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64)
복위
―자네 바로 아래쪽 땅속에 있네.
두 번째 전음을 접하자 비로소 곤도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곤도가 숨어 있는 곳은 이 장 아래쪽이었다.
―그런데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가토는 물었다.
―혈왕께서 지시를 내렸네.
―사토사만 온 건가?
―혈수사도 와 있네.
―끙!
가토는 얼굴을 찌푸렸다.
대원들에게는 도쿠가와 신켄을 살해한 자를 없애기 위해 출병한다고 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은밀하게 돌고 있는 소문도 마음에 걸렸다.
―정말 살아 있는가?
그는 곤도에게 물었다.
―오다 아이 말인가?
―그러네.
가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출발하기 전에 알았는데,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사백 명 정도가 오다 아이를 따라갔다고 하네.
―사백 명은 어떻게 해서 나온 숫자라고 하던가?
―사인루에 매장된 시체를 제외한 나머지네.
―그래서 그런 거였구먼. 그런데 오다 아이는…….
―지금 이곳에 와 있네.
―어디 있단 말인가?
―태백산 북쪽 이부 능선에 보면 열화곡이라는 곳이 있네. 자네 왼편에 보이는…….
곤도는 열화곡의 위치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곳으로 오라는 건가?
―혈왕께서는 먼저 오다 아이를 없애는 데 주력하라고 하셨네. 그런데 광풍사가 공격하고 있는 자가 강신술사 맞는가?
―그건 왜…….
―대공녀를 강시로 제강했다면 옆에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아서 말이네.
―그건…….
가토는 할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쫓아왔던 자라 공격을 하고 있을 뿐 다이라 소라를 제강한 강신술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놈이 우리가 찾는 강신술사가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산을 내려가기 위해서는 온천곡을 지나쳐야 하니까 일단 내려오게. 난 가겠네.
곤도가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빌어먹을!”
가토는 욕설을 내뱉었다.
갑자기 짜증이 확 치밀었다.
그가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건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이 딱 그랬다.
강신술사가 맞는지조차도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공격을 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겠지.”
가토는 조장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의 전음을 받은 각 조 조장들은 철수 명령을 하달했다. 광풍사 대원들은 은밀하게 전장에서 빠져나갔다.
‘응?’
금장생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공격해 오던 자들이 갑자기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게다가 가는 방향은 산 아래쪽이었다.
“도망치는 건가? 아니면…….”
그는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는 주먹을 그러쥐었다.
“왜 갑자기 철수를 하는지 모르지만 내 허락 없이 산을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오늘 당신들은 전부 저승으로 가셔야 합니다.”
금장생은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의 시야에 팔장군이 잡혔다. 팔장군 역시 갑자기 목표물이 사라져 버리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금장생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에 옷을 사 주면서 조심해서 입으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금장생은 적사월을 보며 말했다.
‘너도 그것들과 싸워 봐. 만약 우리가 강시가 아니었다면 전부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거라고, 자식아. 그래도 좋아? 좋냐고!’
적사월은 내심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내 말은, 아무리 강시고 금강불괴지신이라고 하지만 몸도 좀 챙기라는 겁니다. 검에 찔리거나 베여도 안 죽으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고요. 저기 사노왕을 보세요. 깔끔하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금장생은 불여하를 가리켰다.
다른 이들과 달리 불여하의 옷은 찢어진 곳 없이 말끔했다.
‘그렇지 않아요.’
불여하는 고개를 저었다.
가슴을 덮고 있던 부분을 들추자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녀의 옷은 좀 특이하게 잘려서 표시가 나지 않을 뿐 깔끔한 상태는 아니었다.
‘거 봐라, 이 좀팽아!’
적사월은 버럭 소리쳤다.
“아무튼 가요.”
금장생은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정확하게 광풍사 대원들의 흔적을 더듬었다. 그리고 한 시진 반 정도를 내려갔을 때 광풍사 대원들이 들어간 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열기로 가득한 걸 보니까 여기가 바로 열화곡인 모양입니다.”
―들어가자.
적사월이 먼저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금장생과 팔장군의 나머지는 적사월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계곡 안쪽은 온통 뿌연 운무로 들어차,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깊은지 알 수가 없었다.
“전설에 의하면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하던데…….”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태백산에는 많은 전설이 있다. 그 전설 중 하나가 바로 이곳 열화곡이다.
열화곡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많았다. 열화곡 안에 불을 뿜어내는 괴물이 산다는 말부터 땅속에 용암이 끓고 있다는 말까지.
그 모든 이야기의 끝은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말이었다.
금장생은 시선을 내려 바닥을 보았다.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보였다.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 그 물웅덩이들이었다.
“그곳과 비슷하네.”
문득 만인물성 지하에서 보았던 정령의 땅이 떠올랐다.
그곳처럼 고요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생김새는 여러모로 비슷했다.
그는 좌우를 살피며 걸었다.
“멈추세요.”
십여 장을 걸어가던 금장생은 그 자리에 멈췄다.
그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은 삼 장 앞이었다. 땅이 바다처럼 출렁이는 듯 보였다.
운무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정상적인 상태는 절대 아니었다.
‘겁을 낼 걸 겁내라, 자식아!’
금장생이 멈추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사월은 앞을 향해 걸어갔다.
성큼성큼 걷던 그가 땅이 출렁이는 장소로 들어섰다.
