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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56화 (256/524)

황금가 (256)

―저 인간을 주공이라고 부르란 말입니까?

―맞다.

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죽어도 못 합니다.

―크앙!

라의 입에서 포효가 터져 나왔다.

―헉!

카의 눈이 커졌다.

성인 두 배 크기였던 자신의 키는 한 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고 몸 주위에서 피어오르던 열기도 사라졌다.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라를 보았다.

라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 우스꽝스러웠던 노인은 온데간데없고, 키가 무려 오 장에 달하는 거대한 괴물이 서 있었다.

괴물의 온몸에는 길이가 한 자에 달하는 털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털은 빳빳하게 곧추서, 징을 박아 넣은 거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털끝은 서늘한 예기를 사방으로 뿌려 댔다.

얼굴에는 눈과 입뿐이다.

시뻘건 광채를 뿜어내는 눈은 어른 머리 크기 정도고, 눈 아래쪽에는 초승달 모양으로 갈라진 틈이 있었다. 라의 입이었다.

얼굴의 왼편 끝에서 오른편 끝까지 갈라져 있었는데, 얇은 입술 사이로 살짝 드러나 보이는 송곳니가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

―다시 말해 봐라.

라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자 입안이 드러났다.

삼각형 형태의 송곳니가 세 겹으로 박혀 있었다.

만일 저 입에 씹힌다면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을 것만 같다고 카는 생각했다.

―저, 저는…….

―계약.

―아, 알겠습니다.

카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계약을 맺는 수밖에 없다.

본래 모습을 돌아온 카는 금장생 앞으로 갔다.

―나와 계약하기를 원하는가?

카는 금장생의 영혼을 보며 물었다.

―너 좀 맞아야겠다.

순식간에 카 앞으로 다가온 라가 카의 목을 틀어쥐었다.

―제가 뭘 잘못했다…….

퍼억!

―크아악!

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정령이…….’

카는 경악했다.

원래 정령은 고통이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온다.

믿기지가 않았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라는 마구 손을 휘둘렀다.

―시,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발 매는…….

카가 빌자 그제야 매질이 멈췄다.

―계약.

라는 카를 보며 말했다.

―저 카는 주공께서 계약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카는 라를 흘끔 쳐다보았다.

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할게요.’

금장생의 영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어느 정도까지 요구할 수 있죠?’

금장생의 영혼은 물었다.

―저 녀석은 소멸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일 게다. 그렇지 않으냐?

라가 말했다.

―그, 그렇습니다.

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강한 우군을 얻었군요.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금장생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계약 끝났으면 이곳 좀 따뜻하게 해.

라가 카를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카는 금장생의 영혼을 보았다.

‘내가 허락해야 하는 건가요?’

금장생은 물었다.

―제 힘의 원천은 주공이십니다. 당연히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쓰세요.’

금장생의 영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는 곧바로 힘을 쏟아 냈다.

사방으로 열기가 펴져 나갔다. 곧 내부는 훈훈한 공기로 들어찼다.

―이제 좀 낫네.

라는 히죽 웃었다.

‘봉란 소저가 일어난 것 같은데, 전 그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라.

‘여기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다시 오는 건 힘들 게다.

‘그렇군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금장생의 영혼은 인사를 하고 악마수 밖으로 나갔다.

그때 봉란은 정신을 차리는 중이었다.

“끙!”

봉란은 얼굴을 찌푸렸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마치 흡정공을 익힌 자에게 정혈을 모두 빨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른 내기를 끌어 올려 한 바퀴 돌렸다. 그제야 몸이 조금씩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시선을 들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우뚝 솟은 가슴이었다. 가슴은 온통 멍투성이었다.

‘저게 다…….’

그녀는 팔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시선은 여전히 아래로 향한 채쳤다.

“이건?”

봉란은 기절할 뻔했다.

온몸에 멍이 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모두 이와 입술에 의해 생긴 멍이었다.

아무리 격하게 사랑을 나눴다고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서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헉!”

그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엉덩이 쪽에서 은은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그건 곧 정상적으로 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걸 뜻했다.

“맙소사! 이건 말도 안 돼.”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겁니까?”

봉란은 고개를 들었다. 금장생이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내 몸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웃음이 나와요?”

“내가 그런 게 절대 아닙니다.”

“당신의 의지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나는 철저하게 방관자였을 뿐입니다.”

“흥! 색마.”

봉란은 금장생을 흘겨보더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멈춰 서고 말았다. 통증이 심해 걷기가 힘들었다.

“힘들어요?”

“먼저 가세요.”

봉란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혼자 가라고요?”

“나는 지금 걸을 수가 없어요. 며칠 쉬고 나면 나아질 테니까 그때 나갈게요.”

“나는 지금 아사 직전인데 배고프지 않아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지만 걷지를 못하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그렇다고 당신이 등을 빌려줄 것 같지도 않고요.”

“등……이라고요?”

금장생은 자신의 어깨를 흘끔 바라보았다.

“천천히 나갈 테니까 먼저 가세요.”

봉란은 손을 휘저었다.

“그럼!”

금장생은 몸을 돌렸다.

―너 미쳤냐?

라가 버럭 소리쳤다.

‘왜요?’

