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242화 (242/524)

황금가 (242)

흥정

“하지만 사화 소라를 없앤 사람은 장생 그자가 아니에요.”

“그럼 누구란 말이냐?”

봉파륵이 다급하게 물었다.

“소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역불개의 부채 속에 숨겨져 있던 암기였어요.”

“장생 그자를 없애기 위해 역불개가 던진 암기에 소라가 맞았다는 거냐?”

“네.”

봉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는 금장생이 만물상으로 들어올 때 안에 있었다. 다만 밤이고 연락도 없었기에 만나지 않았던 것이다.

금장생 일행이 나갈 때 은밀하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금장생 일행과 혈가 무인들이 싸우는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들이 싸우는 걸 다 본 게냐?”

“네.”

“어떻게 된 거냐?”

“그러니까…….”

봉란은 싸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장생 그자가 자기 뒤에 다이라 소라가 은신해 있는 걸 알았을 거라고 보느냐?”

이야기를 듣고 난 봉파륵이 물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알고 그런 건지, 그건 모르겠어요.”

봉란은 고개를 저었다.

“만일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전자예요.”

“운이 좋았다는 거냐?”

“역불개와 장생 그자 사이의 거리는 반 장도 되지 않았어요. 암기도 가까스로 피했고요.”

“흠!”

봉파륵은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봉란을 보며 물었다.

“장생이란 자에 대해 아는 거 있느냐?”

“처음 듣는 이름이에요.”

“하면 그자와 함께 다니는 여덟 명에 대해서는?”

“여덟 명이 함께 다니고 태양군단을 몰살시킬 정도의 실력이면 알려졌을 텐데, 아무것도 없어요.”

“새로 등장한 자란 말이구나.”

“당천리 대협으로부터 대충 이야기를 듣기는 했어요.”

“당천리?”

“그로부터 서찰을 받았어요.”

“그가 소개했다는 말이구나.”

“네.”

“뭐라고 하더냐?”

“사업을 크게 하고 있으며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씌어 있었어요. 아울러 자신이 남은 생을 맡길 사람이라고도 했고요.”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이냐?”

“네.”

“흠!”

봉파륵은 생각에 잠겼다.

“왜 그러세요?”

“당천리가 누군지 아느냐?”

“음식점 주인 아닌가요?”

“내가 묻는 건 음식점을 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하는 거다.”

“그건…….”

봉란은 말끝을 흐렸다.

양갈비 거래로 만나서 친해지긴 했지만 과거까지는 알지 못했다.

“전에 사천당가 문주 중 당천리란 사람이 있었다.”

“사천당가 문주라고요?”

봉란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이렇듯 놀란 건 사천당기가 무림에서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었다.

사천당가는 사천의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수장을 가주라고 부르지 않고 문주라고 부른다.

가문의 수장을 문주라고 부르는 건 비상식적이지만 무인들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건 사천당가가 단순히 가문이 아니라 무림 문파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천당가는 독과 암기에 있어서는 독보적이다.

그런 가문의 문주였던 자가 음식점을 경영했다는 사실이 선뜻 믿기지가 않았다.

“맞다.”

봉파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가문의 문주가 어쩌다가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거죠?”

“파문됐으니까.”

“파문을 당해요?”

더욱 놀라운 말이다.

혈족으로 이루어진 사천당문의 문주는 일반 무림 문파의 문주와 다르다. 문파의 문주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 사람이다.

일반 문파는 직위를 박탈하고 추방한 다음 새 문주를 뽑으면 되지만 혈족으로 이루어진 가문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가문에 부모 형제와 자식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문을 당했다면, 부모 형제는 물론이고 자식까지 등을 돌릴 정도로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봉란이 아는 당천리는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

“어떤 짓을 저질렀기에 파문을 당한 거죠?”

“열 살 내외 어린애를 강간하고 살해한 죄다.”

“세상에…….”

봉란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 그런 죄로 파문을 당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당시 항간에는 모함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었다.”

“당 대협은요?”

본인은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궁금했다.

“그는 시인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결국 사천당가는 그에게 죄를 물어 파문시키고 말았다.”

“그럼 사천당문을 떠나 이곳으로 온 건가요?”

“그런 모양이다.”

“아버지 생각은 어떠세요?”

“뭘 말이냐?”

“당 대협이 정말로 어린애를 강간 살해했을 거라고 보세요?”

“글쎄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면 당 대협이 파문되고 누가 가주가 된 거죠?”

