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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66화 (266/524)

황금가 (266)

“실력 좀 볼까요?”

빠져나가던 내기가 멈추자 금장생은 말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주공!

휘이익!

카는 허공으로 솟구쳤다.

일 장 상공에서 전면을 노려보던 그는 달려오는 자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푸아악!

가공할 속도로 날아간 카의 동체가 길쭉한 막대기 모양으로 변했다.

불 막대기는 이편을 향해 달려오는 물을 향해 날아갔다.

물줄기들과 오 장을 남겨 둔 지점에서 앞부분이 여러 줄기로 갈라졌다. 그리고 곧 물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퍽! 퍽퍽퍽! 퍽퍽!

“커억!”

“크어억!”

“아악!”

물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쿠어억!

다시 하나로 합쳐진 카는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이십 장 높이까지 솟구친 카는 비처럼 가늘게 변하더니 아래로 쏟아졌다.

불의 정령 카가 노리는 자들은 흙과 함께 내달리고 있는 사토사 대원들이었다.

퍽! 퍽퍽퍽! 퍽퍽! 퍽퍽!

불줄기는 무자비하게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크아악!”

“아악!”

“으아악!”

지상과 땅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캬아아아아!

카로부터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에게 토령의 술이나 수령의 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불꽃이 파고든 순간 인사들은 가루로 흩어졌다.

또다시 카의 모습이 실처럼 가는 줄기로 변했다. 줄기는 수백 개에 달했다.

“멈춰요!”

바로 그때 커다란 외침과 함께 오다 아이가 카 앞을 가로막았다.

쿠어어억!

실처럼 나뉘어 있던 것들은 무서운 속도로 오다 아이를 향해 쏘아졌다.

‘이건?’

오다 아이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지금 다가오는 건 가느다란 실이 아니라 불길이었다. 옷을 꿰맬 때 사용하는 실 두께에 불과했지만 내포된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니, 강력한 힘을 내포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용린갑이 있으니까.

그런데 저 불줄기는 뱀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전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용린갑이 푸른색으로 변하고 갑옷에 붙어 있던 비늘이 꼿꼿하게 섰다.

‘응? 멈추세요, 카!’

금장생은 급하게 소리쳤다.

오다 아이를 향해 쏘아져 가려던 카가 멈췄다.

‘그녀는 적이 아니에요.’

―알았습니다, 주공.

‘일단 들어가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카는 금장생이 있는 곳으로 날아와서는 악마수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오다 아이는 몸을 돌려 인사들을 보고 있었다.

“오다 아이 님이십니까?”

인사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아직 날 기억하는 사람이 있군요.”

오다 아이는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아는 자가 있다면 이 싸움을 끝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죽었다고 하던데…….”

오다 아이가 도쿠가와 신켄을 살해했다는 소문은 아직 완전하게 퍼진 게 아니었다. 이 사내 또한 그 소문을 접하지 못했고, 오다 아이는 죽은 걸로 알고 있었다.

“죽을 뻔했는데 저분의 도움으로 살아났어요.”

오다 아이는 금장생을 가리켰다.

“그랬군요.”

“나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당신들은 저분의 상대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공격하지 않으면 우린 하극상으로 처벌받게 됩니다. 하극상은 죽음이고요.”

“거기서 나오는 건 어떻습니까?”

듣고 있던 금장생이 말했다.

“나오라면…….”

사내는 금장생을 보았다.

“거기 있어 봐야 죽음뿐입니다. 살고 싶으면 하루라도 빨리 나오는 게 좋습니다.”

“우리에겐 가족이 있습니다. 그리고 혈가를 나가도 갈 곳도 없고요.”

“갈 곳은 내가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오다 아이가 다급하게 말했다.

“돌아오실 겁니까?”

“그건…….”

“혈왕께서 돌아오신다면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거기로 돌아가서 혈왕 자리에 앉는다고 해도 본국에서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 또다시 반란이 일어날 테고, 지금과 같은 싸움을 하게 되겠죠.”

“혈왕께서 물러나신 게 본국의 의지란 말입니까?”

사내는 물었다.

“그것까지는 나도 몰라요. 하지만 본국은 다이라 토미가 반란을 일으킨 걸 알 텐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요. 그건 곧 그들이 다이라 토미의 배후라는 뜻이 되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내가 돌아가 봐야 분란만 일어날 거예요.”

“내 생각은 다릅니다.”

금장생이 끼어들었다.

“다르다는 건 무슨 뜻이죠?”

오다 아이는 금장생을 돌아보았다.

“혈가를 운영할 때 동영으로부터 명령 말고 받은 거 있나요?”

“받은 거라면?”

“누군가에게 명령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합니다. 일국의 왕이나 황제도 장수와 병사를 부릴 때는 충성에 대한 대가로 월급을 주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보상해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복종을 강요할 수 있는 대상은 노예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본국을 따르지 말라는 말인가요?”

“혈가는 동영에 속한 가문이 아니라 중원의 무림 세력입니다. 가솔들의 가족도 모두 이곳에 살고요. 굳이 동영의 명령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가지고 있어 봐야 손해만 끼치는 가게는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는 게 낫더군요.”

“상인으로서의 경험인가요?”

“네.”

“본국과 혈가는 상인과 가게 같은 관계가 아니잖아요.”

“동영이 혈가인들의 고향이라는 건 나도 압니다. 하지만 그 고향이 변했습니다. 선물을 사 들고 가도 건네줄 사람이 없고, 편하게 쉴 곳도 없죠. 물론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요. 동영인들이 이걸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금장생은 왼손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처, 천지황!”

