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71)
왕위를 아들에게 넘겨주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이곳을 금역으로 만든 이유를 알아내고 싶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어쩌면 이곳에 그들의 약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들의 노예 전사를 양성하는 이곳을 폐쇄시킬 이유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곳까지 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이곳을 지키는 자들은 쉰 기의 철갑거인이었다.
나는 그들과 싸웠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나는 그들에게 당해 연못으로 빠지고 말았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듯, 철갑거인들은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그런데 그 연못은 지하에 있는 천양지극천과 이어져 있었다. 놈들은 그걸 몰랐던 거다.
이곳으로 들어온 내가 가장 먼저 발견한 건 극양신목이었다.
그제야 놈들이 이곳을 폐쇄시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극양신목의 열매인 극양천과 때문이었다.
천신적사마공을 완성한 상태에서 극양천과를 복용하여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태양신을 얻을 수 있다.
태양신은 태양의 기운을 간직한 자란 뜻으로, 신족과 마족의 최강 전사를 뜻한다.
최강 전사라는 곧 천적이란 말이기도 하다.
왜 신족이라 하지 않고 신족과 마족이라 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극양신목이 살아난 것과 신족에서 일어난 반란이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태양신을 완성하면 온몸이 황금색으로 변하며 고금제일인이 된다. 그들이 극양천과를 욕심내는 건 당연하다.
이곳으로 들어오자마자 극양신목을 없앴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쏟아 내고 호수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남은 힘이 내겐 없었다.
나는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죽을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가 없앴던 극양신목이 다시 살아나 잎을 틔운 것이다.
다시 극양신목이 있는 곳으로 가서 없애고 싶었지만 더 이상 움직일 여력이 없었다.
어쩌면 이게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부디 극양천과가 신족이나 마족의 손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를 바란다.
금장생은 몸을 돌려 호수를 보았다.
저 멀리 호수 중앙에 있는 작은 바위가 보였다. 극양천과가 자라고 있던 그 바위였다.
“회장님이 복용한 게 극양천과라고 했죠?”
“네.”
“그럼 회장님은 태양신이 된 건가요?”
“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요?”
금장생은 자신의 몸을 보았다.
전보다 강해진 것 말고는 특별하게 달라졌다는 느낌은 없었다.
“극양천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죠?”
“아주 오래된 고서에서 봤습니다.”
“고서는 어디서 구했는데요?”
“집에 있던 겁니다.”
“집안에 고서가 내려왔다는 거네요?”
“네.”
“혹시 집안 내력을 조사해 본 적 있나요?”
“내력이라면?”
“집안의 역사를 말하는 거예요.”
“부잣집 도련님들은 집안의 역사니 뭐니 하는 거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나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어떤 게 이상하다는 거죠?”
“금씨인 성, 황금전가의 황금, 극양천과에 대한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에서 만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그러니까 가주 말은, 이 사람이 내 먼 선조라는 건가요?”
“나는 극양신목이나 극양천과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혹시 그것들이 나왔다는 책 좀 구경할 수 있어요?”
“다 타 버렸는…… 아!”
금장생은 느닷없이 탄성을 내뱉었다.
다 타서 없어진 게 아니었다. 황금전가에는 비밀 창고가 있었다.
워낙 어렸을 때고 지나가는 말로 슬쩍 해 주었던 탓에 그동안 기억을 하지 못했다. 아니, 지금도 정확한 위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셋째라 제대로 말해 주지 않았을 테지만, 아버지는 분명 비밀 장소가 있다고 했다.
어쩌면 그곳을 찾으면 가족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요?”
오다 아이가 물었다.
“갑자기 아버지 말이 떠올라서요.”
“뭔가 남겼나 보죠?”
“네. 너무 오래전이고 황금전가 재산에 관심을 둬서는 안 되는 셋째라 잊고 있었거든요.”
금장생은 시체를 안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름까지 같은 사람인데 묻어 주지 않고 가기엔 께름칙했다.
푸석!
하지만 손을 대자마자 시체는 가루로 흩어졌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금장생은 합장을 했다.
수색을 마친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도쿠가와 신켄을 비롯한 혈가 대원들은 동굴 입구 근처로 와 있었다. 금장생과 오다 아이가 나오자 곧바로 다가왔다.
가장 먼저 다가온 사람은 도쿠가와 신켄이었다.
그는 금장생을 보자마자 금장생의 왼손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중지에 끼고 있는 반지를 확인했다.
“으음!”
이윽고 그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금장생의 왼팔을 놓아준 그는 두 걸음 물러났다. 그러고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도쿠가와 신켄을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쇼군!”
느닷없이 도쿠가와 신켄이 금장생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어?”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놀란 사람은 비단 금장생뿐만이 아니었다.
오다 아이는 물론이고 류와 근처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설마 도쿠가와 신켄이 금장생을 향해 쇼군이라 부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멍한 얼굴로 도쿠가와 신켄을 보았다.
“제가 알기론 쇼군께서는 전대 쇼군의 임종을 지켰고 그분으로부터 황천과 뇌섬류, 천지황을 물려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뇌섬류를 전수받고 뇌섬십관을 통과했습니다.”
“더하여 황천, 뇌섬류, 천지황은 타인에게는 절대 물려줄 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물려받으신 겁니까?”
“부자지간의 연을 맺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가 죽기 일 년 전에 부자지간의 연을 맺고 뇌섬류를 비롯한 모든 걸 물려받았다.
“그분의 아드님이시라면 쇼군이 되는 건 당연한 겁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쇼군이란 직위는 이미 권위를 상실했습니다. 동영은 새로운 쇼군을 옹립했고요.”
