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65)
“차아!”
금장생의 오른손과 왼손에서 붉은색과 검은색 광채가 좌우로 폭사되었다.
곧 붉은색과 검은색 광채는 부챗살처럼 퍼져 나가 금장생 주변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픽! 픽픽픽! 픽!
광채의 일부는 중간에 사라졌고 나머지는 오 장여를 더 뻗어 나갔다.
잠시 후 사라졌던 두 광채가 나타났다. 그리고 더 뻗어 나갔던 광채와 하나로 합쳐지더니 금장생의 두 손으로 되돌아왔다.
척! 척!
곧 검은 광채와 붉은 광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건 삼천혼 중 혈사아와 흑사아였다.
털썩! 털썩! 털썩! 털썩!
둔탁한 소리가 사방 바닥에서 들려왔다.
금장생은 시선을 내렸다.
바닥에 쓰러진 자들은 모두 열 명이었는데, 하얀 옷을 입고 복면을 쓰고 있었다.
물속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자들의 몸에는 물이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다.
휙! 휙휙! 휙휙!
막 자리를 옮기려는데 주변으로 수십 명이 나타났다.
금장생의 시선이 재빠르게 전면을 훑었다. 쉰 명가량으로, 흰색과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저 안쪽도 바쁠 텐데 나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나 모르겠네요.”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그는 쥐고 있던 흑사아와 혈사아를 가만히 놓았다. 그러자 두 자루의 검이 서서히 떠오르더니 어깨 높이 허공에서 멈췄다.
“다이라 소라는 어디 있느냐?”
사내들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금장생은 그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소유자가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광풍사 사주 가토였다.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금장생은 시선을 마주치며 물었다.
“네가 굳이 내 이름을 알 필요가 있느냐?”
“시체를 다루는 일이 주업이다 보니 시체를 보면 함부로 지나치지 못하고 무덤을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의 무덤을 만들 때 가장 곤란한 게, 비석을 세우고 나서 쓸 말이 없을 땝니다. 그래서 묻는 겁니다.”
“죽일 놈!”
가토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금장생을 쏘아보았다.
“다시 묻겠다. 다이라 소라는 어디 있느냐?”
“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금장생은 자기 머리를 툭툭 쳤다.
“네놈을 잡아서 머릿속을 열어 봐야 한다는 말이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네놈을 잡아서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해 보마. 잡아라!”
가토는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하얀 옷을 입은 자들 중 절반이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검은색 옷을 입은 자들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휘이익! 휘이익! 휘이익!
느닷없이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시작된 곳은 남은 자들이었다.
스윽!
금장생의 신형이 허공으로 반 장가량 떠올랐다.
스아아아아! 스아아아아!
바로 그 순간 바람이 금장생을 향해 밀려갔다.
“상대를 잘못 택했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금장생은 오른손을 휘둘렀다.
허공을 가른 오른손 손바닥이 혈사아 손잡이 끝을 쳤다.
스아아아!
혈사아가 전방으로 쏘아졌다.
반 장을 채 나아가기도 전에 물감을 뿌린 것처럼 붉은 기운이 허공을 채웠다. 붉은 기운은 그대로 바람을 뚫었다.
“컥!”
“큭!”
“윽!”
“크윽!”
바람이 멈춘 건 순식간이었다.
휘리릭!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혈사아가 금장생에게로 돌아오는 순간 아래쪽 땅이 폭발하는 것처럼 솟구쳤다.
츄아악! 츄아악! 츄아악! 츄아악!
그리고 근처 연못에서 물줄기가 솟구쳤다.
흙더미와 물줄기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금장생을 향해 쏘아졌다.
“내가 수사와 토사를 몰랐다면 큰 강점이 되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당신들을 알고 있습니다. 공격 방법을 들킨 이상 당신들은 그저 그런 무인에 불과할 뿐입니다.”
금장생의 시선이 흑사아로 향했다.