“당 대협을 쫓아낸 사람은 둘째 당백리였는데, 가주는 셋째 아들 당만리가 됐다.”

“셋째 아들 이름이 왜 그렇죠?”

봉란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큰형이 천리인데 셋째가 왜 만리가 됐느냐는 질문이냐?”

“보통 집에서는 두 형이 천리고 백리면 셋째는 십리로 하든지 아니면 아예 다르게 짓잖아요. 그런데 만리라는 건…….”

“거기에 대한 건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데, 당만리 어머니가 졸라서 그렇게 지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가만, 그럼 혹시 당만리와 당천리 대협의 어머니가 달라요?”

같은 사람이라면 동생의 이름을 그렇게 짓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묻는 말이었다.

“맞다.”

“뭔가 있군요.”

봉란이 입술 옆에 나 있는 점을 슬쩍 긁으며 말했다.

“뭐가 있다고 해도 당천리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사천당문을 떠났고 셋째는 문주가 됐으니까 그걸로 일단락된 거다. 그리고 벌써 십 년이 지났다.”

“설사 모략에 의해 파문된 거라고 해도 되돌리기엔 늦었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그리고 가문이 엉망이 됐으면 논란이 됐겠지만 당천리 대협이 있을 때보다 더 강해졌거든.”

“가솔들이 아무 소리 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그런 모양이더라.”

“풋!”

봉란은 피식 웃었다.

“왜 웃는 게냐?”

“잘못된 기초 위에 만든 집은 아무리 튼튼하게 세운다고 해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만다고 한 사람이 아버지셨어요.”

“그렇긴 하다만 그 집은 아직 무너지지 않고 잘 있고 앞으로도 무너질 것 같지가 않아서 말이다.”

봉파륵은 멋쩍게 웃었다.

“아무튼 제 생각은, 나쁜 자들이 잘 사는 세상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나도 같은 생각이긴 하다면 세상을 살면 살수록 착한 사람은 점점 못살게 되고 나쁜 놈들은 잘살게 되더구나.”

“불법과 부패가 정당화되고, 양민의 소리를 무시하고 묻어 버리는 그런 세상은 반드시 망하게 돼 있어요. 그건 역사가 증명해 줘요, 아버지. 역대 많은 왕조가 그래서 망했던 거예요.”

“하긴…….”

봉파륵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깨달은 것 중 또 한 가지는 천벌은 존재한다는 거였다.

승승장구하여 거칠 게 없을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는 철퇴를 맞는 게 세상이었다.

“지금 우리 코가 석 잔데 남 걱정할 때가 아니네요. 저 시체는 어떻게 하죠?”

봉란은 소라를 가리켰다.

“보내 주는 게 나을 것 같구나.”

“혈가로 보내라는 건가요?”

“우리가 혈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면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된다.”

“태양상인으로 보내라는 말이군요.”

“맞다.”

“알았어요. 여기서 벌어진 상황을 세세하게 적은 서찰과 함께 시체를 보내야겠어요.”

“그렇게 하려무나.”

“혹시 시체를 옮겨 줄 사람이 필요하십니까?”

나직한 목소리가 벌판 입구에서 들려왔다.

“으음!”

봉파륵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벌판 입구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이십 장이다. 짧은 거리가 아니라도 해도 누군가 숨어 있었다면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자신은 기척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건 상대가 그만큼 강자라는 뜻이었다.

봉파륵은 시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응?”

봉파륵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말을 걸어온 자는 이번 학살의 장본인인 장생이었다.

“시체를 옮겨 줄 사람이 필요하냐는 건 무슨 뜻이오?”

봉파륵은 물었다.

“제가 이걸 쓰면 이해가 빠르겠네요.”

금장생은 강신술사가 쓰는 모자를 머리에 썼다.

“강신술사?”

봉파륵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제 본래 직업은 시체를 강시로 제강해서 손님이 원하는 장소까지 운구해 주는 강신술삽니다. 이름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장생이고요.”

“이 여자는 당신을 공격하다 죽은 걸로 아는데, 그래도 운구를 하겠다는 건가요?”

봉란이 물었다.

“내가 죽인 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두 분, 아니 세 분만 입을 다물어 주면 제가 관여됐다는 사실을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사망침이 아직 몸속에 남아 있고, 사망침의 무인인 역불개가 없으니까 역불개를 더 의심할지도 모르지요.”

“그럼 역불개를 가루로 만들어 버린 게…….”

