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84)
설계도가 완성되자 철목광은 소목 오십 명을 데리고 각자 일을 맡겼다. 혈가 무인들은 오십 개 조로 나뉘어 각 소목들에게 붙었다. 각 부분을 나눠서 하는 일종의 분업이었다.
처음엔 더디게 보였다. 그런데 기초가 끝나고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하자 공사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황금전가 옛터를 보고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철목광은 그야말로 대목이었다.
당천리가 찾아온 건 공사를 시작하고 한 달 후였다. 공사는 삼분의 일 정도가 진척돼 제법 형태가 갖춰진 상태였다.
금장생은 객잔을 나와 임시 막사에 기거하는 중이었다.
“어서 오세요.”
금장생은 당천리를 맞았다.
“오다가 듣자니 표국을 연다고 하던데, 그렇습니까?”
“떡 본 김에 제사를 지내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조선 속담인데 그곳 사람들은 제사를 지낼 때 늘 떡을 올리거든요.”
“그러니까 표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거군요.”
“팔백여 명이 생겼습니다. 다들 무인이고요. 그 사람들을 다 써먹으려면 표국이 제격일 것 같아서요.”
“표국을 운영한 경험이 있습니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당천리는 굳은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너무 일을 크게 벌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실은 표국은 눈가림이고 실제로 하고 싶은 건 유통입니다.”
“과거 황금전가의 유통망을 되살려 볼 생각이십니까?”
“네.”
“하면 전국에 지부가 있어야 하겠군요.”
“각 지부에 오십 명씩 보낼 생각입니다. 나머지는 황금표국 총단에 머물게 될 거고요.”
“설사 그렇다고 해도 너무 위험합니다.”
“가주님.”
금장생은 밖을 향해 소리쳤다.
“네.”
대답과 함께 오다아이가 도쿠가와 신켄과 같이 안으로 들어왔다.
“인사하세요. 이분은 우리 황금가 총관입니다.”
“처음 뵙습니다. 당천리라고 합니다.”
“당천리란 이름은 흔하지 않는데 혹시 내가 상상하는 그 이름인가요?”
오다아이가 물었다.
사천당문 전대 문주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나 같은 필부의 이름을 다 기억하는 걸 보면 보통 분이 아닌 것 같군요.”
“나는 혈가의 전대 가주 오다아이예요. 그리고 이분은 전전대 가주고요.”
“……!”
당천리는 멍한 얼굴로 오다아이와 도쿠가와 신켄을 보았다. 한때지만 사천당문의 문주를 했기 때문에 혈가에 대해서는 들어 알고 있다. 결코 무림 가문에 비해 약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 곳의 가주를 역임했던 두 사람을 만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혈가를 아시나요?”
오다아이가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가주예요.”
“그럼 두 분은?”
“둘 다 쫓겨났어요.”
“……그랬군요.”
당천리의 눈빛이 따뜻해졌다. 쫓겨났다는 말을 듣자 묘하게 동질감이 생긴 탓이었다.
“그럼 회장님 성격상 표국을 직접 운영하진 않으실 테고 운영은 두 분이 하시겠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언질도 없었어요.”
“당 총관 말이 맞습니다. 황금표국은 두 분이 운영하시게 될 겁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장의사는…….”
“장의사는 지금처럼 굴러가게 두면 될 것 같습니다.”
오다아이 질문에 금장생이 대답했다.
“그곳에 새로운 손님이 들었는데 아세요?”
“아뇨?”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환수각 각주 척 대협과 신강지존 태천야의 따님이 지금 머물고 계세요.”
“쿡!”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무혼에게 당한 척사랑이 거기를 찾아간 모양이었다.
“신강지존 그분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무공을 익히고 있어요.”
“무공?”
“제가 보기엔 실전됐던 무공을 찾아낸 것 같았어요.”
“아―!”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태월령에게 가르쳐 준 적신천사마공을 익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럼 태월령이 후계자가 되는 건가?’
태월령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의 성공은 곧 나의 성공과 직결되는 거니까.”
“네?”
“아닙니다.”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당천리를 보았다.
“지부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시선이 마주치자 당천리가 물었다.
“황금루는 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
금장생이 되물었다. 황금루 진척 사항을 알아야 지부 일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섬서성, 하남성, 북경에 각각 하나씩 열기로 했습니다. 건물은 신축보다는 식당을 하던 곳을 인수하여 개축하기로 했고요.”
“돈은 부족하지 않나요?”
“충분합니다.”
“부족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알겠습니다.”
“거기 일이 바빠서 표국 지부를 찾아볼 여유는 없겠네요?”
“황금루 일만 해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개업은 언제 할 생각입니까?”
“개업식은 유월 초하룹니다.”
“여름인데 장사가 잘될까요?”
“양고기를 이용한 보양식을 개발해서 판매할 생각입니다.”
“음식점 사장님이 다 됐네요.”
금장생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당천리는 사천당문의 문주를 역임했던 무인이다. 음식도 남이 차려 주는 것만 먹었을 것이다. 그랬던 사람이 음식을 개발했다고 한다. 신기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음식 사업이라는 거, 생각보다 재미있더군요.”
당천리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음식업도 무인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무림보다 더 극심한 경쟁 속에 사는 곳이 그 바닥이었다. 무인은 강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지만 음식업은 돈만 많다고 해서 성공하는 게 아니었다.
돈과, 맛, 성실함이 함께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성공이란 말이 따라오는 곳이었다. 성공해서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무인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자기보다 하수를 내려다보아도 되지만, 성공한 음식점 사장은 그럴 수가 없다.
