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285화 (285/524)

황금가 (285)

“네가 여기 왜 있는 거지?”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권말남이었다.

“지금 황금전가 옛터에서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황금전가를 되살릴 참이냐?”

“그건 아닙니다. 이미 망한 상단인데 건물을 다시 세운다고 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새로운 사업을 할 생각입니다.”

“새로운 사업?”

“표국을 열기로 했습니다.”

“표국?”

“네.”

“표국을 하려면 무인이 있어야…….”

권말남의 시선이 금장생 옆에 있는 도쿠가와 신켄과 오다아이에게로 향했다. 그는 곧바로 두 사람은 상당한 강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미 무인은 구한 것 같구나.”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금장생은 자운영과 권말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일을 맡길 게 있어서 들렀다.”

“동창이나 금의위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하오밀문까지 온 걸 보면 까다로운 일인가 보군요.”

“맞다. 너를 보기 전까지는 아주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해결이 됐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맞다. 너를 보는 순간 그동안 가졌던 모든 의문을 풀 수 있었다.”

권말남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는 금장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동창 제이인자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권말남에게서는 감히 범접하기 힘든 위엄이 흘러나왔다.

‘으음!’

금장생은 내심 신음을 흘렸다.

권말남이 저렇게 나오는 건, 그동안 쫓아다녔던 사상의 증거를 잡았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자신은 증거를 남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떤 의문인지 말해 줄 수 없는 겁니까?”

“일단 자리를 옮기자.”

권말남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냐?”

바타르가 권말남에게 물었다.

“그게, 별일 아닙니다.”

권말남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응?’

금장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권말남의 말투에서 바타르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저 둘은 어떻게 된 겁니까?

금장생은 무혼에게 전음을 보냈다.

―바타르의 이상형이 권말남이래.

―그럼 둘이…….

―연인이 됐어.

―다행이군요.

―뭐가?

―기댈 언덕이 생겨서요.

―기댈 언덕?

―저들에게 약점을 잡힌 것 같거든요.

―저들이면 권말남과 자운영?

―네.

―무슨 약점?

무혼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나중에 말해 주겠습니다.

“가자.”

권말남은 앞장서 걸었다.

금장생은 그의 뒤를 따랐다.

도쿠가와 신켄과 오다아이가 금장생에게 전음으로 상황을 물었지만 금장생은 별일 아니라고만 대답했을 뿐 자세한 건 말하지 않았다. 권말남이 금장생을 데리고 간 곳은 근처 식당이었다.

“객잔을 비워라!”

권말남은 차갑게 소리쳤다.

“존!”

우렁찬 외침과 함께 수십 명이 식당을 향해 달려갔다. 권말남의 부하인 묵영대 대원들이었다.

“대원들은 식당을 포위하라!”

이어 자운영의 입에서도 차가운 외침이 흘러나왔다. 그들은 자운영을 따라다니던 추밀원 대원들이었다.

“존!”

우렁찬 외침이 이어지고 오십여 명이 나타나 식당을 에워쌌다. 그들에 이어 먼저 나타났던 묵영대 대원들이 섞여 들어갔다.

“개미 새끼 하나 얼씬하지 못하게 하라!”

권말남은 차갑게 소리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에 이어 자운영과 금장생 일행이 안으로 들어갔다. 권말남은 식당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자운영이 앉았다.

“말남!”

바타르가 권말남을 불렀다.

그러자 서슬 퍼랬던 권말남의 기세가 눈 녹듯 녹았다.

“네.”

권말남은 화사한 얼굴로 바타르를 보았다.

“우리, 자리를 비켜 줄까?”

바타르가 물었다.

“네.”

권말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일인가 보구나.”

“제 임무와 관련된 일이에요.”

“알았다. 우린 위로 올라가 있으마.”

바타르는 이 층을 가리켰다. 식당은 이 층으로 올라가도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으면 아래층을 볼 수 있는 복층 구조로 돼 있었다.

“가자.”

바타르는 무혼과 함께 이 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도쿠가와 신켄과 오다아이 그리고 당천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굳은 얼굴로 자운영과 권말남을 바라보았다.

“뭐냐, 너희들은?”

권말남은 차가운 눈으로 도쿠가와 신켄 일행을 보았다.

“우린 저분을 주공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도쿠가와 신켄이 금장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친구는 금의위 제일천호고 나는 동창 제일첩형이다.”

권말남이 자운영과 자신의 신분을 말한 건 황실 일이니 물러나라는 압박이었다.

“나는 동창과 금의위에 빚진 게 없소이다.”

하지만 도쿠가와 신켄은 오히려 한 걸음 다가섰다.

“감히 동창 일을 방해하겠다는 거냐?”

권말남의 입에서 추상같은 폭갈이 터졌다.

“방해하겠다는 게 아니고 여기 이 자리에서 지켜보겠다는 뜻입니다.”

권말남이 고함을 내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 신켄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감히…….”

권말남은 부르르 떨었다.

“신야, 올라가 계세요.”

금장생이 도쿠가와 신켄을 향해 말했다.

“주공!”

도쿠가와 신켄은 금장생을 보았다.

“나는 황실에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신야. 별일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오다아이와 당천리를 데리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말씀하십시오.”

금장생은 자운영과 권말남을 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걸 잘 들어라.”

권말남은 입을 열었다.

“감숙성 월아천, 낙양 선착장, 진령산맥 사목애, 서안 천년호, 운남 만불산, 감숙성 정서의 폐창고, 만인물성 공터, 진령산맥 열화곡, 그리고 이곳의 공통점이 있는데 아느냐?”

