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44)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이 여자가 왜 결혼 여부를 묻는 건지, 혹시 가슴도 의도적으로 보여 준 건지, 봉란의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웠다.
“네.”
봉란은 생긋 웃었다.
‘윽!’
금장생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봉란의 웃음은 극강한 색공처럼 금장생의 뇌리를 강타했다.
‘요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봉란 주위를 돌면서 치마의 나머지 부분을 잘랐다.
치맛자락이 잘려 나가고 종아리와 발이 드러났다.
“어때요?”
봉란은 아버지 봉파륵을 보며 물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봉파륵은 전음으로 물었다.
―왜요?
봉란은 되물었다.
―그 친구를 유혹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거냐?
―아버지 딸이 몇 살인 줄 아세요?
―서른세 살 아니냐.
―서른세 살이나 먹은 딸이 혼자 살고 있는데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내 기억엔 넌 혼인을 두 번이나 했고, 첫 번째 혼인은 삼 년 만에 파탄 났다. 두 번째 혼인도 이 년 만에 끝장났고.
―남편들이 도망친 게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
―네가 싫다고 도망쳤으면 그대로 둘 일이지 쫓아가긴 왜 쫓아가. 그리고 요색妖色이 뭐냐, 요색이.
―그럼 스무 살도 안 된 여자아이를 건드려 놓고 도망친 놈을 그냥 두라는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도 그래요. 이제 열여덟 살 밖에 안 된 딸을 결혼시키고 싶었어요?
봉란은 전음으로 빽 소리쳤다.
사실 실전십패의 일인이 된 것도 요색이란 별호를 얻은 것도 모두 첫째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을 만났을 때 만인물성 외동딸이란 신분은 물론이고 무공을 익힌 사실도 비밀로 했다.
그런데 비밀을 간직한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남편 또한 대단한 가문 출신이란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아버지가 남편에 대한 뒷조사를 했지만, 워낙 철저하게 숨겨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결혼을 허락했고 그녀와 남편은 조촐하게 식을 올렸다.
그녀는 많은 사람을 초대하여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이 해 준 것도 없는데 결혼식을 크게 하면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며 극구 반대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결혼식은 초라했지만 혼인 생활은 좋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행복이 뭔지 알았다. 특히 남녀 관계가 주는 즐거움을 알아 갈 때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자신 속에 또 다른 사람이 숨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렇게 또 다른 그녀가 튀어나올 때면 이성을 완전하게 잃었다.
남편이 본래의 봉란보다 밤이면 나타나는 또 다른 봉란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결혼 생활이 파탄 난 건 삼 년 만이었다.
부부 싸움을 한 것도 아니었다. 느닷없이 남편이 말도 없이 집을 나가 버린 것이다.
가출하기 전날에도 새벽까지 격렬하게 사랑을 나눴다.
처음엔 들어오겠지 하고 마냥 기다렸지만 보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이 완전히 떠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늘 함께 놀던 친구들마저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결국 남편을 찾아 집을 나섰다.
남편을 찾은 건 육 개월 만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편은 유수 가문의 장남이었고, 비슷한 수준의 가문의 딸과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삼 년 동안 그의 노리개였던 것이다.
처음엔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삼 년 동안의 열정이 단순한 재미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본인에게 직접 듣고 싶어서였다.
깜짝 놀란 남편은 부리나케 달려와 변명을 했다.
현재 결혼은 부모님 등쌀에 자신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부모님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면서, 모처에서 기다리면 떠날 준비를 해서 나오겠다고 했다.
미심쩍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이윽고 남편이 만나자는 장소로 나간 그날 밤.
그녀를 기다리는 건 남편이 아니라 남편과 함께 사라졌던 다섯 친구였다.
그들로부터 남편이 단순한 재미를 위해 혼인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기가 막혔던 건, 자신들의 은밀한 성생활을 친구들이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남편의 요구에 의해 깎았던 자신의 음모를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다. 눈동자가 돌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다섯 명은 시체로 변해 있었다.
그들의 코를 잘라 남편에게 선물로 보냈다.
요색 봉란이 탄생하는 시발점이었다.
