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70)
쇼군
열풍이 끝난 건 한 시진 후였다.
오다 아이는 묵은 숨을 뱉어 내며 금장생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금장생은 오다 아이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오다 아이는 부르르 떨었다.
“첫 번째 요구 사항은 만족했나요?”
금장생은 물었다.
“대만족이에요. 앞으로 십 년 동안은 사내 생각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럼 십 년 뒤에는 어떻게 하려고요?”
“또 다른 사내를 찾아보든지 해야지요.”
오다 아이는 배시시 웃었다.
“그럼 첫 번째 요구 사항은 된 것 같고, 두 번째 요구 사항은 어떻게 되죠?”
“먼저 씻는 게 어때요?”
오다 아이가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 바람에 오다 아이의 가슴이 드러났다.
그녀의 가슴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금장생은 오다 아이의 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래도 예의는 있네요.”
오다 아이는 싱긋 웃었다. 금장생이 뚫어져라 쳐다보는데도 싫지 않은 듯, 가리지 않았다.
“무슨 예의요?”
“보통 사내들은 자기 전까지는 간까지 빼 줄 것처럼 공을 들이다가 막상 자고 나면 소 닭 보듯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나는…….”
“눈이 부시듯 바라봤잖아요. 그리고…….”
오다 아이의 얼굴이 슬쩍 붉어졌다.
온 힘을 다 짜낸 줄 알았는데 금장생은 아직 힘이 남아 있는 듯 아래쪽이 충만해지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극양천과의 부작용 같습니다.”
“부작용?”
“온몸에서 힘이란 힘은 다 빠져나갔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거든요.”
“따로 논다는 건가요?”
“아마도.”
“풋!”
오다 아이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천양지극천으로 들어갔다.
“살인적이네.”
오다 아이의 뒷모습도 엄청났다.
보통 중원 여자들은 상체와 하체의 비율이 비슷한 경우가 많은데 오다 아이는 하체가 압도적으로 길었다.
긴 하체와 풍만한 엉덩이, 잘록한 허리가 완벽한 비율을 만들어 냈다.
“안 뜨거워요?”
오다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물속으로 들어가자 금장생은 물었다.
“전보다 두 배 이상 강해졌는데 뜨겁다면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오다 아이는 몸을 씻으며 대답했다.
“하긴.”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그리고 호수 한가운데 있는, 극양신목이 자라고 있던 바위를 보았다.
스윽!
공간이 접히는 것처럼 한달음에 이동했다.
바위 앞에 도착한 그는 물속으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그거 축지성촌인가요?”
몸을 씻던 오다 아이가 물었다.
“그런 모양입니다.”
“점점 더 무서운 사람이 돼 가네요. 등 좀 밀어 줄 수 있어요?”
“제가 바라는 건 무공의 고수가 아닙니다. 무공은 제 재산을 지킬 정도만 되면 됩니다. 그런데 자꾸만…….”
“초극 고수가 돼 간다는 건가요?”
“네.”
“고수가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면서 극양천과는 왜 복용한 건데요?”
“그걸 복용한 건 지병 때문이었습니다.”
“지병요?”
오다 아이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금장생이 병을 앓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더구나 지병이라고 했다는 건, 하루 이틀 된 병이 아니라는 뜻이다.
“의원 말이 한음절맥이라고 하더군요.”
“한음절맥이면 세 살이 되기 전에 온몸의 맥이 얼어붙어 동사하는 병 아닌가요?”
“맞습니다. 다행히 저는 부모님을 잘 만나서 영약을 복용하고 벌모세수를 해서 치료를 했습니다. 그런데 의원은 완치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하더군요. 삼십 대 이전에 죽지 않고 살면 치료된 걸로 보고 아니면…….”
“무책임한 의원이군요.”
오다 아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살아남으면 치료가 된 거고 죽으면 치료가 안 된 거라는 답을 주다니.
의원 자격이 없는 자였다.
“의원 역시 한음절맥은 처음이라 해 줄 말이 없다고 하였다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튼 철이 들면서 한음절맥에 대해 공부를 했는데, 가장 완벽한 약이 극양천과라고 나와 있더군요. 그런데 이곳에서 그걸 발견한 겁니다. 눈동자가 돌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긴 나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네요.”
오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으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전화위복이 됐으니까 됐잖아요. 그보다, 등 좀 밀어 줄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금장생은 다시 축지성촌을 펼쳐 오다 아이 옆으로 갔다.
그가 몸을 날리자 바위 위에 있던 옷도 따라 움직였다. 그가 오다 아이 뒤편으로 자리를 잡자 옷은 호수 밖으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이제 두 번째 요구 사항을 듣고 싶습니다.”
금장생은 오다 아이의 등에 물을 끼얹고 문지르며 말했다.
“부담돼요?”
“부담되는 게 아니라, 체질적으로 빚이 있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거든요.”
“책임지라고 하면 들어주지 않겠죠?”
“그건 당연히 안 됩니다.”
“너무 매몰찬 거 아닌가요?”
“그런 일일수록 확실하게 하자는 게 제 주의거든요.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거나, 이상형이 있어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왜 거절하는 거죠?”
“전 혼자가 좋습니다.”
“독신주의자였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런 마음의 부담 없이 간혹 만나는 건 어때요?”
