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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83화 (283/524)

황금가 (283)

동행

마가로 들어간 풍운마제 노적임이 나온 건 이틀 만이었다.

“마왕은 안에 없습니다.”

노적임은 옥천환에게 보고했다.

“언제 돌아온답니까?”

“알 수 없답니다.”

“알 수 없어요?”

“집을 나간 지 몇 달 됐다고 합니다.”

“자기네들도 마왕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건가요?”

“네.”

“그게 말이 됩니까?”

마왕은 마가의 주인이다. 주인이 몇 달 동안 집을 비웠는데 위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지만 마왕이 현재 이곳에 없다는 것과,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군요.”

옥천환은 전면으로 시선을 주었다. 저 멀리 마가를 구성하고 있는 서천이 보였다.

―어떠냐?

서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뒤편으로 전음을 보냈다. 그의 뒤편 십 장 떨어진 곳에 장하가 서 있었다. 장하도 마가에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었다.

―없는 게 맞습니다.

―만리만년향의 기척이 전혀 감지되지 않느냐?

―네.

“갑시다.”

옥천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그는 마가를 공격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마왕에 대한 공격은 해림의 림주가 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 근처까지 온 것은, 명분을 쌓기 위해서였다. 림주 파운양이 죽은 그 시간에 자신은 심해전 원로들과 함께 있었다는 상황을 연출해 놓으면 모든 의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제 돌아가서 파운양의 장례를 치르고 해령지존의 신분으로 림주에 오르면 된다.

“돌아가는 겁니까?”

설천이 물었다.

“이곳에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잖습니까. 마왕의 위치를 수소문해서 다시 와야지요.”

“그렇군요.”

설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옥천환과 심해전 원로들은 곧 자리를 떴다.

―장하!

옥천환은 장하를 불렀다.

―네.

―놈을 찾아라.

―너무 막연합니다, 림주님.

장하는 벌써부터 옥천환을 림주라 불렀다.

―북망산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런데…….

장하는 말끝을 흐렸다.

―이제 림주가 됐는데도 놈을 찾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거냐?

―솔직히 그렇습니다. 림주님은 더 이상 눈치 볼 사람이 없는 해림의 최고가 되셨습니다. 굳이…….

―놈은 보험이다, 장하.

―보험이라면?

―나는 정상적인 승계가 아니라, 후계자가 없어서 림주가 되는 셈이다. 파운양처럼 전 문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 지도력을 의심하거나, 혹은 림주나 그의 자식들의 죽음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 문도들의 시선을 돌릴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 뭔가가 바로 마왕이란 말이군요.

―맞다. 놈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운 후 마가와 전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놈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림주님.

―지금 당장 떠나라.

―존!

장하는 고개를 숙이고 바로 대열에서 이탈했다.

옥천환은 멀어지는 장하를 지켜보았다.

장하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아버지는 창고에 대해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다.

두 형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 아들에게 담력을 길러 준다며 어두컴컴한 동굴로 들여보내곤 했다. 그 동굴이 있는 곳은 황금전가 북편에 있는 야산의 정 서쪽이다.

하지만 아침과 낮 두 번이나 가 보았지만 동굴 비슷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금장생은 전방의 절벽을 살폈다. 절벽의 높이는 이 장 정도였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동굴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해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육포를 오물거리며 절벽 앞을 서성였다. 어느덧 서쪽 하늘이 벌게지며 태양이 절벽을 비추기 시작했다. 금장생은 절벽에 시선을 고정했다.

반짝.

한가운데보다 약간 위쪽에서 뭔가가 번쩍거렸다.

금장생은 얼른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금 전 빛이 흘러나왔던 곳의 흙을 파헤쳤다.

그러자 주먹 크기의 고리가 나타났다. 고리에는 동서남북 네 군데에 빛을 내는 물체가 하나씩 박혀 있었다.

“이거네.”

금장생의 입가에 싱긋 미소가 어렸다.

그는 고리를 잡고 잡아당겼다. 하지만 고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공을 약간 끌어 올렸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당기는 건 아닌 것 같고…….”

금장생은 물러나 앉았다. 무작정 잡아당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금장생은 뒤편에 서 있는 팔장군 중 불여하를 보며 물었다.

불여하는 절벽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고리를 잡고 오른편으로 돌렸다.

철컥!

걸려 있던 뭔가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여하는 그 상태에서 안으로 밀었다.

그르릉!

석문은 천천히 열렸다.

“바보가 된 기분이네.”

금장생은 어이없이 웃었다.

―우리가 살던 시대에는 이런 기관을 많이 사용했어요.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느닷없이 귓전으로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금장생은 불여하를 보았다.

―지금 내게 말한 건가요?

금장생은 혜광심어로 물었다.

‘헉?’

이번에는 불여하의 눈동자가 화들짝 커졌다.

―내 말이 들려요?

불여하가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대화가 통하게 됐네요.

―먹고 싶은 건 없어요?

금장생은 물었다.

―먹고 싶은 거요?

불여하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인시가 되면…… 아닙니다. 먹고 싶을 때 그때 말하는 게 낫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열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맞네.”

