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241화 (241/524)

황금가 (241)

―시작하겠습니다.

역불개는 전 내공을 사망선으로 밀어 넣었다.

사망선의 암기를 발사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사망선에 전 내공을 밀어 넣으면, 내공이 부챗살 안쪽으로 차곡차곡 싸이면서 압력을 형성한다.

점점 강해진 압력은 밖으로 튀어 나가려고 하는데, 뭔가에 가로막혀 나갈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도 압력은 더 강해진다.

부챗살이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손잡이에 있는 단추를 눌러 주면 사망침은 저절로 튀어 나간다.

바로 지척에서 쏘아진 암기는 사전에 알기 전에는 절대 피하지 못한다.

금장생이 사망선을 알아보았지만 상관없다.

사망혈마는 사망침을 집어넣기는 했지만 실제 사용한 적은 없다. 사망침을 사용하게 되면 더 이상 사망선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사망선을 전혀 모른 자 같으면 돌발 상황에 대비하겠지만, 잘 아는 자는 오히려 대비를 하지 않는다.

아니, 설사 대비를 한다고 해도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내가 사망선에 대해 말한 게 바로 이런 때를 위해서다, 놈.’

역불개는 내심 중얼거렸다.

어느새 사망선 안은 내기로 넘쳐 났다.

이제 손잡이에 있는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열두 개의 사망침은 화살보다 수십 배 빠른 속도로 쏘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역불개는 이를 악물었다.

암기를 발사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발사하는 순간을 어떻게 숨기느냐 하는 것이다.

사망혈마는 그때를 대비하여 허초를 만들어 두었다.

겉보기엔 사망혈해보다 더 강해 보이지만 실체로 사망선만 빼고 모두 허상이다.

이름도 그럴싸하게 사망무변死亡無變이라 지었다.

“차하! 사망무변!”

그는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사망선을 휘둘렀다.

슉슉슉! 슉슉슉! 슉슉슉!

수백 개의 사망선이 비처럼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 사망선 바로 뒤에는 역불개가 진짜 사망선을 쥐고 따르고 있었다.

“타하!”

금장생의 입에서도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는 바닥을 차 역불개를 향해 솟구쳤다.

스윽!

금장생이 솟구치자 다이라 소라는 은신술을 펼쳤다.

그리고 역불개와 금장생이 맞닥뜨렸을 때, 금장생이 물러날 장소를 가늠하여 그 자리로 가서 쪼그려 앉았다.

그녀의 손에서는 태양도와 월음도가 새파란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역불개와 금장생 사이의 거리는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거리가 삼 장으로 좁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역불개는 단추를 누르지 않았다. 금장생이 흑사아를 던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거리는 일 장이었다.

설사 알아차렸다고 해도 피하기엔 늦은 죽음의 거리.

금장생이 내던진 흑사아와 사망선이 부딪치기 직전이었다.

“이제…….”

역불개는 금장생을 얼굴을 보았다.

상대가 죽기 직전 얼굴을 보는 건 역불개의 오랜 습관이었다.

마침 금장생도 역불개를 보고 있었는지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추졌다.

―나는 황금전가의 셋째 아들입니다.

단추를 누르려는 순간 금장생의 전음이 들려왔다.

“화, 황금…….”

황금전가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역불개는 반 호흡을 놓쳤다.

그 순간 금장생의 상체가 뒤로 젖혀지는 모습이 보였다.

역불개는 반사적으로 단추를 눌렀다.

퍼억! 퍼억! 퍼억!

부챗살 열두 개가 터져 나갔다. 그리고 검은색 사망침이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푸아악!

사망침은 너무 빨라 검은 광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검은 광채는 아슬아슬하게 금장생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만일 황금전가라는 말을 듣고 역불개가 움찔하지 않았다면 암기들은 모두 금장생의 몸으로 틀어박혔을 게 분명했다.

푹! 푹푹푹! 푹푹!

암기가 파고드는 소리가 금장생 뒤에서 들려왔다.

“컥!”

이어 나직한 비명이 뒤를 이었다.