친구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남편은 부모님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남편의 부모는 자기 자식을 괴롭히는 여자를 없애기 위해 무인을 샀다. 관가에 고발하고 싶었겠지만, 나쁜 소문이 날까 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은 친구들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관가에 고발하는 것보다 직접 복수를 하고 싶어 하였고, 무인들을 사서 생포해 달라고 요구했다.
여섯 가족이 산 무인들과 쉬지 않고 싸웠다.
보낸 자들을 없애면 또 다른 자들을 보내오고, 그럼 그들을 또 없앴다.
그런 상황이 이 년 정도 지속되자 여섯 가문은 점점 피폐해졌다.
결국 그들은 더 이상 무인을 보내오지 않았다. 돈만 많이 들어갈 뿐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뒤바뀌게 된다. 그녀가 찾아 나선 것이다.
집에 불을 지르고, 하나씩 부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남편 가족이 거지가 돼 길바닥으로 나 앉았다.
남편을 직접 처리하지는 않았다.
일거리를 찾아 거리를 배회하는 그들 앞에 나타나 금화 다섯 냥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던졌다.
물론 그 전에 객잔에서 황금색 주머니를 근처 건달들에게 구경시켜 주었다.
더불어 건달들이 지켜보는 데서 황금색 주머니도 던져 주었다.
그 주머니를 자신에게 선물해 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자기가 선물한 황금색 주머니를 알아보지 못했다. 오직 그 안에 들어 있는 돈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다음 날, 남편과 남편 가족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전날 묘령의 여인으로부터 받은 황금색 주머니는 그들 손에 없었다.
그길로 강호를 떠돌았다.
두 번째 남편을 만난 건 요색이란 별호로 활동하던 때였다.
그는 문사였다. 글을 쓰고 읽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한 가지 문제는 몸이 허약하다는 점이었는데, 열심히 먹이고 운동을 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소개를 시키고 혼인을 했다.
그때가 스물일곱 살이었다.
하지만 그 혼인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혼인 생활을 시작한 지 이 년 만에 남편은 떠났다. 성격은 물론이고 성적 취향도 너무 다른 게 원인이었다.
헤어지고 나서 일 년 후 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버지가 말렸더라면 나는 결혼을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혼인시켜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한 사람은 내가 아니고 너다. 처음엔 철이 없어 그랬다고 하지만 두 번째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때도 넌 그 샌님하고 혼인을 시켜 주지 않으면 자살해 버리겠다고 했다.
―제가 뭔가 고집을 부릴 때 늘 자살하겠다고 하는 건 습관이잖아요. 아버지가 그것도 몰라요?
―두 번째에는 손목에 칼까지 들이댔지, 아마?
―그래도 제 결혼 생활 실패의 반은 아버지 책임이라고욧!
봉란은 버럭 소리쳤다.
―나는 그때…….
―아무튼 이 옷이나 봐 줘요!
“내 생각엔 치맛단이 너무 긴 것 같구나.”
이번에는 진성으로 말했다.
“그럼 됐네요.”
봉란은 다시 빙긋 웃었다.
“뭐가 됐다는 거냐?”
“아버지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면 사내들은 아주 좋아할 거란 말이에요. 장 대협, 아니 성주님, 아니 성주 직위는 계속 유지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봉란은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부를 호칭이 마땅치 않았다.
“회장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회주가 아니고 회장이라고요?”
“회주는 무림 문파에서 주로 사용하잖습니까. 우리 장사꾼들에게는 회주보다는 회장이 더 어울립니다. 그리고 치마는 그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봉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저분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금장생은 유성상 일행을 가리켰다.
“앞으로 함께 일할 사람들인데 당연히 인사를 해야지요.”
“그래도 직속상관에게 말도 없이 만나는 건 아니지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정중하게 말하고 유성상 일행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인사를 나누고 술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했다.
봉란은 그런 금장생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저 녀석에게 반한 게냐?
봉파륵은 불안한 얼굴로 전음을 보냈다.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서였다.
―한눈에 반할 나이는 지났잖아요. 그리고 이 나이가 되면 꿈보다는 현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하면?
