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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96화 (296/524)

황금가 (296)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식사할래요?”

금장생을 좇아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던 주려아가 말했다.

“그럴까요?”

“한 식경만 기다리세요.”

주려아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한 식경이 채 되지 않아 음식을 준비해서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있는 걸로만 준비를 하다 보니 찬이 별로 없네요.”

쟁반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반찬을 따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잘 먹겠습니다.”

금장생은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음식을 먹었다. 주려아는 그런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안 드세요?”

“먹을게요.”

주려아는 젓가락을 놀렸다. 하지만 먹는 양은 많지 않았다. 그녀의 젓가락은 금장생의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 주는 용도로 더 많이 쓰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사위는 완전하게 어두워졌다.

“이제 가야겠습니다.”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룻밤뿐이었는데 며칠 동안 함께 지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금장생은 뭐라 해 줄 말이 없었다. ‘행복하세요.’라고 해야 하는데 성 노예가 돼 살고 있는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습니다.”

해 줄 말은 그것뿐이었다.

“당신도 원하는 걸 다 이루길 바랄게요.”

주려아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던 금장생은 갑자기 주려아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입을 맞췄다.

사실 금장생과 주려아는 몇 번의 관계를 가졌지만 입맞춤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주려아에게 입맞춤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였다. 그녀에게서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입맞춤뿐이고, 자신이 원해서 입을 맞춘 적은 한 한 번도 없었다. 손님으로 온 자가 강제로 입을 맞춰 오면 어쩔 수 없이 응하긴 했지만 혀를 받아들인 적은 없었다. 입맞춤은 수많은 적들로부터 그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금장생과 몇 번의 관계를 가지면서도 입을 맞추지 않았다. 금장생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은 주려아를 치료하는 의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굳이 입을 맞출 이유가 없었다. 가슴도 마찬가지였다. 손으로 만진 적도 입을 가져간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연민인지 동정인지 알 수 없는 느낌이 들며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입맞춤이라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금장생은 입을 맞추자마자 혀를 밀어 넣었다.

주려아는 잠시 움찔했다. 그러다 곧 입을 열고 금장생의 혀를 받아들였다. 금장생의 혀는 주려아의 입안을 마구 헤집었다. 그리고 천천히 빠져나갔다.

그러자 주려아는 갑자기 다급해졌다. 그녀는 이로 살짝 금장생의 혀를 물었다. 그리고 힘껏 끌어당겼다. 금장생의 혀는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혼자 놀게 두지 않았다. 주려아는 자신의 혀로 금장생의 혀를 잡았다. 혀가 물러나자 금장생이 입안까지 따라갔다. 그리고 탐험을 시작했다.

입맞춤을 끝낸 두 사람은 눈을 맞췄다.

서로의 입에서 거친 숨결이 흘러나왔다.

“왜?”

“모르겠습니다.”

금장생은 다시 입을 맞췄다. 그런데 이번에는 입만 맞춘 게 아니었다. 입을 맞춘 상태에서 주려아의 옷까지 벗겼다. 알 수 없는 어떤 느낌에 취한 건 금장생만이 아닌 듯, 주려아 또한 금장생의 야행복을 벗겼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알몸이 됐다. 금장생은 입을 맞춘 채 주려아를 벽으로 밀었다.

그의 손길에 의해 주려아의 가슴은 잔뜩 일그러졌다. 입맞춤을 끝낸 금장생의 입술이 아래로 이동했다. 그의 입술은 목을 지나 가슴으로 직행했다.

크게 한입 베어 물자 주려아는 격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창문을 닫아야 하는데, 하는데, 하면서도 손을 뻗어 닫지 못했다. 금장생의 입술이 주는 느낌이 너무 강해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금장생의 머리를 잡고 신음을 내지르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쾌감은 약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강해졌다. 금장생의 입술이 아래쪽으로 이동하자 주려아는 자기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었다.

잠시 후 그녀는 두 다리는 물론이고 온몸에 힘을 주고 신음을 내질렀다. 그러고는 급하게 금장생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그녀는 금장생의 목에 팔을 둘렀다.

