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81)
‘요물이 따로 없네.’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단지 흘겨보는 걸로 눈빛만 바꾸었을 뿐이다. 그런데 얼굴이 완전히 달라진다. 마치 활짝 핀 꽃처럼 표정이 살아나는 것이었다.
“왜요?”
금장생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물었다.
“얼굴이 갑자기 변한 것 같아서요.”
“다른 사람도 많이들 그렇게 말해요. 가만히 있을 때와 웃을 때는 얼굴이 완전히 달라진다고요.”
“그런 것 같네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골탈태 말고 다른 방법은 없나요?”
미우는 다시 자신의 몸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문신을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납니다.”
“문신이라고요?”
미우는 금장생을 돌아보았다.
“네.”
“그것도 괜찮겠네요.”
미우는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혹시 문신할 줄 아세요?”
“못 합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찾아봐야겠네요. 이제 제 옷 좀 주실래요?”
“말씀만 하십시오.”
“저기 옷장을 열어 보세요.”
금장생은 옷장 앞으로 가 문을 열었다. 상당히 많은 옷이 걸려 있었다.
“이 상태로 속옷이나 바지 등을 입는 건 힘들겠죠?”
미우는 자신의 몸을 가리켰다.
“천에 쓸릴 때마다 아플 겁니다.”
“거기 연두색 장포를 주세요.”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비단으로 지은 장포를 꺼내 들고 미우 뒤로 가 섰다. 미우는 두 팔을 끼우고 허리를 묶었다.
―라.
금장생은 라를 불렀다.
―말해라.
―포션 먹어도 됩니까?
―물론이다.
―잘됐네요.
―저 여자가 마음에 드느냐?
―아뇨?
―그런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거냐?
―황금전가 직원이잖아요.
―그러니까 이성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고 직원이라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잖아요.
―하지만 너의 그런 호의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성인이면 호의와 관심을 충분히 구분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거 드세요.”
금장생은 남은 포션을 내밀었다.
“마셔도 돼요?”
“네.”
“고마워요.”
미우는 포션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 삼천객과 싸울 때 입었던 내상이 빠르게 치유됐다.
“이거 엄청난 영약이군요?”
미우는 놀란 눈으로 금장생을 보았다.
“엄청나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다른 사람이 가진 내상약보다는 약간 효과가 뛰어날 겁니다.”
금장생은 치료를 하기 전에 치워 두었던 요와 이불을 다시 침대에 깔았다.
“여러 가지로 고마워요.”
“한 식군데 힘닿는 데까지 도와야죠. 그리고 당분간 과도한 움직임은 자제하세요. 실이 터지면 덧날 수도 있으니까요.”
“실은 언제 뺄 거죠?”
“상처가 아무는 상황을 봐야지요. 사흘 있다가 다시 한번 오겠습니다.”
“약이 너무 좋아서 그 정도로 걸릴 것 같지 않네요. 아무튼 저도 지켜보다가 연락드릴게요.”
똑똑똑!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빙향이었다.
“좀 어떠세요?”
빙향은 미우 곁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견딜 만해요. 피해 상황은 어때요?”
“다섯 명이 죽고 열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최고 예우로 장례를 치러 주고 가족들 중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받아 주도록 하세요. 금전적인 보상도 준비하고요.”
“알겠습니다.”
빙향은 고개를 숙였다.
“나는 좀 쉴게요.”
미우는 침대로 올라갔다.
“나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금장생은 미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고 가실 거죠?”
“에―!”
금장생은 미우를 보았다.
“총관하고는 친구라고 하지 않았어요?”
미우는 빙향을 보며 물었다.
“맞습니다.”
“방을 마련해 주세요.”
“알았어요.”
빙향은 고개를 숙이고는 금장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정리가 다 끝난 듯 밖은 깨끗했다.
“대단하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빙향이 말했다.
“뭐가요?”
“루주님 몸매 말이야.”
“아―!”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나지?”
빙향은 고개를 돌려 금장생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다지.”
“그런 엄청난 몸매가 무방비 상태로 앞에 있었는데도 욕정이 일지 않았다고?”
“여자가 아니고 환잡니다.”
“환자라고 해도 여자야.”
“아무튼 나는 관심 없습니다.”
“혹시 화류계 여자라서 그런 거야?”
“그런 걸로 사람을 차별할 정도로 못 배워 먹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여자보다 더 좋아하는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여자보다 더 좋아하는 거라면…… 남자?”
“에…….”
금장생은 황당한 얼굴로 빙향을 보았다.
설마 거기서 남자가 튀어나올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구나.”
금장생이 부정을 하지 않고 멍하니 쳐다보자 빙향은 긍정의 뜻으로 여겼다.
“아닙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이해해.”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알았어. 하지만 아쉽다. 그런 대물은 흔치 않은데…….”
“끙!”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떤 설명을 해도 빙향을 설득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알아서 생각하도록 놔두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빙향과 금장생은 술을 마시던 방으로 들어갔다.
무면 일행은 먼저 들어와 있었다.
멈췄던 술자리가 다시 이어졌다. 금장생이 환희루를 나선 건 아침이었다.
함께 나온 무면, 삭도, 전광은 동정호가 있는 악양으로 향하고 금장생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객잔으로 갔다.
