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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78화 (278/524)

황금가 (278)

현재는 사상, 사화 등이 십대자객이란 이름으로 중원 최고의 자객이라 불리지만, 삼십 년 전만 해도 최고의 자객은 천객, 지객, 인객이었다. 강호무림은 그들 세 명을 합쳐 삼천객이라 불렀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들은 삼십 년 전 꺼진 듯 사라졌다. 많은 이들은 청부 나갔다가 죽임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시체를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그랬던 자들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 내가 천객 이우환이다. 다시 묻겠다. 환화 미우 맞느냐?”

오른편 노인이 말했다.

“알고 온 거 아닌가요?”

미우는 되물었다.

“그렇지.”

이우환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상대의 정체를 묻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없애야 할 자와 마주치면 늘 이름을 먼저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하면 살행을 시작했다. 그 습관이 아직 없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제 넌 죽는다.”

이우환은 내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다리부터 서서히 사라졌다.

“화가에서 왜 우리 환희궁을 없애려고 하는 거죠?”

화가란 말이 흘러나오자 이우환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아울러 사라지던 몸통이 다시 드러났다.

“우리가 화가에서 나왔다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

이우환은 물었다.

“저자가 그러더군요.”

미우는 조금 전 없앤 적 수뇌를 가리켰다.

“입이 무거운 녀석인 줄 알았는데…….”

“댁도 이유를 모르나 보죠?”

“나는…….”

이우환은 말끝을 흐렸다.

“성공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네요.”

미우는 양손을 뒤로 내밀었다.

창! 창!

뭔가 뽑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 그녀의 두 손에 검 손잡이가 잡혀 들었다. 특이하게도 그녀의 무기는 연검 두 자루였다.

연검을 쥔 미우는 연검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오른손에 쥔 연검의 중간 부분이 구부려지더니 미우의 배꼽 부분으로 나아갔다.

스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허리를 묶었던 끈과 속옷이 잘려 나갔다. 그러자 앞섶이 약간 벌어지면서 속살이 노출됐다.

“성공한 줄 알았다는 건 무슨 소리냐?”

“당신네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우리 환희궁을 치는 이유 정도는 말해 주지 않았을까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이우환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변했다.

‘역시…….’

미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가 성공 운운한 건 삼천객을 도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무도 흥분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여기서 삶을 끝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이 강하긴 하지만 나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아요.”

창!

늘어져 있던 연검 두 자루가 쭉 펴졌다.

그녀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왼팔을 들어 올렸다. 약간 빠른 동작 탓인 듯 옷자락이 좌우로 벌어지며 속살이 더욱 많이 드러났다.

‘으음!’

이우환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미우가 내딛는 발자국은 단순한 보법이 아니었다. 미우가 움직이는 순간 혈류가 빨라지고 난잡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곧 색공을 펼치고 있다는 뜻이다.

미우는 왼팔을 내밀고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차앙!

늘어져 있던 연검이 맑은 소리를 내며 기묘한 곡선을 그렸다.

―어떤 무공인지 아느냐?

이우환은 지객 세붕에게 전음을 보냈다.

―쌍류환살색무雙流幻殺色舞라고 하더군요.

―색공이란 말이구나.

―네.

지객은 고개를 끄덕였다.

―셋째야.

이우환은 셋째 인객을 불렀다. 셋 중 색공에 가장 취약한 사람이 셋째 조운이었던 것이다.

―네.

이우환의 예상대로 셋째 조운의 숨은 벌써 거칠어져 있었다.

―조심해라.

이우환은 경고의 말을 보냈다.

―나도 나이가 일흔이오. 내 걱정은 마시오.

―그래. 이제 시작하자.

―알았소. 그런데…….

조운은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러느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그러오.

―이상한 느낌?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이우환은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십 년 전에 살수계의 최고 자리에 올랐던 자신들이다. 그런 자신들의 이목에 걸리지 않고 주변에 숨어 있을 수 있는 자는 없다고 확신했다.