한쪽 다리가 들어 올려지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어쩌면…….’

주려아는 이 남자를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자신을 지나쳐 갔던 수백 명의 사내와는 달랐다. 안기고 싶고 느끼고 싶은 사내였다.

‘당신을 기다리거나 그리워하면서 살게 될 것 같아요.’

주려아는 금장생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격렬한 쾌감에 숨이 멋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급하게 심호흡을 해 멀어지려는 정신을 잡아당겼다.

파도를 몇 번이나 넘었는지 몰랐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날 정도였다. 폭풍 같았던 관계가 끝난 건 반 시진 후였다.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야행복을 걸쳤다.

“왜 그런 거죠?”

주려아는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그녀는 온몸에서 기가 빠져 일어날 힘도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주려아는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겠다는 신념을 깨트린 첫 여자다. 그녀를 보듬어 주고 싶고 지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행복하세요.”

“우리, 다시 볼 수는 있을까요?”

자신의 질문에 주려아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입에서 그런 질문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어쩌면…….”

“그렇군요. 우린 ‘어쩌면’, ‘우연히’ 길을 가다가 만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사이죠.”

주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게요.”

휙!

금장생은 창 너머로 몸을 날렸다.

“행운을 빌어요.”

주려아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주려아의 방을 나온 금장생은 어둠을 가르며 몸을 날렸다. 그의 머릿속에 새겨진 건물들이 빠르게 지나쳐 갔다.

한 식경 정도를 달려가자 음습한 기운으로 가득 찬 검은 건물이 나타났다. 금장생은 오른편으로 돌아가며 건물을 살폈다.

주려아의 말에 의하면 중죄인들은 지하 삼 층에 있다고 하였다. 먼저 철마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가만있어라. 저기 있네.’

금장생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맺혔다.

―여기요.

금장생은 손을 들었다. 그가 인사를 한 자는 감옥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귀신이었다.

귀신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팔을 찾고 있는 건가요?

금장생은 귀신의 오른팔을 가리켰다. 귀신은 오른팔이 어깨에서 잘려 나간 상태였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귀신이 물었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이 이곳을 배회하고 다닐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보인다는 거지?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는 거냐?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해도 될까요?

―내가 왜 대답해야 하지?

―일방적으로 해 달라는 게 아니고 서로 원하는 걸 들어주자는 겁니다.

―네가 원하는 게 뭔데?

―저 안쪽에 수감돼 있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누군데?

―철마 나극입니다.

―아, 그 억울하게 잡혀 들어온 자.

―몇 층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원하는 건 말하지 않았잖아.

―말해 주십시오.

―내 팔을 찾고 싶어.

―당신 팔은 이미 썩어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다. 내 팔은 옥구, 그놈에게 있다.

―옥구가 누굽니다.

―흑루黑樓의 루주다.

―전 직책이 뭐였습니까?

문득 저 귀신이 상당히 높은 직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루주였다.

―그랬군요. 그럼 옥구 그 사람은?

―내 밑에서 일하던 놈이었다. 놈은 내 팔을 자르고 절벽으로 밀어 버렸다. 오른팔을 잃은 나는 절벽을 올라올 수 없었고 결국 그곳에서 죽었다.

―저 안에 절벽이 있나요?

금장생은 흑루를 가리켰다.

절벽에 대해 주려아가 말하지 않은 걸 보면 그녀도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하 삼 층으로 내려가면 이십 장 깊이의 낭떠러지가 있다.

―거긴 어떤 곳입니까?

―부활 의식이 열리는 장소다.

―부활 의식이라고요?

문득 죽임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던 이호가 떠올랐다.

―너는 신족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당신은 잘 아는 모양이군요.

―신족은 총 세 번의 각성을 거친다.

―각성은 어떤 방법으로 합니까?

―죽음과 태생, 두 가지가 있는데 절벽에는 죽음을 통해 각성을 이루려는 자들의 시체가 보관돼 있다.

―몇 명이나 됩니까?

