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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75화 (275/524)

황금가 (275)

어대상은 다시 입을 닫았다. 그러고는 자기 앞에 따라진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우리 하오밀문이 보잘것없는 문파라고 놀리는 겁니까?”

어대상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금장생을 쏘아보았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사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문주나 하오밀문을 모욕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하면 천이단을 임대하겠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완전히 제 소유로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천이단을 통해 각 지역에 있는 제 사업체의 수뇌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니까…….”

금장생은 자신의 생각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의 생각은 대륙황가 유통망을 이용해서 천주를 운송하는 것과 비슷했다. 각 성에 있는 사업체와 최단시간 내에 연락을 주고받을 수만 있으면 된다.

금장생의 설명이 끝나자 어대상을 비롯한 하오밀문 수뇌들의 얼굴이 펴졌다. 금장생의 말대로라면 하오밀문에는 크게 손해날 게 없었다.

“내가 바라는 건 한 가집니다. 내 사업체에 대한 문건은 천급으로 처리해 주는 겁니다.”

“천급이라고 하였습니까?”

어대상의 눈이 커졌다.

천급 소식은 그야말로 시간을 다투는 급한 일일 경우에만 사용하는 전서구로 하오밀문에서도 사용 빈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운남성에 홍수가 났다고 했을 때 그 소식을 빨리 접한 사업가는 재빨리 운남성으로 곡식과 생필품을 운송하게 됩니다. 가장 빨리 운송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그래서 사업가들에게는 ‘시간이 곧 돈이다.’라고 말합니다.”

“알았습니다. 가주에 대한 건은 천급으로 처리하게 해 주리다.”

어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비용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지요. 나는 계약 기간을 오 년으로 하고 싶습니다. 금액을 말씀해 보십시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대상은 석중관을 돌아보았다. 얼마를 달라고 해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일 년에 십만 냥씩 오십만 냥이면 어떻겠습니까?

석중관은 전음으로 말했다.

―그렇게 많이 주려고 할까?

어대상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천급을 이용하긴 하지만 빈도수가 그리 많을 것 같지가 않다. 일 년에 열 번을 이용한다면 한 번 이용료가 만 냥이다.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이 얼마나 이용할지 알 수는 없잖습니까?

―일단 밀고 나가 보자고?

―네.

―알았다.

어대상은 금장생을 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일 년에 십만 냥씩 총 오십만 냥 어떻습니까?”

“오십만 냥이라…….”

금장생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는 품속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그것은 이곳으로 오기 전에 미리 만들어 놓은 임대계약서였다.

“뭡니까?”

“계약섭니다.”

“미리 작성해 온 겁니까?”

어대상은 계약서를 읽어 보며 물었다.

“계약 기간하고 금액을 적고 양측이 수결하면 계약이 성사됩니다.”

“철저하군요.”

어대상은 웃으며 계약서를 석중관에게 건넸다.

“장사꾼이잖습니까.”

“그렇군요.”

어대상은 석중관을 보았다.

그때 석중관은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고 있었다. 금액과 기간만 써 넣으면 될 정도로 계약서는 완벽하게 작성된 상태였다.

“금액과 기간을 써 넣고 인장과 지장을 찍고 수결을 하시면 됩니다.”

석중관은 계약서를 어대상 앞으로 놓았다.

어대상과 금장생은 계약서를 마무리했다.

“천이단 대원 한 명을 제게 붙여 주시면 좋겠는데 가능하겠습니까? 그분의 보수는 제가 드리겠습니다.”

계약서를 챙긴 금장생이 물었다.

“당연히 그렇게 해 드려야지요. 내일 철 대목이 갈 때 함께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금장생은 도쿠가와 신켄을 보았다.

“돈을 가져올까요?”

도쿠가와 신켄이 물었다.

“자루 다섯 개만 가져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에서 나갔다. 잠시 후 자루 다섯 개를 가지고 올라와 하오밀문 수뇌들 옆에 놓았다.

“전표가 아니군요.”

“종이 쪼가리보다는 묵직한 현금을 더 선호해서요. 모두 금으로 준비했습니다.”

“쿡! 가주는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드는 분입니다그려.”

어대상은 활짝 웃었다.

“문주님도 현금을 좋아하시는군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현금 좋아하는 사람치고 사기꾼은 없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하하하! 나도 그렇습니다, 문주님. 그리고 돈에 대한 확인은 철저하게 하는 게 우리들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금장생은 크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돈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지요. 총관!”

어대상은 석중관을 불렀다.

“네, 문주님.”

“내는 돈을 확인할 테니까 접대는 네가 해.”

“돈은 제가 확인해도…….”

“내게서 돈 세는 즐거움을 빼앗아 가려고?”

어대상은 석중관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 알겠습니다.”

석중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대상은 돈 자루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금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자루 하나를 헤아려 십만 냥을 확인한 어대상은 다시 자기 자리로 와 앉았다.

“이제 축배를 들어야겠지요?”

금장생은 손바닥을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어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빈 술잔을 채웠다.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일행은 크게 소리치고는 건배를 했다.

“이제 계약은 마무리됐으니까 이걸 드려도 되겠군요.”

금장생은 품속에서 책 두 권을 꺼내 어대상 앞으로 밀었다. 표지가 아래쪽으로 향해 있어 어떤 책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건 뭡니까?”

어대상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선물입니다.”

“선물이라고요?”

어대상은 책을 똑바로 했다.

책 제목은 선풍강과 삼십육혈부였다.

“무공비급이군요.”