“그들이 옹립한 쇼군에 대해서는 관심 없습니다. 저는 제가 모시던 분의 후예만을 쇼군으로 인정할 뿐입니다.”
“알았으니까, 그만 일어나십시오.”
“하대를 해 주십시오, 쇼군.”
“하대는 못 합니다.”
“부하에게 하대를 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 당연한 걸 못 한다니까요!”
“네?”
도쿠가와 신켄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누군가에게 반말을 하면 말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 거니까 영감님이 이해해 주세요. 그보다, 이름이 어떻게 되죠?”
“동영 이름은 도쿠가와 신켄이고 얼마 전까지는 덕천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제 이름은 신현입니다.”
“신현은 이름이잖아요.”
“그래도 신현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
금장생은 도쿠가와 신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덕천이란 성을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동영을 버리겠다는 뜻이다.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신노라고 부르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쇼군.”
“그럼 첫 번째 명령을 내릴게요.”
“하명하십시오.”
“나는 쇼군보다 회장님이란 호칭을 더 좋아합니다.”
“그건 불가합니다.”
“왜죠?”
“쇼군께서 반말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쇼군이라 부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명령을 내렸는데요?”
“그 명령만큼은 거둬 주십시오, 쇼군.”
“끙! 알았어요 그만 일어나세요.”
“감사합니다, 쇼군.”
도쿠가와 신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저들에 대해 논의를 해 보도록 하세요.”
금장생은 한편에 서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이미 가주와 이야기가 끝난 것 아닙니까?”
“나와 가주보다는 저들의 의견이 더 중요하잖습니까.”
“알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도쿠가와 신켄은 오다 아이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이쪽으로 오세요.”
금장생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는 팔장군들을 불렀다.
―빨리도 부른다.
적사월이 투덜댔다.
―주공이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은가?
금웅은 적사월에게 물었다.
―뭐가 달라졌다…….
적사월은 말끝을 흐렸다.
금웅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금장생은 안으로 들어가기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천양지극천에서 뭔가를 얻은 게…….
―기억났네.
금웅이 말했다.
―뭐가 기억났다는 건가?
―그들이 이곳을 폐쇄한 이유 말이네.
―뭔가?
―극양신목 때문이었네.
―극양신목?
―신족이 차원을 건너오면서 가져온 나무네.
―어떤 나무인데 차원을 건너오면서까지 가져왔다는 건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가져왔다고 하였네.
―어떤 병인데…….
―신병이라고 하던데, 그 병이 어떤 건지는 나도 모르네. 아무튼 병 치료가 첫 번째 목적이라면 두 번째 목적은 태양신이라고 하였네.
―태양신?
―신족 최강 전사를 일컫는 말이라고 하더구먼.
―극양신목을 복용하면 신족 최강 전사인 태양신이 된다는 건가?
―극양신목이 아니고, 극양신목에서 열리는 극양천과를 복용해야 한다고 했네.
―그런데 그 극양신목이 어쨌다는 건가?
―그들은 극양신목을 이곳 천양지극천에 심었다네. 그런데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하더구먼. 그래서 이곳을 전사 양성소로 사용했는데, 수백 년이 흐른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극양신목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네.
―그럼 그 극양신목을 숨기가 위해 이곳을 폐쇄했다는 건가?
―그러네. 그리고 그 당시 신족에서는 반란이 일어났네.
―어떤 반란?
―신족의 왕인 신왕을 내쫓고 새로운 왕을 옹립했다고 하네.
―그것도 극양신목과 관련이 있겠군.
―저기로 숨어들어 간 증조주님도 자네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네.
―극양신목을 없애기 위해서 들어갔다는 건가?
―그러네.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선조는 돌아오지 않았네. 신족에서는 태양신도 나오지 않았고.
―성공한 모양이군.
―아니면 극양천과가 아직 열리지 않았겠지.
―그렇겠군. 그런데…….
적사월의 시선이 다시 금장생에게로 향했다. 보면 볼수록 금장생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그는 불여하를 보았다.
―팔왕!
―저분이 달라진 것 때문에요?
불여하는 대번에 자신을 부르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팔왕도 느꼈습니까?
―안에서 기연을 얻은 것 같아요.
―완전 복을 타고났네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우리를 부하로 얻은 것만 해도 천복인데 무공이 강해지는 기연까지 얻었으면 운이 떼로 몰려오는 거 아닙니까.
―우리를 얻은 게 천복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연히 그렇죠. 이 세상에 우리 같은 부하가 어디 있습니까? 먹지도 자지도 않죠, 들어가는 돈이라고 해 봐야 싸디싼 옷값밖에 더 있습니까? 그런데도 호위 일은 누구보다 잘하고요.
―지금 부하라고 했어요?
―제가 부하라고 했나요?
―네.
―설마요. 팔왕이 잘못 들었을 겁니다. 전 절대로, 정말 절대로 주공 저놈의 부하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하던데요?
―아니라니까요?
적사월은 고함을 빽 내질렀다.
―호호호! 알았어요. 아무튼 주공이 기연을 얻은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때 회의를 끝낸 도쿠가와 신켄이 이편으로 왔다.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찬성한 건가요?”
금장생은 물었다.
“네.”
“좋아요. 그럼 열 명씩 조를 짜세요. 다시 만날 장소는 정줍니다. 기간은 보름 후고요. 정확한 위치는…….”
금장생은 과거 황금전가가 있던 곳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쇼군. 식사가 끝나는 대로 출발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도쿠가와 신켄은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