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68)
금장생은 상기된 얼굴로 발을 내디뎠다.
그는 물을 밟고 극양신목을 향해 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금장생 뒤로 발자국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헉!”
극양신목 근처에 도착한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나무 중간에 주먹 크기의 황금색 열매가 떡하니 달려 있었다. 그건 바로 책에서 언급했던 극양천과가 분명했다.
멀리서 보이지 않았던 건 나뭇잎에 가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 익었다!”
금장생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곧 극양신목 앞에 도착한 그는 극양천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꿀꺽!
금장생은 입안에 고여 있던 침을 꿀꺽 삼켰다.
툭!
극양천과를 땄다.
뜨거울 줄 알았는데 약간 따뜻한 것 말고는 보통 과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극양천과를 입으로 가져갔다.
“응?”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입안으로 들어간 극양천과가 순식간에 액체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는 극양천과를 꿀꺽 삼키면서 극양신목으로 손을 뻗었다. 극양신목도 약이 된다는 내용이 떠올랐던 탓이다.
극양천과가 떨어지자 극양신목은 급격하게 시들어 가고 있었다.
막 극양신목을 잡아채려다가 그만두었다.
병을 나을 정도만 얻었으면 됐다는 생각에서였다.
완전히 시든 극양신목은 흘러내리더니 천양지극천 안으로 들어갔다.
“아쉽긴 하지만 잘했…… 윽!”
느닷없이 몸 내부에서 뜨거운 기운이 확 끼쳤다.
“급하다!”
금장생은 급하게 장포와 옷을 벗어 바위 위에 던져 놓고, 가장 가까운 좌대로 가서 가부좌를 했다.
몸은 물속에 잠기고 얼굴만 드러났다.
“우욱!”
방금 복용한 극양천과에서 가공할 열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금장생은 곧바로 양극신공을 끌어 올렸다. 극양기가 일어나자 양극신공 중 극음기가 강해졌다.
‘이건?’
금장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극양천과가 뿜어내는 극양기는 양극신공의 극음기로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강했다. 곧 그의 몸 주변 물이 부글부글 끓었다.
‘크윽!’
금장생은 내심 비명을 내질렀다.
엄청난 열기와 압력에 의해 몸이 곧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푸스스!
물속에 앉아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입고 있던 속옷이 가루가 돼 흩어졌다.
‘너, 너무…….’
금장생은 전력을 다해 극음기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
라가 금장생에게 물었다.
하지만 금장생은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카!
이번엔 카를 불렀다.
―엄청난 열기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엄청난 열기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냐?
―혹시 전에 주공께서 극양기를 내포한 기물을 복용한 적이 있나요?
―갓난아이였을 때와 최근 두 번이다.
―갓난아이 때는 왜 복용한 거죠?
―그는 온몸이 얼어붙는 병에 걸린 상태였다.
―태어나자마자 그랬다는 건가요?
―그대로 두었으면 삼 년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군요. 그래서 주공의 몸 상태가 양기가 더 강한 상태였군요.
―무슨 뜻이냐?
―어린 시절 치료로 인해 주공의 몸은 음기보다 양기가 더 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는 설사 환골탈태를 한다고 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공은 양기가 더 강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불의 정령왕 수준의 기물을 꿀꺽 삼켜 버린 겁니다.
―저, 정령왕이라고?
―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
―인간이 불의 정령왕을 삼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재가 돼 버리겠지.
―지금 주공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반인이 아니라 무인이다.
―무인이라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겁니다. 만일 일반인이었다면 벌써 재가 돼서 흩어져 버렸을 겁니다.
―식혀 주는 수밖에 없겠구나.
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몸을 식혀 주면 된다.
문제는 그런 기물이 금장생에게는 물론이고 이곳에도 없다는 데에 있다.
‘가만.’
라는 카를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극양기는 네가 흡수할 수 있잖아.
―제가 흡수했다가 조금씩 돌려주란 말입니까?
―불가능해?
―저 열기는 저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해야 해. 네가 하지 못하면 저 녀석은 물론이고 우리도 이거야.
라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스윽 그었다.
―저 여자도 있어야 합니다.
카는 호숫가에서 이편을 바라보고 있는 오다 아이를 가리켰다.
금장생을 쫓아 들어왔던 오다 아이는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이 자야 한다는 거냐?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여자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감지됩니다. 그건 곧 극음 계열의 무공을 익혔다는 뜻이 됩니다. 그것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저 여자에게는 내가 말하겠다. 너는 바로 시작해라.
―알았습니다.
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몸통은 밖으로 나왔지만 끝은 금장생의 단전과 이어진 채였다.
카는 금장생의 단전에서 쏟아져 나오는 극양기를 빨아들였다. 그의 전신이 금세 새빨갛게 변했다.
‘응?’
카가 극양기를 흡수해 주는 바람에 금장생은 약간의 여유를 찾았다.
‘카, 당신입니까?’
―그렇습니다, 주공. 그런데 극양 기물을 너무 많이 복용한 거 아닙니까?
‘나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의원이 완치됐다는 말만했어도 아무 생각 없이 먹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의원이 목숨은 구했지만 완치 여부는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치료제를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이유를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이었다.
즉, 몸은 이미 완벽하게 치료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극양 기물을 다시 복용하고 만 것이다.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거였군요.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까?’
―저와 저 여자를 이용할 참입니다.
‘저 여자라면?’
금장생 호숫가로 시선을 주었다.
‘가주가?’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오다 아이가 따라 들어왔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극음 성질을 띤 무공을 익힌 것 같습니다.
