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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35화 (235/524)

황금가 (235)

그러나 한참을 기다렸지만 카루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은 안 되는 모양이네요.

불여하가 실망한 얼굴로 글을 썼다.

그런데…….

마노왕 적사월이 손을 번쩍 들었다.

다른 이들은 일제히 마노왕 적사월을 보았다.

우리가 정신을 차린 게 정상적인 상황입니까?

적사월은 글을 썼다.

‘아!’

‘맞아!’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택한 건 부활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목숨을 버린 상태에서 죽지 않는 자라고 부르는 언데드로 다시 태어나, 깨운 자와 주종 관계를 맺고 살인 무기가 될 참이었다. 그래서 철갑괴인과도 별도의 계약까지 맺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린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불여하가 허공에 글을 썼다.

현재 우리 상황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자는 우리를 깨운 사람이에요. 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지 알기 전까지는 우리가 깨어났다는 걸 숨기기로 했으니까,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잘못된 상황이고, 만일 그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면 현재의 몸 상태로는 불가능해요.

가장 먼저 몸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거군요.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철노왕 고태백이 불여하에 이어 글을 썼다.

맞아요.

불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현재 우리가 할 일은 정해졌군요.

철노왕 고태백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했다.

그 전에 인사나 합시다.

암노왕 염라가 허공에 글을 썼다.

인사요?

불여하는 염라를 보았다.

저승에서 돌아왔는데 축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팔왕은 여전합니다.

‘풋!’

불여하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여전하다는 건 무슨 뜻이죠?

여전히 심장이 흔들릴 정도로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얼굴이 변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네.

‘그러고 보니…….’

불여하는 암노왕 염라를 비롯한 일행을 차례차례 바라보았다.

마지막 순간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암노왕 염라는 여전히 험악한 인상을 하고 있고, 마노왕 적사월의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 높은 코, 큰 입도 그대로다.

화노왕 금웅은 체형이 왜소하고 얼굴도 여자처럼 갸름하다.

일곱 명의 사내 중 가장 미남인 해노왕 혁장운도 변한 게 조금도 없다. 그가 지니고 있는 유성추는 여전히 진득한 살기를 뿌려 대고 있다.

쇠로 만든 것처럼 강인해 보이는 전노왕 묵천야도 그대로다. 심지어 죽기 직전 다듬어 주었던 구레나룻과 턱수염도 그대로다.

혈노왕 신무도 다르지 않다. 작고 차가운 눈동자는 지금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본인 키보다 더 큰 창이 저렇게 어울리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그는 늘 고향인 동영을 그리워했는데 지금도 그런지 궁금하다.

그리고 철노왕 고태백.

그는 조선 출신이다. 덩치가 크고 단단해 보이는 체격을 가졌다. 평소 성격은 온순하지만 한번 화를 내면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그 역시 죽음의 의식을 치렀을 때 모습 그대로다.

세월 빼고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 세월도 변했는지 그대로인지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우리를 깨운 자가 나타나면 알게 되겠지.’

불여하는 가부좌를 했다.

‘그이는…….’

문득 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삼십 대 중반 사내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였다.

삼십 대 중반 사내는 남편이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자식들이다. 그들을 남겨 두고 떠나올 때 운영은 다섯 살, 순은 세 살이었다.

만일 그 아이들이 없었다면 죽음을 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주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

그리고 가부연.

그는 평범한 사내였다. 무공도 익히지 않았고 공부도 많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착하고 성실했다.

그가 손톱만큼이라도 야망이란 걸 가졌거나 성공을 갈망하는 자였다면 운영과 순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온순했으며 여자보다 더 가정적인 사내였고, 운영과 순을 목숨보다 더 사랑했다.

그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마르지 않는 힘이었다.

그가 온순한 건 낮 시간뿐이었다. 밤이 되면 거칠고 야성적인 사내로 돌변했다.

무공도 익히지 않은 사람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그와 관계를 갖다 보면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다.

남편은 무공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선생님이었다. 그에게 길들여지고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밤에는 그가 신이고 왕이었다.

