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87)
“그런데 어쩐 일로……?”
추밀이 물었다.
“너희 둘에게 출병 명령이 떨어졌다.”
“오랜만에 출병이군요. 어떤 자죠?”
이번엔 악교교가 물었다.
“너희들이 없애야 할 자는 천객 일호와 금의위 제일천호, 동창 제일첩형 그리고 금의위와 동창 무인 일백 명이다.”
“우리 둘이서…….”
악교교가 말끝을 흐렸다. 두 명이 상대하기엔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오백객도 함께 간다.”
“오백객에 대한 명령은 누가 내리죠?”
악교교가 물었다.
그녀가 삼신회에 소속된 대원들 사이에 특이하나 계급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린 건 최근이다.
아니 삼신회가 상가上家와 하가下家로 구성돼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처음에는 삼신회는 총각전과 구천각 그리고 타락관처럼 잡다한 일을 담당하는 기관들로 구성된 줄 알았다. 그들의 수만 해도 이만 명 가까이 되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총각전과 구천각에 속한 이들이 가 보지 못한 곳이 존재했다. 그곳을 일명 상가라고 불렀다.
총각전과 구천각 소속 문도들 중 상가의 존재를 아는 자는 거의 없다. 상가와 하가는 강이나 혹은 성벽 같은 걸로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게 아니라 진식으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진식 또한 절진이라 진식에 달통한 자가 아니면, 진식이 구축돼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자신 또한 제왕 초무극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니 그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초무극으로부터 알게 된 사실은, 무림십패 서열 일위인 제왕 초무극과 서열 삼위인 무적 고독혼, 혈류 추밀이 초인삼황의 부하라는 사실보다 더욱 놀라웠다.
초무극의 말에 의하면 상가에 사는 자들의 수는 일만 명 정도라고 하였다.
놀랍게도 무려 일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인원이 살고 있는데 하가에 있는 자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주천대, 역천대 능천대로 구성돼 있고, 역천대는 다시 역천일대와 이대로, 능천대는 능천일대와 이대, 삼대, 사대로 구분한다. 각 대당 인원수는 일천 명이다. 거기에다 집행사자단 일천 명이 있고 부활전사단이 있으며 암흑천사단이라 불리는 조직도 있다고 하였다.
정확하게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는 초무극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하가에 있는 자들보다 상전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주인과 노예처럼.
그리고 어쩌면 하가인들 속에 상가인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초무극은 말했다. 만일 초무극의 말처럼 오백객 안에 상가인이 있다면 하가인인 자신의 말을 들을 리가 없다.
그녀가 명령권에 대해 질문을 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너희 둘에게 오백객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알겠습니다.”
악교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출발합니까?”
혈류 추밀이 물었다.
“바로 출발하라는 명령이다.”
“알겠습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추밀은 고개를 숙였다.
“수고해라.”
엘은 두 사람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준비합시다.”
엘이 나가자 추밀이 말했다.
“한 시진 있다가 총각전 연무장에서 만나기로 해요.”
악교교는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남인각을 나온 그녀가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총각전의 전주 집무실이었다. 집무실에는 오십 대 후반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거대하다고 해야 할 체격과는 다르게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 날 호수처럼 잔잔한 기운을 풍기는 이자는 무림십패 서열 일위에 올라 있는 제왕 초무극이었다.
“어서 오너라.”
악교교가 들어서자 무표정하던 초무극의 얼굴이 한껏 밝아졌다. 아울러 무거웠던 집무실 분위기도 약간 들뜬 상태가 됐다.
“사부님!”
악교교는 초무극 앞으로 가더니 건너편으로 앉았다.
“아프다고 하더니 괜찮은 게냐?”
“사부님이 주신 약을 먹고 바로 나았어요.”
“다행이구나. 그런데 이 시간에 웬일이냐?”
오늘 밤 만나기로 했기에 하는 말이었다.
“지금 시간 좀 있어요.”
“시간.”
“잠깐 안으로 들어가요.”
악교교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초무극은 악교교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시비에게 잠시 쉴 거니까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안으로 들어왔다. 집무실 안쪽에는 그가 피곤할 때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초무극의 눈에 열기가 어렸다. 어느새 악교교가 알몸인 채로 서 있었다. 복면은 벗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알몸은 얼굴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초무극의 호흡이 가팔라졌다.
그는 급하게 옷을 벗고 악교교에게 다가가 뒤에서 껴안았다.
“교교!”
그의 입에서 격정적인 외침이 흘러나왔다.
“무극!”
악교교는 뒤로 손을 돌려 초무극을 껴안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초무극의 두 손이 악교교의 가슴을 감쌌다. 그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이자 악교교의 숨결도 조금씩 거칠어졌다. 가슴에 머물던 오른손이 아래로 흐르자 악교교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손을 뒤로 돌린 악교교는 초무극의 준비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초무극은 완벽하게 준비가 돼 있었다. 악교교는 곧바로 엎드렸다.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악교교는 누운 상태로는 만족을 얻지 못했다. 자신이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위로 극점까지 오르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엎드린 상태에서 관계를 갖게 됐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몸에 대해 깨달았다. 엄청난 쾌락의 폭풍이 몰아쳐 기절하고 만 것이다. 그날부터 사내와 관계를 가질 땐 무조건 엎드렸다.
그녀가 엎드리자 초무극은 바로 진입했다.
“출병 명령이 떨어졌어요.”
서서히 밀려드는 쾌감을 음미하며 말했다.
“출병?”
동작을 멈춘 초무극은 고개를 갸웃했다. 출병에 대해 들은 게 없기 때문이었다.
