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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79화 (279/524)

황금가 (279)

“커억!”

세붕의 입이 쩍 벌어지고 피가 벌컥벌컥 넘어왔다.

“세붕!”

이우환의 입에서 피 끓는 외침이 흘러나왔다. 그는 이곳으로 오기 전이나 이곳에 와서도 자신들이 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심지어 부상을 입을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 세붕이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털썩!

세붕의 신형이 거칠게 무너졌다.

“크윽!”

세붕에 이어 미우도 그 옆으로 쓰러졌다. 세붕은 물론이고 미우의 몸도 엉망진창이었다. 암기가 틀어박힌 곳에서 흘러나온 피가 온몸을 적셨다.

하지만 죽을 정도로 치명상은 없었다.

미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제자리에 섰다.

“우리가 너를 너무 얕봤구나. 하지만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나와 조운 동생은 최선을 다해…….”

고개를 돌려 조운을 찾던 이우환이 말끝을 흐렸다. 죽은 자는 둘째 세붕뿐만이 아니었다. 이 장 떨어진 곳에 셋째 조운도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조운 바로 옆에는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사내의 손에는 그리 길어 보이지 않는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사내는 검면을 조운의 옷에 슥슥 문지르고 있었다. 검면에 묻은 피를 닦는 모습이 분명했다.

“넌 누구냐?”

이우환은 차갑게 물었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렸다.

“이런, 바로 사라지려고 했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금장생은 검면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피가 남아 있는 부분은 다시 조운의 옷에 문질러 닦았다.

“검면에 수분이나 기름기가 남아 있으면 녹이 슬거나 기름막이 생겨서 악취가 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가급적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제 된 것 같네요.”

금장생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우환을 보고 말했다.

“손님입니다.”

“손님?”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천객 이우환, 나이 칠십이 세 무영무환술의 대가이자 일점혈의 전수자, 총 삼십 회 살행 중 실패는 단 한 번도 없었음. 오 년 전에 들은 건데 맞나 모르겠습니다.”

“나에 대해 연구를 한 게냐?”

“그런 건 아니고 누군가 반드시 넘어야 할 자라고 해서요.”

“넘어야 할 자라고 했다면…… 너도 자객이구나.”

“자객은 아닙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저 계집과는 어떻게 된 사이냐?”

“이 주루 주인과는 상관없습니다. 손님으로 왔다가 우연히 끼어든 것뿐입니다.”

“저들도 네가 죽였느냐?”

이우환은 시체를 가리켰다.

“내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점은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이 집 주인과 상관도 없는 자가 왜 나선 거냐?”

“이 집 주인에게는 관심이 없지만 당신 뒤에 있는 자들에게는 관심이 있어서요.”

“내 뒤에 있는 자들이면…….”

“화가 말입니다.”

금장생은 앞발을 내밀었다.

스윽!

순식간에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당신은 아주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허공으로 녹아들어 간 금장생이 말했다.

“왜 운이 좋다는 거냐?”

이우환은 내공을 끌어 올리며 물었다. 그는 금장생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단전을 완전히 개방하여 내공을 바닥까지 긁었다. 그리고 은신술을 펼쳤다.

그의 신형이 천천히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왜냐면 당신은 살려서 보낼 생각이거든요.”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금장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마워해야겠구나.”

이우환의 목소리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사방에서 들렸다. 두 사람은 허공에 몸을 숨긴 채 빠르게 움직여 다니며 상대의 허점을 노렸다.

하지만 작은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내 이목을 속일 정도면 평범한 자객은 아닐 터. 이름을 알 수 있느냐?”

“나중에 말해 드리겠습니다.”

차아!

이우환의 손이 번개처럼 뿌려졌다.

슉! 슉슉!

그의 손에서 별 모양의 암기 다섯 개가 좌측으로 쏘아졌다.

파앗!

암기를 뿌림과 동시에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하지만 금장생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이우환은 자리를 이동하면서 몸을 돌렸다.

‘으음!’

그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전방에서 금장생의 기척을 감지하고는 왼편으로 암기를 던졌다. 금장생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곧바로 전방을 공격했는데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은 것이다.

스윽!

바로 그때 그의 귓전에 또 다른 기척이 감지됐다.

그의 시선이 오른편으로 향했다. 기척이 감지된 건 환희궁 궁주 미우 뒤편이었다.

미우는 누워 있었다. 부상 때문에 정신을 잃은 건지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금장생의 위치를 찾아내는 데 미우를 이용하는 거였다. 이우환은 정면 대결로는 절대로 자신이 패할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에 온 목적은 환희궁 궁주 미우를 없애기 위해서다.

놈이 미우를 구하지 않으면 임무를 완수하게 되고, 미우를 구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면 그때 공격하면 된다.

파앗!

이우환의 신형이 미우를 향해 폭사됐다.

허공에 숨은 금장생을 없애기 위해서는 암기가 아니라 직접 공격하는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미우 앞에 도착한 그는 검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미우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허공을 가른 그의 검은 미우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

미우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의 모든 이목은 주위로 쏠려 있었다. 그의 시선이 슬쩍 자신의 검으로 향했다. 검날과 미우 목 사이 거리는 반 자. 허공에 숨은 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임무를 완성하는 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나타나라, 놈!’

바로 그때였다.

쐐액!

강한 바람 소리와 함께 붉은 광채 하나가 심장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잡았다. 놈!’

