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91)
그녀가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사실 주려아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수많은 사내들을 받았다. 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번 관계를 가졌던 많은 사내들은 반드시 단골이 됐다. 그녀는 무작정 몸만 내줄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높아진 인기를 이용하여 신분 상승을 꽤했다.
열 명의 기녀를 거느린 기장이 되고, 백 명의 기녀를 거느린 기군이 됐다. 그리고 부관주를 거쳐 마침내 관주가 됐다.
그녀가 사내들을 멀리하기 시작한 건 부관주가 됐을 때부터였다. 부관주가 되면, 부관주 신분에 어울리는 사내들만 상대하면 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사내들을 멀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 찾아낸 방법이 청정관음대경淸淨觀音大經이란 무공이었다. 무공을 찾으려고 했던 건 아니고 구입한 불경 속에 들어 있었다. 그녀도 처음엔 불경인 줄 알고 읽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불경이 아니라 무공이었다. 청청관음대경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게 해 주는 부동심법이었다.
그런데 마음의 동요만 막아 주는 게 아니었다. 청정관음대경을 펼치면 성욕마저도 억제됐다.
사내들이 찾아와 밤을 보낼 때마다 청정관음대경을 펼쳤다. 사내들이 아무리 달궈도 몸은 반응하지 않았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다섯 번에 한 번 정도는 청정관음대경을 펼치지 않은 채 사내를 받아들였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자 석녀가 됐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사내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 사내 몇몇은 춘약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청정관음대경은 효과가 약한 춘약은 충분히 억제시켜 주었다. 물론 나중에 혼자 풀어야 하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사내들을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데는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관주가 되면서는 열 명도 채 남지 않았다.
그랬던 자들도 하나둘씩 떠나고 이젠 천수마존만 남았다. 천수마존은 관계를 가질 때 여자가 주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자였다. 아울러 앞보다는 뒤를 더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여자가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아도 위축되거나 하지 않았다.
늘 그랬던 자가 저번에 찾아왔을 때 춘약 이야기를 꺼냈다. 천수마존이 춘약 이야기를 꺼낸 건 주려아 자신 때문이기도 했다.
열심히 하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여 주지 않자 천수마존이 짜증을 냈다.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기에 더욱 당황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 점점 쾌감을 잃어 간다고 하소연했던 것이다. 청정관음대경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지어낸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천수마존은 쾌감을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하였다.
그랬던 그가 환요단이라는 약을 보내온 것이다.
이미 춘약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는 그가 보내온 약이라면 효과가 엄청날 게 분명하다.
“복용하는 걸 보고 오라고 하였소.”
도천군은 환요단을 가리켰다.
“네?”
주려아는 도천군을 보았다.
“주군께서 말씀하시길 환요단은 반 시진이 지나야 비로소 약효가 나온다고 하였소. 그리고 술자리는 한 시진 후면 끝날 거요. 그러니까…….”
도천군은 다시 환요단을 턱으로 가리켰다.
사실 천수마존은 환요단을 주지 않았다.
환요단을 가져와 강제로 먹인 건 오직 도천군 자신의 의지였다. 그가 주려아에게 환요단을 먹이려는 계획을 세운 건 전에 천수마존이 이곳에 들렀다가 갈 때 한 말 때문이었다. 천수마존은 쾌감을 잃어 가는 여자에게 춘약을 복용시키면 감각을 되살릴 수 있을지를 물었다. 그 말을 듣고 나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상관의 여자를 정복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생각이.
하지만 감히 실행할 생각은 못 했다. 잘못됐을 때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목이 잘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런데 무무설 덕분에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됐다.
무무설로부터 받은 건 청정관음대경이란 불경이었다. 그런데 제목은 불경이었지만 안쪽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본능을 극한까지 억제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 청정관음대경의 주인은 주려아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주려아의 몸 상태가 이해가 됐다. 계집은 쾌감을 잃은 게 아니라 청정관음대경을 펼쳐 잃은 척했던 것이다.
절호의 기회가 왔음을 깨달았다.
“알았어요.”
주려아는 환요단을 집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환요단은 금세 액체로 녹아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만일 마존께서 오지 않으면…….”
주려아는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도천군은 히죽 웃었다.
“상관의 여자가 탐나나 보군요.”