―현재 일천 구 정도가 부활 의식을 치르는 중이다.

―각성하는 걸 다른 말로 부활 의식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죠?

―그렇다.

―부활 의식은 며칠이나 걸립니까?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데 한 달에서 한 달 보름 정도 걸린다.

―철마 나극은 어디 있습니까?

―절벽 바로 위 지하 삼 층에 있다.

―고맙습니다. 당신의 팔은 나올 때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금장생은 은신술을 펼쳤다.

―나랑 같이 가자.

귀신은 곧바로 금장생을 따라나섰다.

―이름이 뭡니까?

―구홍이다.

―당신은 신족이었나요?

―신족이었으면 다시 부활했겠지.

―그럼 현 루주는 어떻습니까?

―사고로 위장했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살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놈은 조사를 받지도 않고 루주가 됐다. 그게 무슨 뜻이겠느냐?

―신족이란 말이군요.

―제 입으로 신족이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맞을 거다.

―그렇군요. 어디로 들어가야 지하 삼 층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습니까?

―따라와라.

귀신은 금장생을 데리고 갔다. 잠시 후 귀신이 도착한 곳은 흑루 뒤편이었다. 그곳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달려 있었다.

구홍이라는 귀신과 금장생은 그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창 안쪽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불이 켜져 있으면 어쩌나 하고 고민했는데 다행이었다.

―계속 따라와라!

구홍은 앞장섰다. 구홍이 가는 곳은 좌우가 벽으로 막힌 회랑이었다. 십 장 정도를 걷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저 아래쪽이 지하 일 층 감옥이다.

구홍이 계단을 가리켰다.

금장생은 계단을 한 번에 건너뛰었다.

삑!

작은 소리가 벽에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쓰고 있던 자가 얼굴을 들었다. 사내의 시선이 벽으로 향했다, 벽에는 붉은 점 하나가 나타나 있었다.

삑!

또다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붉은색 점 아래쪽에 또다시 붉은색 점이 나타났다.

사내는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갔다.

잠시 후 사내가 들어간 곳은 흑루 루주 옥구의 방이었다. 옥구는 중간 키의 훤칠한 미남으로 감옥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자였다.

“무슨 일이냐?”

옥구는 부하를 보며 물었다.

“침입잡니다.”

“침입자?”

옥구의 눈이 커졌다.

“지하 이 층으로 향하는 걸 보고 왔습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게냐, 아니면 마법탐지판에서 본 거냐?”

“마법탐지판에 나타난 걸 확인한 겁니다.”

“전에도 쥐가 움직인 걸 가지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은데?”

옥구는 부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번엔 다릅니다. 사람이 분명합니다. 제 오른팔을 걸겠습니다.”

“그래?”

옥구는 턱을 쓰다듬었다.

“가자!”

옥구는 곧바로 그의 집무실을 나섰다. 잠시 후 옥구는 마법탐지판이 설치돼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삐익!

그가 들어서자마자 벽에서 나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하 삼 층입니다.”

부하가 말했다.

“만일 저 점이 생쥐라면 일 층부터 삼 층까지 이동하진 않겠지.”

“그렇습니다.”

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바로 도미니온에게 가서 이곳에 쥐새끼가 숨어들었다고 말해라.”

“알겠습니다.”

사내는 곧바로 방을 나갔다.

잠시 후 사내가 도착한 곳은 흑루와 타락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백색 건물이었다. 흑루와 정반대로 지어진 이 건물은 백루로 상가인들을 위한 쉼터였다. 하가인 지역에 백루란 이름의 쉼터를 지은 가장 큰 이유는 마법진 때문이었다.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라 인간들에게 맡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쉼터라는 명목으로 상가인들만 출입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사내는 곧 도미니온이 있는 사 층으로 안내됐다.

“나를 찾아왔다고 했느냐?”

나직한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다. 곧 건장한 체격을 지닌 자가 나왔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천객 이호로 활약하다가 금장생에게 두 번이나 죽임을 당했으나 다시 부활한 이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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