―아무래도 죽을 때가 다 돼서 그런지 환청이 들리나 보오.

―일에 집중하자.

―알았소.

조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지객 세붕과 인객 조운이 미우 뒤편 좌우측으로 이동했다. 세 사람은 미우를 가운데 두고 삼각형으로 선 상태였다.

하지만 미우는 그들의 움직임에는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는 자신의 춤에 집중했다.

차앙! 차앙! 차앙!

연검 두 자루는 물론이고 미우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어느 순간 그녀의 전신에서 뿌연 운무가 흘러나왔다. 운무는 곧 미우의 전신을 감쌌다. 하지만 몸을 숨길 정도로 짙지가 않아 안쪽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였다.

펄럭!

입고 있던 나삼이 아래로 떨어졌다. 나삼은 나풀거리며 실내를 유영해 다녔다. 완전하게 알몸이 됐지만 미우의 몸은 노출되지 않았다. 몸을 가린 운무 때문이었다. 분홍색 운무는 특이했다. 가슴과 하체는 꽤 짙어 나삼을 입은 것처럼 은은하게 보이고 다른 부분은 좀 더 선명하게 보였다.

빙글!

미우의 신형이 빠르게 회전했다.

그러자 운무가 흩어지며 모든 게 다 노출됐다. 미우를 포위하고 있던 세 사람의 신형이 미우의 가슴과 하체를 훑었다. 보려고 의도한 게 아니고 가려져 있던 곳이 확 열리자 시선이 저절로 옮겨 간 거였다.

“흑!”

“헉!”

“음!”

세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세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조금 전 보았던 걸 찾았다. 하지만 이미 운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조운은 조바심이 났다.

그는 입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미우의 하체를 노려보았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미우의 겨드랑이였다. 춤을 추느라 팔을 들어 올린 상태였는데, 불룩 솟은 옆 가슴이 위아래로 출렁거렸다. 그의 내부가 급격하게 진탕됐다.

“흐흡!”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스윽!

그때 미우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조운 앞으로 간 미우는 운무가 걷혀 완전한 알몸 상태였고, 두 자루의 연검 또한 허리 뒤편으로 숨긴 채였다.

조운은 자기도 모르게 미우를 향해 다가갔다.

―정신 차려라!

이우환의 외침이 고막을 때렸다.

“헉!”

조운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스악!

바로 그때 연검의 끝이 그의 심장을 향해 쏘아졌다.

파앗!

조운은 급하게 발을 튕겼다.

슥!

간발의 차로 연검은 작은 상처만 남기고 멀어졌다.

“죽일 년!”

조운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는 멀어지는 미우를 쫓아 몸을 날렸다. 앞으로 내달리는 그의 몸에서는 진득한 살기가 넘실댔다.

순식간에 미우 앞에 도착한 그는 검을 쭉 찔러 넣었다.

바로 그때였다.

슥!

등을 보이고 있던 미우가 조운을 향해 돌아섰다. 어느새 앞을 가리고 있던 운무는 걷힌 채였다.

“허억!”

조운의 눈이 커졌다. 미우의 알몸을 보는 순간 검을 들고 있던 팔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대신 빠져나간 힘이 하체로 쏠렸다. 그의 성기는 옷을 찢고 나갈 것처럼 발기했다.

“이, 이건…….”

“피해라!”

이우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아래로 내렸던 검을 걷어 올렸다.

스악!

“악!”

비명과 함께 미우의 몸통이 쩍 갈라졌다.

“아, 안 돼!”

조운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건 환영이다!”

이우환은 고함을 내지르며 득달같이 내달렸다. 미우의 검이 조운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던 거였다. 조운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차앙!

이우환은 간신히 미우의 검을 막아 냈다. 하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이우환이 검으로 막은 부분은 연검의 중간 위치였다. 진로가 막히자마자 연검은 구십 도로 꺾여 조운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조운은 급하게 고개를 틀었다.

