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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62화 (262/524)

황금가 (262)

“……!”

너무 놀라 처음엔 아무 말도 못 했다.

환수각이면 중원에서 가장 강한 다섯 세력인 춘추오패의 한 곳이다. 그런 거대 세력의 수장이 이곳에 머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사정이 있기는 한데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습니다.”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시간이 흐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전 그만.”

오다 아이는 인사를 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오다 아이는 곧바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뒤를 모모코가 따랐다.

오다 아이는 모모코가 배웅하기 위해 따라오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망루를 벗어나서도 계속 따라오자 모모코를 돌아보았다.

“저도 갈 거니까 말리지 마세요.”

모모코가 말했다.

“망루는 모모코가 없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지금은 비수기라서 제가 없어도 괜찮아요.”

“알았어요. 함께 가기로 해요.”

오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결심을 하고 따라나섰는데 돌아가란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혈왕.”

그러자 나직한 외침과 함께 여자 대원들이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저들도 함께 가는 거예요?”

오다 아이는 여자들을 가리켰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저희도 함께 갑니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류가 일행과 함께 나타났다.

“끙!”

오다 아이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 검 안 잡기로 한 거 아닌가요?”

류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을 가리키며 물었다.

“가주님과 장생 그분이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만은 예외로 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니까 기어코 함께 가겠다고요?”

“네.”

고개를 끄덕이는 류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어렸다.

차가운 바람이 어둠을 갈랐다.

산중의 기온은 대기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다. 그 속에서 수백 명이 빠르게 움직였다.

복면으로 차가운 바람을 막고 있는 이들은 혈가를 떠나온 광풍사 대원들이었다.

휙!

선두에서 달려가던 자가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제일조 조장 임유상이었다. 임유상의 등에는 기다란 장도가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곧 광풍사 대원들이 그 자리에 멈추면서 엎드렸다.

적이 있어서 엎드린 게 아니라,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말하라!”

임유상은 말했다.

“앞에 계곡이 있습니다.”

“놈은?”

“이 근처 어딘가에 있는 건 확실합니다.”

“정확한 위치는 파악이 안 됐다는 거냐?”

“네.”

“알았다. 대기하라!”

임유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진형의 맨 뒤에는 광풍사 사주 가토가 있었다. 가토는 눈이 가늘고 턱이 뾰족한,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무슨 일이냐?”

가토는 임유상을 보며 물었다.

“저 앞에 본부로 쓸 만한 장소가 있는 모양입니다.”

임유상은 전방을 가리켰다.

“놈은?”

“이곳에서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이 근처 어딘가에 은신해 있단 말이냐?”

“네.”

“좋다. 거기로 간다.”

“알겠습니다.”

임유상은 다시 전방으로 내달렸다.

잠시 후 광풍사 대원들은 몸을 날렸다.

일각 후 그들의 들어선 곳은 한 면이 높은 절벽으로 가로막힌 계곡 안이었다.

계곡이라고 하지만 좌우측이 막혀 있지 않아 바람은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을 피하기 위해 납작 엎드려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내기를 끌어 올려 추위를 몰아내야 했다.

쉬지 않고 내기를 끌어 올리면, 정작 필요할 때 전부를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까지 고려하기엔 너무 추웠다.

그들이 금장생의 흔적을 발견한 건 아침나절이었다.

흔적은 산 위로 나 있었다.

“얼마나 됐느냐?”

가토는 추적을 담당하는 대원에게 물었다.

“한 시진 정돕니다.”

“바로 출발한다.”

“존!”

대원들은 추적조를 따라 산을 올랐다.

바람은 전날보다 더욱 거셌다. 복면 사이로 허연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빠르게 달려가던 그들이 멈춘 곳은 오부 능선 지점이었다.

“여기서 식사를 하고 간다.”

가토는 짧게 말했다.

대원들은 각자 바람이 들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잡고 준비한 음식을 꺼냈다. 그들이 준비한 건 육포였다.

차가워진 기온 때문에 육포는 더욱 딱딱했다. 마치 얼음을 씹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터라 열심히 입을 놀렸다. 한참을 씹다 보면 비로소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한 식경 후 다시 출발했다.

금장생의 흔적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이어졌다.

“놈이 우리가 추격하고 있다는 걸 아는 거 아니냐?”

태백산 칠부 능선쯤에서 가토가 임유상을 보며 물었다.

“이 길은 함양으로 들어갈 때 이용했던 길 중의 한 곳입니다.”

“그렇다면 유인당하는 것도 아니라는 건데…….”

가토는 위쪽을 흘끔 보았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잔뜩 흐린 걸 보면 머잖아 눈이 내릴 것만 같다. 그렇게 되면 추격은 더욱 힘들어진다.

아니, 발자국이 남기 때문에 추격은 더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원들은 더 힘들어진다.

‘놈은 한 명이고 우리는 사백 명이다. 여기서 멈출 순 없다.’

가토는 추격을 계속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그의 우려처럼 눈은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태백산 북쪽 능선으로 가면서 기온은 더욱 떨어졌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람 속에서 광풍사 대원들은 이틀 밤을 더 보내야 했다.

광풍사 대원들이 사흘째 밤을 보낸 곳은 태백산 북쪽의 오부 능선 지점이었다. 그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움직일 준비를 했다.

“저기…….”