“헉!”

역불개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사망침의 제물이 된 사람은 앞에 있는 금장생이 아니라 숨어서 기회를 엿보던 다이라 소라였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곳에…….”

역불개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금장생을 없앨 수 있는 장소는 꼭 바로 뒤가 아니어도 된다. 왼편이나 오른편에 은신해 있어도 된다.

반드시 뒤에서 목을 치고 싶다면 반 장 정도 물러나 있어도 충분하다.

그런데 다이라 소라는 조금 전 금장생이 서 있던 곳에 은신해 있다가 빗나간 사망침의 표적이 되고 만 것이다.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푸욱!

바로 그때 검은 광채 하나가 역불개의 옆 목으로 파고들었다. 금장생이 던진 흑사아였다.

“당신은 사망무변이란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역불개의 앞으로 다가온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럼 그것 때문에?”

역불개는 금장생을 보았다.

“개가 크게 짖는 건 위협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라고 배웠거든요.”

“그게 초식명을 외친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무인이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건 한 가지 경우밖에 없잖습니까. 내 패를 다 보여 주었는데도 상대가 끄떡도 하지 않았을 때 말입니다.”

“내가 마지막 초식까지 다 펼쳤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거구나.”

“맞습니다. 그리고 보여 줄 게 없는 자가 전보다 더 화려한 공격을 한다는 건 허초일 가능성이 구 할 이상이라는 거죠.”

“쿡!”

역불개는 피식 웃었다.

무공에서도 심리에서도 임기응변에서도, 완벽한 패배였다.

“황금전가를 되살릴 생각이냐?”

“그럴 생각입니다. 하지만 황금전가라는 이름을 쓰지는 않을 겁니다.”

“황금가를 쓸 거라는 거냐?”

“네.”

“황금전가를 멸문시킨 자들은 황금가가 황금전가의 후신이라는 걸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확신은 못 하겠지요.”

“확신을 못 한다고?”

“확신을 못 하면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해야 하고,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보내게 되죠.”

“그러니까…….”

“소나기를 맞나 가랑비를 맞나 시간이 지나면 결국엔 옷은 젖게 됩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조금씩 없애겠다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없애야 할 적이 누군지는 아느냐?”

“먼저 태양상인과 혈가를 정리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상천금가를 없애야겠죠. 물론 상천금가 배후에 있는 화가도 정리를 해야 하고요.”

“화가? 넌…….”

역불개의 눈이 커졌다.

화가는 일반 상인이나 무인이 알 수 있는 그런 조직이 아니었다.

“아쉽군요.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너, 너는 도대체 누구…….”

역불개는 의식이 급격하게 흐려져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툭!

츄아악!

목을 막고 있던 손이 힘없이 떨어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금장생은 역불개 앞으로 갔다.

앞섶을 열어 속주머니 안에 넣어 둔 소지품을 꺼내 꼼꼼하게 살폈다. 그런 다음 필요한 건 챙기고 나머지는 가슴 위에 올려놓고 이화태양강을 펼쳤다.

잠시 후 뿌연 수증기가 흘러나오더니 역불개의 몸통이 가루로 변했다.

‘으!’

뒤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렸다. 피투성이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사화死花 소라.’

금장생은 내심 중얼거렸다.

전에 백사와 함께 여행을 할 때 쫓아왔던 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아직 살아 있었다. 하지만 살아남을 가망은 없었다.

“또 만나는군요.”

금장생은 소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 우리가 전에 본 적이 있느냐?”

소라는 금장생을 보며 물었다.

“얼마 전에 강시를 운송했습니다. 당신을 비롯하여 팔왕가에서 나온 자들이 나를 쫓아왔었지요.”

“그럼 넌?”

“그때 강신술사였습니다.”

“…….”

소라는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아무튼 당신을 죽인 건 내가 아니고 역불개 대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중요하냐?”

“중요하다기보다는, 불필요한 원한을 사고 싶지 않아서 그럽니다.”

“이미 넌 우리 혈가의 원수가 되었다. 내 아버지는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다.”