어대상은 놀란 눈으로 금장생을 보았다.

“우연한 기회에 얻은 건데 내게는 굳이 쓸모가 없어서요.”

선풍강과 삼십육혈부는 풍마존의 선풍마강과 마가의 여덟 관문 중 목전에서 얻은 삼백육십혈부의 변형이었다.

“비급이라면 우리에게도…….”

비급을 넘겨 보던 어대상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는 장사치가 내놓은 비급이라 특이한 선물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첫 장을 넘긴 순간 자신의 생각이 완전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그는 입을 쩍 벌린 채 계속해서 책장을 넘겼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마지막 장까지 읽은 그는 멍한 얼굴로 탁자 위를 바라보았다. 비급에 적힌 무공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무공보다 더 강했다.

“이, 이게 뭡니까?”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 어대상은 물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이런 건 선물이 될 수 없습니다.”

“문주님 뭔데 그러십니까?”

서노 단걸이 물었다.

“직접 보시오.”

어대상은 단걸에게 책을 건넸다.

“무공비급 같은데…….”

단걸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무공 구결을 읽었다. 그 역시 어대상과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는 다 읽지도 않고 어대상과 금장생을 번갈아 보았다.

“내가 왜 놀랐는지 알겠는가?”

어대상이 말했다.

“이, 이건 보통 무공이 아닙니다. 신공입니다.”

단걸은 비명처럼 소리쳤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그사이 어대상은 삼십육혈부를 읽고 있었다. 삼십육혈부 또한 선풍강에 비해 부족함이 없었다.

“혹시 이 무공들…….”

어대상은 금장생을 보았다.

“나도 익혔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공을 익힌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군요.”

무인의 내공이 반박귀진 경지에 이르면 눈에서 쏘아져 나오던 신광이 사라지고 평범한 사람처럼 된다고 하였다. 어떠면 금장생이 그런 경지에 올라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공이 일천해서 드러나지 않는 거지 반박귀진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셨군요. 아무튼 이 무공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겁니까?”

어대상은 무공비급을 가리켰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제 주는 겁니까?”

어대상은 물었다.

“왜 이제 주느냐는 건 무슨 뜻입니까?”

금장생은 되물었다.

“내 말은 수결 전에 이걸 내밀었으면 계약이 훨씬 더 편하고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겠느냐는 말입니다.”

“계약은 명예와 이름을 걸고 맺는 신성한 약속입니다. 무공비급 같은 뇌물이 끼여서는 안 되지요. 그래서 비급을 꺼내 놓지 않았던 겁니다.”

“만일 우리가 가주의 제안을 거절하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나는 우리 계약이 성사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허허허! 그랬구려.”

어대상은 웃고 말았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마셔 보도록 하시죠.”

“그렇게 하시죠.”

금장생과 하오밀문 수뇌 일행은 담소를 주고받았다. 어대상이 하는 이야기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정보가 많았다. 하지만 어대상은 금장생이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야기가 끝난 건 자시子時 중中 무렵이었다.

“다음엔 내가 사겠네, 아우. 하지만 나는 아우처럼 부자가 아니라서 이런 고급 술집에서 사지 못하네.”

어대상은 방에서 나가며 말했다.

“저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형님. 그럼 살펴 가십시오.”

금장생은 어대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곧 자리를 마련하겠네. 그럼 잘 가게.”

어대상은 금장생 어깨를 가볍게 치더니 방에서 나갔다. 그에 이어 사대장로와 석중관이 돈주머니를 걸머지고 방을 나갔다.

“휴―우!”

금장생은 한숨을 내쉬고는 주저앉듯 그 자리에 앉았다.

“대단하십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혀를 내둘렀다. 금장생이 사람을 다루는 솜씨가 세 배 가까이 나이를 더 먹은 자신보다 더 뛰어났다.

“뭐가요?”

“뇌물을 나중에 쓰실 줄은 몰랐습니다.”

“계약서에 수결하기 전에 주었더라면 더 편하게 계약했을지도 모른다는 건가요?”

“네.”

“그렇게 했더라면 계약하는 걸로 끝났을 겁니다.”

“더 큰 걸 얻어 내기 위해 나중에 준 거란 말입니까?”

“이제 하오밀문 문주는 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것 같은데 영감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쿡!”

도쿠가와 신켄은 피식 웃었다.

금장생의 말이 맞다. 이제 어대상은 물론이고 사대장로와 총관 석중관은 금자생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금장생이 부탁하면 가장 먼저 처리해 줄 게 분명하다.

금장생은 돈 오십만 냥과 비급 두 권으로 하오밀문을 통째로 얻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을 얻 어낸 것이다.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도 그만 일어날까요?”

“친구분 만나실 거 아닙니까?”

“먼저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아직 술이 남았습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술병을 들어 올렸다.

“대작을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 친구들을 워낙 오랜만에 만나서요.”

“가 보십시오.”

“그럼 끝나고 여기로 오겠습니다.”

금장생은 문 옆에 늘어진 줄을 잡아당겼다.

곧 사람이 들어왔다.

“총관을 만나고 싶습니다.”

금장생은 정중하게 말했다.

“인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절 따라오세요.”

일하는 사람은 인실로 금장생을 안내했다. 인실은 한 층 아래였다.

“여깁니다.”

“고맙습니다.”

금장생은 목례를 하고 인실 문을 열었다. 안에는 빙향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듯 옷차림은 수수했다.

“어서 와!”

빙향은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친구들…… 응?”

금장생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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