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89)
주려아
“혹시 제 정인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금장생은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가 알기론 너는 삼호를 동생 정도로만 여겼을 뿐 여자로는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 자가 여기는 왜 온 거냐?”
“내가 그녀의 불행에 연루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는 거냐?”
“나는 빚지는 걸 아주 싫어하거든요.”
“그런 네 호의가 여자를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아느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좋아하지 않으면 호의도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너는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한 일이겠지만 상대방은 자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점점 더 불행해진다는 거야.”
“그래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 노예가 돼 있는데 그대로 두라는 건가요?”
“내가 아는 한 모든 종족들 중 자신이 처한 환경에 가장 빨리 적응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적응과 체념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를 구해 가겠다는 거냐?”
“네.”
“말이 안 통하는 놈이구나.”
“어떤 면에서는 꽉 막혔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녀는 요지색녀 탕화라고 한다네.”
침대에 누워 있던 거구 사내가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사내의 아혈을 제압했다. 그런데 사내는 말을 하고 있다. 그건 곧 혼자 해혈을 했다는 걸 뜻하고 여자만큼이나 강자라는 뜻이다.
“귀하는 누구요?”
“나는 막천광이네. 강호무림은 나를 승천마도라고 부른다네.”
“으음!”
금장생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실 요지색녀 탕화도 무림십패 아래 서열을 차지할 정도로 강자다. 그런데 거구 사내는 무림십패와 비슷한 실력을 지녔다는 실전십패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는 승천마도 막천광이다. 생각지도 못한 강적을 앞에 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일이 잘 풀렸는데…….”
“운이 다한 모양이구나.”
요지색녀 탕화가 말했다.
“옷 좀 입으면 안 될까요?”
“나처럼 멋진 몸매를 가진 여자를 보는 것도 흔치 않을 텐데 좀 더 구경하지 그러느냐?”
탕화는 가슴을 활짝 펴며 몸매를 더 드러냈다.
“굳이 부하들에게 알몸을 보여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내가 왜 부하들에게 알몸을 보여 줄 거라고 생각하느냐?”
“여기서 싸움이 벌어지면 부하들이 몰려올 테고 그들은 제이관주와 관주 정인의 알몸을 보게 될 거 아닙니까? 시체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영혼은 안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네 손에 우리가 죽는다는 거냐?”
탕화가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네.”
금장생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광오한 놈이구나.”
“그러니 옷 좀…….”
“우린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네.”
승천마도 막천광이 말했다.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이거 말이네.”
막천광은 자신의 성기를 가리켰다. 그의 성기는 여전히 기립한 상태였다.
“노인네가 정력도 좋네요.”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지금 나를 노인네라고 했느냐?”
노인네라고 한 말에 기분이 상한 듯 막천광의 말투가 반말로 바뀌었다.
“나이 먹은 사람을 노인이라 안 부르면 뭐라고 부릅니까?”
“난 이놈아…….”
“그리고 그거 춘약 덕분이라는 거 다 아니까 얼른 옷 입으세요. 그리고 고추는 함부로 내놓고 자랑하는 거 아닙니다.”
“지금 고추라고 했느냐?”
“아이들 물건은 ‘성기’라고 하지 않고 ‘고추’라고 하는데, 아직 몰랐습니까?”
금장생은 새끼손가락을 펴서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행동은 다분히 도발적이었다.
“개자식!”
파앗!
막천광의 신형이 금장생을 향해 폭사됐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유난히 작은 성기는 그가 가장 창피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였다. 물론 성기가 작다고 해서 관계를 갖지 못한다거나, 여자를 만족시켜 줄 없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허우대만 멀쩡한 놈들보다 더 큰 쾌감을 주곤 했다. 아니 자신과 한 번도 자지 않은 여자는 있어도 한 번만 잔 여자는 없었다. 하룻밤 함께 보내고 나면 다음부터는 버선발로 맞아 준다. 탕화도 그런 경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성기는 여전히 역린이었다. 그런데 금장생이 그 역린을 후벼 판 것이다.
