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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97화 (297/524)

황금가 (297)

부활의 대지

신족에게 부활이란 더 강한 존재로의 각성을 뜻한다. 이호는 자신이 제사 계급까지 각성할 줄은 몰랐다. 부활의 의식을 행하기 전에 좀 더 강한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다.

눈을 떴을 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얻었다는 걸 알았다. 굳이 날개를 펼쳐 보지 않아도 백색 날개를 지닌 중급이 돼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각성을 통해 과거보다 더 강해졌을 뿐 아니라 한 계급 더 올라간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내가 가장 감사해야 할 사람은 일호지.’

이호는 싱긋 웃었다. 일호가 죽여 주지 않았다면 각성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신족에게 죽음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지만 모든 죽음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자살을 통해서는 절대 각성을 이룰 수 없다.

오직 타인에 의해 죽었을 때만 부활이 일어난다.

이호는 앞에 선 사내를 보았다.

“흑루에서 왔습니다.”

시선이 마주치자 사내가 말했다.

“루주가 전갈을 보낸 모양이구나.”

흑루 루주는 그가 젊은 신족들과 함께 만든 칠인회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쥐새끼 한 마리가 옥에 들었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쥐새끼?”

이호는 벌떡 일어났다.

“네.”

“가자.”

이호는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와 사내는 흑루에 도착했다. 흑루에서 그가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마법탐지판이 설치된 방이었다. 그곳에는 루주 옥구가 앉아 있었다.

“어서 오게, 도미니온.”

옥구는 웃으며 이호를 맞았다.

“쥐새끼가 들었다고 하던데 지금 어디 있는가?”

이호는 전면 벽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지하 삼 층까지 내려간 걸 확인했네.”

“지하 삼 층에는 어떤 자들이 있는가?”

“빈방이 거의 없네.”

“나쁜 놈들이 많구먼.”

“대부분 신족이네.”

“그럼 어떤 놈을 찾아온 건지 아직 모르겠군.”

이호가 말했다.

“이제 확인해 봐야지.”

옥구는 부하를 보았다.

“흑천대 대주에게 바로 전하겠습니다.”

흑천대는 흑루를 지키는 조직 이름이었다.

부하는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지하 삼 층에는 누가 있는가?”

이호가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묵천사영 혁무심이 있네.”

“혁무심?”

“혁무심의 본명은 헤라넬이네.”

“헤라넬이라고?”

이호의 눈이 커졌다. 그가 알고 있는 헤라넬은 암흑천사단의 수장 이름이었다. 그리고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그렇네.”

“그녀가 왜?”

“들리는 말로는 치천검황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도 하고 권력 다툼에서 패했다고도 하는데 정확한 건 모르네.”

“그렇구먼.”

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활 의식을 통해 신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차차 알아 나가야겠지.’

이호는 벽으로 시선을 주었다.

한편.

지하 삼 층으로 들어간 금장생은 봉두난발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병자처럼 늙고 초라한 이 노인은 구천각의 각주였던 철마 나극이었다.

“누구냐?”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나극이 물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였다.

“성함이 나극 맞습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내가 먼저 물었다.”

“과거에 일호란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사상?”

나극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봉두난발 사이로 얼굴이 드러났다.

“삼호와 많이 닮았군요.”

노인은 의심할 나위 없이 나극이었다.

“우리를 불행에 빠트린 책임감 때문에 온 거냐?”

나극은 대번에 금장생이 이곳으로 온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려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는 걸 아느냐?”

“아직 살아 있다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우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구하러 온 사람은 영감님이 아닙니다.”

“하면?”

“삼홉니다.”

“그러면 여긴 왜 온 거냐?”

“어젯밤에는 삼호를 구하러 온 것처럼 타락관을 휘저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곳으로 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그들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사고를 크게 칠 생각입니다.”

“허허실실에 허허실실을 더한 거란 말이냐?”

나극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전날 사고를 치고 이곳으로 왔다면 사건을 바라보는 자들 대부분은 철마 나극을 구하러 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모든 이목은 이곳에 집중될 게 분명하다. 그때 다시 타락관으로 가서 나하려를 구한다.

성공 여부를 떠나 대단한 계획이었다.

“그렇게 해도 성공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구나.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네 실력으로 내 금제를 풀 수 없다는 점이다.”

“일상적인 점혈이 아닌가 보죠?”

“그들이 내게 가한 금제는 무공의 점혈이 아니다.”

“어떻게 한 겁니까?”

“그들 말로는 내공을 닫았다고 했다.”