객잔으로 두 사람이 찾아온 건 점심 무렵이었다. 한 명은 육십 대 초반의 노인이고 한 명은 삼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나는 철목광입니다.”
수염이 허연 노인이 먼저 인사를 했다.
“문주께서 말한 대목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나는 장생입니다.”
금장생은 노인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노인을 살폈다. 지금까지 만난 많은 노인들 중 검게 그을린 얼굴과 허연 수염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떡 벌어진 가슴 때문인 듯 돌처럼 다부져 보인다.
그런 것 때문인지 몰라도 대화를 하지도 않았는데 믿을 만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묘한 사람이네.’
금장생의 시선이 철목광 옆 젊은 사내에게로 향했다. 상체가 발달한 철목광과 달리 젊은 사내는 하체가 탄탄해 보였다. 얼굴은 한 번 보는 걸로 기억하는 게 쉽지 않을 정도 평범했다.
“저는 군상얍니다. 별호는 철각鐵脚이고요.”
“신법이 뛰어난가 보죠?”
금장생은 물었다.
“공자님과 하오밀문 총단 혹은 지부로 연락을 해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이제 인사가 끝났으니까 앉읍시다.”
금장생은 자리를 권했다.
“식사는…….”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물었다.
“먹고 왔습니다.”
철목광이 대답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금장생은 옆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어산광이 커다란 종이를 내밀었다.
금장생은 그 종이를 철목광 앞에 펼쳤다.
“설계도군요.”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며 철목광이 말했다.
“대략적인 겁니다. 저분도 목수 출신인데 이 정도 규모는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금장생은 어산광을 가리켰다.
“기간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철목광은 설계도를 돌돌 말며 물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오십 명을 동원하면 육 개월 정도 걸립니다.”
“제게 팔백 명이 있습니다. 모두가 무공을 익힌 자들이라 대패나 톱이 필요 없습니다.”
“팔백 명이나 있단 말입니까?”
철목광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모두 이곳에 머물 건 아니고, 작업이 끝나면 전국 각처로 흩어질 겁니다.”
“어떤 일을 하시기에…….”
“표국을 열 생각입니다.”
“아―!”
철목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걸릴까요?”
“일정을 최대한 당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건물 배치를 제가 수정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건물의 용도만 달라지지 않는다면 상관없습니다.”
“공자께서 그린 것보다 더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진 않을 겁니다.”
금장생은 철목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험!”
금장생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철목광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아닙니다. 대목께서 생각한 대로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자재는 어떤 걸로 할까요?”
“어떤 게 있습니까?”
“싼 것, 비싼 것, 튼튼한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참고로 비싼 것은 튼튼하기까지 합니다.”
“백 년을 살 집으로 만들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와 있는 땅은 과거 황금전가가 있던 자리 같은데, 맞습니까?”
“내가 그 땅을 구입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설계도를 다시 그리고 자재를 준비하는 것까지 합치면 일은 십일 후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금액은 어느 정도를 예상하십니까?”
“백에서 백오십만 냥 정도를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팔백 명에 대한 인건비를 제외한 비용입니다.”
철목광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먼저 이 돈으로 시작하세요.”
금장생은 품속에서 전표 오십만 냥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꺼내 철목광 앞으로 내밀었다.
“얼맙니까?”
“오십만 냥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은 어 대협과 상의하면서 하겠습니다.”
철목광은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어 대협, 가시죠.”
“네.”
철목광과 어산광은 바로 자리를 떴다.
금장생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군상야를 보았다.
“저는 심부름 담당이라서요.”
군상야는 멋쩍게 말했다.
“그럼 한 가지 해 줄 일이 있습니다. 섬서성으로 서찰을 보내려면 첩지 형태가 돼야겠죠?”
“전서구를 이용하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혹시 첩지 담는 죽통 있어요?”
“네.”
군상야는 등짐을 내려 풀었다.
그의 등짐 안에는 잡동사니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들 중 눈에 띄는 건 수십 개의 죽통이었다.
죽통의 위쪽은 붉은색이 칠해져 있었다.
“저건?”
금장생은 죽통을 가리켰다.
“천급 정보를 운송할 때 사용하는 죽통입니다.”
“내가 보내고 받는 건 모두 천급으로 취급한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문주님께 감사하다는 말, 꼭 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한 사람을 수배하고 싶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이름은 당천리고 황금루 주인입니다. 하남성으로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확한 위치를 모르거든요.”
“하남성에 있다면 하루면 가능할 테고, 다른 하북성에 있다면 이틀, 다른 지역에 있다면 닷새 정도 걸립니다.”
“그렇게나 빨리 찾을 수 있어요?”
“이름하고 황금루란 단서가 있잖습니까.”
“그렇군요. 아무튼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전 총단에 다녀오겠습니다.”
군상야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금장생은 도쿠가와 신켄을 보며 물었다.
“철목광이란 자에 대한 질문입니까?”
도쿠가와 신켄은 되물었다.
“내가 보기엔 무인 같던데. 그것도 어지간한 무인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초극 강자 말입니다.”
“주공도 그렇게 보셨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절정 고수 목수라…….”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였다.
“일을 맡길 겁니까?”
“내게 피해만 없다면 상관없습니다.”
금장생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창고에 한번 가 보려고요.”
“창고요?”
“그런 곳이 있습니다.”
“저도 따라갈까요?”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젓고는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