“모릅니다.”

“잘 생각해 보아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알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내가 알려 주어야겠구나. 내가 언급한 아홉 곳의 공통점은 대규모 살겁이 자행됐던 장소라는 거다. 아울러 그 살겁을 자행했던 자들 중에는 무림십패의 일인인 사상이 있었고.”

“그러니까 두 분은 내가 무림십패의 일인인 사상이라는 건가요?”

“아니라고 할 테냐?”

권말남은 금장생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눈동자 확인은 심문받는 자가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를 판단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그것은 거짓말의 증거였다.

“아닙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음!’

권말남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아니라고 말하는 금장생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금장생이 한 말이 사실이거나 고도의 훈련을 받은 자란 뜻이다.

“그리고 제가 사상이라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있습니까?”

금장생은 권말남과 자운영이 어떻게 자신을 추격해 왔는지가 궁금했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암살 수법은 일격필살이다.”

권말남은 금장생이 거짓말도 사실처럼 말할 수 있는 고도의 훈련을 받았다고 확신했다. 아니 그런 훈련을 거치지 않는 자는 최고의 자객이 될 수가 없다.

“일격필살이라면…….”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고 여기를 찔러서 죽인다.”

권말남은 뒷목을 가리켰다. 그리고 덧붙여다.

“무기 파고드는 지점은 목뼈 부근이지만 살 속으로 파고들어서는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동맥을 자른다. 물론 모두 다 그렇게 죽은 건 아니지만 시체들 중 몇 구 이상은 반드시 그렇게 죽었다. 아울러 병부상서 육구남, 좌구도독 이벌계, 동창 제삼첩형 윤구 등 북경에서 암살당한 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수법이었다.”

‘끙!’

금장생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같은 수법을 사용한 건 상부의 지시였다.

상부는 암살의 효과를 극대화하기를 바랐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사람 혹은 한 조직에 의해 자행된 거라는 걸 보여 주는 거였다.

즉, 같은 암살 수법은 암살의 목표가 되지 않은 다른 자들에게 ‘너도 목표가 될 수 있으니까 자중하라.’든가 ‘입을 다물라.’라는 무언의 경고가 된다.

그 암살로 인해 상부가 어떤 이익을 얻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임무는 끝까지 같은 수법으로 완수했다. 그런데 그 살인 방법이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역시 동창과 금의위는 허투루 볼 자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증거가 없으니까.’

증거가 없이 심증만 가지고 잡아들일 수 있는 자는 힘없는 자들뿐이다. 가진 자나 혹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를 잡아들이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하다. 상대가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가.

“이래도 아니라고 할 테냐?”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넌…….”

권말남은 금장생을 노려보았다.

“제가 사상이란 증거가 있습니까?”

“네가 증거잖아, 자식아!”

권말남이 버럭 소리쳤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쁜 자식! 동창 고문실로 가면 다 나오게 돼 있어, 자식아. 묵영대는…….”

“잠깐 멈추게.”

자운영이 권말남을 말렸다.

“운영, 당신도 저놈이 사상이라고 했잖아.”

“수사의 제일 원칙이 증거라는 걸 잊었는가?”

“증거가 없는 걸 어쩌라고!”

“지금부터 증거를 찾아내면 되잖는가?”

“어떻게.”

권말남은 의아한 얼굴로 자운영을 보았다.

“동행이네?”

“동행이라고?”

“이자와 함께 가면 된다는 거네.”

“아―!”

권말남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네.

자운영은 이번에는 전음으로 말했다.

―뭐가 있다는 건가?

―이자에 대한 걸 삼신회에 흘리는 거네.

―응?

권말남의 눈이 커졌다.

지금껏 동창과 금의위에서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사상의 배후는 삼신회였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동창과 금의위에서 사상을 생포하려는 이유가 바로 증거를 찾기 위해서다. 지금쯤 삼신회의 수뇌들도 동창과 금의위에서 자신들을 옭아맬 올가미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있는 자들에게 사상의 소재를 흘리면 증거를 없애려 할 게 분명하다.

―내 생각이 어떤가?

―최고예요.

권말남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어렸다.

“지금부터 우린 너와 함께 다닐 테니까 그렇게 알아.”

권말남은 단언하듯 말했다.

“제 자유를 속박하겠다는 겁니까?”

“왜, 찔리는 거라도 있느냐?”

권말남이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다만 벌여 놓은 일이 많아서 정리를 하려면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라서 그렇습니다.”

“걱정 마라. 널 방해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이제 뭐 좀 먹을까?”

난제가 해결되자 갑자기 입맛이 당겼다.

권말남은 주인을 불렀다.

한편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던 주인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다가왔다.

“타르는 어떤 걸로 드실 거죠?”

권말남의 입에서 기름을 잔뜩 칠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욱!”

자운영은 입을 틀어막았다.

“왜 그래요?”

권말남은 의아한 얼굴로 자운영을 보았다.

“그 목소리.”

“내 목소리가 어때서요?”

“기름을 한 대접 마신 것 같은 기분이오.”

“설마요. 타르, 당신도 그래요?”

권말남은 바타르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오. 내게는 천상의 목소리처럼 들리오. 당신 목소리 가지고 뭐라 하는 놈 있으면 바로 목을 쳐 버리겠소.”

바타르는 가볍게 바닥을 찼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둥실 떠오르더니 권말남 옆으로 날아내렸다.

“버터 같은 것들.”

무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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