“……실례가 안 된다면 아버지가 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

“혈왕이다.”

“이런!”

금장생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설마 사화 소라가 혈왕의 딸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넌 상대를 잘못 택했다, 강신술사.”

“이렇게 된 이상 당신께 아버지를 보내 드리는 수밖에 없겠네요.”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했다.

“미친놈! 넌…….”

다이라 소라의 고개가 힘없이 돌아갔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쯧! 공연히 뒤로 와 가지고는……. 여러분도 마찬가집니다. 남 뒤로 함부로 가지 마세요. 특히 싸우는 사람 뒤에는 절대 가는 거 아닙니다.”

금장생은 싸움을 끝내고 다가와 있는 팔장군을 보며 말했다.

―저 자식 지금 뭐라는 겁니까?

적사월은 염라에게 물었다.

―조금 전 저 여자와 나눈 대화로 짐작건대, 저 여자가 죽은 게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은 모양이네.

―별 거지 같은…….

―클클클! 아무튼 우린 특이한 사람을 주공으로 모신 것 같네.

―주공이 아니고 저 녀석입니다, 저 녀석!

적사월은 버럭 소리쳤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가?

전노왕 묵천야가 물었다.

―좀팽이에 책임감이 조금도 없는 사람을 주공으로 모셨다는 말을 하고 있었네.

―주공?

―저 자식을 주공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암왕이네.

“다음부터는 싸울 때 옷에 신경을 좀 써 주십시오. 새 옷을 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때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자식 지금 뭐라고 하는 건가?

적사월이 묵천야에게 물었다.

―우리가 옷을 너무 험하게 입는다며 주의를 주고 있는 거네.

묵천야의 말에 적사월은 자신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옷을 보았다.

격렬하게 싸운 탓인 듯 말끔한 복장을 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거의가 다 속살이 내보일 정도로 심하게 찢어져 있었다.

‘싸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더구나 우린 강시잖아!’

적사월이 내심 소리쳤다.

“물론 여러분이 강시고 금강불괴신에 가까워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몸에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을 아무렇게나 굴리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무공이 전혀 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무공을 익히는 건, 지금보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각을 되살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내 말을 고깝게 듣지 말고 다음부터는 좀 더 자신의 몸에, 아니 입고 있는 옷에 신경을 써 주세요. 시장 가서 옷부터 사야 할 것 같네요. 그만 가요.”

금장생은 걸음을 옮겼다.

―좀팽이.

―쿡쿡쿡!

적사월의 말에 묵천야는 나직하게 웃었다.

일행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금장생을 따라 시장으로 들어갔다.

금장생이 떠나고 일각 후 두 사람이 싸움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봉파륵과 그의 심복 파달이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사방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일각 후 다시 모였다.

“몇 명이냐?”

“사백마흔 명입니다.”

“혈가에 사백마흔 명으로 구성된 단체가 있느냐?”

“태양군단이 있어요.”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삼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어떻게 보면 요염하고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또 한편으로는 차갑게 보이기까지 하는 이 여자는 봉파륵의 딸이자 현 만인물성의 성주인 봉란이었다.

“저들이 태양군단이란 말이냐?”

봉파륵은 물었다.

“네. 그리고 저기 죽어 있는 열두 명은 역불개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십이상객이고요.”

봉란은 십이상객의 시체를 가리켰다.

“그럼 이 여자는?”

봉파륵은 다이라 소라를 가리켰다.

“그 여자의 별호는 사화예요.”

“사화면?”

“중원무림에서는 열 명의 자객을 십대자객이라 부르는데, 사화 소라는 사상에 이어 이 위에 올라 있어요.”

“그런 엄청난 무인을 그자가 없앴다는 거냐?”

“소라가 엄청난 무인이라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십대자객 서열 이 위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녀의 신분이에요.”

“신분이 어떻게 되는데 그러느냐?”

“사화 소라는 혈가 가주의 딸이에요.”

“맙소사.”

봉파륵의 입이 쩍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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