“그런 관계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끔 만나다 보면 자주만나고 싶고, 자주 만나게 되면 함께 살고 싶어질 수도 있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오다 아이는 빙그레 웃고 말았다.
“두 번째 요구 조건은…….”
“팔백 명에 대한 거예요.”
“여기서 가주를 따르겠다고 한 그들을 말하는 겁니까?”
“네. 당신으로부터 그들을 구하기 위해 북망산을 떠나왔고 구하긴 했지만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건 전혀 세우지 않았어요. 또 세울 처지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가주 말은 그들을 먹여 살릴 방도를 마련해 달라는 거네요?”
“네.”
오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금장생과 자리를 바꿨다.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닌가요?”
바로 앞에 사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키자 금장생이 말했다.
“동영에 살았으면 혼욕을 해 보았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오다 아이는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그들은 동료였을 뿐입니다.”
“훔쳐보지 않았다는 거네요?”
“전혀.”
“아무튼 해 봤잖아요.”
오다 아이는 금장생 뒤편으로 앉았다.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하체를 금장생 엉덩이에 밀착하다시피 하여 등을 밀었다.
“목욕 얼마 만에 한 거죠?”
“때가 많이 나와요?”
“너무 안 나와서 그래요. 혹시 등 밀어 주는 여자가 따로 있는 거 아니에요?”
“여자가 있는 게 아니고, 우린 조금 전에 환골탈태를 했잖아요.”
“어! 그렇구나.”
오다 아이는 활짝 웃었다.
환골탈태를 했는데 때가 나올 리가 없었다.
“아까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넓은 장소가 필요합니다. 사실 장소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게는 돈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회장님은 돈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나머지 쓸 생각이 거의 없죠?”
“내가 돈을 사랑하긴 하지만 꼭 써야 할 곳에는 씁니다. 문제는 제가 돈을 무지무지하게 사랑한다는 게 아니라, 그들을 한곳에 두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어떤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팔백 명이 되는 장정이 한 장소에서 빈둥거리면 분명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자들이 생길 겁니다. 그리고 그자들은 관아로 가겠지요.”
“수상한 자들이라고 신고를 한다는 건가요?”
“세상에는 의외로 신고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회장님 말은, 한곳에 모여 있지 않으면서 먹고살기 위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거군요.”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어떤 일을 하죠?”
“그들이 기꺼이 일을 할 의사는 있을까요?”
“할 일이 있어요?”
오다 아이는 기대 어린 얼굴로 물었다.
무려 팔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다. 그들이 할 일이 과연 있을는지 그게 문제였다.
“생각하고 있는 일은 있어요.”
“어떤 일인데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표국입니다.”
“표국이라고요?”
오다 아이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알기론 금장생은 장례업, 대장간, 주류업을 하고 있다. 규모가 작지 않은 사업들이긴 하지만 표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정확하게 그가 하고자 하는 건 표국이 아니라 유통업이다. 하지만 이미 짜여 있는 틀을 깨고 들어가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먼저 표국을 연 후 조금씩 파고들어 갈 참이었다.
“표국을 하면 팔백 명을 모두 소화할 수 있나요?”
“정주에 총국을 두고 전국에 열 개 지국을 둘 참입니다. 각 지국당 최소 쉰 명은 있어야 하고요.”
“그럼 지국 인원만 해도 오백 명이네요.”
“최소 인원으로 잡은 거니까, 좀 더 추가하고 총국의 인원까지 합치면 거의 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사업의 성공 여부죠.”
“그렇죠.”
오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씻었으면 이곳을 둘러볼까요?”
“그래요.”
두 사람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대충 몸을 말린 후 옷을 입었다.
“그건 갑옷인가요?”
오다 아이의 옷을 보며 금장생이 물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건 단순한 옷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용린갑이라고, 도검불침인 갑옷이에요.”
“사인루에 있을 때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가져왔어요.”
“가져왔다는 건, 혈가에 다녀왔다는 건가요?”
“그 목을 쳐 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어요.”
“그럼 이번에 이곳에 온 자들은 가주를 노리고 왔겠군요.”
“그는 내가 혈가를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광풍사를 출병시키고 사토사와 혈수사를 은밀하게 따르게 했어요.”
“그랬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보세요.”
오다 아이가 전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십여 개의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듯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기둥 앞으로 갔다.
기둥에는 글이 씌어 있었다. 고대에 쓰였던 갑골문자라 오다 아이는 읽지 못했다.
“적신공赤神功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금장생은 기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읽을 줄 아세요?”
“우연한 기회에 갑골문자를 배웠거든요.”
“어떤 무공이죠?”
“극양공입니다.”
“그럼 나하곤 상관없네요.”
“나하고도 상관없는 무공입니다.”
적신공은 금장생이 익히고 있는 적신천사마공과 비슷했지만 위력은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굳이 익힐 이유가 없었다.
“다른 걸 봐 볼까요?”
두 사람은 다른 기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른 기둥에도 무공이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 극양공이었다.
두 사람이 이곳의 주인에 대해 알게 된 건 가장 안쪽 기둥에서였다. 그곳에는 시체 한 구가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시체 옆에는 바닥에 글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금장생이다.
“쿡!”
“킥!”
금장생과 오다 아이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람은 회장님의 전생인가 보네요.”
오다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금장생은 웃으며 글로 시선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