“역시 작은 놈들은 쉽게 넘어가네요.”
금장생은 왼팔을 들어 올리면서 발사 명령을 내렸다.
슉!
순간 적안 수십 개가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금장생 전면은 적안으로 인해 붉게 변했다.
“억!”
막천광은 질겁했다. 설마 금장생이 이런 식으로 공격해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붉은색 원반이 전부가 아니었다. 원반의 뒤를 따라 금장생이 가공할 속도로 짓쳐 들었다.
막천광은 재빨리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두 발을 바닥에 댄 채 넘어지듯 뒤로 누웠다.
“허, 허초!”
넘어지던 그의 입에서 비명 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자신을 향해 달려들 줄 알았던 금장생이 방향을 바꿔 탕화를 향해 쏘아져 간 것이었다.
“학!”
탕화는 깜짝 놀라 양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가 막아야 할 금장생의 손은 너무 많았다. 순식간에 백팔 개로 늘어난 손바닥이 그녀의 전신으로 쇄도해 들었다.
금장생이 펼친 무공은 철장이었다.
“차하!”
탕화는 양팔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타하!”
철판교 수법으로 드러누웠던 막천광이 적안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키며 금장생을 향해 오른팔을 휘둘렀다. 탕화를 구하기 위해 부상을 무릅쓰고 공격을 가한 것이었다.
그의 오른팔이 허공을 가르면서 생성된 도강이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퍽! 퍽퍽퍽! 퍽!
둔탁한 소리가 탕화의 전신에서 터져 나왔다.
픽! 픽픽! 픽픽!
이어 적안이 막천광의 전신을 훑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앙!
마지막으로 금장생의 악마수와 막천광이 펼친 도강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악!”
“크억!”
“억!”
이어 비명이 줄을 이었다.
탕화는 입으로 피를 토했고, 막천광은 수십 군데에서 피를 흘렸으며 금장생의 입가에도 피가 비쳤다.
‘역시!’
금장생은 쓴웃음을 지으며 탕화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나름 완벽했다고 자부했다. 모든 공격을 막천광에게 돌리는 바람에 탕화는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물론 강자이기 때문에 한 번에 죽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첫 번째 공격을 방어해 낼 거라고 생각했고, 최후의 일격은 두 번째 공격으로 잡았다. 적안의 사정권 내에 있는 막천광은 절대 개입하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육체적으로 맺어진 사이는 어느 한쪽이 위험에 처하더라도 나서는 경우가 흔치 않다. 특히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더더욱 신경 쓰지 않는다.
막천광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탕화를 구하기 위해 부상을 무릅쓰고 공격해 온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금장생은 전 내력을 끌어 올렸다.
앞에 있는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아직 삼호의 위치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여기서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그는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려 아래로 내리그었다. 순간 붉은 광채가 허공을 수직으로 갈랐다.
“위험하오!”
막천광이 금장생과 탕화 사이로 뛰어들며 오른팔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의 오른팔에서 생성된 시퍼런 강기가 떨어져 나와 금장생의 단전으로 날아들었다. 금장생은 공격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단전으로 날아드는 도탄강기를 허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도탄강기로 죽지는 않겠지만 내상은 피할 수가 없다. 문득 금장생의 머릿속으로 천수마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자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더 이상 내상을 입을 수는 없었다.
금장생은 바닥을 차고 몸을 띄웠다.
“차앗!”
그 순간 탕화가 기합과 함께 금장생을 향해 여덟 손가락을 튕겼다. 여덟 줄기의 지풍이 허공에 떠 있는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차가운 기운을 머금은 그 지풍은 그녀의 독문절기인 한풍마지寒風魔指였다. 한풍마지의 가장 큰 특징은 격중당하는 순간 그 부위가 얼음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얼음으로 변해 동작이 느려지거나 움직이지 못하면 두 번째 공격은 방어가 불가능하다. 탕화가 다른 무공을 놔두고 한풍마지를 펼친 것은 바로 막천광 때문이었다. 금장생의 움직임을 묶기만 하면 나머지는 막천광이 알아서 할 거라고 믿었다.
