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51)
“타하!”
바로 그때 우렁찬 기합과 함께 검은 원반 수십 개가 봉란 주변을 휩쓸었다.
툭! 툭툭툭! 툭툭툭! 툭!
끄아악! 꿰에엑! 끄아아!
거북살스러운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잘려 나간 정령들의 몸에서 쏟아진 액체가 봉란의 전신을 흠뻑 적셨다.
“차앗!
몸이 자유로워진 봉란은 전방에서 다가오는 검 모양을 한 정령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카앙
그녀의 주먹과 검 모습을 한 정령이 부딪쳤다.
퍼억!
검 형태를 띠고 있던 부분이 가루로 부서졌다.
“죽인다!”
봉란은 전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정령을 향해 양팔을 내질렀다.
푸아악!
시뻘건 광채가 전방을 휩쓸었다.
콰앙! 콰앙! 콰앙!
푸스스스! 푸스스스! 푸스스스!
수십 마리 정령이 거의 동시에 가루로 흩어졌다.
“차앗!”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그녀는 이번에는 양 주먹을 번갈아 내질렀다.
시뻘건 광채를 뿌리는 권강이 정령의 몸통을 강타했다. 또다시 수십 마리 정령이 가루로 흩어졌다.
하지만 정령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했다.
가루로 변했던 부분은 얼마 되지 않아 본래대로 복원돼 봉란을 향해 쏘아져 왔다.
“퉤!”
봉란은 입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뭔가를 뱉었다.
“젠장!”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방금 그녀가 뱉어 낸 건 정령의 일부분이었다. 온통 정령에 감겼을 때 입안으로 밀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변태 새끼들!”
봉란의 눈에서 새파란 광채가 흘러나왔다.
정령이 파고든 건 입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에 나 있는 구멍이란 구멍으로는 모두 파고들어 있었다.
만일 금장생의 도움이 일 초만 늦었더라면 자신은 싸늘한 시체로 변했을 게 분명했다.
“죽여 버리겠다, 개자식들!”
봉란은 다시 내기를 끌어 올렸다.
“지금은 공격보다는 빠져나가는 게 우선입니다!”
봉란 옆으로 다가간 금장생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소리쳤다.
“난…….”
“우리를 공격하는 건 정령의 의지가 아닙니다. 죽은 광령전사의 의지와 분노의 정령 퓨리가 정령을 장악하고 있어서 저들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알았어요.”
봉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황가의 비밀을 풀러 왔지 싸우러 온 게 아니다. 가능하다면 빠르게 통과해야 할 터였다.
파앗!
봉란이 고개를 끄덕이자 금장생은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빠르게 전방으로 폭사되었다.
휘이익! 휘이익! 휘이익!
십여 장을 나아기도 전에 거대한 크기의 정령들이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정령의 크기는 오십여 장에 달했고, 두께는 어른 세 명을 합쳐 놓은 정도였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하더니 지금이 꼭 그 짝이네요.”
봉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 전 싸웠던 정령은 길이는 이십 장이고 두께는 어른 한 명 정도였다. 그런 정령도 한 번에 잘라 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그 정령보다 두 배는 더 큰 정령들이다.
정말 강한 자는 별말이 없다고 하더니 이번 정령들이 그랬다. 광기 어린 눈빛을 한 채 이편을 바라보기만 할 뿐, 지금까지 겪었던 정령들처럼 날뛰지 않았다.
“그런 것 같습니…… 응?”
금장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영혼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금장생은 머릿속으로 물었다.
―……?
금장생의 질문을 알아들은 듯 영혼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인간의 영혼입니까, 아니면 정령의 자아입니까?’
금장생은 다시 물었다.
―내, 내가 보이느냐?
영혼이 물었다.
‘아주 잘 보입니다.’
―날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광령전산가요?’
―그렇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곳에 영혼이 묶이게 된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도망치는 적을 쫓다가 이곳에 들어와서야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우린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 안으로 들어왔던 칠천 명이 전부 놈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귀신이 된 거군요.’
