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74)
뇌물을 먹이는 법
“무인들 상식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우리 장사꾼들의 상식으로 임대는 효율적인 투자 방법 중 하나입니다.”
금장생은 웃으며 말했다.
“사업을 해?”
“지금 제 직위는 회장님입니다.”
“회장님.”
“사업체를 몇 개 가지고 있거든요.”
“대물 너 성공했구나?”
빙향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래도 역시 축하해 주는 사람은 청자 누이뿐이네요.”
“청자가 아니고 빙향이야.”
“개명했어요?”
“이런 곳에 있으려면 세련된 이름이 있어야 하거든.”
“좋은 이름도 많은데 빙향이 뭡니까?”
“차가운 꽃 같지 않아?”
“차가운 꽃?”
“청초하면서 고고하고, 짙은 향기로 화려함을 뽐내는 설빙화 말이야.”
“설빙화란 꽃도 있어요?”
“내가 지어낸 거야. 괜찮지 않아?”
“그런대로 괜찮네요. 그런데 중원엔 언제 왔어요?”
“네가 죽고 바로 중원으로 가는 배를 탔어. 그런데 중원 생활도 쉽지 않더라고. 별수 없이 내 최후의 보루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지.”
“최후의 보루?”
“여자의 최고의 무기가 뭐겠니?”
“몸?”
“응! 무공으로는 그렇게 열리지 않던 취업의 문이 몸을 내미니까 바로 열리더라.”
“그럼 여기는…….”
“다섯 번째 직장이야.”
“총관이 됐으니까 성공한 거네요.”
“그런 셈이지. 그런데 대물 넌 어떻게 지냈어?”
“대물이 뭡니까, 대물이.”
“대물 맞잖아.”
“회장님이라니까요?”
“다른 사람에겐 회장님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대물이야. 아무튼 일은 언제 끝나?”
“술 한잔 사 주려고요?”
“술은 성공한 회장님이 사야 하는 거 아냐?”
“여긴 너무 비싸잖아요.”
“다른 곳에서 마시면 되지.”
“좋아요. 일 끝나면 봐요.”
“다른 녀석들도 부를까?”
“누구누구 있는데요?”
“전광, 삭도, 무면.”
“그들도 함께 왔어요?”
“응.”
“나머지는…….”
“전부 열 명이 살아남았는데 여섯은 그쪽으로 돌아섰어.”
“그래서 중원으로 온 거군요.”
“그곳에서는 살 수가 없었으니까.”
“아무튼 잘했어요. 이따가 끝나고 봐요.”
“안내해 줄게.”
빙향은 앞장섰다.
잠시 후 금장생은 천실로 들어섰다.
차를 마시고 있던 하오밀문 일행이 고개를 돌려 금장생을 보았다.
“쉬십시오, 대인.”
빙향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반갑습니다. 문주께 서찰을 올렸던 황금가 가주 장생입니다.”
금장생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반갑소. 나는 하오밀문 문주 어대상이오.”
상대가 서서 인사를 하는데 초면에 앉아서 받을 수도 없었다. 어대상은 일어나서 포권을 취했다.
“저분들은…….”
금장생은 어대상 옆에 있는 자들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이 사람은 하오밀문 총관이오.”
어대상은 석중관을 가리켰다.
“처음 뵙소, 가주. 나는 하오밀문 총관 석중관이오.”
석중관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는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저들은 하오밀문 사대장로요.”
이번에는 장로들을 가리켰다.
“나는 동노 오만상이오.”
“나는 서노 단걸이오.”
“나는 남노 탁보상이오.”
“나는 북노 한사요.”
네 장로는 바로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장생입니다.”
금장생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도쿠가와 신켄을 소개했다.
“이 사람은 제 호위 겸 마차를 몰아 주고 있습니다.”
“처음 뵙습니다. 신현입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일행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응?’
어대상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어디 가서 무공 자랑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약하진 않다. 그런데 신현이라는 자의 무공 정도는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했다.
‘뭔가 있는 자라는 건가?’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자, 이제 소개도 끝났으니까 앉도록 하지요.”
금장생은 문 옆으로 가서 줄을 잡아당기고는 자리에 앉았다. 곧 문이 열리고 일하는 사람이 들어왔다.
“음식 준비는 다 됐을까요?”
금장생은 물었다.
“말씀하시면 바로 나올 겁니다.”
“가져다주세요.”
“알겠습니다.”
직원은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음식이 안으로 들어왔다. 일인당 한 그릇씩 나오는 게 아니라 커다란 접시에 담겨 나오자 어대상을 비롯한 하오밀문 일행은 당황했다.
―총관!
동노 오만상이 전음으로 석중관을 불렀다.
―네.
―여기 얼마짜리라고 했는가?
―일인당 천오백 냥이라고 들었습니다.
―천오백 냥이나 처받고 딸랑 저거 하나란 말인가?
―글쎄요. 이곳엔 와 본 적이 없어서…….
그때 석중관과 오만상의 눈에 금장생이 앞 접시에 음식을 덜어 먹는 모습이 보였다. 금장생은 딱 메추리 알만큼만 덜어 자기 앞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오만상은 의아한 눈으로 금장생을 보았다.
“오늘 한번 배터지게 먹어 볼 참입니다.”
금장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 자식 배가 쥐똥만 한가 보네, 총관.
―그러게 말입니다.
“안 드십니까?”
여섯 사람이 전부 자신만 쳐다보자 금장생이 말했다.
“그걸로 누구 입에 갖다 붙이려고…….”
어대상이 말했다.
“전채는 조금만 먹어야 합니다. 전에 어떤 사람을 따라서 고급 음식점에 간 적이 있는데, 저는 맨 처음 나온 녀석을 무지막지하게 먹어 버렸습니다. 그래 놓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아십니까?”