―저건 인마, 업어 달라는 거잖아.

‘업어요?’

―영혼을 빌려줬다고 하지만 저 아이를 저렇게 만든 건 너잖아. 당연히 업어 줘야지.

‘그때 난 자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업어 줘야 해. 등 한번 빌려주는 걸로 황가를 통째 얻을 수 있는데 그걸 안 하면 넌 바보 중의 바보야, 인마. 알아?

‘그러다가 코 꿰면 어쩌라고요?’

―코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 같으면 저 정도 몸매에 배경을 가진 여자라면 코뚜레를 끼워서 받치겠다, 이놈아.

‘성주가 보여요?’

―꼭 봐야 아냐?

‘아무튼 전 싫습니다.’

―정말?

‘네.’

―그래도 업어 줘.

‘난…….’

―너 나 나이 먹었다고 무시하는 거지?

‘제가 왜 영감님을 무시해요!’

―그럼 왜 말을 안 듣는데? 네게 해 갈 건 절대 없으니까 내 말 들어, 인마!

라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아, 알았으니까 고함 좀 그만 질러요.’

금장생은 봉란 앞으로 갔다. 그리고 등을 대고 앉았다.

“뭐죠?”

봉란은 물었다.

“이 황량한 곳에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업어 주겠다는 건가요?”

“큰맘 먹고 온 거니까 마음 변하기 전에 얼른 업혀요.”

“알았어요.”

봉란은 벌떡 일어나더니 금장생에게 업혔다.

“많이 굶기는 굶었나 보네요. 안 업은 것처럼 가벼워요.”

“정말요?”

“많이 좀 먹어요.”

“고마워요.”

“뭐가요?”

“업어 준 거.”

“안 업은 것 같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아무튼 고마워요.”

“저기…….”

금장생은 걸음을 멈추고 한 곳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서 있었는데, 그 바위에 시체 한 구가 기대앉아 있었다.

“가 봐요.”

봉란의 말에 금장생은 바위 앞으로 갔다.

시체는 비교적 보관 상태가 양호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을 게 분명한데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시체 옆 바위에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금장생은 맨 윗줄을 읽었다.

나는 황가 십일대 가주 봉탁이다.

“맙소사.”

봉란은 신음을 내뱉었다.

“내려 줘요?”

“네.”

금장생은 봉란을 내려 주었다.

봉란은 서둘러 바위 앞으로 갔다.

나는 황가팔노와 함께 이곳으로 들어왔다. 황가의 비밀을 풀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었다.

물론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모험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곳까지밖에 오지 못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부디 후대에 이곳의 비밀을 푸는 이가 나타나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를 바라노라.

“풀었습니다. 그러니 편히 잠드세요.”

봉란은 시신을 향해 절을 했다.

“묻어 주지 않을 건가요?”

“묻어 줄 힘도 없어요. 나중에 아버지와 전주들과 함께 들어와서 묻어 줄 거예요.”

“이런 경우엔 보통 무공이라든가 내공을 증진시켜 주는 영약 같은 걸 남기는 거 아닌가요?”

“풋!”

봉란은 금장생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이젠 정말 요물이 됐네.’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 봉란이 아니었다. 몸매가 재구성됐을 뿐 아니라 얼굴도 달라졌다.

확실하게 다른 사람이 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만히 있을 땐 신비롭게 보이고 미소를 지을 때는 더 요염해진다.

그녀는 다시 금장생 뒤로 왔다.

금장생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봉란은 얼른 업혔다.

“조금 빨리 움직여 볼까요?”

금장생의 걸음이 빨라졌다.

잠시 후 둘은 정령의 땅을 나가는 문 앞에 도착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문을 지나 건초 더미가 쌓여 있는 대로 갔다.

“어떻게 올라가죠?”

금장생이 위를 쳐다보며 물었다.

“저기 줄이 있잖아요.”

봉란은 대 옆에 늘어져 있는 쇠사슬을 가리켰다.

“잡아당겨야 한다고요?”

“네.”

“업은 채로?”

“나는 걷기가 힘들잖아요.”

“아까는 잘만 걷더니만.”

금장생은 나직하게 투덜거렸다.

“네?”

“아닙니다.”

금장생은 쇠사슬 앞으로 갔다.

그는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대는 천천히 상승했다. 잠시 후 대는 본래 자리로 갔다.

대가 원래 위치에 자리하자 바닥 측면에서 뭔가가 튀어나와 대를 고정했다.

“다행이네요.”

금장생이 말했다.

“뭐가요?”

봉란은 금장생의 등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밤이라서요.”

“좋아할 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왜요?”

“저기 우리 옷이 있잖아요.”

봉란은 오른편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두 사람이 옷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쩝!”

금장생은 입맛을 다셨다.

옷이 이곳에 있다는 건 봉란과 자신이 알몸으로 돌아다녔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게 분명하다.

“겁나요?”

봉란은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겁낼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우리 아버지가 책임지라고 하면 어쩔 건데요?”

“도망갈 겁니다.”

금장생은 옷이 있는 곳으로 가며 말했다.

“풋!”

봉란은 피식 웃었다.

“왜요?”

“내가 요색이란 별호를 얻게 된 이유가 떠올라서요.”

“별호가 요색妖色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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