고객 위에 서려는 순간 그 가게는 서서히 망한다.
성공해서도 초심을 잃으면 망하는 곳. 그곳은 그런 세상이었다.
“그 속에 인생이 있다는 말인가요?”
금장생은 물었다.
“네.”
당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 총관이 직접 발로 뛰는 건 틀렸고. 하오밀문에 장소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면 어떨까요?”
하오밀문은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진 문파고, 문도들 대부분이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곳 사정을 잘 안다. 그들을 이용하면 생각보다 쉽게 표국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이용하면 가장 좋기는 한데 하오밀문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잖습니까?”
“여기로 올 때 하오밀문에서 연락을 받지 않았나요?”
“맞다. 가장 먼저 그걸 물어본다고 해 놓고는……. 어떻게 된 겁니까?”
당천리는 물었다.
“하오밀문 천이단을 임대했습니다.”
금장생은 하오밀문과 체결했던 계약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세상에…… 그들이 그걸 수락했다는 겁니까?”
당천리는 깜짝 놀랐다.
설마 하오밀문을 그런 식으로 이용할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오밀문은 정보로 먹고사는 문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건 곧 중원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곳이 하오밀문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 문파의 천이단을 임대했다는 건 하오밀문을 통째 사용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네. 내 생각이 어떻습니까?”
“그들을 이용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지부는 그들에게 알아봐 달라고 하고 건물 계약은 두 분이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도쿠가와 신켄과 오다아이를 보았다.
“전국을 돌아야겠네요?”
오다아이가 물었다.
“그래서 제가 황금표국 깃발을 준비했습니다.”
금장생은 한편에 놓인 상자를 가져와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황금색 천이 들어 있었다. 금장생은 천을 꺼내 펼쳤다. 깃대가 걸리는 부분보다 나머지 두 변의 길이가 두 배 긴 삼각형 형태의 깃발이었다. 길이는 짧은 변이 세 자, 긴 변은 여섯 자였다.
중앙에는 황금색 두꺼비가 새겨져 있고 두꺼비 위쪽에 황금이란 글이 큼직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황금표국 깃발만이 아닌 것 같은데요?”
오다아이가 깃발을 바라보며 말했다.
“황금가 깃발입니다.”
“그런데 안쪽에 있는 두꺼비는…….”
“금두꺼비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녀석입니다.”
“풋!”
오다아이는 피식 웃었다.
“이 깃발을 마차에 달고 다니시면 됩니다.”
“알았어요.”
오다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회의는 이걸로 마치기로 하죠.”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하오밀문 총단으로 찾아가 어대상을 만나야 했다.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네.’
일이 너무 많았다.
류가 개업한 황금철장은 이곳에서 업무 보고를 받았지만 모금충이 개업한 황금장은 아직 가 보지도 못했다. 모금충을 믿고 맡긴 일이긴 하지만 일을 너무 크게 벌여 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두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맡겼으니까.’
사람을 믿지 못하면 큰 사업은 절대 할 수 없다고 하였던 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지금은 믿는 수밖에 없었다.
“신야!”
금장생은 도쿠가와 신켄을 불렀다.
“저를 부르신 겁니까?”
도쿠가와 신켄은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앞으로 신야라고 부를게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도쿠가와 신켄이 물었다.
“두 분이 타고 다닐 마차를 한 대 더 사세요.”
“회장님이 타고 계신 마차와 같은 걸로 구입하겠습니다.”
“저는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당천리가 금장생에게 인사를 했다.
“떠나기 전에 하오밀문 문주와 인사를 하세요.”
“하오밀문에 들렀다가 가란 말씀이십니까?”
나도 마침 하오밀문 총단에 다녀와야 하니까 같이 가요. 두 분도 나오세요.”
금장생은 도쿠가와 신켄과 오다아이를 보며 말했다.
“우리도 하오밀문에 가자는 말씀이십니까?”
도쿠가와 신켄이 물었다.
“인사를 해 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알았습니다.”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십니까?”
대기하고 있던 철각 군상야가 다가오며 물었다.
“하오밀문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서요.”
“제가 마차를 몰겠습니다.”
군상야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마차를 향해 갔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마차 마부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팔장군 중 적사월이었다.
―거기서 뭐 하는 거죠?
금장생은 적사월에게 물었다.
―앞으로 여긴 우리 자리가 될 것 같아서 미리 앉아 본 겁니다.
―마부를 하겠다는 거예요.
―마부라고 하지 말고 호위라고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비롯한 일곱 명은 마차 밖에서 주공을 호위하고 불 누이는 안에서 호위하기로 했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고 해도 듣지 않겠죠?
―네.
―알았어요. 하지만 오늘은 적 장군만 가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적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 대협은 그 사람 옆에 앉으면 됩니다.”
금장생은 군상야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군상야는 냉큼 마부석으로 올라탔다.
이어 금장생 일행이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곧 하오밀문 총단을 향해 출발했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미리 먹여 놓은 뇌물 덕분인지 아니면 금장생에게서 돈 냄새를 맡았는지 하오밀문 문주 어대상은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주었다. 한 달 안에 전국 주요 거점 도시에서 적당한 물건을 계약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였다.
일을 마친 금장생 일행은 밖으로 나왔다.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안으로 들어오던 자들과 맞닥뜨렸는데 뜻밖에도 그들이 무혼과 바타르 그리고 자운영과 권말남이었다.
“얼레?”
놀란 건 무혼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자운영과 권말남의 놀람은 상상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