“점혈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혈도는 모두 열려 있다. 그런데 내기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일단 한번 보기로 하죠.”

금장생은 흑사아를 꺼냈다. 그리고 쇠창살 문을 잠근 자물쇠를 향해 휘둘렀다.

서걱!

그다지 내공을 끌어 올리지도 않았는데 자물쇠는 대번에 잘려 나갔다.

“역시.”

금장생은 대견한 얼굴로 흑사아를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오자 나극은 손을 내밀었다. 금장생은 나극의 맥을 짚었다. 나극의 말대로였다. 내기가 돌처럼 딱딱해 움직이지 않을 뿐 점혈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이렇게 한 겁니까?”

“집행사자다.”

“신족이겠죠?”

“그렇다.”

“신족은 무공을 모르나요?”

“안다. 하지만 자기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했습니까?”

“나를 보고 마나 클로스라고 외치기만 했다.”

―라 생각은 어때요?

금장생은 라에게 물었다.

―마법이다.

“마법이다.”

두 곳에서 동시에 대답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 감방에서 파란색 눈동자를 가진 흑인이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혁무심이란 이름의 헤라넬이었지만 금장생은 알지 못했다.

“마법을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금장생은 혁무심을 보며 물었다.

“마법 지팡이를 들고 ‘디스펠 매직!’이라고 소리치면 된다.”

“그럼 풀릴까요?”

“그 친구뿐만 아니라 이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해방될 것이다.”

“마법을 모르면 불가능하다는 말이군요.”

“그 친구를 풀어 주는 걸 포기하란 말이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야행복 주머니에서 가방을 꺼냈다. 가방은 크기를 최대로 줄여 주머니 안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가방의 크기를 키운 후 입구를 열고 마법 지팡이를 꺼냈다.

―야! 얼굴 좀 자주 보면 안 될까?

금장생이 내기를 주입하자마자 깨어난 일라일라가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바빠서요.

―아무리 바빠도 나를 들고 다닐 수는 있잖아.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금장생은 마법 지팡이를 꺼내 들고 나극을 향해 다가갔다. 나극 앞에 서서는 마법 지팡이 끝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심장의 고리가 맹렬하게 회전하면서 미지의 힘을 만들어 냈다.

“마법을 펼치는 하가인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건너편 감방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금장생은 시선을 들었다. 혁무심이 놀란 얼굴로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디스펠 매직 마법을 펼치면 당신들도 풀려난다고 했나요?”

“그렇다.”

“우리 하가인보다 훨씬 뛰어난 상가인이니까 은혜를 저버리거나 하진 않겠죠?”

“은혜?”

“잠시 후면 알게 될 겁니다.”

금장생은 더 강한 힘을 끌어 올렸다.

힘의 세기는 점점 커지더니 동심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고리에 의해 생성된 역장이 감옥 삼 층 전체를 덮었다.

“디스펠 매직!”

힘이 정점에 이른 순간 금장생은 나직하게 외쳤다.

스스스!

뭔가가 날아가는 듯한 소리가 대기 중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어?”

나극은 깜짝 놀랐다.

납덩이를 담고 있는 것 같았던 몸이 가벼워지며 내기가 강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번쩍!

나극의 눈동자에서 강렬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절대 고수가 눈에 힘을 줄 때 간혹 나타나는 옥안이었다. 나극은 두 팔을 들어 올려 쭉 뻗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 목을 풀었다.

그의 전신에서 계속해서 우두둑, 우두둑 하며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로 갈 거냐?”

나극이 물었다.

“아래로 내려갈 겁니다.”

“이곳보다 더 아래층이 있단 말이냐?”

나극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금장생은 옆에 서 있는 귀신을 보았다.

―나를 따라와라.

귀신은 곧바로 움직였다.

감옥에서 빠져나온 두 사람은 안쪽으로 내달렸다.

잠시 후 금장생과 나극은 막다른 곳에 도착했다.

―왼편으로 한 걸음 이동해라.

금장생은 귀신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나극에게 그대로 따라 하라고 말했다. 나극도 금장생이 시키는 대로 했다.

―쪼그려 앉아서 앞으로 가라.

금장생은 전면을 보았다. 바위로 이루어진 벽이었다.

‘환영 마법이네.’

금장생은 내심 중얼거리며 오리걸음으로 걸었다. 벽 앞에 도착해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신형이 벽 안으로 쑥 들어갔다.

“어?”

나극은 깜짝 놀랐다.

설마 금장생이 벽을 뚫고 들어갈 줄은 몰랐다.