퍽! 퍽퍽퍽! 퍽퍽! 퍽!
그녀가 펼친 지풍은 금장생 전신으로 박혀 들었다.
“성공이다.”
탕화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어렸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막천광을 보았다. 공격할 준비가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막천광의 손에는 강기로 만든 도가 들려 있었다.
“이제 난…….”
탕화는 힘을 풀었다.
상대의 목을 칠 때까지 싸움은 끝난 게 아니라는 무림의 불문율을 그녀는 한순간 깜빡하고 말았다. 아니 자신의 무공을 자만한 결과라고 해야 했다.
그녀는 금장생의 동작을 묶거나 마비 상태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 상태였다.
금장생의 오른손이 허공을 가른 건 그때였다.
쐐액!
오른손을 떠난 붉은 광채 하나가 탕화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약간의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준비를 했더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아니 완전하게 피하지 못한다고 해도 팔 하나를 희생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무공과 막천광의 공격을 너무 믿었다.
그녀의 믿음은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막천광이 쏘아 낸 도탄강기가 금장생의 등판에 작렬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금장생이 양극신공을 완성했다는 걸 몰랐을 뿐이었다.
퍼억!
막천광이 쏘아 낸 도탄강기가 금장생의 등판에 작렬했다.
“크윽!”
금장생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그의 신형은 앞으로 처박히는 자세로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의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금장생의 신형이 뒤편으로 튕겨졌다.
“억!”
막천광은 깜짝 놀랐다.
처박힐 듯한 자세로 내려섰으면 앞으로 나아가서 중심을 잡거나, 재주를 넘어 자세를 바로 해야 한다. 그런데 금장생은 삼분의 이쯤 처박힌 상태로 이편을 향해 쏘아져 오고 있다. 완전히 상궤를 벗어난 공격 방법이었다.
금장생이 발이 아닌 양손으로 땅을 미는 걸 보지 못한 막천광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막천광은 오른손에 전 내공을 밀어 넣었다.
여기서 피하거나 물러나면 결국엔 당하고 말 게 분명했다. 어차피 당할 거라면 전력을 다한 공격이 최선의 방어가 될 터였다.
어느새 금장생은 반 장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는 허공에 누운 상태였다.
“차앗!”
막천광은 움켜쥔 주먹을 힘차게 내리그었다. 공간을 수직으로 가르는 주먹 위로 푸른색 도가 생겨났다. 반 장 길이의 도는 기氣로 생성한 기도氣刀였다. 그의 기도가 향한 곳은 금장생 가랑이였다.
그의 기도가 금장생의 가랑이를 가르려는 순간 금장생이 공벌레처럼 웅크렸다. 무릎은 오므려 가슴에 붙이고 악마수를 낀 왼팔을 가랑이 사이로 내밀었다.
방어 초식이라는 걸 알아차린 막천광은 기도를 옆으로 틀었다. 사선으로 그어 오른 다리를 잘라 버릴 참이었다. 하지만 금장생도 가만있지 않았다. 가랑이 사이에 붙이고 있던 악마수를 들어 막천광의 기도를 막았다.
카앙!
쇳소리와 함께 기도의 진로가 금장생 허벅지 바로 앞에서 막혔다. 살짝 벤 듯 야행복 위로 피가 번졌다.
슈캉!
막천광은 그 상태에서 기도를 수평으로 눕혔다. 금장생이 몸을 말고 있는 상태라 횡으로 긋기만 해도 머리의 절반 정도를 잘라 낼 수 있었다.
그는 전력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
막천광의 눈이 커졌다. 분명 바로 앞에 기도가 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는 금장생을 보았다.
쿵!
금장생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내가 운이 좋았습니다.”
막천광의 시선이 자신의 단전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 녀석입니다.”
금장생은 왼팔에 끼워진 악마수를 가리켰다.
슥!
그 순간 붉은 광채 하나가 날아와 악마수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