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92)
목숨으로 갚아야 할 빚
물속에서 머리를 내민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금장생이 이곳으로 들어온 건 의도적이었다. 아니 관주가 있는 건물 정원에서 모습을 드러내 타락관을 지키는 자들을 유인하여 없앤 것도 일부러 그랬다. 한 번 수색이 끝난 장소는 여간해서는 찾지 않는다는 인간의 습성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아무도 모르게 삼호를 찾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삼호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작정 찾아 헤매다가 들키기 딱 좋았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삼호를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관주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문제는 관주 방으로 어떻게 접근하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생각해 낸 방법이 관주 방 아래쪽에서 크게 문제를 일으키고 무인들을 외부로 유인한 다음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거였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쫓던 자들은 타락제이관에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 동안 자신은 이곳으로 숨어들 수 있었다.
주려아보다 먼저 욕실로 들어온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욕실에 숨어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주려아가 안으로 들어왔다. 욕조 안 물속 말고는 마땅히 숨을 곳이 없었다. 동영에 있을 때 수공을 익힌 터라 물속에서 머무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만일 두 사람이 정상적인 사이로 보였다면 관계가 끝날 때까지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내가 중얼거리는 걸 듣다 보니 양쪽이 모두 원해서 갖는 관계가 아니었다. 여자는 사내의 협박을 받고 있었다. 이런 경우 여자를 구해 주면 좀 더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난 뒤보다는 얼굴을 보는 게 더 좋아. 그가 아니라고.”
도천군은 주려아의 몸을 홱 돌렸다.
주려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건 겁탈당하는 상황 때문이 아니었다. 강간을 당하는 상황인데도 사내를 간절하게 원하는 몸 때문이었다.
문득 주려아의 눈이 커졌다.
도천군 바로 뒤에 야행복을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그런데도 욕정에 이성을 잃은 도천군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금장생은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펴 입에 댔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쫘악!
이번에는 주려아의 상의가 찢겨 나갔다. 그리고 도천군의 손이 주려아의 허리를 강하게 감았다.
툭!
바로 그때 그의 등에 차가운 물체가 닿았다. 온몸을 잠식한 욕정이 순식간에 식을 정도로 차가웠다.
도천군의 온몸이 경직됐다.
“너무 나댔어.”
푸욱!
“커억!”
도천군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등에서부터 심장으로 파고 들어간 건 붉은색 검인 혈사아였다.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기회를 잡고 나서 뜸을 들이다가 실패한 경우를 아주 봐서 말입니다. 모든 대화는 목을 잘라 놓고 하기로 했습니다. 상대의 말을 듣지도 못할 텐데 무슨 대화를 하느냐고요? 그건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시체와도 수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턱!
금장생은 왼손으로 도천군의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첨벙!
도천군의 팔에서 힘이 빠져나가자 주려아는 물속으로 빠졌다. 물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려아는 움직이지 않고 금장생과 도천군을 바라보았다.
도천군은 눈만 크게 떴을 뿐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입을 틀어막은 금장생의 손이 없었다면 처절한 비명을 질렀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입은 금장생의 손에 의해 굳게 틀어막혔다. 비명을 지르지 못하다 보니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푸스스!
혈사아가 파고들어 간 부위가 가루로 변하면서 구멍이 커졌다.
“내가 말했잖습니까. 시체하고도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요. 혈사아에 당한 자가 가루로 변한다는 건 당신이 곧 신족이라는 걸 뜻합니다. 왜냐고요? 이 혈사아는 대신족, 대마족 무기거든요.”
푸스스!
구멍은 점점 더 커졌다.
어느 정도 커지자 이번에는 위아래로 범위를 넓혔다. 물속에 잠겨 있는 다리 쪽도 예외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가루로 흩어졌다. 어느새 몸통은 모두 가루로 변하고 얼굴만 남았다. 남은 얼굴도 빠르게 가루로 흩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도천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휴우!”
금장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금장생은 주려아를 보았다. 주려아는 극심하게 떨고 있었다.
