는 소리는 북소리가 아니라 괴이한 얼굴 형상이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부활고復活鼓라는 북으로 부활 의식을 마무리할 때 사용하는 법기였다.
부활고 소리는 강하게 수면을 때렸다. 수면이 파르르 떨며 물방울이 튀었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관속에 있던 자들이 번쩍 눈을 떴다. 그러자 그들의 눈에서 붉은 광채가 폭사됐다.
“일어나라!”
수뇌는 계속해서 부활고를 쳤다.
파앙! 파앙! 파앙! 파앙!
유리관 수백 개의 뚜껑이 깨지고 붉은 눈동자를 가진 신족 수백 명이 솟구쳐 올랐다.
그런데 그들은 정상 상태가 아니었다. 붉은 눈동자는 광기로 인해 번들거렸다. 부활 의식을 완수하지 못한 후유증이었다.
금장생을 발견한 신족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금장생을 향해 날아가는 그들의 등에는 두 개 혹은 네 개의 날개가 나 있었다.
“차하!”
금장생은 신족들을 향해 마주 달려가며 흑사아를 내던졌다. 흑사아는 곧 일흔두 자루로 변해 신족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크아아악!”
“캬아아악!”
“캬카아아아아!”
오십여 명의 신족이 동시에 비명을 내지르며 재가 돼 흩어졌다.
“공격하라! 공격하라!”
휙!
금장생은 부활고를 치며 신족을 독려하는 수뇌를 향해 암기를 내던졌다.
하지만 수뇌는 약하지 않았다. 그는 오른편으로 몸을 날려 금장생이 던진 암기를 피했다.
턱!
하지만 그가 한 가지 생각 못 한 게 있었다. 그를 노리고 있던 나극이었다. 금장생이 던진 암기를 피하기 위해 몸을 날렸는데 하필이면 나극 뒤였다.
나극은 뒤로 손을 뻗어 수뇌의 목을 그러쥐었다. 수뇌는 나극을 공격하기 위해 오른손을 번쩍 쳐들었다.
푸욱!
바로 그 순간 나극의 왼손이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크아악!”
수뇌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카아아!”
“크아아아아!”
“끄아아아아!”
또다시 금장생 앞에서 신족들이 죽임을 당하며 내뱉는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워낙 많은 수가 한꺼번에 비명을 내질렀고, 지하의 특성상 그 소리는 멀리 퍼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지하 삼 층에서 죄수들과 싸우고 있던 이호와 흑루 루주 옥구에게도 들렸다.
“신전이네.”
옥구가 이호에게 말했다.
“빌어먹을!”
이호는 욕설을 내뱉었다.
비명에 광기가 어려 있는 걸 보면 부활 의식을 끝내지 못하고 깨어난 게 분명했다. 숨어 들어온 놈을 잡는다고 해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은 잡아야지.”
조금이라도 책임을 덜기 위해서는 나극과 나극을 구하기 위해 들어온 자를 잡아야 했다.
“대원들은 나를 따라라!”
이호는 고함을 내지르며 신전으로 몸을 날렸다.
“존!”
흑천대 대원들은 우렁차게 소리치며 전장에서 빠져나갔다.
“죽여라!”
“전부 죽여라!”
그들과 싸우던 죄수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흑천대 대원들을 쫓아 달렸다.
콰앙!
가장 먼저 막다른 벽에 도착한 이호가 벽을 향해 장력을 날렸다. 둔탁한 소성과 함께 벽이 부서지고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날개를 펼쳐라!”
이호는 뒤따르는 자들에게 소리치고는 아래로 뛰어내렸다. 곧 루주 옥구와 흑천대 대원들이 아래로 몸을 날리며 날개를 폈다.
흑천대 대원들이 모두 뛰어내리고 난 후 죄수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위로 올라가면 되오.”
누군가 천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안 돼요.”
혁무심이 강하게 말했다.
“뭐가 안 된다는 겁니까?”
죄수 중 한 명이 물었다.
“하가인인 그자는 우리를 풀어 주면서 상가인의 명예를 지킬 것을 당부했소. 지금이 우리 명예를 지켜야 할 때요.”
“그를 돕자는 겁니까?”
“그렇소.”
혁무심은 대답과 함께 아래로 몸을 날렸다. 죄수들은 혁무심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아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래로 몸을 날리는 죄수들의 등에서, 날개가 솟아 나왔다. 그런데 그들의 날개는 검은색이었다.
―놈들이 온다.
나극은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용문산 천음사에서 보름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때까지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
―내가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
―삼호는 중이 될지도 모릅니다.
―절에 맡기고 간다는 거냐?
―네.
―나쁜 자식.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말은 안 하네.
―아무튼 꼭 살아서 오세요. 이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삼신회의 주인은 초인삼황이니까 덤빌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고요.
―그들이 정말 초인삼황이냐?
―네.
―알았다. 놈들을 만나면 무조건 줄행랑치마.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금장생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이미 은신술을 펼친 상태라 그를 발견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어떤 잡니까?
금장생은 구홍 귀신에게 물었다.
―저놈이다.