푸욱!

연검의 끝은 간발의 차로 옆 목을 파고들었다.

“커억!”

조운은 비명과 함께 몸을 튕겼다.

다행히 목숨을 구했지만 그의 목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차앗!”

이우환은 미우의 연검을 막았던 검을 걷어 올리면서 왼손을 내질렀다. 그 손바닥에서 쏘아진 장풍이 미우의 가슴을 때렸다.

“악!”

미우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밀렸다.

파앗!

하지만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고 쌍류환살색무를 펼쳤다. 그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분홍색 운무가 전신을 가렸다.

“이젠 어림없다!”

이우환은 고함을 내지르며 미우를 향해 쏘아졌다. 일 장을 나아가던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드디어 그의 주특기인 자객술을 펼친 것이었다.

스악!

이우환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 곳은 미우의 머리 위였다. 허공에 거꾸로 선 채, 검 끝으로 미우의 정수리를 겨냥하고 내리꽂히는 중이었다.

미우는 오른팔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왼편으로 움직였다.

파앗!

바로 그때 차가운 기운이 가슴을 향해 쏘아져 왔다. 조금 전부터 몸을 숨긴 지객 세붕의 무기였다. 세붕의 무기는 검이나 도가 아니라 손잡이의 길이가 반 장가량 되는 갈고리였다. 낫 모양의 갈고리는 안쪽과 등에 날아 서 있어 어느 곳으로든 공격이 가능했다. 세붕이 이번 공격에 사용한 부분은 갈고리 끝이었다. 날카로운 예기를 뿌린 갈고리 끝은 미우의 겨드랑이를 향해 나아갔다.

미우의 두 다리가 쫙 펴졌다. 그러자 상체가 쑥 꺼졌다. 그 상태에서 상체를 뒤로 눕히고 왼손에 쥐고 있던 연검 끝으로 바닥을 찍었다. 구부러져 있던 연검이 쫙 펴지고 그녀의 신형도 거꾸로 솟구쳤다.

그녀가 솟구친 위치는 위에서 떨어지던 이우환 등 쪽이었다. 이우환이 왼팔을 뿌린 건 그때였다.

그의 손에서 별 모양의 암기가 발출됐다. 암기는 손톱만 했다.

미우의 움직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동작처럼 이어졌지만 세붕의 갈고리는 물론이고 이우환의 공격도 완벽하게 피해 내지 못했다. 겨드랑이로 나아갔던 갈고리 끝은 미우의 옆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우환이 던진 별 모양의 암기는 단전 아래 음모 속으로 박혔다.

“악!”

미우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그녀는 바닥을 짚고 있던 연검을 튕겨 이우환 일 장 뒤편으로 내려섰다.

척!

휙!

이우환은 왼팔을 휘두름과 동시에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곧바로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슉! 슉슉!

다섯 개의 암기가 미우를 향해 쏘아져 갔다.

미우는 이를 악물었다.

단전 아래쪽에 암기가 박혀 있고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밀려오곤 있지만, 움직임에 크게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그녀가 얼굴을 찌푸린 건 저 앞에서 날아오는 암기와 허공에 숨은 이우환, 그리고 뒤에서 몸을 날려 오는 지객 셋 중 누구를 상대할 거냐 하는 거였다.

‘지객이 먼저다.’

결정을 내린 순간 내공으로 몸을 보호했다.

푹! 푹푹! 푹푹!

암기가 틀어박히는 순간 바닥을 차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가 뒤편으로 날려 가는 건, 그녀의 의지가 아니라, 천객이 던진 암기에 실려 있던 힘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끝이다, 계집.’

세붕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갈고리를 번쩍 쳐들었다. 정수리부터 시작해서 몸을 갈라 버릴 참이었다. 미우가 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갈고리를 힘껏 내리그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척!

연검이 구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날카로운 느낌이 심장으로 쏘아져 왔다.

푸욱!

섬뜩한 소성과 함께 연검은 세붕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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