“더 이상 가면…….”
금장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사월의 신형이 물속으로 가라앉듯 쑥 꺼졌다.
“이런!”
금장생은 곧바로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공간을 단축했다.
땅이 출렁이는 곳에 도착한 그는 바닥을 향해 내리꽂혔다.
푸욱!
하지만 그의 다리는 무릎까지만 파고들 뿐이었다.
“차아!”
기합과 함께 땅을 향해 장력을 뿌렸다.
콰앙!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오고 반 장 깊이의 구덩이가 생겨났다.
금장생은 몇 번에 걸쳐 장력을 쏘아 댔다. 곧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하지만 적사월은 보이지 않았다.
“제길…… 억!”
금장생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가 땅을 파는 사이 팔장군 일곱 명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미 머리만 빼고 모두 들어간 상황이라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불여하 일행이 빨려 들어간 곳으로 가 보았다.
그곳의 땅 역시 조금 전과 달리 딱딱해져 있었다.
“반사 신경이 빨랐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텐데.”
팔장군은 아직 강시 상태를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해 인간이었을 때보다 감각은 무디고, 순간 대처 능력도 떨어진다. 그건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숨을 안 쉰다고 해서 죽는 사람들도 아니고, 어지간한 걸로는 피부에 흠집도 내지 못할 테니까…….”
굳이 팔장군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내 일을 하면 되는 거지.”
금장생은 주위를 살피며 열화곡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열기는 더욱 강해져 한여름을 방불케 했다. 연못의 크기도 커졌다.
창! 창창창! 창!
안쪽 어디선가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금장생은 시선을 들었다.
“누구와 싸우는 거지?”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 적의 적은 동지라고 했으니까.”
금장생은 시선을 돌려 연못을 바라보았다.
뭔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필요하면 나오겠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자리를 뜨고 잠시 후, 물속에서 머리 하나가 나왔다.
사내는 멀어지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사내는 밖으로 나왔다.
“신기한 재주네요.”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어?”
그는 전면과 옆을 번갈아 보았다.
저 앞에는 분명 금장생이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바로 옆에 금장생이 또 있었다.
“저 앞에 가는 건 허상입니다.”
금장생은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가리켰다.
“어떻게…….”
물속에서 나온 사내는 눈을 비볐다.
“나는 물속에서 나왔는데도 물기 하나 묻어 있지 않은 당신의 기술이 더 부럽습니다.”
파앗!
금장생은 물속에서 나온 사내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타하!”
사내는 기합과 함께 금장생을 향해 양팔을 내밀었다.
쩌엉!
순간 대기가 급격하게 차가워졌다.
“여자도 아닌 남자가 빙공이라니 대단하군요.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습니다.”
금장생은 오른손을 휘둘렀다.
푸아악!
새하얀 광채가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양극신공을 바탕으로 펼치는 양극천강이었다.
퍽!
냉기와 양극천강이 부딪치면서 둔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 양극천강이 물속에서 나온 사내가 펼친 빙공을 부수며 나아갔다.
“이, 이건?”
물속에서 나온 사내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퍼억!
빙공을 전부 부순 양극천강이 사내의 가슴을 쳤다.
“커억!”
사내는 가슴을 그러쥐었다.
푸스스!
사내의 가슴에서 가루가 흘러내리더니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크아악!”
사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쑥!
몸을 돌리려고 하는데 다리가 쑥 들어갔다.
금장생은 재빨리 내기를 끌어 올렸다. 땅속으로 빠져들어 가던 그의 몸이 그 자리에 멈췄다.
땅은 빠르게 본래 딱딱한 상태로 돌아갔다.
몸을 슬쩍 띄워 땅에서 빠져나온 금장생은 왼편 무릎을 꿇으면서 바닥을 향해 손바닥을 찍었다.
퍼억!
그의 손바닥이 세 치가량 땅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주르르!
곧 사방에서 온천수가 용출되듯 붉은 액체가 솟구쳤다.
금장생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전설의 인사들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
그제야 땅속에서 활동하는 자들과 산에서 보았던 자들의 정체가 떠올랐다.
그들은 풍령의 술, 수령의 술, 토령의 술이라 불리는 특이한 술법을 익힌 인사들로 풍사風士, 수사水士, 토사土士라고 부른다. 하지만 동영에서 그들은 존재는 전설로만 남아 있다.
그들의 술법은 바람과 물과 땅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하였다. 심지어는 스스로 바람이 되고 물이 되고 땅이 될 수 있다고까지 하였다.
‘정령의 힘이었어.’
전엔 그런 힘을 눈으로 보았다고 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힘을 이해할 수 있다.
풍사, 운사, 수사의 기원은 다름 아닌 정령이었다.
혈가는 황가처럼 정령을 직접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정령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창안해 낸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전방으로 향했다.
조금 전 들었던 병기 소리의 주인들이 궁금했다.
한쪽은 혈가 무인들이 분명하지만 다른 한쪽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츄악! 츄악! 츄악! 츄악!
막 몇 개의 웅덩이로 이루어진 지역을 지나가려고 하는데 물줄기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삼 장 높이까지 솟구친 물줄기는 사방에서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왔다.
언뜻 보면 물줄기가 금장생에게로 달려드는 것 같지만, 물줄기 안에는 사람이 한 명씩 들어 있었다. 수령의 술을 펼쳐 물과 하나가 된 인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