흑사아가 수직으로 서며 끝이 바닥으로 향했다.
앞으로 뻗은 왼손 손가락으로 흑사아의 손잡이를 가볍게 쳤다.
푸악!
흑사아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비처럼 지상으로 쏟아졌다.
금장생은 아래를 확인하지도 않고 오른손을 휘둘렀다.
탁!
그의 손끝이 혈사아 손잡이 끝을 쳤다.
슈아악!
혈사아는 붉은 폭풍이 되어 좌우측으로 퍼졌다.
먼저 사라진 건 흑사아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사라진 게 아니라 어떤 물체 안으로 파고들어 가 보이지 않는 상태다.
두 번째로 사라진 건 혈사아였다.
잠시 후 흑사아와 혈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억!”
“크윽!”
“으윽!”
이윽고 검은 옷과 흰옷을 입은 자들 수십 명이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부여잡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가락 사이로는 피가 벌컥벌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럴 수가…….”
가토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곳으로 온 대원의 수는 쉰 명이다.
풍령과 수령, 토령의 술을 익힌 인사들로, 그들의 실력이면 무림십패의 일인이라고 해도 능히 없앨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단 이 초 만에 몰살을 당해 버린 것이다.
“어떻게 강신술사가…….”
더욱 황당한 건 상대가 무인이 아니라 강신술사라는 점이었다.
척! 척!
흑사아와 혈사아는 다시 금장생 좌우측 어깨 높이에 멈춰 섰다.
“강신술사가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거라는 건 선입견입니다. 이 세상에는 강한 강신술사도 있는 법입니다.”
금장생은 혈사아를 가볍게 밀었다.
슉!
혈사아는 가토를 향해 쏘아져 갔다.
“헉!”
가토의 눈이 커졌다.
처음엔 붉은 광채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붉은 광채가 확 늘어나 전면을 붉게 물들였다.
붉은 광채가 모두 무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차앗!”
그는 전력을 다해 왜도를 휘둘렀다.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붉은 광채를 막을 수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자신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것도 보였다.
푹! 푹푹푹!
온몸 구석구석에서 극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아악!”
가토는 입을 쩍 벌리고 비명을 내질렀다.
곧 붉은 폭풍이 걷혔다.
가토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금장생을 보았다.
“편안한 길 되길 바랍니다.”
금장생은 가토를 보며 합장을 했다.
“개자식!”
가토의 신형이 풀썩 넘어갔다.
“그러게 말입니다.”
상체를 편 금장생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방금 쉰 명이 자신에게 할당된 인원인 듯, 더 이상 달려드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금세 몰려오겠지.”
그는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걸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가토를 비롯한 쉰 명이 당한 사실은 혈수사 사주 이시이와 사토사 사주 곤도에게 바로 보고되었다.
이시이와 곤도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냐?”
곤도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강신술사 놈은 어디 있느냐?”
“이곳으로 오는 중입니다.”
“끙!”
곤도는 전면을 보았다.
그와 이시이는 오다 아이와 그녀를 따르는 자들을 공격하는 중이고 유리한 상황이다. 가토가 강신술사를 없애고 합류하면 이곳도 바로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긴 것이다.
곤도는 이시이를 보았다.
“놈이 후방에서 치고 들어오면 포위망이 뚫리게 될 거네. 그럼 기껏 가둬 놓은 오다 아이와 그의 패거리가 탈출할 수도 있네.”
이시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지.”
곤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이백여 명의 인사가 후방으로 이동했다.
“인사 이백 명이 후미로 갔습니다.”
류는 오다 아이에게 적 상황을 보고했다.
“후방에는 회장님이 있지 않나요?”
“그들이 하는 말로는 광풍사 사주 가토와 인사 쉰 명이 회장님께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또 이백 명을 보냈다는 건가요?”
“네.”
“아무래도 내가 가 봐야겠어요.”