‘아이들을 잘 키웠을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보고 싶어요.’

불여하는 내심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의식을 단전으로 보냈다. 단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저건?’

그녀는 깜짝 놀랐다.

단전은 그녀가 상상했던 정도가 아니었다. 적어도 세 배 이상 확장돼 있었다.

‘그 당시 내 공력은 삼 갑자 정도였는데 저렇게나 커졌다면…….’

불여하는 믿기지가 않았다.

단전의 크기로 본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공력은 십 갑자 수준이다.

그녀는 얼른 단전 안쪽을 확인했다. 내공의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단전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응?’

그녀는 깜짝 놀랐다.

단전 한가운데 검은 구체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주먹보다 약간 작은 그것은 이어진 것도 없는데도 떨어지지 않았다.

‘설마 내단? 맙소사! 마, 말도 안 돼.’

불여하는 믿기지가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 이론이 맞는다면 단전에 자리한 저것은 내단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가 알기론 내단은 수백 년 이상 수련해야 간신히 생성해 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녀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단전이 세 배 이상 커지고 내단이 생성될 정도라면 일이십 년 혹은 사오십 년이 흐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백 단위는 넘어갈 게 분명하다.

‘여보! 운영아, 순아,’

불여하는 남편과 자식들의 이름을 불렀다.

슬픔이 봇물처럼 밀려왔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먼저 몸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해. 그래야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어.’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상황에서 몸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단전의 내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금 내단은 가사 상태에 빠진 사람과 비슷하다. 녀석을 살려 내야만 몸도 살아날 것이다.

불여하는 시간을 잊고 내단에 집중했다.

다시 사흘이 지났다.

숨을 쉰다고 하지만 반 각에 한 번 정도다. 내부 장기들 또한 정지된 상태나 다름없다.

싸지도 먹지도 않으니 일어설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이틀 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론은 가사 상태에 빠진 내단을 깨우기 위해서는 몸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거였다.

벌컥!

그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여하는 눈을 떴다.

“윽!”

코를 그러쥐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부, 부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안으로 들어온 사내는 분명 남편 가부연이었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불여하는 천장을 바라보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남편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건 세월이 흐르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운영과 순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무슨 냄새지?”

금장생은 방 내부를 살폈다. 시체 썩는 냄새와 비슷한 악취가 진동했다.

“얼레?”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팔장군들이 입고 있는 옷도 검은 기름을 칠해 놓은 것처럼 얼룩이 져 있었다. 얼룩의 양도 상당했다.

“전부 일어나세요.”

금장생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팔장군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이건?’

‘어?’

불여하를 제외한 팔장군들은 당황했다.

자신들은 일어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몸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불여하는 달랐다.

그녀는 감격한 눈빛으로 금장생을 보고 있었다.

‘당신이었군요. 우리를 깨운 사람이 당신이었군요.’

그녀는 아직도 금장생을 남편 가부연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금장생의 시선이 불여하에게로 향했다.

‘여보!’

불여하는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아니, 목소리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도 변하지 않았다. 아직은 소근육들이 움직이지 않아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금장생은 불여하가 눈을 크게 뜬 건 자신의 질문에 반응을 보인 거라고 생각했다.

‘나예요! 여하라고요! 당신을 색마라고 불렀던 그 여하라고요!’

불여하는 계속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금장생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안 되겠네. 전부 따라오세요.”

금장생은 팔장군을 데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방이라 그런 듯 욕실도 상당히 컸다. 욕조에는 물이 가득 채워진 상태였다.

“전부 옷을 벗으세요.”

금장생의 말이 떨어지자 팔장군들은 일제히 장포를 벗었다.

이,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옷을 벗으면서 화노왕 금웅은 불여하를 보며 손가락으로 글을 썼다.

하지만 불여하는 금웅의 질문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멍하니 금장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두 팔은 계속 움직여 상의를 벗었다.

“이런! 사노왕은 멈추세요.”