사내의 입에서 비명 같은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맞습니다. 나는 한때 당신네들이 주인으로 모시던 요시아키 님으로부터 천지황과 황천을 물려받았습니다. 뇌섬류까지 받았으니까 그분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동영인들, 즉 현재 동영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은 이 천지황을 찾지도 않고 찾을 생각도 없습니다. 왜냐면 이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천지황을 가진 나는 손해만 끼치는 가게와 같다는 말입니다.”

“우린 명령을 따를 뿐이다.”

대화를 나누던 사내 뒤편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츄아악! 쉬이익! 스아악!

그리고 다시 물줄기가 허공으로 솟구치고 바람이 불고 땅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죄송합니다.”

대화를 나누던 자 또한 바람 속으로 몸을 숨겼다.

물과 바람과 흙은 곧바로 금장생과 오다 아이를 향해 밀려왔다.

“명령을 따르는 건 당신네들 자윱니다만, 목숨은 보장 못 합니다.”

금장생은 다시 카를 불러냈다.

밖으로 나온 카는 불꽃 창 형태로 변했다.

“처리하세요.”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쿠어어어억!

창으로 변한 카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십여 장을 솟구친 카는 아래로 방향을 틀었다. 곧 수십 개의 불줄기가 허공에 나타났다.

물줄기 속에 숨은 인사 수십 명이 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슈아악!

불줄기들이 엄청난 속도로 쏟아졌다.

퍽! 퍽퍽퍽! 퍽퍽!

불줄기는 물속으로 파고들어서도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을 수증기로 만들어 증발시키며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물줄기 안에 들어 있던 인사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커어억!”

인사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크으윽!”

“으윽!”

비명은 한 곳에서만 들려오는 게 아니었다.

불줄기가 쏟아진 곳에서는 모두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금장생과 오다 아이를 공격하던 자들의 수가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었다.

그들은 카를 막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수령의 술을 펼치는 자들만 두어 번 방어를 해냈을 뿐, 나머지는 일 초도 막아 내지 못했다.

한 식경 정도가 지나자 이백 명 중 살아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전멸이었다.

카를 불러들인 금장생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휴!”

금장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다 아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싸움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가씨!”

뒤따라왔던 류가 오다 아이를 불렀다. 그의 얼굴엔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다 아이는 어떻게든 가솔을 살려 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가솔들이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죽이기 위해 공격을 해 온다.

살기 위해서는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야 할까 봐요.”

오다 아이는 나직하게 말했다.

“본국과 상관없는 단체를 만들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혈가인들은 자손 대대로 그들의 꼭두각시일 수밖에 없어요. 쇼군이 바뀌면 반란의 일어나고, 우린 어제까지 동료였던 사람에게 검을 겨누고 또 피를 흘리게 되겠죠. 우리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에요. 그 악연의 고리를 끊어 낼 때가 온 것 같아요.”

“잘 생각했다.”

늙수그레한 목소리와 함께 노인이 나타났다.

“태, 태상!”

오다 아이는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엔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놀란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류도 깜짝 놀랐다.

오다 아이가 태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전전대 혈왕인 도쿠가와 신켄밖에 없었다.

“오랜만이구나.”

“살아 계셨군요.”

“내 명줄이 생각보다 질긴 모양이구나. 나는 네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제 명줄도 태상 못지않은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먼저 가솔들을 구하도록 하자꾸나.”

“방법이 있나요?”

“내 이름이 아직 통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 보자.”

도쿠가와 신켄은 바닥을 차고 솟구쳤다.

곧 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난 도쿠가와 신켄이다!”

이어 커다란 외침이 열화곡을 흔들었다.

“내가 은거를 택한 건 다이라 토미를 혈왕으로 인정해서가 아니라, 오다 아이 혈왕이 죽은 상황에서 전쟁을 해 봐야 가솔들만 희생당하기 때문이었다. 항간에는 오다 아이 혈왕을 살해한 자가 다이라 토미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증거가 없었다. 게다가 많은 수뇌들이 다이라 토미를 혈왕으로 인정했다. 그런 그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은거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내 곁에 오다 아이 혈왕이 있다! 그리고 오다 아이 혈왕을 모처에 가두고 살해하려 했던 자가 현 혈왕인 다이라 토미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건 명백한 반역이고, 반역자를 혈왕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신념이다. 그래서 제군들에게 부탁한다. 공격을 멈춰라! 그대들이 오다 아이 혈왕을 공격하는 건 반역자를 돕는 게 되고, 그대들 또한 반역자가 된다. 다시 한 번 부탁하겠다. 공격을 멈춰라. 제군들에게 공격을 명하는 그자가 바로 반역자다. 검 끝을 오다 아이 혈왕이 아닌 그자에게로 돌려라!”

“거짓말이다! 태상은 죽었다. 우린 도쿠가와 신켄 태상을 살해한 오다 아이를 없애기 위해 왔다!”

운무 속에서 발작적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내가 제군들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다이라 토미는 오다 아이 혈왕이 날 없앤 것처럼 꾸미기 위해 내가 마시는 차에 독을 타고 시중드는 자들에게 날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내가 여기서 제군들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암습을 먼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니다! 저자는 거짓말을…… 커억!”

창! 창창창! 창창!

“크아악!”

“아악!”

“으아악!”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에 이어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휴우!”

도쿠가와 신켄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는 건 자신의 설득이 통했다는 걸 뜻한다.

“여기!”

류는 가지고 있던 옷을 오다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니에요.”

오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장포로 가릴 때가 아니었다. 자신이 용린갑의 주인인 오다 아이라는 사실을 가솔들에게 보여 줘야 할 때였다.

오다 아이는 전면을 응시했다.

계속해서 들려오던 비명이 점점 잦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운무 속에서 인사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밀려 나온 인사들은 오다 아이를 발견하고는 좌우로 늘어섰다.

“혈왕!”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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