턱!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데 안쪽에서 손이 나와 어깨를 잡아끌었다. 금장생의 손이었다. 나극은 힘을 풀고 금장생의 손이 이끄는 대로 따랐다.

잠시 후 그는 벽을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나극은 자신이 빠져나온 벽을 보았다. 벽 아래쪽에 한 사람이 쪼그려 앉아 통과할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있었다. 그제야 금장생이 쪼그려 앉아 벽을 통과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통로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

“아는 친구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보다 저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금장생은 바로 앞에 펼쳐진 낭떠러지를 가리켰다. 낭떠러지는 통로를 빠져나온 자가 한 걸음만 앞으로 내디뎌도 추락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벽에 딱 붙어 있었다. 금장생 또한 귀신이 아니었더라면 추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몇 장이나 되느냐?”

“이십 장입니다.”

“증간에 잡을 곳은 있겠지?”

“그럴 겁니다.”

“그럼 가자.”

휙!

나극이 고개를 끄덕이자 금장생은 바로 몸을 날렸다.

“사라졌습니다.”

마법탐지판을 주시하던 자가 말했다.

“없어졌다는 건 무슨 소리냐?”

이호가 물었다.

“지하 감옥 안에는 총 다섯 군데에 탐지 마법이 설치돼 있습니다. 감방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어디를 가든 걸려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부하가 말했다.

“그런데 어딜 갔다는 거냐?”

“지하에서 마법탐지판이 설치돼 있지 않는 곳은 딱 한 곳뿐입니다.”

“설마 놈이 거기로 들어갔다는 거냐?”

“그건…….”

부하는 말끝을 흐렸다.

“비상종을 쳐라! 장소는 지하 삼 층이다.”

이호는 옥구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소리쳤다. 두 사람이 나가자 부하는 밖으로 내달렸다.

뎅! 뎅뎅뎅! 뎅뎅뎅!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흑루 이곳저곳에서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뛰쳐나와 지하로 내달렸다.

가장 먼저 지하 삼 층에 도착한 자는 흑루 루주 옥구와 이호였다. 입구에 도착한 이호와 옥구는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지하 삼 층의 분위기가 전과 달랐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차갑고 서늘하며 기분 나뿐 기운이 가득 들어찬 것 같았다.

이호는 좌우측 옥으로 시선을 주었다. 죄수들은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죄수들 대부분은 피부가 검었다.

그들 중 한 명과 시선이 마주쳤다. 오른편 감방에 있는 죄수였다. 감방 위로 시선을 주었다. 혁무심이란 글이 새겨진 이름표가 걸려 있었다. 남장을 하고 있는 그가 바로 헤라넬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혁무심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왜 웃는 거냐?”

이호는 물었다.

“신기해서.”

“나는 계집의 목소리가 사내처럼 나오는 게 더 신기하구나.”

“나를 아는 모양이지?”

“누군가에게 가랑이를 벌리며 살다가 버림받은 계집이라고 하더구나.”

빠직!

혁무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금세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저번에 왔을 땐 하급이었던 것 같은데 중급으로 각성한 거야?”

혁무심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그걸 왜 내게 말해야 하지.”

“고대 신족 사회에서 신분 상승은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걸 아느냐?”

“노력?”

이호는 혁무심을 보았다.

“모르는 모양이구나. 하긴 그자들이 너희들에게 가르쳐 줄 리가 없겠지. 아무튼 중급으로 각성하지 못했다면 넌 여기서 죽을 거야.”

“지금 죽는다고 했느냐?”

이호의 눈동자가 차갑게 변했다.

“응.”

혁무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휙! 휙휙! 휙휙!

바로 그때 흑천대 대원들이 내려왔다.

“이번 일이 끝나면 넌 내 손에 죽는다, 혁무심.”

이호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는 혁무심을 쏘아보며 안으로 진입했다. 그가 들어가자 옥구를 비롯한 흑천대 대원들이 그들을 따랐다.

“죽여라!”

차가운 외침이 감방 어딘가에서 터져 나왔다.

“차앗!”

“타하!”

“이얍!”

살기 어린 외침과 함께 감방 안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뭔가를 내던졌다. 그것은 쇠창살 문을 잠갔던 자물쇠였다.

“컥!”

“큭!”

“윽!”

“악!”

흑천대 대원들이 비명과 함께 풀썩풀썩 쓰러졌다.

“나가자!”

죄수들은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이럴 수가!”

이호는 멍한 얼굴로 죄수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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