“천객 일호의 행적을 포착했나 봐요. 나와 혈류에게 출병 명령이 떨어졌어요.”
“천객 일호가 사상이란 걸 알고 있느냐?”
“알고 있어요.”
“중원 최고의 자객이면 숨는 데도 최강일 텐데 어떻게 포착했다는 거냐?”
“금의위와 동창의 추격을 받고 있나 봐요. 상부에서는 그자는 물론이고 쫓고 있는 동창과 금의위까지 모두 없애려나 봐요.”
“그럼 둘만 가지곤 안 되는 거 아니냐?”
“오백객을 데리고 가라고 하더군요.”
“그랬구나.”
“오백객의 객주가 살부殺斧 도인이던데 어떤 자죠?”
“그자는 상가인이다. 사람을 지극히 싫어해서, 사람을 도축한다는 뜻인 도인屠人이라 일컬어지는 자다.”
“재수 없는 자군요.”
“조심해야 한다.”
“절 걱정하는 거예요?”
“걱정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게냐?”
“저는 불장난 상대잖아요.”
“나는 너와의 관계를 불장난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부인이 있잖아요.”
“그 사람과는 형식적인 관계일 뿐이다.”
“그 말을 들으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출병할 수 있겠네요.”
악교교는 싱긋 웃었다.
“이제…….”
“알았다.”
초무극을 강하게 움직였다. 곧 그의 휴게실은 끈적끈적한 소리로 가득했다. 그로부터 한 시진 후 악교교는 오백객이 도열해 있는 연무장에서 오백객 객주 살부 도인과 인사를 했다.
도인은 칠척장신이란 말에 가장 어울리는 자였다. 어지간히 키가 크다고 하는 사람보다 머리가 하나 정도 더 컸다. 도인의 어깨에는 날이 기다란 도끼가 한 자루 걸려 있었다. 혈살부血殺斧라 부르는 그의 병기였다.
“명령 들었나요?”
인사가 끝나자 악교교는 물었다.
“들었다.”
도인은 반말을 했다.
“나와 추밀이 명령권자라는 말을 듣지 못했나 보구나. 그렇다면 가서 다시 확인하고 와라.”
악교교는 도인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도인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돌아가서 집행사자께 나와 추 대협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묻고 와라, 멀대.”
“건방진 계집.”
도인은 악교교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거대한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악교교의 안면을 향해 쏘아졌다. 도인의 주먹은 바위를 부술 정도로 강력했다.
그 거대한 주먹을 향해 크기가 절반도 되지 않는 손이 나아갔다.
누가 보아도 악교교가 주먹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턱!
“허!”
“세상에!”
“저건…….”
오백객 사이에서 놀람에 찬 외침이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도인의 주먹은 악교교의 손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악교교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윽!”
도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청난 힘이 오른손 주먹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며 동체를 밀어 올렸다.
그는 떠오르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팔뚝에 힘줄이 돋고,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몸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잠시 후 도인의 동체가 악교교 머리 위에 엎드린 상태가 됐다. 그의 오른 주먹은 여전히 악교교에게 잡혀 있었다.
“내가 누구냐, 도인.”
악교교는 물었다.
“며, 명령권자다.”
“명령권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
“크윽!”
“말해라, 도인.”
“조, 존대를 해야 하오.”
“너는 존대가 뭔지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구나. 나는 바보 멍청이를 데리고 작전을 나갈 생각이 전혀 없다, 바보 멍청이.”
슈캉!
악교교의 허리춤에서 단검 한 자루가 뽑혀 나와 도인의 하체를 향해 솟구쳤다. 검이 나아가는 속도는 상당히 빨라 금세 박혀 들 것만 같았다.
“자, 잘못했습니다.”
도인은 존대를 했다.
그러자 솟구치던 단검이 우뚝 멈췄다. 단검이 멈춘 곳은 도인의 하체 바로 앞이었다.
“다시 말해라, 도인.”
“두 분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휙!
악교교는 도인을 내팽개쳤다.
쿠웅!
둔탁한 소성과 함께 도인은 볼썽사납게 나뒹굴었다.
“출발하라!”
악교교는 오백객을 향해 소리쳤다.
“출발하라!”
“출발하라!”
“출발하라!”
여러 곳에서 복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오백객 대원들이 일제히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넌 뭐 하고 있느냐?”
옷을 털고 있는 도인을 향해 악교교가 차갑게 소리쳤다.
“추, 출발하겠습니다.”
도인은 바로 몸을 날렸다.
으드득!
전방을 향해 쏘아져 가는 그의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고 봐라, 계집. 네년을 그냥 두면 나는 신족이 아니라 개새끼다. 반드시 없애 주겠다. 반드시.’
도인은 피가 나도록 주먹을 그러쥐었다.
“너무 심하게 한 거 아니오?”
추밀은 악교교를 보며 말했다.
“저놈을 잡지 못하면 우린 꿰다 놓은 보릿자루 역할밖에 할 게 없어요. 공을 세우면 전부 저놈 차지가 될 테고, 실패하면 우리 책임이 되는 거예요. 그런 거지 같은 상황을 맞지 않으려면 준비를 해야 해요.”
“저자가 상가인이란 소문이 있던데…….”
“뒤끝이 있을 거란 건가요?”
“악 소저처럼 하다가 당한 자를 몇 명 보았기에 하는 말이오.”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죠?”
“그렇소.”
“고마워요.”
악교교는 싱긋 웃었다.
하지만 복면 때문에 그녀가 웃는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다.
“아무튼 조심하시오.”
“기억할게요.”
악교교는 싱긋 웃고는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녀와 추밀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