주려아는 도천군을 빤히 쳐다보았다.
“고해바치기라도 할 테냐?”
“불행히도 이곳에 있는 우리 하가인은 어떤 짓을 당해도 상가인을 고발할 수가 없게 됐죠.”
“맞다. 하가인이 상가인을 고발하면 잘못한 상가인은 처벌을 받기도 하지만 고발한 하가인은 더 큰 벌을 받지. 하극상을 범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도천군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주려아를 쏘아보았다.
“그럼 나는 당신에게 겁탈당하지 않으려면 천수마존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야겠네요.”
“그래야 할 게다.”
도천군은 차갑게 웃었다.
“만일 내가 천수마존께 울면서 고백하면 어떻게 할 거죠?”
“이걸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도천군은 책 한 권을 꺼내 흔들었다.
“그건?”
주려아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도천군이 꺼낸 건 바로 청정관음대경이었다.
“놀라는 걸 보니 잘 아는 불경인 모양이구나. 아무튼 몸단장 잘하고 있어라.”
도천군은 몸을 돌렸다.
“천수마존은 오지 않는군요.”
주려아가 말했다.
“자객이 들었는데 계집질을 하면 부하들이 어떻게 보겠느냐.”
도천군은 몸을 돌려 주려아를 보며 말했다.
“…….”
“하지만 부하들은 계집질을 해도 괜찮아.”
도천군은 활짝 웃었다. 그리고 방에서 나갔다.
“관주님, 이제 어떡해요.”
소화가 울 듯한 얼굴로 말했다.
“화류계에서 일하는 계집년의 팔잔 걸 어떡하란 말이냐. 혹시 내가 없을 때 찾아온 사람 있었느냐?”
“며칠 전에 부관주가 왔다 갔어요. 관주님이 안 계신다고 말씀드렸는데도 가져온 걸 두고 가겠다며 안으로 들어가셨어요.”
“그랬구나. 나는 잠시 안으로 들어가야겠다.”
주려아는 굳은 얼굴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청정관음대경을 두었던 벽장을 살폈다. 일부러 다른 불경과 함께 두어 별것 아닌 척 가장했다. 주려아는 청정관음대경이 있는 장소로 시선을 주었다. 불경 네 권과 함께 두었는데 청정관음대경만 보이지 않았다.
무무설이 그것만 빼내 간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지.”
그녀는 곧바로 가부좌를 했다.
청정관음대경으로 욕화를 다스려 볼 참이었다.
지금껏 몇 번에 걸쳐 춘약을 복용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복용하자마자 은은하게 열기가 치밀어 오르는 건 없었다. 어쩌면 이번엔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들었다.
그녀는 청정관음대경을 끌어 올렸다. 그녀가 다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청정관음대경을 버리지 못했던 건 청정관음대경 안에서 숨어 있는 무공을 발견한 탓이었다. 대천인신력大天人神力 무공이었다.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시중을 드는 소화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그건 바로 무공을 익힌 무인이란 사실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황실비고에서 무공을 익혔지만 내공이 일천하여 어디다 내놓을 정도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공을 보는 눈은 있었다.
그런데 대천인신력은 지금까지 그녀가 접한 그 어떤 무공보다 대단했다. 완벽하게 익힌 상태에서 운기행공을 하게 되면 다른 내공심법보다 수십 배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게다가 후천지기가 아니라 선천지기를 내공으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무공 이론으로 보면 선천지기로 쌓은 내공은 후천지기로 형성된 내공보다 두 배 강하다고 하였다.
열 배 이상의 효과에 두 배를 더하면 무려 최소 스무 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천인신력은 광세절공이었다.
그래서 좀 더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책을 버리지 못하고 두었는데, 사달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주려아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살아온 세월인데. 젖 한 번 먹이지 못한 자식을 볼 일념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주려아는 청정관음대경을 끌어 올리는 데 박차를 가했다.
그 시각!
빠른 속도로 타락관을 빠져나가는 마차가 있었다. 마차의 마부석에 탄 자는 만비자 도천군이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북수각으로 가자.”
북수각은 정북 쪽에 있는 건물 중 하나로 타락관에서 가장 가깝기는 하지만 상가인이 아닌 하가인 거처였다. 천수마존은 아무리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현장에 있었는데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타락관에 남아 있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과 상의하여 가장 가까운 북수각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한 상태였다.