‘그녀가 날 어떻게…….’
그때 오다 아이는 미지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는 중이었다. 그녀가 들은 건 ‘나는 라다!’라는 말이었다.
‘네?’
―다시 소개하마. 나는 장생 저 녀석과 함께 살고 있는 라다.
‘알았어요. 그런데 공자가 왜 저러죠?’
오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의 상황으로 보건대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미지의 목소리 주인과 소개하는 걸로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었다.
―조금 전에 복용한 극양 기물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죠?’
―카 저 녀석이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군요.’
―극음 무공을 익혔느냐?
‘심해지저마공深海地底魔功을 익혔어요.’
―심해지저마공이면?
‘빙극천월강과 함께 무림이대빙공이라고 불려요.’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 공자를 이곳으로 데리고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천양지극천 자체가 극양기를 띠고 있잖아요. 불을 머금고 불속에서 운기행공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잖아요.’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저기서 해야 한다.
‘왜죠?’
―그래야 태양신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신이 뭐죠?’
―신족과 마족의 천적이 되는 육체를 말한다.
‘신족과 마족이라면…… 맙소사, 당신은…….’
오다 아이의 눈이 커졌다.
혈왕이었던 그녀는 혈가의 역사서를 통해 신족과 마족에 대한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원에서 그걸 아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는다.
그런데 금장생 안에 살고 있다는 미지의 존재가 신족과 마족을 알고 있는 건 물론이고, 그들의 천적 운운한 것이다.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네가 장생을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물론이고 카 저 녀석도 소멸하고 만다.
‘알았어요. 그런데 당신은 어떤 존재죠?’
오다 아이는 용린갑을 벗으며 물었다.
―정령을 아느냐?
‘기록으로만 접했어요.’
―저 녀석도 그렇고 나도 정령이라고 보면 된다.
‘정령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용린갑을 다 벗은 오다 아이는 금장생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 역시 금장생처럼 물 위를 평지처럼 걸었다.
금장생 앞에 도착해서는 힘을 풀었다. 그러자 그녀의 동체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지금 저 여자 뭐 하는 겁니까?
카는 라에게 물었다.
―글쎄다.
―혹시 관계를 가지려는 걸까요?
―상황을 보면 그런 것 같은데?
―그렇게 해 달라고 하셨나요?
―그런 말 한 적 없다. 다만 녀석을 태양신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극음의 기운이 필요하다고만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알아서 옷을 벗었다는 거네요?
―그런 것 같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명문혈에다 극음기를 밀어 넣는 것보다 관계를 갖는 게 효과가 더 크지 않냐?
―그렇긴 합니다.
―그럼 놔둬.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조금 전에 태양신이라고 한 것 같은데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죠?
―제대로 들었어.
―주공을 그들의 천적으로 만들 생각이십니까?
―천적으로 만들려는 게 아니라 두 번 당하지 않게 하려는 거야.
―그들이 아직 살아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없으면 더 좋고.
―그렇군요.
―네 모습도 바꿔.
―어떻게 바꾸라는 겁니까?
―둘을 감싸야 해.
―알겠습니다.
카는 형태를 바꿔 금장생과 오다 아이를 감쌌다.
‘어?’
오다 아이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붉은 기운이 막처럼 자신과 금장생을 둘러싸는 것이었다.
그녀는 금장생을 보았다.
그의 알몸을 보자 문득 과거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많은 사내를 접했다.
행실이 부도덕해서는 절대 아니었다.
양아버지였던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영주를 얻고자 할 때는 딸들을 이용했다.
그 사람을 불러 연회를 열고 그날 밤에 딸들을 들여보냈다.
영주는 다이묘가 보내는 시비인 줄 알고 관계를 가졌다가 다음 날 아침 시비가 아니고 딸인 줄 알면 당황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엔 오다 노부나가에게 굴복한다.
그렇게 딸들을 이용하여 세력을 늘리는 일에는 수양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 또한 많은 영주들에게 바쳐졌다.
정략결혼을 해서 영주를 따라갔던 친딸들과 다른 점이라면, 해가 뜨면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사내를 받아들이고 돌아왔을 때 자신은 수양딸이 아니고 볼모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가 원하는 걸 해 주었다. 무공을 익힌 것도 그의 지시였다.
인사술을 익히고 나자 이번에는 암살자가 되었다. 수많은 적을 유혹하여 잠자리를 가진 후 암살을 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게다가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수양딸이 누구보다 정숙한 여자라고, 심지어는 사내를 전혀 모르는 처녀라고까지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잠자리를 함께했던 자들 중 몇몇이 그 일을 까발렸다.
그 말을 한 자들은 모두 취중이었고, 다이묘의 수양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한번 퍼진 소문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곳을 떠나 도착한 곳이 중원이었다.
‘다행이에요. 만일 내가 남자를 모르는 여자였다면 지금 많이 당황했을 테니까요.’
오다 아이는 싱긋 웃고는 손을 아래로 집어넣었다.
금장생은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그녀는 부드럽게 손을 움직였다.
젊음 때문인지 아니면 주체할 수 없는 극양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금장생은 금세 준비가 되었다.
‘억!’
오다 아이는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이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지.’
오다 아이는 피식 웃었다.
그녀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사내를 접하고도 정신을 차릴 수 있느냐 하는 거였다.
과거에도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민감한 몸이었다. 암살을 위해 관계를 가지는 상황에서도 너무 푹 빠져서 헤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하듯 몸은 벌써 맹렬하게 반응하고 있다.
‘견뎌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