불여하의 가슴이 드러나자 금장생은 멈추라고 지시를 내렸다. 사노왕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옷을 입고 나가 있으세요.”

금장생은 밖을 가리켰다.

그가 불여하만 따로 내보낸 건 인간과 너무 비슷해진 행동 때문이었다.

게다가 전과는 달리 지금은 피부색까지 원래대로 돌아와 남녀 구분이 명확하다.

의식이 없는 강시라고 하지만 함께 목욕을 시킨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정말 날 알아보지 못하는군요.’

불여하는 벗던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다들 안으로 들어가서 목욕을 하세요.”

금장생은 조두를 욕조 옆에 놔두며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일곱 명은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금장생은 밖으로 나가 일꾼들에게 물을 더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욕조 옆에 있는 커다란 물통 네 개가 전부 채워졌다.

금장생은 별도의 통을 부탁해서 팔장군들이 벗어 놓은 옷을 빨았다.

옷에서는 검은 물이 흘러나왔다.

‘인시가 돼 가는 모양이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는 경황이 없이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지금 보니, 지난 천 몇백 년 동안 몸 안에 쌓인 탁기다.

옷 곳곳이 검게 변한 걸 보면 코나 입으로 탁기를 뱉어 낸 게 아니라 온몸으로 뱉어 냈다는 걸 뜻한다.

몸이 살아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금장생은 몸을 씻고 있는 이들을 보았다.

손으로 열심히 몸을 문지르고 있지만 탁기가 잘 지워지지 않았다.

아직 때를 닦아 낸다거나 하는 것처럼 꼼꼼한 손길이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았다. 게다가 얼룩이 있는 부분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금장생은 바쁘게 움직였다.

서둘러 옷을 빤 후 물기를 짜고 삼매진화로 말려 차례대로 걸었다.

“다 씻은 분부터…… 아니, 마노왕은 이쪽으로 오세요.”

금장생은 마노왕 적사월을 불렀다.

마노왕 적사월은 욕조에서 나와 금장생 앞으로 가 섰다.

‘도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을 했는데 네놈 말이라면 꼼짝도 못 하는 거냐고?’

적사월은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금장생은 그의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똑바로 서세요.”

금장생이 말하자 적사월은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 상태에서 조두를 비벼 거품을 낸 다음 적사월의 몸을 벅벅 문질렀다. 흰색이었던 조두 거품이 곧 검게 변했다.

검은 얼룩이 가장 많이 묻어 있는 곳은 가슴과 단전 부분이었다.

가장 먼저 허파와 단전이 살아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팔 들어 올리세요.”

금장생의 말이 들려오자 적사월은 번쩍 손을 들었다.

―큭큭큭!

바로 그때 귓전으로 화노왕 금웅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웃음이 나오는가?

적사월은 금웅을 노려보았다.

금웅이 한 살 많지만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아니, 금웅뿐만이 아니다. 나이가 가장 많은 암노왕 염라가 일흔 살이고 가장 어린 혈노왕 신무가 쉰세 살이지만 나이를 따지지 않고 격의 없이 지냈다.

―웃긴 걸 어떻게 하라는 건가?

―이 자식이…… 헉!

고개를 숙였던 적사월이 질겁했다.

금장생의 손이 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성기였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강신술사고 내 직업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강시의 성기를 씻어 주는 건 사양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내 호위라고 해도 말입니다.”

투덜거리면서도 금장생은 적사월의 성기와 고환을 꼼꼼하게 씻었다.

―이 새끼 죽여 버릴 거야!

적사월은 주먹을 불끈 그러쥐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은 상체를 숙인 채 적사월의 성기를 닦느라 여념이 없었다.

머리를 향해 두 주먹을 내리찍으면, 아무리 단단하다고 해도 박살 나고 말 것이다.

―아무 생각 없는가?

화노왕 금웅의 전음이 들려왔다.

―무슨 생각?

―그놈이 지금 자네를 애무해 주고 있잖은가?

―이런 썅!

마노왕 적사월은 주먹을 힘껏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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