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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73화 (273/524)

황금가 (273)

금장생 일행이 정주에 도착한 건 태백산을 떠난 지 보름 후였다.

금장생은 곧바로 만나기로 하였던 객잔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객잔 안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인사를 했다.

객잔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자들은 모두 혈가 무인들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곧 도쿠가와 신켄이 다가왔다.

“모두 들어갈 곳이 있던가요?”

“이곳 외에도 객잔 다섯 곳을 더 잡았습니다. 집터 자리에 천막도 쳤고요.”

“춥지 않던가요?”

“견딜 만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천막에서 자는 건 돌아가면서 하고 있습니다.”

“좋아요.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목수들을 불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손을 살짝 들었다.

그러자 사십 대 중반 사내가 금장생 탁자로 왔다. 사내는 중원인이었다.

“어산광이라고 합니다.”

사내는 금장생에게 인사를 했다.

“혈가에서 건축을 담당했던 친굽니다.”

도쿠가와 신켄이 사내에 대해 설명을 했다.

“목수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금장생은 어산광에게 물었다.

“건축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자들은 여든 명입니다.”

“터를 둘러보아서 알겠지만 총 백만 평 정돕니다. 터 안에는 언덕과 연못도 있고요.”

“백만 평이라고요?”

어산광은 깜짝 놀랐다. 그렇게 넓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네.”

“건물 한두 채라면 모를까, 그 정도 규모면 제 능력 밖입니다. 큰일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어산광은 솔직하게 말했다.

하라면 못 할 것도 없지만 백만 평이나 되는 대지에 건물을 채울 자신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목수는 내가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여러분은 집터를 정리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어산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은 바로 식사를 주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나갈 준비를 했다.

“함께 갈래요?”

금장생은 도쿠가와 신켄을 보며 말했다.

“제가 필요하십니까?”

“격식을 좀 차려야 하는 자리라서요.”

“하인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마차를 한 대 구입할 생각입니다.”

“마차요?”

“벌여 놓은 일이 많아서 한곳에 안주할 수가 없거든요. 사업이 안정될 때까지는 발에 땀나게 뛰어다녀야 합니다.”

“그럼 마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할 때도 있겠군요.”

“숙식은 물론이고 업무도 봐야 합니다.”

“침대와 탁자는 필수겠네요.”

“네.”

“가시죠.”

“그러시죠.”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시장으로 향했다.

* * *

머리 정수리 부분은 듬성듬성 빠졌고 눈은 아주 작았다.

주먹을 붙여 놓은 것처럼 코는 크다. 주먹코란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이자를 보면 될 것 같았다.

주먹코 아래쪽에 붙은 입은 메기처럼 크고 입술은 도톰하다.

입꼬리 살짝 위에서 팔자로 난 수염은 오랫동안 다듬지 않은 듯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입고 있는 옷은 낡기는 했지만 수염처럼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평범해 보이고 또 어떻게 보면 특이해 보이는 이 사람은 하오밀문의 문주 어대상이었다.

어대상은 강호에 손발을 뻗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여 팔비팔각이란 별호로 불렸다.

어대상의 앞 탁자에는 서찰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점심 무렵 온 서찰이었다.

어대상은 서찰로 시선을 주었다.

먼저 서찰로 인사를 드리게 됨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긴히 의논할 일이 있어 문주님을 청하니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장소는 환희루 천실입니다.

시간은…….

황금가 가주 장생 배상

서찰을 다 읽을 즈음 커다란 머리를 가진 자가 들어왔다.

하오밀문 부문주 대뇌 석중관이었다.

“어떤 자인지 알아봤느냐?”

어대상은 석중관을 보며 물었다.

“지금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당장 몇 가지 나온 건, 서안의 잡화점인 황금장과 낙양의 황금철장 주인이라는 겁니다.”

“구멍가게 사장이란 말이구나.”

“그게, 구멍가게라고 하긴 힘듭니다.”

“왜?”

“낙양의 황금철장은 낙양 전역의 대장간을 부르는 명칭입니다.”

“낙양에 있는 모든 대장간이 한 사람 소유란 말이냐?”

“네.”

“하면 황금장은?”

“황금장 역시 섬서성에서 규모가 가장 큽니다. 매출도 엄청나고요.”

“한마디로 성공한 사업가라는 거네.”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그자가 왜 날 보자고 하는 거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석중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앞에서 머리 젓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글쎄, 그게…….”

석중관은 머리를 긁적였다.

“제발 부탁이다. 내 앞에 있을 때는 절대로 머리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둬. 아니면 살을 좀 찌우든지. 알았냐?”

“알겠습니다.”

석중관은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얼른 멈췄다.

“잘했다. 그러니까 장생 그자는 무인은 아니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몇 시라고 했더냐?”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가서 실컷 먹고 오면 되겠구나.”

어대상은 히죽 웃었다.

“저도 살이 찌고 싶습니다, 문주님.”

“함께 가자고?”

“방금 문주님께서도 살 좀 찌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둘이 가서 배 터지게 먹고 오자 이거냐?”

“환희루는 정주에서 가장 고급 음식점이면서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제 그런 곳에 가서 음식을 먹어 보겠습니까?”

“좋다, 함께 가자.”

어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들도 부를까요?”

“장로?”

“우리만 얻어먹고 오면 입이 이만큼 나올걸요. 한동안은 말도 잘 안 들을 거고요.”

석중관은 자신의 입을 쭉 늘렸다.

“좋다, 까짓것. 내가 사는 것도 아닌데. 장로들 전부 불러.”

“알겠습니다.”

