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46)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눈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먼저 자리를 떴던 육전 전주들이었다.
“쯧! 저래 가지고 어디…….”
유성상은 혀를 찼다.
둘은 주야장천 술만 마시고 있을 뿐 더 이상 진도를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가 쾌락분을 넣겠다고 했을 때 허락했으면 우린 열 달 뒤만 기다리면 됐을 거 아닙니까.
화장전의 전주 가무염이 전음으로 투덜거렸다.
―열 달 뒤는 왜?
유성상이 의아한 얼굴로 가무염을 보았다.
―아기가 만들어지는 시간이 열 달이지 않습니까.
―아기?
유성상은 뜨악한 얼굴로 물었다.
―남녀가 관계를 가지면 아기가 생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자네 결혼한 적 없지?
―그건 왜요?
―잠을 자면 무조건 아이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혼을 한 적이 없는 총각뿐이거든.
―물론 한 번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건 나도 압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가?
―제가 술 속에 집어넣으려고 했던 쾌락분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하면?
―이틀 밤은 쉬지 않고 해야 약효가 떨어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틀 동안 쉬지 않고 그 짓을 해야 한다는 건가?
―네.
―자네 회장님을 복상사로 잡을 생각인 모양이구먼.
―그 정도로 죽으면 사내 자격도 없는 겁니다.
―그걸 써먹을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무조건 절반 이하로 줄이게.
―그래 가지고는 아이를 절대 못 만든다니까요!
―정말?
―시험을 해 본 사람도 있습니다. 그 친구 말이, 달걀 서른 개를 전부 먹은 후 쾌락분을 복용하고 침대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열 달 후에 자식을 봤는데 글쎄…….
가무염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금장생과 봉란을 바라보더니 진성으로 말을 이었다.
“아들이었답니다.”
“정말인가?”
유성상의 눈이 커졌다.
“그렇다니까요.”
“넣게.”
“절반을 말하는 겁니까, 아니면…….”
“기회가 생기면 전부 다 털어 넣으란 말이네.”
“알겠습니다.”
가무염은 싱긋 웃었다.
* * *
“끄응!”
금장생은 신음을 흘리먀 눈을 떴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거봉처럼 우뚝 솟은 가슴이었다.
그는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고개는 움직이지 않은 채 눈동자만 돌려 좌우를 살폈다.
머리가 너무 아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금 이곳은 처음 보는 방이었다. 아니, 방이 아니라 창고였다.
그의 시선이 다시 아래로 향했다.
그가 고개를 처박고 있는 곳은 여자 배 위였다.
시선을 약간 들자 조금 전 보았던 풍만하고 아름다운 가슴이 보였다. 배에 얼굴을 댄 상태로 보니까 더 커 보였다.
다시 시선을 내렸다.
기름이 칠해진 것 같은 매끈한 배를 지나 더 아래를 더듬었다.
곧 갈색 음모가 보였다. 음모는 없는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빈약했다.
문득 여태껏 만난, 아니 어쩌다가 알몸을 보게 된 여자들은 하나같이 왜 음모가 빈약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만한 가슴과 빈약한 음모를 가진 여자가 봉란이라는 건 의심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해서 옷을 벗었고 봉란의 배 위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건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 건배를 외치고…….
“옷을 벗어 던졌는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끊어질 듯 매끄럽지는 않지만 조금씩 기억이 살아났다.
“눈이 온 것 같은데……. 그런데 내가 눈이 온 걸 어떻게 알지?”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눈이 왔다는 걸 알 리가 없다.
“일단…….”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옷을 찾기 위해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옷은 없었다.
“미치겠네.”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왜요?”
“억!”
봉란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는 침대로 시선을 주었다. 봉란이 눈을 뜨고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은 금장생의 하체였다.
이른 아침이란 사실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 금장생의 하체는 완전하게 기립해 있었다. 손으로 가린다고 해서 가려질 상황이 아니었다.
“여자 가슴에 불을 지르는 모습이긴 한데, 왠지 서글퍼지네요.”
“왜 서글퍼지죠?”
“여자와 알몸으로 밤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라면 간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내가 그만큼 매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이건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겁니다. 성주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충분히 멋진 몸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 중 구 할은 성주의 몸 때문입니다.”
“풋!”
봉란은 피식 웃었다.
“웃지 마요, 좀!”
금장생은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피가 아래로 내달리는 광경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 같은 그곳으로 피가 쏟아져 들어갔다.
그녀의 웃음은 그만큼 치명적이었다.
“왜요?”
하지만 봉란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금장생이 그만 웃으라고 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남편들도 그랬다. 지금처럼 웃으면 마구잡이로 달려들곤 했다.
그래서 한 번은 남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웃음 속에 사내를 짐승으로 만드는 힘이 들어 있다고 하였다.
“아, 아무튼 웃지 마요.”
금장생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알았어요. 그보다 책임지란 말은 절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허둥지둥 도망칠 필요는 없어요.”
“도망치려는 게 아니고 옷을 찾고 싶어서 그럽니다.”
“기억 안 나요?”
“어떤 기억을 말하는 거죠?”
“술을 마시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잖아요.”
“함박눈?”
느닷없이 간밤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눈이 와요.”
눈에 대해 처음 언급한 사람은 봉란이었다.
“함박눈이네요.”
자신이 맞장구를 쳤다.
“우리 나가요.”
“치마밖에 안 입었잖아요.”
“당신도 속옷을 안 입은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래도 난 장포가 있잖습니까.”
“난 괜찮으니까 나가요.”
봉란 등쌀에 밖으로 나갔다.