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두 형과 숨바꼭질하던 그 동굴이 맞았다.

“아버지는 저기 앉아 계셨고.”

금장생은 출입문 옆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곳에는 돌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삼형제의 숨바꼭질이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아니 우리가 숨바꼭질을 할 때 어딘가 다녀오시곤 했다. 그 당시에는 잠시 볼일을 보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아니었다.

“아버지는…….”

금장생은 아버지가 앉아 있던 바위로 가 앉았다. 전면과 왼편과 오른편을 차례로 보았다. 바로 시선을 돌리는 게 아니라 뭔가가 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이상한 걸 발견한 건 오른쪽 벽이었다. 바위가 튀어나온 듯 한 형태로 서 있었는데 튀어나온 안쪽이 또 다른 동굴로 이어졌다.

곧바로 거기로 들어갔다.

“여기였네.”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동굴 천장에는 야명주가 박혀 있었다. 벽을 따라 진열장이 늘어서 있었는데 각 칸마다 둘둘 말린 종이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금장생은 가장 가까운 쪽에 있는 진열장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아들.

“얼레?”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남긴 글이었다.

네 아버지는 내게 죽지 않을 만큼 맞았으니까 너무 원망하지 마라.

“풋!”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역시 어머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집…… 쫄딱 망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거지가 됐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하던데 우린 그런 것도 없다. 다행히 이 에미가 꿍쳐 놓은 비상금이 있어서 당분간 그걸로 생활할 작정이다.

어미가 말한 비상금이란 환희궁을 말하는 것일 테다. 금장생은 다시 어머니 서찰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니 우리 걱정은 하지 마라. 그리고 먹을 게 없으면 몰라도 먹고살 만하면 우리를 찾지 마라. 동영에서 돌아온 네가 뭘…….

거기서 끊긴 서찰은 몇 줄 아래에서 다시 시작했다.

동영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서 네 아비에게 바가지 좀 긁고 왔다. 단, 이곳을 떠나진 마라. 작더라도 황금전가 터에 집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 땅문서는 이곳에 두고 가마.

금장생은 어머니 서찰을 꺼냈던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서찰에 쓰여 있는 것처럼 바로 옆에 두툼한 종이가 있었다. 백만 평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땅문서였다. 금장생은 땅문서를 꺼내 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서찰의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서찰에는 가족의 소식을 알고 싶으면 환희루 루주를 찾아가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가족이 남긴 서찰?

불여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불여하를 비롯한 팔장군들이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내 말 알아들어요?

금장생은 암왕 염라에게 전음을 보내 보았다.

―알아듣습니다.

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대화가 가능했죠?

―우리끼리는 꽤 됐습니다.

―그랬군요.

금장생의 시선이 적사월에게로 향했다.

―아직도 내게 감정이 많아요?

―그게 무슨 말…….

―역시 말이 통하네요.

“이제부터는 편하게 말할게요.”

금장생은 전음이 아닌 본래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하십시오.

―좋습니다.

팔장군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 글 모르죠?”

금장생은 다시 물었다. 저들이 생활할 때의 글과 지금 글은 너무 많이 달라져 알아볼 수가 없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글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알아요.

불여하가 대답했다.

“안다고요?”

―그동안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배웠어요.

“모두 다?”

―네.

“그럼 내가 할 일이 줄었네요. 지금부터 이곳에 있는 서류를 전부 훑어 주세요.”

금장생은 진열장을 가리켰다.

―서류는 왜 읽으라는 거냐…… 겁니까?

적사월이 물었다.

“반말하셔도 됩니다. 저보다 수천 살이 더 많으신 분들인데 편하게 하세요.”

―서류는 왜 읽으라는 겁니까?

적사월은 공대를 했다.

“왜?”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적사월을 보았다.

―나이가 가장 많은 염 노야가 공대를 하는데 제가 반말을 하면 모양새가 이상하잖습니까.

“나는 상관없는데.”

―주공으로 모시기로 마음 정했으니까 공연히 갈등 때리게 하지 말고 이유나 말해 주쇼.

“내가 하는 일이 사업이잖아요. 그동안 옆에 있었으니까 잘 알겠지만 벌여 놓은 일은 많은데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일이 있거나,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떠날 게 아니라면 저를 좀 도와주었으면 해서요.”

―떠난다는 건 무슨 말이오?

“지금이야 아직 강시의 탈을 벗지 못해 제게 속박돼 있지만 완전한 인시가 되면 더 이상 부적에 속박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미래를 알아서 결정하라는 거군요.

“다들 성인이잖아요.”

―알았소.

적사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런데 이건 다 뭐요?

종이를 펼치면서 적사월이 물었다.

“황금전가 역삽니다. 아마 여기 있는 지식과 가문을 경영했던 여러분들의 경험이 합쳐지면, 설사 사업의 문외한이었다고 해도 전문가 수준으로 올라갈 겁니다.”

금장생은 팔장군을 보며 방긋 웃었다.

―그렇게 되나 안 되나 한번 읽어 봅시다.

적사월은 진열장 한 칸에 있던 종이를 전부 꺼내 놓고 가부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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