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59)
“나는 소라를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 묘한.”
“저도 그렇습니다, 혈왕. 하지만…….”
묘한은 말끝을 흐렸다.
“소라가 죽은 걸로 거짓 서찰을 보낼 리가 없을 거란 말이냐?”
쿵!
묘한은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소라는 내 모든 걸 이어받았다. 그 아이가 당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소라의 현재 위치는 찾았느냐?”
“그게…….”
묘한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직 못 찾았다는 거냐?”
혈왕의 목소리가 커졌다.
“대공녀를 데리고 온다는 강신술사는 보이지 않고, 대신 이게 태양상인으로 왔습니다.”
묘한은 무릎걸음으로 가서 서찰을 내밀었다.
다이라 토미는 서찰을 받아 펼쳤다.
서찰로 인사를 드리게 돼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이 서찰을 드리는 건 소라라는 이름의 강시 때문입니다.
만인물성에서 약간의 돈을 받긴 했지만 그건 만인물성까지 가는 비용일 뿐 강시를 제강하고 운송하는 비용이 아니었습니다.
만인물성 성주는 태양상인으로 운구해 주면 비용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비용 청구를 하고자 합니다.
총비용: 백구십만 냥
선택 사항은 제외하였음.
비용 세부
주사 비용: 십만 냥(필수)
부적 비용: 십오만 냥(필수)
강시복 비용: 십만 냥(필수)
염 비용: 오만 냥(필수)
제강 비용: 오십만 냥(필수)
운구 바용: 백만 냥(필수)
해강 비용: 오십만 냥(선택)
상기 금액을 생장이란 이름으로 황하전장에 입금시켜 주시면 소라라는 분을 태양상인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이 서찰을 받고 닷새 후까지 입금이 확인되지 않으면 시체 운구 계약을 할 의사가 없는 걸로 간주하고 바로 해강하겠습니다.
들짐승의 먹이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건 당신네들이 택하신 거니까…….
혹시 계약을 하고 해강까지 생각하신다면 오십만 냥을 추가로 입금하시면 됩니다.
강신술사 생장 드림
“죽일!”
화르륵!
다이라 토미의 손에서 불길이 확 일었다.
불길은 곧바로 서찰을 재로 만들었다.
정중하게 쓰인 것 같지만, 백구십만 냥을 주지 않으면 소라의 시체를 야산에 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당장 놈을 찾아!”
다이라 토미는 묘한을 보며 버럭 소리쳤다.
“바로 대원들을 내보냈습니다.”
묘한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서찰이 도착한 지 얼마나 됐느냐?”
“오늘이 나흘쨉니다.”
“빌어먹을!”
다이라 토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벌써 나흘이 지났다면 남은 기간은 하루다.
해강에 대한 건을 제외하더라도 백구십만 냥을 입금해야 소라의 죽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아직 놈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혈왕.”
“당장 돈을 입금해라.”
“알겠습니다.”
묘한은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돌아온 건 저녁 무렵이었다. 그때까지도 다이라 토미는 집무실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돈을 집어넣었습니다.”
“타격이 크지?”
“그게…….”
묘한은 말끝을 흐렸다.
“어떤 돈을 돌린 거냐?”
“오십만 냥은 대원들에게 지불할 월급이고 오십만 냥은 예비비, 그리고 백사십만 냥은 전장에서 빌렸습니다.”
“이번 달 월급은 지불할 수 있느냐?”
“이번 달까지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다음 달부터는…….”
“생장이란 놈이 돈을 찾아가면 바로 알 수 있도록 해 두었겠지?”
“네.”
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태양상인에는 여윳돈이 없느냐?”
“상단주가 사라진 바람에 그걸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다이라 토미는 말끝을 흐렸다.
“말씀하십시오.”
묘한은 차분하게 말했다.
“소라의 죽음은 물론이고 태양군단의 몰살에는 역불개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느냐?”
“저도 그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일 역불개가 배신을 했고 강신술사도 역불개 편이라면 어떻게 되느냐?”
“우린 파산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입금한 돈을 되찾으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
“반년입니다.”
“태양상인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엔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구나.”
혈가의 가장 큰 약점은 상단에 대한 모든 권한이 역불개에게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만든 사람은 현재의 혈왕이 아니라 전 혈왕인 오다 아이였다.
오다 아이를 내치고 나서 상단주에게 주었던 권력을 가져오기 위해 가법도 개정했다.
개정된 가법은 올해부터 시행됐는데 문제가 생기고 만 것이다.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우리가 직접 해 보는 건 어떠냐?”
“어떤 걸 직접 한다는 말입니까?”
“동정호에 있는 우리 배를 동영으로 보내서 은을 사 오는 거다.”
“은을 사 오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총 구입 금액의 오 할만 준비하면 은을 주겠다는 사람이 있다.”
“혈왕께서는 얼마나 구입하실 생각입니까?”
“오백만 냥을 보낼 생각이다.”
“동영의 은값이 이곳의 절반이고 총금액의 오 할만 받기로 하였다고 하였으니까, 중원 금액으로 이천만 냥 어치의 은을 들여오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
“하지만 우리에겐 돈이 없습니다.”
은을 들여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구입할 돈을 구하는 게 더 큰 문제였다.
“화가에서 대기로 했다.”
“화가요?”
“화왕과 내가 친하지 않으냐? 우연히 은 이야기가 나와서 크게 한번 들여와야겠다고 했더니 자기도 투자를 하고 싶다고 하더구나.”