구홍 귀신은 옥구를 가리켰다. 옥구는 광기에 휩싸인 신족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금장생은 곧바로 옥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는 옥구 근처에 도착했다.
금장생은 고개를 들었다. 저 위에서 혁무심이 날아내리고 있었다.
―접니다.
금장생은 전음을 보냈다.
―말해라.
―나는 옥구로부터 왼편으로 삼 장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놈의 오른팔이 필요합니다.
―알았다.
혁무심은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날개를 접자 가공할 속도로 쏘아졌다.
‘헉?’
옥구는 질겁했다. 사실 그동안 혁무심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강제로 추행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혁무심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파앗!
그는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도망치듯 몸을 날리면서도 시선은 혁무심을 향해 있었다.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 곳에 아무도 없다는 걸 미리 확인했던 터라 신경 쓰지 않았다.
척!
스악!
바닥으로 내려서는 순간 섬뜩한 기운이 다가왔다.
“헉!”
옥구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는 오른팔을 재빨리 뒤로 물렸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서걱!
섬뜩한 소성과 함께 오른팔 어깨로부터 흘러나오더니 팔이 떨어져 나갔다.
“크아악!”
―약속 지켰습니다.
금장생은 구홍 귀신에게 말하고 몸을 날렸다.
그는 옥구를 향해 달려가는 혁무심을 보며 동굴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되면 옥구의 팔을 자른 사람은 혁무심이 될 것이다.
동굴을 나와 곧바로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절벽 위로 올라선 금장생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쪽에서는 수백 명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그는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 삼 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은신술을 풀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고 해서 드러내 놓고 갈 수는 없었다. 그는 은신술은 그대로 유지한 채 몸을 날렸다. 삼 층을 지난 그는 이 층으로 올라갔다.
‘가만.’
달려드는 죄수들을 없애던 이호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자꾸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보면 나극을 구하기 위해 감옥에 침입한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극을 따르던 부하가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만약 이번 일이 일호 그놈의 성동격서라면…… 빌어먹을!’
이호는 곧바로 날개를 펼쳤다.
그의 등에서는 백색 날개 네 개가 돋아났다. 백색 날개의 표면에는 옅은 황금색 광채가 흘렀다.
―나네.
그는 루주 옥구에게 전음을 보냈다.
―말하게.
이호를 바라보는 옥구의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금장생에게 오른팔을 잃은 후 혁무심의 공격을 받은 탓이었다. 그가 목숨을 건진 건 부하들 덕분이었다.
―먼저 가 보겠네.
―왜?
―아무래도 놈의 성동격서에 당한 것 같아서 말이네.
―놈이라면…… 이 일을 벌인 게 일호라고 생각하는 건가?
―생각이 아니고 확신이네. 나중에 이야기하세.
이호는 은신술을 펼치면서 날아올랐다. 쉬지 않고 올라간 그의 신형은 천장의 한 지점을 뚫고 들어갔다. 바위처럼 보인 그곳은 환영 마법으로 숨겨 놓은 비밀 통로였다. 비밀 통로는 지상으로 이어진 동굴이었다. 밖으로 나온 그는 곧바로 마법탐지판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삐익!
벽면의 마법탐지판에서 나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붉은 점이 나타났다. 붉은 점은 한동안 그대로 있다가 꺼졌다. 잠시 후 붉은 점이 또 나타났다. 처음 나타났던 장소보다 약간 위였다.
새빨간 눈동자 한 쌍이 벽면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눈동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붉은 점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덜컹!
바로 그때 거칠게 문이 열리고 이호가 뛰어 들어왔다.
“어?”
이호는 깜짝 놀랐다.
마법탐지판 바로 앞에 집행사자단의 수장 엘이 서 있었다. 엘을 쳐다보면서도 그의 시선은 마법탐지판으로 향했다. 마법탐지판에는 붉은 점 하나가 나타나 있었다. 그 점은 곧 사라졌다. 이호의 시선이 앞에 서 있는 엘의 등으로 향했다.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엘은 벽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천객 일홉니다.”
“천한 하가인 놈이 삼신회를 헤집고 다닌다는 거냐?”
엘의 눈동자에서 붉은 광채가 쭉 튀어 나갔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 천한 하가인 놈이 이곳에 온 목적은?”
“타락관으로 떨어진 천객 삼호를 구하기 위해섭니다.”
“천객 삼호?”
“철마 나극의 손녀딸입니다.”
“천객 일호와 그 계집은 어떤 사이냐?”
“연인 관계였습니다.”
“하면 놈은 타락관으로 갔겠구나.”
“그렇습니다.”
“들었느냐?”
엘은 차갑게 소리쳤다.
“들었습니다.”
건물 밖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이호는 시선을 들었다. 창 너머로 날개를 펼치고 있는 자들 수십 명이 보였다. 그들은 집행사자라고 부르는 집행사자단 대원들이었다.
집행사자단은 삼신회의 형벌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암흑천사단 다음으로 강한 조직이었다.
“지금 당장 타락제일관으로 가라.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그대로 두되, 나오는 자는 모두 생포하라. 반항하는 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죽여라!”
“존!”
나직한 외침과 함께 집행사자들이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