이우환은 검을 들어 올려 붉은 광채를 쳐 냈다. 기다리고 있던 상태라 검의 방향을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붉은 광채를 쳐 냄과 동시에 바닥을 찼다. 금장생을 향해 몸을 날리기 위해서였다.

푸욱!

바로 그때 아래쪽에서 섬뜩한 소성이 들렸다.

“컥!”

이우환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그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자신의 단전으로 새하얀 물체가 파고들어 가 있었다. 그건 바로 미우의 검이었다.

“우리 환희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에요.”

미우는 이우환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기, 기절한 게 아니었더냐?”

“적을 앞에 두고 기절할 수는 없잖아요.”

사실 그녀는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였다. 그녀를 깨운 건 금장생의 전음이었다. 곧 기회가 오니까 정신 차려라는 전음에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정신이 돌아왔다. 바로 그때 눈앞에 이우환이 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곳은 단전이었다.

죽여서는 안 된다는 말에 단전을 향해 검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내력을 쏟아부었다.

“빌어먹을!”

이우환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설마 허공에 숨은 자가 아니고 미우에게 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단전이 급격하게 비워지면서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저벅! 저벅! 저벅!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이우환은 고개를 들었다. 금장생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미우를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놀랍구나.”

“은원은 본인이 직접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약속대로 죽이진 않을게요.”

금장생은 미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우가 검을 뽑았다.

“컥!”

이우환은 비명을 내질렀다. 금장생은 지풍을 날려 천객을 지혈해 주었다.

“저, 정말로 살려 줄 거냐?”

이우환은 상처 부위를 감싸며 물었다.

“나는 한번 한 약속은 지키는 사람입니다. 대신 내가 한 말을 화가 가주에게 전해 주면 됩니다.”

“말해라.”

“가서 황금전가가 돌아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 말만 전하면 되느냐?”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전가라는 말을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우환은 황금전가 멸문에는 상관없다는 뜻이다. 굳이 손볼 이유가 없는 자였다.

“알았다.”

“가세요.”

금장생은 손을 휘저었다.

“반드시 전하겠다.”

이우환은 금장생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뒷걸음질 쳤다. 잠시 후 그는 방에서 나갔다.

“죽이지 마세요.”

금장생은 밖을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휙!

이우환이 나가고 잠시 후 빙향이 안으로 들어왔다. 혈전을 치른 듯 그녀의 손은 피로 범벅이었다.

“루, 루주님!”

빙향은 미우 앞으로 다가갔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누이.”

금장생은 얼른 말했다.

“왜?”

빙향은 금장생을 돌아보았다.

“몸속에 암기 여섯 개가 틀어박혀 있거든요.”

“그럼?”

“허공섭물을 이용해서 옮겨야 합니다.”

금장생은 미우 위로 양팔을 뻗었다. 그리고 내공을 끌어 올리면서 천천히 들어 올렸다.

미우의 동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침대로 갈 거야?”

빙향이 물었다.

“네.”

“치워야겠지?”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

먼저 침실로 들어간 빙향은 침대 위를 모두 치웠다. 곧 바닥의 나무판이 나왔다. 빙향은 이불로 먼지를 깨끗하게 닦았다.

금장생은 그 위로 미우를 조심스럽게 놓았다.

“생명엔 지장 없겠지?”

빙향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일부러 비껴 맞았으니까 목숨엔 지장 없을 겁니다.”

“비껴 맞았어?”

“삼천객을 상대하는데 비켜 맞은 것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저자들이 전설의 삼천객이야?”

빙향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맙소사.”

빙향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 전설의 자객이라 불리는 그들까지 나섰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따뜻한 물 두 통이 필요합니다, 누이.”

“알았어.”

“앵속도 필요하고요.”

“앵속?”

“암기를 빼내는 건 상당히 고통스럽습니다. 앵속은 아주 효과적인 마취젭니다.”

“그렇구나.”

빙향은 빠르게 움직였다.

곧 금장생 옆에 따뜻한 물이 들어 있는 물통 두 개와 깨끗한 수건과 앵속 가루가 놓였다. 물건을 놓아둔 빙향은 방을 정리하기 위해 침실에서 나갔다.

금장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탁자가 눈에 띄었다. 그쪽으로 가서 탁자를 끌어와 침대 옆에 두었다. 그리고 주머니 안에서 바타르로부터 받은 가방을 꺼내 오프 마법을 펼쳤다. 왼손을 가방 안으로 집어넣고 라를 불렀다.

―영감님!

―말해라.

―이 안에 치료제 같은 거 없습니까?

―치료제?

―외상과 내상을 치료해야 할 환자가 있어서요.

―깊은 상처냐?

―암기가 깊이 박혔습니다.

―그럼 포션이 있어야 한다.

―포션이 뭡니까?

―내외상 겸용 치료제라고 보면 된다. 무인들이 사용하는 금창약보다 수십 배 더 뛰어난 약이다.

―어떻게 생겼습니까?

―가운데 손가락만 한 크기의 병에 들어 있다. 보통 푸른색 액체…….

―저거군요.

금장생은 가방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가방 내부 오른편 위에 푸른색 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크기는 라가 말한 것처럼 가운뎃손가락만 했다.

―아주 좋은 냄새가 날 게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머리를 빼내고 포션의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병이 푸른색이 아니고 안에 들어 있는 액체가 푸른색이었다. 손가락으로 입구를 막고 거꾸로 들어 손가락에 약간 묻힌 후 맛을 보았다.

“맞네.”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영약에 버금갈 정도로 좋은 치료제였다.

포션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문득 뒤통수에 와 닿는 따가운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미우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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