“사신마존과 환영마존도 그곳으로 가십니까?”
“거기서 보기로 했다.”
“자객은 어떤 자인지 알아냈답니까?”
“행적이 묘연한가 보더구나.”
“못 찾았다는 말이군요.”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잠시 후 마차는 북수각에 도착했다. 북수각에는 오백 명의 무인이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는 현장에 가 있겠습니다.”
천수마존이 내리자 도천군은 말했다.
“그렇게 해라.”
천수마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도천군은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약효가 발동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그렇다고 딱히 시간을 보낼 곳도 없었다. 도천군은 다시 타락관으로 갔다. 타락관은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가 떠난 후로도 자객과 몇 번의 접전이 있고 스무 명이 죽었다고 하였다.
무능한 하가인이라며 내심 욕을 한바탕 퍼부어 주고 지켜보았다. 공격을 끝낸 자객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 시진이 지났지만 관주 처소로 바로 가지 않았다. 다시 반 시진 더 지나고 나서야 건물로 들어섰다. 저 멀리 부관주 무무설이 보였다.
알은체를 할까 하다가 모르게 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연히 약점을 잡힐 필요가 없었다.
무무설이 없는 곳을 통해 오 층으로 올라갔다.
소란스러운 밖과 달리 오 층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아니 귀를 기울이면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건 물을 끼얹는 소리와 비어져 나오는 신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쓸 때 나오는 특이한 소리였다.
“환요단은 부처님도 색마로 만든다는 아주 강력한 춘약이다. 그걸 이겨 내면 내가 널 주인으로 모시겠다.”
도천군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주려아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주려아의 시비 소화만 있었다.
도천군은 주머니 하나를 소화 앞으로 던졌다.
“한 시진 동안만 나갔다가 오면 된다.”
“저, 저는 관주님의…….”
“나가지 않으면 저 아래로 던져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라.”
도천군은 창문을 가리켰다.
“아, 알았어요.”
겁을 집어먹은 소화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한 시진 안에 이곳으로 오거나 근처에서 알짱거리면 죽여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라.”
도천군은 다시 한번 차갑게 말하고는 욕실로 향했다. 잠시 후 그는 욕실 문을 활짝 열었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주려아는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도천군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주려아 앞으로 다가갔다.
“헉!”
주려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간신히 욕정을 제압해 나가는 중이었다. 이제 한고비만 넘으면 되는데 후각이 마비될 정도로 강한 사내 냄새가 풍겨 왔다.
“와락!”
주려아는 주먹을 힘껏 그러쥐고 혀를 깨물었다. 고통과 함께 비릿한 냄새가 입안 가득 들어차자 약간 정신이 들었다.
“굳이 참지 않아도 된다.”
도천군은 주려아 앞으로 갔다.
그리고 손을 앞으로 내밀어 천천히 들어 올렸다.
츄아악!
주려아의 동체가 물 밖으로 나왔다.
“으음!”
도천군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주려아는 옷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는데 알몸으로 있는 것보다 더욱 선정적이었다.
도천군은 이번에는 왼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가부좌 상태로 떠올랐던 주려아의 몸이 쭉 펴졌다.
“오―!”
도천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온몸의 피란 피가 모두 아래쪽으로 내달렸다.
휙!
그는 급하게 오른손을 돌렸다.
그러자 주려아의 동체가 그를 등지고 섰다. 그 상태에서 손가락을 인사하는 것처럼 구부렸다.
철벅!
주려아의 하체가 물속으로 들어가고 상체는 욕조 벽을 짚었다. 그 상태가 되자 도천군의 호흡은 더욱 가팔라지고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천수마존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를 꼭 같은 자세로 범한다고 생각하자 성도착적인 쾌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는 주려아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엉덩이 부분을 가린 옷을 잡고 사정없이 찢었다.
그러자 주려아의 모든 것이 완전하게 개방되었다.
“허억!”
도천군은 자신의 바지를 찢듯이 벗었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바지를 완전히 벗지도 않고 주려아의 엉덩이를 잡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윽!
사람 머리 하나가 도천군 뒤에서 솟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