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67)
태양신
오다 아이를 향해 무릎을 꿇은 인사의 수는 팔백여 명이었다.
“저 안에 오십여 명이 있습니다.”
인원 파악을 끝낸 류가 보고했다.
오다 아이는 물론이고 도쿠가와 신켄을 거부한 그들은 없애야 할 자들이었다.
“아직 도망치지 않았나요?”
“네.”
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없애야 할까요?”
“없애지 않으면 저들의 가족이 위험합니다.”
류는 무릎을 꿇고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그렇다고 그들을 없애라고 명령을 내리면 저도 다이라 토미와 같은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저들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가 하면 됩니다.”
“알았어요.”
오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못 할 짓이긴 하지만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가족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었다.
“컥!”
“큭!”
“윽!”
류 일행이 가지도 않았는데 안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오다 아이 일행은 시선을 들어 안쪽을 보았다.
“회장님이이에요.”
오다 아이가 나직하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냐?”
도쿠가와 신켄이 물었다.
“요시아키 님의 후계자예요.”
“정말이냐?”
“네.”
“중원인인 것 같은데…….”
“바다 한가운데에서 요시아키 님을 만났다고 해요. 그때 요시아키 님은 멸치를 잡고 있었대요. 거기서 함께 생활하면서 뇌섬류를 전수받았고요.”
“요시아키 님은…….”
“바다의 품으로 돌아가셨답니다.”
“그랬구나.”
도쿠가와 신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위험하겠죠?”
오다 아이는 류를 보며 물었다.
“최소 인원으로 조를 짜서 이동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혈가의 이목에 걸려들게 될 겁니다. 그런데…….”
“말하세요.”
“팔백 명이나 되는 인원을 수용하는 것과 입히고 먹이는 것도 문젭니다. 현재 우리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건 내가 회장님께 말해 볼게요. 그리고 일단 여기서 쉬도록 해요. 도죠 아저씨는 먹을 걸 구해 오도록 하시고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류는 가솔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가솔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쉴 곳을 찾기 위해 수색에 나섰다.
그들이 찾아낸 곳은 절벽 아래쪽에 있는 동굴이었다.
열화곡 우측에는 높이가 오 장가량 되는 절벽이 안쪽 절벽과 이어져 있었는데, 바닥에는 절벽을 따라 길게 동굴이 뚫려 있었다.
온천 호수들 덕분에 동굴 안은 따뜻했다.
“나는 안에 좀 다녀올게요.”
가솔들이 쉴 곳이 마련되자 오다 아이는 금장생을 찾아 나섰다.
그때 금장생은 팔장군들과 함께 열화곡 안쪽을 살피고 있었다.
그가 이곳을 살펴볼 생각을 한 건 전설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다는 전설이 내려올 위험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게 있어야 한다는 건데, 아직은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가 수상하긴 한데…….”
금장생은 전면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 앞에는 원 모양의 홈이 파인 절벽이 서 있었다. 열화곡 가장 안쪽, 적벽이란 부르는 곳이다.
이곳을 적벽이라 부르는 이유는 벽 전체가 붉은색을 띠고 있어서다.
“이상해 보이지 않아요?”
금장생은 뒤편에 앉아 있는 팔장군들을 보며 물었다. 그가 팔장군을 만난 장소는 이곳이었다.
입구에서 빨려 들어간 그들이 어떻게 가장 안쪽인 이곳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여덟 명은 이곳에서 적을 없애고 있었다. 조금 전 오십여 명을 없앤 이들도 팔장군이었다.
‘말 시키지 마라.’
적사월이 금장생을 노려보았다.
사실 그는 노려본다고 노려보지만 아직 시선에 감정을 실을 정도가 되지 않아 금장생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긴 내가 아는데.
화노왕 금웅이 적사월에게 말했다.
―여기를 안다는 건 무슨 소린가?
―여긴 우리 화가의 연무장이었네.
―정말인가?