“그들이 회장님을 공격하면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류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사실 그들이 밀리고 있는 건 적의 수가 많은 까닭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금장생을 쫓던 광풍사와 사토사 팔백 명은 탈진한 정도로 지친 상태였고 조심해야 할 자들은 혈수사뿐이었다.
오다 아이는 시간을 끌면서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부하들을 설득하는 중이었다. 적극적인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금장생이 들이닥친 것이다.
“이거 좀 가지고 계실래요?”
오다 아이는 겉옷을 벗어 류에게 건넸다.
“그 모습으로 다닐 참입니까?”
류는 오다 아이를 보았다.
용린갑으로 몸을 감싼 상태이긴 하지만 벗은 거나 다름없다. 용린갑만 따로 입고 다니는 건 지양해야 할 것 같았다.
“가솔들에게 전 혈왕인 오다 아이가 나타났다고 입 아프게 말하는 것보다 이 모습을 보여 주는 게 훨씬 빨라요.”
“그래도…….”
“내가 창피한 것보다 가솔을 한 명이라도 살리는 게 더 중요해요. 다녀올게요.”
오다 아이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녀는 굳이 은신술로 몸을 숨기지 않았다. 용린갑을 걸친 모습을 드러낸 채 내달렸다.
“요, 용린갑이다.”
“혈왕이시다.”
그녀의 예상대로 혈가 진형에서 동요가 일었다. 많은 대원들이 경악에 찬 눈으로 오다 아이를 좇았다.
하지만 이시이와 곤도는 달랐다.
“저 계집은 덕천야 님을 살해했다! 죽여라!”
“쳐라!”
둘은 오다 아이를 가리키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바람과 물줄기와 흙더미가 동시에 오다 아이를 향해 쏘아져 갔다.
“가주님을 보호하라!”
오다 아이의 옷을 품속으로 쑤셔 넣은 류는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창! 창창창! 창창창!
곧 오다 아이의 앞에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컥!”
“큭!”
“윽!”
여기저기서 나직한 비명이 흘러나오고 사망자가 속출했다.
“차앗!”
오다 아이의 신형이 더욱 빨라졌다.
“모든 대원은 저 계집을 쫓아라!”
“죽여라!”
곤도와 이시이는 다시 고함을 내질렀다.
휘이익! 휘이익! 휘이익!
츄악! 추악! 추악!
바람이 불고 물이 허공으로 솟구치고 땅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스윽!
바로 그 순간 오다 아이의 신형이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대원들은 은신술을 펼쳐라!”
류는 고함을 내지르며 은신술을 펼쳤다. 그를 비롯한 대원들이 일제히 모습을 감췄다.
오다 아이가 모습을 감추자 쫓아가던 광풍사, 혈수사, 사토사 대원들도 일제히 그 자리에 멈췄다.
열화곡 안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이백 명이 몰려간 후미는 달랐다. 그들은 엄청난 기세로 금장생이 오고 있는 후미로 내달렸다.
―무슨 일입니까?
문득 금장생의 귓전으로 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입니다.’
―싸우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맞아요.’
―제가 도와 드릴 일은 없습니까?
‘세상 구경 좀 할래요?’
―네.
‘좋아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악마수에서 붉은 물체가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붉은 물체는 점점 커지더니 2미터 크기가 되었다.
“원래 킨가요?”
금장생은 물었다.
―네.
휘이익! 휘이익! 휘이익!
츄악! 츄악! 츄악!
바로 그때 전방에서 바람과 물과 땅이 이편을 향해 밀려왔다.
―저들은…….
카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풍령이나 수령, 토령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에도 있었어요?”
―네.
“위력은 어때요?”
―저들보다는 더 강했습니다.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말이네요?”
―네.
“우리를 위해서는 다행이네요.”
―설사 과거의 힘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카는 힘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
‘헐!’
금장생은 내심 헛바람을 삼켰다.
카가 힘을 끌어 올리자 내기가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