“그럼 오백만 냥은?”
“화왕으로부터 받을 금액이다.”
“화왕께는 오백만 냥이 있으면 이천만 냥 어치의 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말했습니까?”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지.”
“그럼 우린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오백만 냥을 벌 수 있군요.”
“맞다. 그렇게 몇 번만 하면 우린 더 이상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바로 총선장에게 연락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다이라 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총사 묘한이 이백사십만 냥의 행방을 발견한 건 다음 날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 준 자는 황하전장 지부장이었다.
그는 곧바로 다이라 토미에게 보고했다.
“난줍니다.”
돈을 찾아간 곳은 감숙성 성도 난주였다.
“그런데 현금으로 찾아갔답니다.”
“이백사십만 냥이나 되는 돈을 전부 현금으로 찾아갔다는 거냐?”
다이라 토미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전표로 찾아가면 현금으로 바꿀 때마다 행적이 노출될 테니까 설사 지금 놓친다고 해도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전부 현금으로 찾아갔다면 지금 아니면 찾아낼 방법이 없다.
“그렇습니다.”
“얼굴은 제대로 보았다고 하더냐?”
이제 기대할 수 있는 건 돈을 내준 자가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확실하게 기억한답니다. 그래서 화가를 찾아 놈의 초상화를 그려 놓으라고 해 놓았습니다.”
“잘했다.”
다라이토미의 얼굴이 비로소 약간 밝아졌다.
“누구를 보낼까요?”
혈가는 태양군단太陽軍團, 광풍사狂風士, 사운사死雲士, 혈수사血水士, 사토사死土士의 총 다섯 개 조직을 지니고 있다.
이번에 전멸한 태양군단은 다이라 토미의 최심복이었고 반란의 주역이라 믿을 만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네 개 조직은 완전하게 신뢰하긴 힘들다.
물론 사주와 조장을 바꿔 조직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위기의 순간이 오면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완전하게 장악하지 못한 게냐?”
“장악은 끝났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건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겁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냐?”
“꼭 그렇진 않겠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다.”
다이라 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손가락으로 보료 위를 두드리던 다이라 토미는 물었다.
“지금 덕천야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덕천야는 전전대 혈왕을 부르는 호칭으로, 이름은 도쿠가와 신켄이었다.
도쿠가와 신켄은 현 가주인 자신은 물론이고 전 가주였던 오다 아이보다 더 가솔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가 그렇듯 존경과 신뢰를 받은 이유는 사십 년 넘게 혈가를 다스리는 기간 동안 지연이나 혈연보다는 실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한 점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주직을 넘길 때에도, 오다 아이에게 넘겨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했다.
그러한 점들로 인해 도쿠가와 신켄은 지금도 가장 존경받은 어른으로 꼽히고 있다.
사실 자신이 반란에 성공한 것도 도쿠가와 신켄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심어 둔 아이들은 그대로 있겠지?”
“네.”
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제거해라.”
“네?”
묘한은 굳은 얼굴로 다이라 토미를 보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제거해야 할 사람 아니냐. 혈가의 번영을 위해 죽는 거니까 아쉬울 게 없겠지. 그리고 그의 죽음을 전 가솔들에게 알리고, 놈을 범인으로 지목해라.”
“알겠습니다.”
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라 토미의 말에 따르자면 이번 출병 목적은 전전 혈왕인 도쿠가와 신켄을 암살한 자를 사로잡기 위한 게 된다. 출병 명분으로는 최고였다.
“광풍사는 선봉으로 세우고, 사토사를 은밀하게 뒤따르게 해라.”
“굳이 사토사까지 출병시킬 이유가 있습니까?”
묘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광풍사 대원의 수만 해도 사백 명이다. 전전대 혈왕을 암살한 자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출병하는 거니까 광풍사 대원 사백 명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 사토사 사백 명까지 더한다는 건 너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노리는 건 그놈뿐만이 아니다.”
“하면?”
“오다 아이가 우리를 감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럼 사토사를 내보내는 이유가…….”
“그 계집은 혈가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정보를 받고 있을 게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테고.”
“우리 작전을 망치려고 할 거란 말입니까?”
“나 같으면 그렇게 할 것 같다.”
“만일 오다 아이가 부하들을 데리고 나타나면 광풍사나 사토사 대원들 중에서 흔들리는 자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못 하게 해야지.”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도쿠가와 신켄의 암살을 주도한 자가 오다 아이라는 소문을 내라.”
“소문을 내라 하심은?”
“지금과 같은 때에는 사실보다는 소문이 훨씬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니까 강신술사가 도쿠가와 신켄을 없앤 건 사실로 적시하고, 그 암살에 오다 아이가 관련됐다는 건 소문으로 퍼뜨리란 말씀이시군요.”
“맞다.”
“알겠습니다.”
묘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의 행적은 수소문하고 있겠지?”
“개방과 하오밀문에 청부를 했습니다. 초상화도 있고, 강시를 데리고 이동하는 중이니까…….”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겠구나.”
“그렇습니다.”
“바로 광풍사와 사토사를 출병시켜라.”
“알겠습니다, 혈왕!”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혈수사도 출병시켜라.”
“혈수사까지요?”
묘한의 눈이 커졌다.
“그렇다.”
“알겠습니다.”
묘한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날 저녁, 한 시진 간격으로 천이백 명이 혈가를 떠났다.
그들의 목적지는 섬서성과 감숙성 경계에 위치한 태백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