워낙 취해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었다. 찬 바람을 맞자 약간 정신이 들었다.
정원을 지나 대문 밖으로 나갔다. 대문 밖은 연병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곧바로 연병장으로 갔다.
“눈 맞아 볼래요?”
“지금 맞고 있는 거 아닌가요?”
“얼굴하고 손만 맞고 있죠.”
“그럼?”
“이런 함박눈은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거예요.”
“온몸?”
“해 볼래요?”
“그거 괜찮겠네요.”
그러고 나서 경쟁하듯 옷을 벗었다.
봉란의 상의는 벗을 수가 없어 찢어 버렸다. 그러고는 알몸을 하고는 연병장을 강아지처럼 뛰어다녔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기억났어요?”
봉란이 물었다.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뛰어다닌 기억이 납니다.”
“맞아요, 그랬어요.”
봉란은 또다시 빙그레 웃었다.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알몸으로 웃고 떠들고 달리고 서로 껴안고 뒹굴었다. 마치 어린애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맙소사.’
봉란의 얼굴이 붉어졌다.
알몸으로 뒹굴다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볼일까지 본 것이다.
더욱 황당한 노릇은, 볼일을 보면서 서로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나서 또 뛰었다.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다가 찾아든 곳이 이곳이다.
잠을 잔 곳도, 침대가 아니라 말먹이로 쌓아 둔 건초 위였다.
“옷은 밖에 있겠군요.”
“그럴 거예요.”
봉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나가서 찾아오겠습니다.”
“그 상태로 나가겠다는 거예요?”
봉란은 턱으로 금장생의 하체를 가리켰다.
금장생의 하체는 일어났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달라진 게 없는 게 아니라 경도도 더 높아지고 크기도 더 커졌다. 문득 과연 저걸 받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풋!’
내심 피식 웃고 말았다.
상대는 음식을 줄 생각도 없는데 자신은 맛이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는 꼴이었다.
“그렇다고 이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속 울렁거리지 않아요?”
봉란이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속뿐만 아니라 머릿속도 심하게 울렁거립니다.”
“옷은 천천히 찾아도 되니까 속이 진정될 때까지 좀 쉬세요.”
봉란은 두 팔과 다리를 쭉 뻗고 누워 버렸다.
바로 옆에서 알몸으로 볼일까지 봤는데 가슴이나 은밀한 곳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게 더 우스웠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안 누워요?”
“알았습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봉란 곁으로 가 누웠다.
몸이 진정되면 밖으로 나가 보기라도 하겠는데, 민망한 몰골이라 갈 수도 없다.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팔 좀 빌려주면 안 될까요?”
봉란은 고개를 돌려 금장생을 보며 말했다.
“팔요?”
“이런 경우엔 보통 남자들은 한 팔을 빌려 주거든요.”
“그 사람들이야 팔이 놀고 있어서 그랬겠지요. 하지만 내 팔은 지금 아주 바쁩니다.”
“그래 봐야 다 가려지지도 않잖아요. 거기에 두는 것보다는 내 머리 뒤에 있는 게 더 효율적인 일 같네요.”
“하여간.”
금장생은 하체를 가렸던 손을 떼고 팔베개를 해 주었다.
“계획을 말해 보세요.”
봉란은 천장으로 시선을 주며 입을 열었다.
“뭘 말입니까?”
“지점을 내면 그곳까지 물건을 운송해야 해요. 그건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해요.”
“처음엔 표국을 이용하고, 장차 직접 해야지요.”
“표국을 운영하겠다는 건가요?”
“정해진 건 아니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표국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군요.”
봉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요?”
‘응?’
천장을 보고 있던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천장에는 눈에 익힌 문양이, 아니 룬어라고 불리는 마법 언어가 씌어 있었다.
대충 해석하면 황천지문이란 뜻이었다.
“이번 질문은 곡해하지 말고 들어 줬으면 해요.”
“말해 보세요.”
금장생은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그의 머릿속은 왜 마법 언어가 만인물성에, 그것도 말먹이를 저장하는 창고 천장에 새겨져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혹시……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하세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아는 사내들은, 특히 당신처럼 젊은 사람은 벗은 여자가 앞에 있으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무슨 의도로 이런 걸 묻는 거지?’
천장에 머물러 있던 금장생의 사고가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혹시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생각을 못 하게 하는 게 낫겠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봉란이 예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동업자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고 싶진 않았다.
“다행이네요.”
“다행이라고요?”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그가 기대했던 대답은 ‘아! 그렇군요.’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봉란은 ‘다행이네요.’라고 한 것이다.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제가 좀 추웠거든요.”
봉란은 몸을 모로 돌려 오른 다리를 금장생 허벅지 위로 올리고 오른팔로는 가슴을 껴안았다.
그 바람에 봉란의 가슴이 금장생을 압박했다.
“헉!”
금장생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맨살을 압박하는 가슴의 느낌이 너무 선명했다.
아울러 봉란은 무릎 짓으로 아무렇지 않게 성기를 건드렸다.
“아, 미안해요. 고의가 아니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발을 내릴 생각은 전혀 없는 듯, 이번엔 하체를 지그시 밀어붙였다.
‘내가 미쳤지, 왜 여기에 누워서는…….’
금장생은 내심 땅을 치고 후회했다.
봉란 옆에 눕는 게 아니었다. 만망하건 말건, 바로 옷을 찾으러 나갔어야 했다.
‘맞다, 화장실이 있지.’
문득 이곳에서 빠져나갈 핑계가 떠올랐다. 화장실을 간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기……!”
금장생은 고개를 돌렸다.
턱!
‘헉!’
그는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