―저 자식 말 들었는가?
오만상은 단걸에게 전음을 보냈다.
―들었네.
―저 녀석도 두 번째라니까 그렇게 쫄 필요 없네.
―누, 누가 쫄았다는 건가?
―지금 쫄고 있잖는가?
―난 쫀 적 없네.
“왜, 왜 후회를 했다는 거요?”
어대상은 말을 더듬었다.
“아 글쎄, 음식이 쉬지 않고 나오지 뭡니까? 그것도 두 시진 동안이나요.”
“지, 지금 두 시진이라고 했습니까?”
어대상의 말투가 공대로 바뀌었다.
“네. 그런데 정말 슬펐던 건 한 시진 정도 먹고 나서부터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왜 먹지 못했다는 겁니까?”
“더 먹으면 배가 터져 버릴 것 같았거든요.”
“그, 그러니까…….”
“그때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끼당 천 냥이 넘는 고급 요릿집으로 가게 되면 딱 메추리 알만큼만 먹기로요. 오늘은 이 집에서 나온 음식을 전부 맛보고 말 겁니다.”
“하하하! 일리가 있습니다그려.”
어대상은 크게 웃었다. 금장생도 처음이나 다름없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자 위축됐던 마음이 원래대로 풀어졌다.
“자, 우리도 듭시다.”
그는 자기가 주인처럼 음식을 가리켰다.
“나는 가주보다 배가 더 크니까 달걀만큼 덜겠습니다.”
오만상은 크게 한 덩어리를 덜었다.
“한 가지 제안하겠습니다.”
음식을 다 먹은 금장생이 말했다.
“말하십시오.”
어대상 일행은 모두 금장생을 보았다.
“지금부터 음식이 다 나올 때까지 일절 일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금장생을 바라보는 어대상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얹혔다.
“음식이 끝장날 때까지 오로지 먹는 데만 집중하자는 겁니다. 요리가 죽나 내가 죽나 한번 해보자는 거지요.”
“가주!”
어대상은 금장생을 보았다.
“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아, 아닙니다, 가주.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격하게 찬상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저는 지금부터 요대를 풀겠습니다.”
“나는 벌써 풀었습니다, 가주.”
어대상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 도쿠가와 신켄 때문에 생겼던 경계하는 마음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금장생의 말대로였다.
음식은 쉬지 않고 나왔다. 거짓말을 좀 보태면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나왔다고 해야 했다.
나온 음식들 또한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일행은 전투를 하는 것처럼 음식을 먹었다. 말 그대로 폭풍 흡입이었다.
음식과 전투에서 가장 먼저 패한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나는 항복입니다.”
금장생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러났다. 음식을 먹기 시작한 지 한 시진 만이었다. 두 번째로 젓가락을 놓은 사람은 도쿠가와 신켄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먹네요?”
금장생은 도쿠가와 신켄을 보며 말했다.
“이런 음식을 먹어 본 적이 너무 오래돼서 무리를 좀 했습니다.”
“여긴 조선에서 나는 산삼주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술 들어갈 배는 남겨 두었겠지요?”
“물론입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산삼주란 말이 떨어지자 정신없이 젓가락질을 하던 여섯 명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조선 산삼이 몸에 좋다는 건 그들도 알고 있었다.
“지금 산삼주라고 하였습니까?”
어대상이 물었다.
“산삼주도 있고 빙설주, 천참주 등 몸에 좋다는 술은 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술에 따라 나오는 안주들 또한 대부분 보양식이거나 정력제고요.”
“험! 배가 제법 부르군요. 좀 쉬었다가 먹어야겠습니다.”
어대상을 비롯한 하오밀문 일행은 일제히 젓가락을 놓았다.
“술을 달라고 할까요?”
금장생은 어대상을 보며 물었다.
“그럽시다.”
어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은 곧바로 줄을 잡아당겨 술을 주문했다. 술이 나오는 것도 음식과 비슷했다. 갖가지 종류의 술이 안주와 함께 나왔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술이 어느 정도 돌자 어대상이 말했다.
“그러지요. 제가 문주를 청한 건 두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목수를 구하기 위해섭니다.”
“목수요?”
“네. 내가 지금…….”
금장생은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어대상 앞으로 내밀었다. 그건 그가 짓고자 하는 표국 건물의 대략적인 설계도였다.
“건물 설계도군요.”
어대상이 말했다.
“정확한 건 아니고 계략적인 겁니다.”
“건물이 총 열 개 동이군요.”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주께서는 이 건물을 지을 목수를 구해 달라는 겁니까?”
“하오밀문에는 뛰어난 목수가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목수는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어대상은 석중관을 돌아보았다.
“철 대목이 있습니다.”
“맞다. 철목광이면 되겠구나.”
어대상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어렸다.
“일을 잘하시는 분인가 보군요.”
금장생은 석중관을 보았다.
“제가 장담하건대 중원에서 철 대목보다 뛰어난 목수는 없습니다.”
석중관은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그분은 언제 만날 수 있습니까?”
“머물고 계신 곳을 알려 주면 내일 거기로 가라고 하겠습니다.”
“나는 대안장에 머물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점심 때 찾아뵙도록 말해 놓겠습니다.”
석중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용은 그분을 만난 자리에서 상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금장생은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내가 문주님을 뵙자고 한 건 바로 두 번째 용건 때문이었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일인가 보군요.”
“저보다는 하오밀문에 중요한 일입니다.”
“하오밀문에 중요한 일이라면…….”
어대상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앞으로 삼 년 동안 하오밀문의 천이단을 임대하고 싶습니다.”
“…….”
어대상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눈만 껌뻑였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임대라고 하였습니까?”
“네. 분명히 임대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