제일조장 임유상이 손을 들었다.

“뭐냐?”

가토는 임유상을 돌아보았다.

“아, 아닙니다.”

임유상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는 지금 상태로는 추격이 힘들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토의 표정을 보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토의 얼굴에 어린 조급함 때문이었다.

사실 가토를 비롯하여 조장 여덟 명은 혈왕이 바뀌고 나서 새로 임명되었다. 그들은 지금까지는 임무가 없어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없었다.

다른 조직의 사주와 조장들도 마찬가지였다.

각 사주들은 임무가 떨어지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광풍사에 임무가 떨어졌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생겨 기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첫 임무에 대한 부담감도 크다. 만일 이번 임무에 실패하면 곧바로 무능한 지휘관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가토가 저토록 부하들을 몰아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 가토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급하게 몰아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출발해라!”

“알겠습니다.”

임유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출발 명령을 내렸다.

광풍사 대원들은 바로 출발했다.

한 시진 정도 달렸을 때였다.

“응?”

임유상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태백산 북쪽에 도착해서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중간에 횡보한 적은 있지만 그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벌써 한 시진 이상을 횡보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다.

“일조장.”

그런 느낌은 가토도 받은 모양이었다.

그는 임유상을 불러 세웠다.

“네.”

임유상은 가토를 돌아보았다.

“집합시켜라!”

“알겠습니다.”

임유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전 대원은…….”

“크아악!”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는데 후미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이냐?”

가토와 임유상을 비롯한 각 조 조장들이 후미로 내달렸다.

“저건?”

아홉 명의 눈이 커졌다.

맨 후미에 쓰러져 있는 자는 광풍사 대원이었다.

“어떤 놈인지 보았느냐?”

가토는 주변에 있는 대원을 보며 물었다.

“볼일을 본다며 뒤처졌던 친구라…….”

대원은 말끝을 흐렸다.

“전 대원은 경계 태세를 취하라! 그리고 팔조는 후미를 수색하라!”

가토는 빠르게 명령을 하달했다.

“존!”

팔조 조원 쉰 명은 후미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들은 금장생을 발견하지 못했다.

“숨은 것 같습니다.”

본대로 돌아온 팔조 조장이 보고했다.

“지금부터 수색 작업을 한다. 각 대원당 거리는 삼 장이다. 쥐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샅샅이 훑어라!”

가토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존!”

광풍사 대원들은 수색 진형을 구축했다. 그리고 사방을 훑으면서 전진했다.

그런 그들을 내려다보는 자가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광풍사 대원들로부터 백오십여 장 떨어진 절벽 위였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자는 금장생이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자객으로 활동할 때의 습관이었다.

그 옆으로는 팔장군들이 금장생과 같은 자세로 웅크리고 있었다.

금장생은 팔장군들을 보았다.

거추장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철갑거인과 함께 차원의 틈새로 보내지 않은 건 얼만 전 알아낸 사실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팔장군들은 숨을 쉬고 있었다. 보통 사람처럼 빠르진 않았지만 숨을 쉬는 건 분명했다.

슬쩍 심장을 확인해 보았다. 아직 심장은 뛰지 않았다.

하지만 숨을 쉬기 시작했으니까 머잖아 심장도 뛰고 다른 장기들도 살아날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인간으로 돌아가게 되면 맺었던 계약은 자동으로 파기될 것이다.

그렇게 됐을 때 저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것도 문제였다.

‘자기네들이 알아서 결정하겠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접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애들도 아니고 성인인데, 알아서 할 것이다.

“안 추워요?”

금장생은 팔장군들을 보며 물었다.

‘나도 좀 추웠으면 좋겠다, 자식아!’

적사월이 내심 소리쳤다.

금장생은 적사월을 보았다.

‘이 자식이…….’

금장생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아 적사월은 찔끔했다.

‘혹시 내게 감정 있어요?’

금장생은 적사월을 빤히 보며 물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적사월의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이 나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거슬리는 뭔가가 있었다.

‘없을 리가 없잖아, 인마. 아무리 강시라고 해도 속옷은 줘야지. 이 엄동설한에 겉옷만 입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

“이런 날씨에 산속에서 노숙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무슨 생각, 자식아.’

“여러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감각을 되살리는 겁니다. 차원의 틈새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곳처럼 날씨나 기온이 변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즉, 늘 같다는 거죠. 그런 곳에 있으면 절대 감각을 되살리지 못합니다. 감각을 빨리 되살리기 위해서는 추위와 더위를 다 겪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말이나 못 하면, 자식아.’

금장생의 말이 맞기 때문에 딱히 반박할 것도 없었다.

금장생은 같은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서 저녁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사위가 완전히 어두워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자 팔장군들도 따라 일어났다.

“흠!”

금장생은 팔장군들을 보았다.

혈가에서 나온 자들이면 구 할 이상 자객일 것이다. 그들을 상대하려면 자객술을 펼쳐야 하는데 팔장군의 몸 상태로는 불가능하다.

“조용히 다니다가…… 거치적거리는 자들이 있으면 다 없애 버리세요.”

지금 금장생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명령이었다.

“놈들은 저기 있습니다.”

금장생은 광풍사 대원들이 숨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여기서 보기로 해요.”

금장생은 은신술을 펼쳤다.

곧 그의 신형은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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