금장생은 주려아가 왜 떠는지 알아차렸다.
“혹시 가까운 곳에 정인 있나요?”
주려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가까운 곳에 당신 몸을 식혀 줄 남자 있나요?”
이번에도 역시 주려아는 고개를 저었다.
“내게 원하는 거 있나요?”
“제, 제발 사, 살려 주세요.”
첨벙!
주려아의 머리가 물속으로 처박혔다. 급기야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고 만 것이다.
“미치겠네. 나보고 어쩌라고.”
금장생은 주려아 앞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를 안았다.
“독한 여자네.”
주려아의 얼굴을 보고 혀를 찼다. 입가로 선혈이 비치고 있었다. 그건 혀를 깨물어 흐르는 피가 아니었다. 한계에 달한 춘약의 약효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몸 내부가 파혈되면서 역류된 피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심맥이 터져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런 건 정말 싫은데.”
금장생은 주려아를 안고 침대로 갔다.
당사자가 기절을 해 버리고 말았으니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렇게 간절하게 살려 달라고 애원했는데 모른 척하기도 그렇다. 아니 그녀가 죽으면 삼호를 찾는 일이 어려워진다는 게 문제다.
“나쁜 자식.”
공연히 조금 전 죽은 자에게 성질이 났다.
“제길.”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바로 야행복을 벗었다. 그리고 주려아 다리를 들어 자신의 허리 사이에 끼웠다.
“나는 네가 정말 싫다.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준비를 할 수 있는 건지 정말 묻고 싶다.”
금장생은 자신의 성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금장생은 곧바로 대라합환음양대법을 끌어 올렸다. 전에 아수수를 구하기 위해 배웠던 대법을 다시 써먹게 될 줄은 몰랐다. 대라합환음양대법의 첫 번째 단계는 온열인데 굳이 그 과정이 필요 없었다. 주려아의 몸은 춘약으로 인해 펄펄 끓었다.
금장생은 곧바로 결합했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치료가 아니라 춘약 때문에 생겨난 욕정을 먼저 해결해 줘야 했다. 정신을 잃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주려아의 몸은 맹렬하게 반응했다. 춘약 성분을 해소하지 못하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 한 몸 희생해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그 또한 보시 아니겠는가?”
인신공양이라며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젊은지라 육체가 주는 향연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곧 주려아의 육체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가 정신을 차린 건 반 시진 후였다.
“장생아, 장생아. 이 짐승 같은 놈아.”
금장생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여자를 앞에 두고 이성을 잃어버린 자신을 자책하며 대라합환음양대법을 펼쳤다. 곧 그의 전신에서 따스한 기운과 함께 희뿌연 운무가 피어올랐다.
이미 결합한 상태라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금장생은 심안을 이용해서 주려아의 단전을 살폈다. 주려아의 단전은 일 갑자 정도를 담을 수 있는 크기였다. 하지만 단전 안쪽에 내공은 들어 있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기는 했는데 내공은 거의 쌓지 않았다는 거네.’
금장생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려아의 단전을 향해 내공을 밀어 넣었다. 내공이 들어오면서 생겨나는 격한 쾌감 때문이었을까. 주려아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당신은…….”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으세요. 절대 쾌감에 굴복하면 안 됩니다. 그럼 대라합환음양대법은 물거품으로 변하고 마니까 그렇게 아세요.
‘대라합환음양대법이라고?’
주려아는 깜짝 놀랐다. 그 대법에 대해서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강호상에 나타난 음양대법 중 최고라고 하였다.
―알았어요.
주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은 밀어 넣었던 내기를 회수했다. 주려아는 자신도 모르게 두 다리로 금장생의 허리를 조였다.
―힘주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 그게 말처럼…….’
주려아는 곧 울 것 같았다.
그 순간 금장생의 단전으로부터 엄청난 기운이 건너왔다. 극한 쾌감이 동시에 밀어닥쳤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단전으로 들어온 진기는 온몸을 헤집고 돌았다. 주려아는 문득 온몸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 때문인 듯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도대체 어렸을 때 얼마나 부잣집에서 자란 겁니까?