―남편으로 들여앉히면 우리 지분을 오 할까지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지분을 위해서라면 마음에 들지도 않는 사람과 혼인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못 할 것도 없죠.
봉란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사내가 지겹지도 않니?
―아버지는 제가 혼자 늙는 게 좋아요?
―좋은 게 아니라, 또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까 봐 그런 거지.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잖아요.
―어떻게 다른데?
―첫째 남편은 여덟 살 연상이었고 둘째 남편은 열 살 연상이었잖아요. 하지만 이 사람은 연하라고요, 연하. 연하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연하는 다를 거라는 거냐?
―완전 다르죠.
―…….
―저 아니면 죽겠다고 할 정도로 만들 자신이 있다고요.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라.
―아버진 어때요?
―뭘 말이냐?
봉파륵은 금장생을 보았다.
벌써 친해진 듯, 금장생은 육전의 전주들과 눈빛을 교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이십니까?”
유성상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내가 열흘 동안 만인물성을 둘러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물론 무역 금수 조치를 풀기 위한 노력도 해야겠지만, 들어주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금액이 들어갈 텐데…….”
“돈은 내가 대겠습니다.”
“그렇다면야…….”
“옥 전주께서는 장소를 물색해 주세요. 첫 번째 지점은 하북성으로 하되, 가급적 북경과 가까운 곳이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유성상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런데 저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던 봉파륵이 물었다.
―만인물성의 영광을 되찾는 방법을 상의하고 있어요.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거냐?
―저 사람은 지점을 낼 모양인가 봐요.
―지점?
―만인물성과 똑같은 곳을 다른 지방에 만들겠다는 거예요. 첫 번째 지점을 북경과 가까운 하북성에 세우겠다는 거고요.
―성공할 거라고 보느냐?
―우리 만인물성을 살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에요. 저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전에 알았더라면…….
―대단한 사람인 것 같구나.
―마음에 든다는 말씀이세요?
―지금까지 네가 고른 사내들 중에서 가장 낫구나.
―그 사람들 이야기는 왜 꺼내는데요?
―아무튼 난 찬성이다.
―찬성?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란 말이다.
―황천荒天으로 보내는 것도?
―지, 지금 뭐라고 했느냐?
봉파륵은 놀란 얼굴로 봉란을 보았다.
―저 사람을 황천으로 보내고 싶다고 했어요.
―황천이 어떤 곳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냐?
―우리 황가荒家의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저 친구를 황천으로 데리고 가겠단 말이냐?
―지난 이천 년 동안 우리 황가는 수없이 황천의 관문에 도전했어요. 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지요. 이천 년 동안 들어가지 못한 집이라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래서 아무에게나 개방을 하겠다는 거냐?
―아무에게나는 절대 아니에요. 우리 만인물성의 지분을 팔 할이나 지녔고, 무공 또한 지금까지 본 어떤 사람보다 강해요. 그리고 저 사람 혼자 들여보내는 것도 아니고 저도 함께 들어가요.
―만일 성공했을 때는 어떻게 할 거냐?
―저 사람이 소유권 주장을 해서 황천 안에서 발견한 어떤 것들을 절반밖에 갖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에겐 이익이에요.
―영원히 못 갖는 것보다는 절반이라도 갖는 게 낫다는 거구나.
―맞아요. 그리고 우리는 지난 이천 년 동안 황천의 비밀을 푸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소모했어요. 어쩌면 그 때문에 왕가 중 가장 강했던 우리 황가가 몰락했는지도 몰라요.
―우리가 몰락한 건 황천의 비밀 때문이 아니고 팔왕가의 배신 때문이었다.
―그 역시 우리 선조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에요, 아버지. 어떤 비사가 숨어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아무튼 전 황천의 비밀에 얽매여 심력을 소모하는 그런 악순환은 끊고 싶어요.
―으음!
봉파륵은 신음을 내뱉었다.
―혹시 결혼 어쩌고 한 게 황천 때문이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을 보고 결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네.
봉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주는 너니까…… 알아서 해라.
―고마워요.
봉란은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