―그러네. 내 기억이 맞다면 이곳 지하에는 천양지극천天陽至極川이 흐르고 있네. 우리 화가인들은 천양지극천에 몸을 담근 채 극양공을 익혔다네. 하지만 우리가 이곳을 사용한 건 오백 년에 불과했네.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아니 그 이유를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네.
―자네들이 폐쇄시킨 건가 아니면 화천신가에서 폐쇄한 건가?
―그 당시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곳을 없앴겠나.
―화천신가가 그랬다는 거구먼.
―그러네.
―그럼 들어가는 방법은?
―그것도 모르네.
“이거였네.”
그때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시선을 돌렸다. 금장생은 쪼그려 앉은 채 원 아래쪽을 보고 있었다.
다른 곳은 모두 홈이 제대로 파여 있는데 그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만 밋밋했다.
금장생은 그곳에 손가락을 댔다. 그리고 내기를 끌어 올리면서 원을 완성했다.
‘응?’
그의 눈이 커졌다.
원을 그리다 만 것이 아니었다. 원은 그려져 있는데 홈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가락이 지나가자 보이지 않던 홈이 보였다.
금장생은 손을 움직여 원을 완성했다.
철컥!
기관이 풀리는 듯한 소리가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금장생은 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게 문이라면 위쪽과 아래쪽이 고정돼 있을 테니까…….”
금장생은 오른편 측면에 손바닥을 대고 천천히 밀었다.
그르릉!
둔탁한 소성과 함께 석문이 열렸다. 절벽에 새겨진 홈처럼 문은 원형이었다.
절반 정도 밀고 나서 멈췄다.
문 안쪽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저기서 기다리세요.”
금장생은 문 옆을 가리켰다. 그러자 팔장군들은 금장생이 가리킨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적사월이 내심 소리쳤다.
“데리고 들어가고 싶지만 위험에 대한 여러분의 대처 능력이 너무 떨어져서 안 되겠어요.”
―궁금하다고!
적사월은 버럭 소리쳤다.
“궁금해도 참으세요.”
‘엥?’
적사월은 깜짝 놀랐다.
‘저 자식?’
그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는가?
해노왕 혁장운이 물었다.
―저 자식이 내 말을 알아들었네.
―그게 무슨 소린가?
―방금 내가…….
적사월은 방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내 생각엔, 주공이 자네 말을 알아들은 게 아니고 그냥 해 본 소리 같네.
―그냥 해 본 소리라고?
―요새 우리를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잖은가.
―그렇긴 하지만…….
―주공 말이 맞네. 현재 우리 몸 상태로는 주공에게 방해만 될 뿐이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건 주공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몸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거네.
―자넨 저 안이 궁금하지 않다는 건가?
―기다리면 주공이 다 설명해 줄 건데 뭐가 그리 급한가?
―아무튼 옛날부터 자넨 재수가 없었어.
―큭큭큭!
휙!
그때 뭔가가 통로 안으로 들어가는 기척이 두 사람 귓전으로 들렸다.
―들었는가?
혁장운이 적사월을 돌아보며 물었다.
―뭘 말인가?
―방금 뭔가가 저 안으로 들어갔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건가?
―들어가긴 뭐가 들어갔다고 그러는가? 운기행공이나 하세.
적사월은 눈을 감았다.
‘분명 들었는데.’
혁장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잘못 들은 건 결코 아니었다. 미세한 파동을 남기고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금장생을 찾아 나선 오다 아이였다.
안으로 들어간 오다 아이는 전방을 살폈다.
문은 아래로 난 계단과 이어져 있었다.
곧바로 몸을 날렸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상당히 길었다. 이십여 장 가까이 내려간 것 같은데 바닥아 나오지 않았다.
“더워지는 것 같은데.”
용린갑을 입은 곳은 열기를 느끼지 못하지만 드러난 부분이 느끼는 열기는 위쪽보다 훨씬 강했다. 들이마시는 공기에서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런데도 계단은 계속 이어졌다.
그녀가 멈춘 건 삼십 장을 더 내려온 후였다.
즉, 총 오십 장을 내려온 것이었다.