봉란의 시선이 역불개가 가루로 변한 장소로 향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으로 인해 가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럴 생각으로 없앴는데 허점을 남겼더군요.”

떠났던 금장생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가 바로 그 허점 때문이었다.

“무슨 허점을 남겼다는 거죠?”

“저기 죽어 있는 열두 명도 함께 가루로 만들어야 완벽해지겠더라고요.”

금장생은 한편에 죽어 있는 십이상객을 가리키면서 걸어갔다.

시체 앞에 선 그는 품속을 뒤져 소지품을 꺼내 확인했다. 그것들 중 필요한 건 챙기고 나머지는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화태양강을 펼쳐 시체를 가루로 만들었다.

열두 구를 모두 가루로 만든 후 봉파륵과 봉란을 보았다.

“이제 정말로 세 분이 입을 다물어 주시면 완전범죄가 성립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죠?”

“동업자에게 약간의 빚을 지우는 건 미래를 위한 좋은 투자 중의 한 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동업자라는 건 무슨 뜻이죠?”

“만일물성을 모두 넘기는 게 아니라 일부 지분을 넘기려는 것 같은데, 아닙니까?”

“……!”

봉란은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금장생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만인물성을 완전히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니, 만인물성은 자신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급하게 일부를 정리하려고 한 건, 그동안 적자를 메우기 위해 끌어다 쓴 돈을 갚아야 하고 추가로 오십만 냥에서 백만 냥 정도의 현금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지분을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만일 내가 거래를 하겠다고 하면 금액은 얼마를 생각하고 있죠?”

봉란이 물었다.

“지분을 얼마나기 넘기느냐에 따라 달렸습니다.”

“우리가 넘길 지분은 팔 할이에요.”

“팔 할이면 다 넘기는 거나 다름없는데…….”

“지분의 팔 할을 넘기는 이유까지 알아야 한다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나는 가격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그 이유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가격은 책정해 두었겠죠?”

“팔 할이면 제가 생각한 금액은 칠십만 냥 정돕니다.”

“만인물성을 칠십만 냥에 인수할 생각을 하다니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봉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한창때 현금으로 일천만 냥을 줄 테니까 팔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죽은 역불개도 이백만 냥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칠십만 냥이라니.

말이 안 되는 금액이었다.

“아마 서역과의 무역이 성행하는 시기였다면 일천만 냥을 내놓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역으로 가는 상단이 거의 없는 상탭니다. 게다가 황실에서 서역과의 무역을 금지하고 있고요. 성주께서 만인물성의 지분을 팔려고 하는 이유가 그 때문 아닌가요?”

“그렇다고 해도 칠십만 냥은 턱도 없어요.”

봉란은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칠십만 냥은 빚을 갚을 돈밖에 되지 않는다. 그걸 받고 파느니 다른 임자를 찾아보는 게 낫다.

“그럼 원하는 금액을 말씀해 보세요.”

“내가 원하는 금액은 이백오십만 냥이에요.”

봉란은 이백만 냥까지 내려갈 걸로 보고 이백오십만 냥을 불렀다.

“만인물성에 대해 너무 과신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현재 만인물상이 겪고 있는 불황은 장 대협 말처럼 황실의 무역 금수 조치 때문이에요. 만일 그 조치가 풀리면 우리 만인물성은 과거 위용을 되찾을 거예요. 그럼 천만 냥도 아깝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현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원래 가격의 사분의 일만 부른 거예요.”

“그 조치가 언제 풀릴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어쩌면 백여 년 동안 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만인물성을 구입한 나는 실패한 투자를 하게 되는 셈이죠.”

“금수 조치가 풀릴지 안 풀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어요.”

“그렇지만 너무 불확실합니다. 보통 장사꾼은 그런 불확실성을 가진 물건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제가 양보를 하겠습니다. 백만 내겠습니다.”

“이백만.”

“백십만.”

“백팔십만.”

“성주가 직접 경영하는 걸로 하고 백오십만 드리겠습니다. 그 이상을 달라고 하면 그만두겠습니다.”

금장생은 마지막 제안을 했다.

“……!”

봉란은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시체를 옮기는 비용은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 이천 냥부터 시작합니다.”

“네?”

봉란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저 시체 말입니다.”

금장생은 소라를 턱으로 가리켰다.

“아! 네.”

“그럼 안으로 옮겨 주세요. 계약서 쓸 준비도 해 주시고요.”

“아, 알았어요.”

봉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