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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61화 (261/524)

황금가 (261)

주공 그놈

빠르게 변하는 무림과 달리 양민들이 살아가는 곳은 세월이 흘러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 힘겹게 살다가 나이 먹고 병들고, 생을 하직하는 순서를 따른다.

그런 양민들과 함께하는 장의사도 다르지 않다.

꽁꽁 언 엄동설한에 사망자가 더 많이 생길 것 같아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여름보다 더 한가한 때가 한겨울이다.

북망산의 망루도 다르지 않았다.

일은 며칠에 한 건 정도로 드물어, 대부분의 날을 한가롭게 보내고 있었다.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오다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들어와요.”

이어 문이 열리고 모모코가 들어왔다.

“어서 와요.”

오다 아이는 놓고 있던 수를 옆으로 내려놓았다.

“수놓고 계시네요?”

모모코는 오다 아이가 내려놓은 수를 보며 말했다.

“딱히 할 일도 없잖아요. 차 드려요?”

“차를 제가 타야지 왜 가주께서 타요.”

“가주란 말 그만하라고 했잖아요. 이제 우린 좋은 동료이자 친굽니다. 자꾸 그러면 여길 떠나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호호! 알았어요.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나오는 거라…… 앞으로 조심할게요. 하지만 차는 제가 탈 거예요.”

화로 위에 주전자가 올려져 있어 굳이 물을 끓일 필요도 없었다. 주전자 안에 찻잎을 넣고 우려내면 그걸로 끝이었다.

찻주전자를 가져온 모모코는 찻잎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간이 주방으로 가서 찻잔을 가져와 두 사람 앞에 하나씩 놓았다.

잠시 후 차가 우려지자 찻잔에 따랐다.

향긋한 차향이 실내로 퍼져 나갔다.

“이곳은 별일 없죠?”

“네. 사망자도 별로 없고 한가해요. 운구 일이 간혹 들어오긴 하는데 회장님이 안 계시는 바람에 일할 사람도 없고요.”

“그거나 한번 배워 볼까요?”

“어떤 거요?”

“강신술 말이에요.”

“강시를 운구하게 되면 주로 밤에 다녀야 하고 강시들이 묵는 특수한 객잔에서만 자야 한다고 하던데, 그래도 할 수 있겠어요?”

“못 할 것도 없죠, 뭐. 그리고 산 사람들보다는 죽은 강시가 더 안전하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꿈속에 시체가 나올지도 몰라요.”

“그건 별론데…….”

오다 아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회장님 조수라면 모를까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조수라고요?”

“혼자 다니는 것보다 누군가 옆에 있어 주면 덜 심심하고 좋잖아요.”

“조수를 하려면 강신술을 익혀야 하잖아요.”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모모코는 피식 웃었다.

“무슨 일이죠?”

“놀러 왔다니까요.”

“우리가 함께한 지 이십 년이 넘었어요, 모모코. 만일 내가 가주가 아니었다면 모모코를 언니로 불렀을 거고요. 그 말은 곧 모모코의 얼굴만 봐도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는 걸 뜻해요.”

“지금 저는 어떤 상태인 것 같습니까?”

“아주 중요한 일이예요. 하지만 여기와는 상관없고, 전에 있던 곳과 관계가 있어요. 그래서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망설이고 있어요. 내 말이 맞죠?”

“정말 귀신이네요.”

모모코는 놀란 얼굴로 오다 아이를 보았다.

“말해 보세요.”

“알았어요.”

모모코는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이곳으로 온 진짜 이유를 말했다.

“혈가에서 광풍사와 사토사, 혈수사가 출병했대요.”

“전부요?”

“네.”

“천이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 필요할 만큼 큰 작전이 있을 리가 없을 건데…….”

오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리저리 알아본 바에 의하면 딸 다이라 소라 때문이랍니다.”

“다이라 소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죽었답니다.”

“죽어요?”

오다 아이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아는 다이라 소라는 십대자객 서열 이 위에 오를 정도로 강자다.

게다가 우스갯소리로, 자객은 싸우는 것보다 도망치는 걸 더 잘한다고 하기도 한다. 그만큼 도주에 능하다는 소리다.

그런 그녀가 누군가에게 당해 죽었다는 사실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

“그녀를 살해한 조직을 알아냈나 보죠?”

조직이 아니라면 천이백 명이나 되는 인원을 출병시킬 이유가 없을 거란 생각에서 하는 말이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럼?”

“다이라 소라를 강시로 제강한 강신술사를 잡기 위해 출병했다고 해요.”

“그게 무슨 말이죠?”

“강신술사가 운송 비용으로 백구십만 냥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누군지 몰라도 배포가 엄청나네요.”

“더 웃긴 건, 다이라 토미가 이백사십만 냥을 입금시켰다는 거예요.”

“조금 전에는 백구십만 냥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해강 비용을 오십만 냥으로 책정해 두었대요.”

“그러니까 제강 비용, 운구 비용, 해강 비용을 각각 구분해서 청구했군요.”

“그런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강신술사 한 명을 잡는 데 천이백 명을 출병시키는 건…….”

“사건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더 있어요?”

“다이라 소라가 혈가를 나갈 때 태양군단을 대동했다고 해요. 역불개와 십이상객도 동행했고요.”

“혈가 일이 아니라 태양상인 일 때문에 외출했다는 말이 되는 거네요?”

“네. 그런데 태양군단 사백마흔 명이 만인물성에서 몰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대요. 다이라 소라가 죽은 곳도 거기고요. 그래서 만인물성에서는 다이라 소라의 죽음이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걸 밝히려고 생장이라는 강신술사를 고용해서 강시로 제강했다고 해요. 그 생장이란 강신술사가 백구십만 냥을 요구했고요.”

“킥!”

오다 아이는 피식 웃었다.

