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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95화 (295/524)

황금가 (295)

흑루

땀을 흘린 건 금장생도 마찬가지였다. 주려아가 씻고 나오자 금장생도 안으로 들어가 씻었다.

몸을 닦고 야행복을 빨아 삼매진화로 말려 입으려는 데 문이 빼꼼 열리더니 옷 하나가 열린 문틈으로 들어왔다.

금장생은 고개를 들었다. 주려아가 손을 내민 채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여자 옷 아닌가요?”

“이것뿐이라서요. 가장 큰 거고요.”

“흠!”

금장생은 자신의 야행복과 주려아가 내민 옷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별수 없네요.”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주려아가 내민 옷을 받아 걸쳤다.

“풋!”

금장생을 지켜보던 주려아는 피식 웃었다. 장포 형태고 가장 긴 잠옷인데도 엉덩이 아래쪽밖에 오지 않았다.

“야행복을 입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야행복을 집어 들었다.

“야행복을 입으면 불편하지 않나요?”

“아무리 불편해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요?”

“제가 드린 잠옷은 마음이 불편할 뿐이지 몸이 불편한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야행복은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몸은 불편하죠. 어떤 걸 택하든 공자 자유예요.”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야행복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어쩌면 내일부터 피 터지게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벌써부터 몸을 혹사시킬 필요는 없다. 지금은 근육을 최대한 이완시켜 줘야 할 때였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요, 뭘 그래요.”

주려아는 금장생을 슬쩍 흘겼다.

“관주는 사람 아닌가요?”

“원래 화류계 여자는 사람이 아닌 거 몰랐나 보죠?”

“제가 실언을 한 건가요?”

금장생은 주려아를 보았다.

“그런 뜻이 아니라. 사내들은 화류계 여자 앞에서는 집에서는 하지 못했던 온갖 변태적인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말이에요.”

“이를테면?”

“여자 속옷을 입어야 흥분하는 사내도 있고, 색동옷을 입어야 흥분하는 사람도 있어요. 채찍으로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은 이런 곳에 와서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해 달라고 요구해요. 우린 기꺼이 해 주고요.”

“이런 옷을 입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가요?”

“특별한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야행복을 의자 등받이에 걸었다.

“원래 야행복에는 암기가 저렇게 많아요?”

금장생의 야행복을 본 주려아가 물었다. 금장생의 야행복에는 수많은 암기가 생선 비늘처럼 붙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지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몇 군데가 찢어졌지만 저 암기들 때문에 다른 걸로 구해 주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 백예순두 갭니다.”

“전부 몇 개를 달고 왔는데요?”

“이백오십 개를 달았습니다.”

“그렇게 많이 달면 무겁지 않아요?”

“습관이 돼서요.”

“대단하네요.”

“원래는 그렇게 많이 달고 다니진 않아요.”

“다수를 상대할 때만 그렇게 달고 다닌다는 건가요?”

“네. 그런데 나는 어디서 자죠?”

“나와 함께 자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잘 때 누군가가 은밀하게 들어와도 제 손님인 줄 알죠.”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잡아먹지 않을 테니까 침대로 들어가요.”

주려아는 침대로 가며 말했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주려아를 따라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입고 있던 옷이 말려 올라가 하체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말았다. 얼른 안으로 들어간 그는 엉덩이를 위로 올리고 옷을 내렸다.

“자다 보면 또 올라갈 텐데요?”

“나는 시체처럼 자는 사람이라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거기 팔 좀 주세요.”

“팔은 왜요?”

“원래 만리장성을 쌓고 나서는 팔을 빌려주는 게 예의예요.”

“좋은 베개 놔두고 왜 팔을 베려는지 알 수가 없네.”

금장생은 툴툴거리면서도 왼팔을 내주었다.

“그게 배려라는 거예요.”

주려아는 빙긋 웃었다. 그녀는 금장생을 향해 돌아누웠다. 그리고 왼다리를 턱 하니 금장생 다리 위로 올렸다. 일부러 그런 건지 우연히 그런 건지 그녀의 무릎은 금장생의 하체를 압박하는 모양이 됐다. 금장생을 흘끔 보고는 왼팔을 금장생 가슴으로 쑥 밀어 넣었다.

금장생은 움찔 떨었다.

“내가 창기라서 그러는 거예요?”

“아닙니다.”

“그런데 왜 몸을 사리는 거죠?”

“그게…….”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다고 말하기가 껄끄러웠다.

“그래서 그런 거였군요.”

“그게 아니라 여자보다 돈을 더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돈?”

“네.”

“그러니까 여자에겐 관심 없다는 말인가요?”

“네.”

“나이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여기서 나이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당신 정도 나이 때면 돈보다 여자를 백배는 더 좋아해야 하거든요.”

“저는 아닙니다.”

“특이한 사람이군요.”

“그렇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당신에게 빚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하오밀문 지부로 가서 이름을 밝히고 장생이란 사람을 찾아 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기억할게요. 이제 그만 자요.”

“주무세요.”

금장생은 눈을 감았다.

그는 금세 잠이 들었다. 하지만 주려아는 잠들지 못했다.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몇 번이고 감사의 말을 했다. 절망의 끝에서 찾아온 행운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다.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을게요. 아들을 만나는 그날까지 앞만 보고 갈게요. 오직 앞만 보고요.”

주려아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다음 날.

주려아와 소화는 아침 일찍 방을 나섰다. 삼호의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지만 싸움터를 둘러보는 걸로 꾸몄다. 그녀가 방으로 돌아온 건 오후가 다 됐을 때였다. 방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방 안 어디에서도 금장생의 기척은 감지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려아는 금장생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을 무림십패의 일인이라 부르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네요.”