천양지문天陽之門
계단 끝 문에 새겨진 글이었다.
오다 아이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그녀를 반긴 건 널따란 광장이었다.
“여긴?”
오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은 무려 오십 장 지하다. 그런데 족히 수백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광장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디 간 거지?”
광장 어디에도 금장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금장생은 지하 강 앞에 있었다.
강폭은 일 장 정도였다. 붉은빛을 띠고 있는 걸 보고 처음엔 용암이 흐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불그스름한 색의 물일 뿐 용암이 아니었다. 그런데 물은 가공할 열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금장생은 오른손 손가락 끝을 살짝 담가 보았다.
“동굴을 뚫어 놓은 걸 보면 단순한 장소가 아닌 건 맞는데…….”
금장생은 강을 따라 걸었다.
지금 자신이 걷는 곳은 천연 동굴에 인공이 가미돼 있다. 즉 강을 따라 형성된 동굴을 확장하여 길을 만든 것이다.
단순히 거주할 곳을 만들었다고 하기엔 내부가 너무 더웠다.
붉은 강을 따라 걷기를 일각여.
그 앞에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는 지름이 삼십 장 정도로 상당히 넓었다. 온통 열기로 가득한데도 수증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특이한 곳이었다.
“저것들은?”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호수 안쪽에 좌대座臺처럼 보이는 것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만일 좌대에 앉는다면 목까지 잠길 정도의 깊이였다.
“무공을 익히는…… 응?”
좌대를 살피던 금장생의 시선이 중앙으로 향했다.
호수 중앙에는 바위처럼 보이는 물체가 있었는데 그 위에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는 키가 한 자 반 정도고 줄기는 붉은색이며 잎은 황금색이었다. 호수 속으로 내린 뿌리도 잎처럼 황금색을 띠고 있었다.
“맙소사, 저건?”
금장생의 눈이 커져다.
놀랍게도 누군가 분재를 해 놓은 것 같은 저 나무는 극양신목이었다.
금장생이 극양신목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이파리가 황금색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자신의 절맥을 치료하는 치료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이 아비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다. 하지만 네 병이 완치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좀 더 완벽한 치료를 위해서는 극양신목 같은 것들을 복용해야만 한다.”
일곱 살 땐가, 아버지가 해 주신 말이었다.
“절맥이라고 했지.”
벌모세수를 받았지만 완치를 확신할 수 없었던 자신은 그 후로도 의원을 찾아가 정기적으로 진맥을 받았다.
그때 의원이 한음절맥이라고 한 말을 들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한음절맥에 대해 찾아보았다.
한음절맥에 대해 나온 건 괴이지란 책이었다. 괴이지는 가문에 내려오는 몇 가지 안 되는 가보 중 하나였다.
우리가 흔히 남자는 양기가 아주 강하고 여자는 음기가 강하다고 하지만 그 차이는 아주 작다. 즉,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 중 음기나 혹은 양기가 확연하게 구분이 될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이들이 있다.
그 비정상 상태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면 살아가는 덴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자기 체질의 장점을 살려 극양공이나 빙공의 대가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 비정상 상태가 생명을 위협할 수준에 이를 때 발생한다.
음기나 양기를 과도하게 안고 태어난 상태를 절맥이라고 하는데, 절맥을 안고 태어난 자들은 세 살 이전에 얼어 죽거나 혹은 말라 죽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극양 혹은 극음의 기운을 가진 기물로 온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복용한다고 해서 몸을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온몸의 세맥에 골고루 집어넣기 위해서는 벌모세수와 같은 대법이 필요했다.
금장생이 벌모세수를 받은 건 그 때문이었다.
음기로 인한 절맥을 한음절맥이라고 하는데, 가장 좋은 치료제는 극양신목에 열리는 극양천과다.
하지만 극양천과는 수천 년에 한 번 열리는 신과神果. 극양신목을 발견했다고 해도 극양천과를 얻지 못할 수가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한음절맥은 극양신목만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책에서 언급했던 치료제가 바로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