석중관은 활짝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노인 네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이 둥글고 뚱뚱한 노인과, 오척단구 노인, 꼽추 노인 그리고 장대처럼 크고 마른 노인이었다.

둥글고 살찐 노인은 동노 오만상이고 오척단구 노인은 서노 단걸, 꼽추 노인은 남노 탁보상, 키가 크고 마른 노인은 북노 한사고로, 이들은 하오밀문 사대장로였다.

“먹으러 간다면서요.”

동노 오만상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혼자만 오라고 했는데 장로들 생각이 나서 그럴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부른 겁니다.”

“감사합니다, 문주. 그래도 우리를 생각해 주는 사람은 문주뿐입니다.”

서노 단걸이 배를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알면 됐습니다. 갑시다.”

어대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오밀문 문주인 어대상 일행이 환희루에 도착한 건 한 시진 후였다.

장생이란 이름으로 천실에 예약돼 있다고 말하자 안에서 책임자로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저는 환희루 총관 빙향입니다. 예약하신 분은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는데 먼저 가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엄청나네.’

어대상은 혀를 내둘렀다.

총관의 미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껏 많은 여자를 보았지만 총관보다 더 예쁜 여자는 보지 못했다.

게다가 상당한 무공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들어가서 기다리겠네.”

석중관이 정중하게 말했다.

“따라오십시오.”

빙향은 몸을 돌려 앞서갔다.

꿀꺽!

어대상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얼음 향기라는 이름과 다르게 빙향의 뒷모습은 숨이 막힐 정도로 뇌쇄적이었다.

어대상을 비롯한 여섯 명의 시선은 빙향의 엉덩이에 꽂혀 떠날 줄을 몰랐다.

늙은 늑대 여섯 마리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엉덩이만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빙향은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천실은 사 층에 있었다.

이십여 명이 한꺼번에 먹고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방은 넓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저기 있는 줄을 잡아당겨 주십시오.”

빙향은 출입문 오른편에 늘어져 있는 줄을 가리켰다.

“차를 한잔하고 싶네.”

석중관이 먼저 차를 주문했다.

“기본적인 것들은 바로 나올 겁니다. 그런데…….”

빙향은 말끝을 흐렸다.

“왜 그러는가?”

석중관은 물었다.

“예약하신 분이 말하길, 자신 일행 두 분을 포함해서 세 사람이라고 해서요.”

하오밀문 인물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야,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네. 오 인분을 추가로 더 준비해 주게.”

“알겠습니다, 손님.”

빙향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여기서는 밖이 다 보이는구먼.”

창가로 자리를 옮긴 동노 오만상이 말했다.

“밖이 보인다고?”

서노 단걸이 동노 오만상 옆으로 갔다.

오만상의 말대로였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대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와!”

단걸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왜 그러는가?”

오만상이 물었다.

“저 마차 말이네.”

오만상은 이편을 향해 다가오는 이두마차를 가리켰다.

“이두마차가 어쨌다고 그러는가?”

“전에 시장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안에 침대까지 있는 최고급 마차네.”

“침대가 있는 마차란 말인가?”

“그렇다니까. 얼마나 화려한지, 입이 벌어질 정도였네. 누가 저런 마차를 탈까 했는데, 정말로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네그랴.”

마차는 곧바로 환희루 안으로 들어왔다.

그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마차가 도착하자 종업원이 달려와 문을 열어 주었다. 금장생은 마차에서 내렸다.

“천실에 예약돼 있습니다.”

금장생은 종업원을 보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종업원은 안으로 달려갔다.

“저희 환희루를 찾아 주셔서 감사해요.”

잠시 후 총관 빙향이 나와 인사를 했다.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왜 그러…….”

빙향의 눈 또한 점점 커졌다.

“청자 누이 맞지?”

금장생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너, 넌 대물?”

빙향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세상에.”

“맙소사.”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나는 죽은 줄 알았는데.”

“나도 네가 죽은 줄 알았어. 어떻게 살아난 거야?”

“운이 좋았죠, 뭐. 목숨을 구하고 나서 누이와 다른 동료들을 찾았는데…… 내가 찾아낸 건 얼굴이 훼손된 시체들뿐이었어요.”

“죽은 시체에 우리 흔적을 남겼던 거야.”

“그랬군요. 정말 반가워요. 그런데…….”

금장생은 빙향을 바라보았다.

“나 많이 달라졌지?”

“달라졌으면 내가 알아볼 리가 없잖아요.”

“그대로라는 거야?”

“지금도 그때하고 꼭 같이 아름다워요.”

“풋!”

빙향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대물 넌 완전 용 됐다.”

“대물이 뭡니까. 그리고 용 된 게 아니라 손님 때문에 일부러 이렇게 차려입은 겁니다.”

“하오밀문 문주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입었다고?”

“그 사람 왔어요?”

“지금 천실에서 일행과 함께 차 마시고 있어.”

“일행이라고요?”

“부문주, 사대장로까지 함께 왔던데?”

“염병할!”

금장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여기 일인당 얼마라고 했죠?”

“천오백 냥이야.”

“그럼 다섯 명이 늘었으니까…….”

“칠천오백 냥을 추가해야지.”

“이 사람들이 남의 기둥뿌리를 뽑으려고 작정을 했구먼.”

금장생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들을 왜 만나려고 하는 건데?”

“한 삼 년 정도 하오밀문을 임대하려고요.”

“임대?”

“네.”

“그러니까 하오밀문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빌리는 게 아니라 하오밀문 전부를 임대한다는 거야? 그것도 삼 년 동안?”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물 너 미쳤구나.”

빙향은 어이없는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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