전 내공을 끌어 올렸지만 금장생의 위치는 찾을 수가 없었다. 가공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많은 자객들도 저 정도는 합니다.”

금장생은 모습을 드러냈다. 주려아 뒤편이었다. 그는 야행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배고프지 않아요?”

주려아는 싸 온 걸 내려놓으며 물었다.

“한 식경 안에 안 들어오면 욕실로 들어가 물배를 채울 생각이었습니다.”

“제시간 안에 들어와서 다행이네요.”

주려아는 싱긋 웃었다. 두 사람은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었다.

“혹시 내게 부탁할 거 없어요?”

“부탁하면 들어주려고요?”

“가능한 거라면?”

“청정관음대경을 익히고 성적 쾌감을 느끼지 못한 척했더니 사내들이 다 떨어져 나갔어요. 그런데 한 사람만 계속 치근덕대요.”

“천수마존?”

“네.”

“그자는 삼백 살이 넘은 개세마둔데.”

“삼백 살이 넘었어요?”

“삼백 살은 최소한으로 잡은 거고 실제론 그보다 훨씬 더 먹었습니다.”

“그자도 신족인가요?”

“골수 신족입니다.”

“몇 살까지 살죠?”

“고위 신족은 오천 년 정도를 살고 나머지는 삼천 년 정도를 산다고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군요.”

“그 정도 살면 몸속에 내단이 형성돼야 하는데 그것들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기가 막히네요.”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존재들이기도 하죠.”

“굳이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라 눈만 질끈 감아 버리면 되니까요.”

“첫 번째 부탁인데 해 드려야지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자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럼 제가 처리한 걸로 생각하면 됩니다.”

“알았어요.”

“삼호는 어디 있습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주려아는 금장생을 데리고 창가로 갔다.

“저기 빨간 지붕 보여요?”

“네.”

“저기를 홍각이라고 하는데 저기 있어요. 어제까지는 삼 층에 있었는데 오늘 지하로 옮겼다고 하네요.”

“지하에는 뭐가 있는데요?”

“기녀들 교육관이 있어요.”

“삼 층에 있던 여자를 갑자기 교육관으로 보내는 일이 자주 있나요?”

“손님과 문제가 생겼고 기녀의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교육관으로 보내서 정신 교육을 시키는 게 우리 타락관의 규율이에요.”

“그럼 삼호가 어제 손님에게 잘못을 했다는 거군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기녀들을 교육시키는 걸 관주가 모를 수도 있나요?”

금장생이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건 삼호를 옮긴 시점이 너무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만일 낌새를 알아차리고 삼호를 옮겼다면 그곳은 함정일 게 분명하다.

“보통 타락제일관의 실무는 대부분 부관주 선에서 처리돼요. 내가 관리하는 건 특급 기녀들뿐이에요.”

“그래도 보고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녀가 보고를 해서 알게 된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그녀를 화화火花라고 불러요.”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삼호의 조부는 어떤 사람입니까?”

“철마요?”

“네.”

“부하들로부터 상당히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많은 부하들이 철마 나극을 구하기 위해 탄원을 하고 있고요.”

“어디 수감돼 있습니까?”

“그는……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수법을 사용하려고요?”

“무공은 그대로 두었겠죠?”

금장생은 대답 대신 물었다.

“그것까진 알 수 없지만 내 생각에는 단지 금제만 해 두었을 거예요.”

“확신하세요?”

“수뇌들이 그를 살려 둔 건 언젠가는 써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예요. 그렇지 않으면 굳이 돈을 들여 가면서 감옥에 가두고 밥을 먹이는 번거로운 일을 할 리가 없죠.”

“간단하게 없애 버리면 된다는 거군요.”

“맞아요. 이런저런 이유로 살려 두는 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써먹기 위해서라고 보면 돼요.”

“그럼 관주의 판단을 믿고 일을 벌이겠습니다. 그는 어디 수감돼 있습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주려아는 금장생을 데리고 침대로 갔다.

침대는 네 군데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기둥의 높이는 반 장 정도였다. 주려아는 왼편 기둥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덜컹!

기둥이 한 바퀴 돌아가면서 침대 뒤쪽 벽면에 비밀 공간이 나타났다.

“이런 것도 만들었어요?”

금장생은 비밀 공간 안으로 시선을 주었다. 주머니 몇 개와 둘둘 말린 종이 그리고 검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비밀 공간은 전임 관주가 만든 거예요.”

주려아는 둘둘 말린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그녀는 종이를 탁자 위에 펼쳤다.

그러자 수백 채의 건물이 그려진 지도가 나타났다.

“여기 지돈가요?”

“네.”

“엄청나군요. 설사 이곳을 안다고 해도 찾는 게 쉽지 않겠네요.”

“건물만 해서 천오백 채가 넘어요.”

“철마가 수감돼 있는 곳은 어딥니까?”

“여기예요. 건물 이름은 흑루예요.”

주려아는 북쪽의 검은 건물을 가리켰다.

“다행히 여기서 멀지 않군요.”

“미관상 좋지 않은 건물이나 숨기고 싶은 것들은 보통 북쪽에 배치하잖아요. 하지만 쉽지 않을 거예요.”

“감옥을 지키는 자들은 얼마나 있습니까?”

“그곳에는…….”

주려아는 감옥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너무 자세하게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금장생은 주려아를 보았다. 삼신회 전부가 나와 있는 지도와 감옥에 대한 상세한 정보까지. 그녀가 이곳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때 황제를 꿈꾸었던 여자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사내들에게 술을 자주 따라 주다 보면 알기 싫어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감옥에 대한 것도 그래요.”

“그렇군요.”

금장생은 지도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지도는 완벽하게 그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이제!”

금장생은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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