―내가 이곳을 떠나지 못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다른 이들이 떠나는 걸 본 모양이군요.’
―그랬다. 처음엔 상당히 많은 영혼이 나와 함께 있었다. 그러다가 하나둘 내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나 혼자만 남았다.
‘혹시 소중한 뭔가가 이곳에 있지 않습니까?’
―소중한 뭔가라고?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영혼은 반드시 이유가 있거든요.’
―내 아내도 광령전사였다.
‘이 안에 있나요?’
―그렇다.
‘함께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나는 다른 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곳으로 먼저 들어온 사람은 가주였던 아내다.
‘그럼 아내를 따라 들어온 건가요?’
―그렇다.
‘그 당시 당신 직책이 뭐였죠?’
―광령장군이었다.
‘혹시 아세요?’
금장생은 라에게 물었다.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에 아그리니아가 언급했던 자가 광령장군이다.
‘하면 아그리니아를 받아들였던 광령전사가 저 영혼의 아내였을까요?’
―정황상 그런 것 같다. 아니, 아그리니아는 물론이고 카르디아도 부인이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이제야 그들이 기억이 났다.
‘누굽니까?’
―아그리니아는 물의 정령왕이고 카르디아는 불의 최상급 정령이었다.
‘정령왕이면……?’
―드래곤과 비슷한 힘을 지녔다고 보면 된다.
‘정말입니까?’
―그렇다. 하지만 아그리니아와 카르디아는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일부밖에 발휘하지 못했다.
‘금제돼 있던 건가요?’
―금제와, 마나가 부족한 중원 환경 두 가지가 모두 두 정령의 힘을 약화시켰다.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요?’
―여전히 금제가 된 상태인지 궁금하다는 거냐?
‘네.’
―그걸 아는 건 아그리니아뿐이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들어 영혼을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혹시 당신 부인이 계약한 정령이 아그리니아인가요?’
―마, 맞다. 그녀를 봤느냐?
캬캬캬! 크크크! 키키키!
느닷없이 정령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금장생과 이야기를 하던 영혼도 섬뜩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무슨 일입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내, 내가 제 정신을 차리는 시간은 이, 일각이다. 나머지 시간 동안 광기에 휘, 휩싸여 날뛰게 된다. 내, 내가 날뛰면 칠천 명의 다른 정령도…….
크아아아! 캬아아아아! 캬캬캬!
금장생과 봉란 앞을 막고 있던 정령들이 수십 개로 분화하더니 두 사람을 향해 덮쳐 왔다.
금장생은 봉란의 허리를 힘주어 안았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슈우우! 슈우우! 슈우우!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얇은 두께로 분화한 정령 수백 마리가 쏘아져 왔다.
푹! 푹푹푹! 푹푹푹!
잠시 후 정령들은 땅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땅속으로 박힌 정령들 외곽을 흙이 감쌌다. 금장생과 봉란은 거대한 새장에 갇힌 새 신세가 되고 말았다.
쑥! 쑥! 쑥!
새장의 뚫린 구멍으로 정령의 몸통이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정령의 얼굴은 곧 속이 빈 원통 형태가 되었다.
“저, 저, 저…….”
봉란이 하늘을 가리켰다.
구멍 속으로 얼굴을 들이민 정령들의 몸통이 태양을 머금은 것처럼 붉게 변했다.
“염병할!”
금장생은 전 내공을 끌어 올려 양극신공을 펼쳤다.
쩌엉!
순간 그의 주변이 얼음 구덩이로 변했다.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정령들의 주둥이에서 새빨간 불길이 토해져 나왔다. 최상급 정령이 뿜어내는 불길은 가공했다.
전력을 다해 양극신공의 극음기를 끌어 올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 일부가 가루로 흩어졌다.
“차하!”
금장생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새하얀 광채가 터져 나와 전방을 휩쓸었다.
쩌엉! 쩌엉!