“왜……?”

모모코는 의아하다는 듯 오다 아이를 빤히 보았다.

“그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게 무슨 말이죠?”

모모코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며 물었다.

“우리는 돈을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알고 있잖아요.”

“저는 도무지…….”

“생장을 뒤집어 보세요.”

“생장을 뒤집으면 장생…… 맙소사.”

모모코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는 바로 자신들을 이곳으로 보낸 장생이었다.

“저, 정말 그분 맞아요?”

모모코는 확인하듯 물었다.

“맞아요.”

오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무모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죠?”

“그에겐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어요.”

이곳에서 안 사실이었다.

천야와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장생의 성이 금씨라는 걸 알았다.

자신이 아는 한 금장생이란 특이한 이름을 가졌으면서 장사꾼 피를 타고난 사람은 황금전가 셋째 아들 금장생뿐이다.

그가 혈가에 시비를 걸었다면 황금전가를 몰락시킨 자들을 알아냈다는 걸 뜻한다.

“이유라고요?”

“아직은 정확하진 않아요. 좀 더 확실해지면 그때 말해 줄게요.”

오다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게요?”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는데 두고 볼 수는 없잖아요. 아니, 그를 돕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광풍사와 사토사, 혈수사 대원을 살리기 위해 간다고 봐야 해요.”

“그분이 광풍사와 사토사, 혈수사를 모두 없앨 거라고…….”

모모코는 말끝을 흐렸다.

이미 그의 실력은 확인했다. 그는 시간만 충분하다면 천이백 명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수도 충분히 없앨 수 있다.

“내가 가지 않으면 광풍사와 사토사, 혈수사가 전멸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다이라 토미 또한 가주님, 아니 아이 님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나는 가 봐야 해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대략적인 위치는 나오지 않았어요?”

“감숙성과 섬서성 경계 지점 어딘가에 있나 봐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대규모 인원이 작전을 펼치는 곳을 찾아가면 그가 있을 테니까요.”

오다 아이는 안쪽을 들어가 옷장을 열었다.

옷장 안에는 비늘이 붙어 있는 갑옷 한 벌과 장검과 소검이 포개져 놓여 있었다.

오다 아이는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그러자 환상적인 몸매가 나타났다.

‘대단하네.’

모모코는 혀를 내둘렀다.

오다 아이의 몸매는 여자인 자신이 보아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엄청났다. 저런 몸매를 가지고 혼자 사는 게 죄악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오다 아이는 갑옷을 입었다.

갑옷은 상의와 하의 두 벌로 이루어져 있었다.

먼저 하의를 입고, 상의를 걸쳤다.

말이 갑옷이지 재질은 일반 천보다 더 얇아 몸의 굴곡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심지어 가슴 끝에 달린 유두까지도 도드라져 보였다.

그나마 그녀를 덜 민망하게 해 주는 건 전신을 덮은 비늘이었다. 마치 커다란 물고기 비닐처럼 보이는 것이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이 갑옷이 바로 그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용린갑이었다.

용린갑을 다 입은 오다 아이는 다시 옷장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는 갖가지 암기가 들어 있었다. 그 암기들을 꺼내 갑옷 각 부위에 끼워 넣었다.

원래 암기를 끼우도록 돼 있는 갑옷인 듯, 암기가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표시가 나지 않았다.

“암기가 몇 개예요?”

오다 아이를 지켜보던 모모코가 물었다.

“전부 백여덟 개예요.”

“염주 숫자하고 맞춘 건가요?”

“염주 수하고 맞춘 게 아니라 백팔번뇌라고 부르는 번뇌의 수와 맞춘 거겠지요.”

“일리가 있네요.”

모모코는 싱긋 웃었다.

암기 장착을 끝내고 검 두 자루까지 찬 오다 아이는 갑옷 위로 옷을 걸쳤다. 그녀가 걸친 옷은 장포 한 벌이었다.

“장포만 걸치면 춥지 않아요?”

“용린갑이 수화불침이라서 괜찮아요.”

오다 아이는 장포 허리를 묶으며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십니까?”

천야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며칠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아서요. 마침 인사를 드리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무장까지 하신 걸 보면 좋지 않은 일인가 봅니다.”

천야는 장포 사이로 드러난 검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과거 부하들이 몰살을 당하게 생겨서 가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네요.”

“과거 부하들이면 배신자들 아닙니까?”

“그들이 절 배신했다고 해서 저까지 배신할 수는 없잖아요.”

“쯧! 사람 보는 눈도 없지.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분을 배신해서는…….”

천야는 혀를 찼다.

오다 아이는 나이가 자신보다 어림에도 불구하고 하대를 하는 게 힘들 정도로 기품이 넘쳤다.

이곳에 들어와 있는 또 다른 손님인 척사랑이나 태천야도 거대 조직의 수장이긴 하지만, 고귀함으로 따지자면 오다 아이에 미치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고개가 숙여지게 하는 무형의 힘이 있었다.

‘그런 걸 제왕지기라고 한다고 했지, 아마?’

천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오신 두 분은 어떤 분들이십니까?”

두 사람이 망루로 온 건 일월 초였다.

상당히 지친 기색의 두 사람의 무공은 가공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엄청났다.

그들 중 특히 남자의 무공은 지금까지 겪은 자들 중 최강이었다. 어쩌면 금장생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검은 피부의 여자는 이곳에 기거하고 있던 노인의 딸이었다.

그 노인 역시 처음엔 단순한 손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신강의 절대자라고 불리는 신강태존 태천야였다.

그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신강태존 한 사람으로 인해 북망산 망루가 용담호혈이 된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또다시 엄청난 신분일 걸로 짐작되는 자가 망루에 머물기 시작한 것이다.

“환수각의 각주 천사 척사랑 대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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