금장생은 혜광심어로 물었다.
치료를 하던 그는 깜짝 놀랐다. 주려아의 단전은 그리 크지 않았는데 온몸 구석구석에 잠력으로 존재하는 기운은 엄청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잣집에서 산 사람이 아니고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주려아는 눈을 크게 뜨고 금장생을 보았다.
―당신 몸 자체가 영약 덩어립니다.
‘아―!’
주려아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약이라면 어렸을 때 밥처럼 죽처럼 먹었다. 아니 공청석유로 밥을 말아 먹었다고 하는 게 가장 적당한 대답일지도 모른다. 외동딸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주려아는 그때 복용한 약들의 약효가 이미 사라진 걸로 생각했다. 아직 몸속에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금장생이 영약이 잠력으로 남아 있다고 한 것이다.
―지금부터 잠력을 내공으로 만들 거니까, 죽을힘을 다해 참으세요.
‘알았어요.’
주려아는 주먹을 불끈 그러쥐었다. 곧바로 치료가 시작됐다.
―다리 힘주지 말라고 했잖아요!
금장생은 그 소리를 스무 번도 더 해야 했다. 그리고 한 시진 후 환골탈태를 끝으로 치료를 끝냈다.
환골탈태를 할 때도 두 사람은 여전히 결합한 채였다.
금장생은 엉덩이를 뒤로 뺐다. 치료가 완벽하게 끝났는데 굳이 결합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턱!
보드라운 손이 금장생의 엉덩이를 빼지 못하게 잡았다. 금장생은 주려아를 보았다.
“제가 복용한 건 환요단이에요.”
“정말 환요단을 복용했나요?”
금장생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환요단은 한 번 복용하면 평생 동안 약기운을 달고 살아야 하는 지독한 춘약이다. 설마 그 약을 주려아가 복용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사내를 멀리하기 위해 청정관음대경이라는 심법을 펼쳤거든요. 그 심법은 어지간한 춘약은 견뎌 낼 수 있을 정도로 효과가 좋아요. 그래서 많은 이들은 내가 석녀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주려아는 상체를 벌떡 일으켜 금장생의 목에 두 팔을 둘렀다. 주도권이 바뀐 건 그때였다. 주려아는 그녀가 자의로 혹은 타의로 배운 방중술로 금장생을 녹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절정으로 치달았다. 두 사람이 움직임을 멈춘 건 반 시진 후였다.
주려아는 금장생의 팔을 베고 누운 상태였다.
“이름이 뭐죠?”
주려아는 금장생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문득 몇 차례 관계를 가졌으면서도 아직 서로의 이름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객에게는 번호만 있을 뿐 이름은 없습니다.”
“지금 천객이란 말인가요?”
“과거에 천객이었습니다.”
“그럼 번호만이라도 말해 봐요.”
“한때는 일호였습니다.”
“사상?”
주려아의 눈이 커졌다.
“남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곳에 염증을 느껴 떠난 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돌아온 거죠?”
“여자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그건 아닙니다.”
“그럼?”
“나 때문에 배신자로 낙인찍혀서 타락관으로 보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녀도 천객인가요?”
“이런.”
금장생의 얼굴이 굳었다.
“왜 그러죠?”
“내가 정원에서 소란을 피운 건 이곳으로 잠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그 여자의 행방을 알고 있을 거라고 확신한 거군요.”
“네. 그런데 관주는 삼호를 모르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 여자가 삼호였나 보군요.”
“네, 맞아요.”
주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볼 수 있을까요?”
“알아볼 수는 있는데 지금 당장은 힘들어요.”
“얼마나 걸릴까요.”
“은밀하게 알아봐야 해요. 자칫 잘못하면 들킬 수가 있어요.”
“기다려야 하겠군요.”
“그게 나을 것 같아요.”
똑똑똑!
바로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응?”
주려아와 금장생은 서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