창살처럼 땅속에 박혀 있던 정령들이 얼음 기둥으로 변했다.
퍼억!
그런 얼음 기둥을 박차고 금장생은 새장 형태의 공간을 벗어났다.
―그, 그녀를 데려와라. 그래야…….
빠르게 내달리는 그의 귓전에 조금 전 이야기를 나눴던 영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데려옵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하지만 영혼은 대답이 없었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크아아아아! 캬아아아아! 키우우우!
정령 수백 마리가 가공할 속도로 이편을 향해 쏘아져 오고 있었다.
“에이, 씨!”
금장생은 욕설을 뱉어 내며 더욱 속도를 냈다.
그가 멈춰 선 곳은 커다란 석옥 앞이었다.
금장생과 봉란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더 이상 정령들이 쫓아오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오지 못하나 봐요.”
봉란의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안에 비밀을 풀 열쇠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만일 없으면…….”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갈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비밀을 풀 수 있을 거예요.”
봉란은 건물 앞으로 가 석문을 밀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석문이 천천히 열렸다.
파앗!
먼저 두 사람을 반긴 건 환한 빛이었다. 석옥 내부 벽에는 일 장 간격으로 마법등이 걸려 있었다.
“여긴?”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밖에서 본 석옥의 크기는 한 변의 길이가 십 장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안쪽은 그보다 수십 배나 더 길었다.
“진식일까요?”
봉란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정령의 땅으로 들어왔을 때보다 더한 정적이 내부를 감싸고 있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식이 아니고 마법 공간이다.
라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봉란 소저에게 설명하는 게 쉽지가 않아서 그렇다고 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진식으로 만든 공간이나 마법 공간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게 제 생각이고도 하고요.’
“저길 보세요.”
봉란은 공간 가운데를 가리켰다.
금장생은 봉란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석옥 중앙에는 지름이 십 장 정도 되는 호수가 있었다. 금장생과 봉란은 호수로 갔다.
물은 손을 뻗으면 바닥이 닿을 것처럼 맑았다.
“아!”
호수를 바라보던 봉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물은 그녀가 지금까지 보았던 물과 많은 차이가 났다.
광채가 흘러나오지도 않는데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마치 신비로운 어떤 기운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액체 같았다.
손을 뻗으려던 봉란은 움찔했다. 깨끗한 물에 비해 자신의 손이 너무 불결해 보였다.
봉란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어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알몸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란은 상체를 숙여 물속으로 손을 담갔다.
“어?”
봉란의 눈이 커졌다.
물이 너무 맑아 차가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따스했다.
“왜 그래요?”
“따뜻해요.”
금장생의 물음에 봉란은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마치 뭔가가 손을 어루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겁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는 물의 정령왕 아그리니아만 있는 게 아니라 불의 최상급 정령 카르디아도 있다. 불의 최상급 정령인 카르디아의 힘이 발휘되고 있다면 물이 따뜻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호수 안쪽을 살폈다.
아그리니아와 카르디아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두 정령은 보이지 않았다.
첨벙!
바로 그때 물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시선을 내렸다. 물속에 손을 집어넣고 있던 봉란이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가고 있었다.
곧 닿을 것처럼 가깝게 보였던 바닥이었는데 상당히 깊었다. 봉란이 계속해서 내려가는데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
“응?”
갑자기 그의 눈이 커졌다.
아래로 내려가던 봉란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추는 것이었다.
그러데 멈춘 것이 그녀 의지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멈춘 게 분명했다.
금장생은 곧바로 뛰어들었다.
봉란의 말처럼 물은 따뜻했다. 그는 봉란을 향해 헤엄쳐 갔다.
‘억!’
하지만 금세 멈춰야 했다.
느닷없이 수많은 광채가 봉란의 전신을 감쌌다.
곧 그녀 주변은 반짝이는 광채로 가득 찼다. 마치 봉란이 반짝이는 빛으로 만들어진 바다에 몸을 담근 것 같았다.
봉란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건?’
그녀는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